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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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근대역사를 전공한 뉴욕대학의 토니 주트 교수는 최근 [북소리]에서 소개한 <기억의 집; http://blog.joins.com/yang412/13652730>과 <20세기를 생각한다; http://blog.joins.com/yang412/13704215>를 통하여 만나본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년 전에 출간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http://blog.joins.com/yang412/12125440>를 통하여 처음 만났는데, 자유시장주의를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나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한 공산주의에 대하여 공히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이념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반대의 이념에는 비판적이지만 자신이 믿는 이념을 바라볼 때는 너그러운 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사회현상에 대한 논평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만, 저자와 같이 냉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면 해결방안이 도출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의 집필의도에 관하여 “나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특히 그러한 젊은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전제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의무가 있다. 하지만 비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오직 이리저리 해석하기에만 바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토니 주트 지음,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237쪽, 플래닛 펴냄, 2011년)”라고 변화를 위한 적극적 행동을 주문하였습니다. 저자가 “이 책은 대서양 양안에 사는 젊은이들을 위해 쓴 것이다.”라고 밝힌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사상이 싹을 틔워 성장하고 소멸한 유럽대륙과 자본주의가 꽃을 피운 중심이 북미지역이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재평가>는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저자가 다양한 잡지에 서평형식으로 발표한 글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통상적인 서평에 비하여 호흡이 긴 글인데, 비평의 핵심이 되는 저서 뿐 아니라 관련된 책은 물론 연관이 있는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비평이 비판에 머물지 않도록 안배를 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를 배워야 할 흥미로운 무엇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라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재평가(再評價; Reappraisals)”의 사전적 의미는 ‘이미 평가된 것을 다시 평가’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평가에 잘못은 없는지 다시 곱씹어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비판의 수위를 고려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책의 핵심은 잔인하지만, 부당하지 않다. 특히 정치적 우둔으로 치장한 20세기 문단의 신사 숙녀들에 대해 상기시킨다.”라고 쓴 뉴욕 타임스의 평이 충분히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서평이 발표된 다음에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맨 끝에 짧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서평에 이은 논쟁을 별도로 소개하기도 하였고, 격렬한 반응을 요약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 글은 마이클 오런이 6일 전쟁을 새롭게 쓴 책의 서평으로 2002년 7월 <뉴 리퍼블릭>에 내가 기고한 마지막 글이다. 이듬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단일국가해법에 관한 글 때문에 이 잡지의 발행인 란에서 내 이름은 사라졌다. 서평의 논조는 대체로 우호적이었는데도, 마이클 오런은 (아마도 이견이나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이상하게도 욕설이 섞인 인신공격적 반응을 보였다. 그 글은 <뉴 리퍼블릭> 2002년 9월 30일 판에 실렸다.(367쪽)”

 

저자는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 작가들의 입장이나 이스라엘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폭탄주를 제조하는 사람이 먼저 마셔서 동참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부 어둠의 심장’에서 다룬 아서 케스틀러, 프리모 레비, 마네스 슈페르버 그리고 해나 아렌트는 모두 유대인입니다. 아서 케스틀러의 경우는 데이비드 시저러스의 <아서 케스틀러; 정처 없는 영혼>에 대한 서평으로, 프리모 레비의 경우는 <프리모 레비; 어느 낙관주의자의 비극>에 대한 서평으로 쓴 글이며, 마네스 슈페르버와 해나 아렌트의 경우는 회고록 혹은 글모음에 대한 서평입니다. 비판의 대상에 대하여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비판할 부분은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요즘 말로 돌직구를 날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토니 주트는 케스틀러의 사생활이 타인이 보기에는 문제가 많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스스로 공산주의에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체제의 범죄와 과오를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해석합니다. “(아서 케스틀러의 <한낮의 암흑>)은 대중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한 독재정권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과 논거, 재판을 조작하는 거짓말이자 사기로 제시했으나, 식별력을 더 갖춘 지식인 독자층에게는 공산주의를 가혹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기묘하게도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것으로 제시한다.(84쪽)”

 

프리모 레비에 대한 글에서 우리는 홀로코스트의 비극의 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자신이 생존자였던 빅터 프랭클박사는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http://blog.joins.com/yang412/5396723>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생존자들은 ‘살아남았고, 다른 이들이 겪은 절망적인 고초를 전달하지 못했으며, 깨어있는 매순간 증언과 회상에 전념하지 못했다’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것입니다. 즉, 생존자들은 ‘마음속에서는 수용소를 결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무리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레비가 말년에 남긴 ‘생존자’라는 제목의 시를 보면 살아가면서 겪어야 했던 내면의 고통이 읽힙니다. “물러서라. 나를 내버려두어라. 어둠에 빠진 자들이여 / 사라져라. 나는 누구에게서도 무엇을 빼앗지 않았다. / 누구의 빵도 강탈하지 않았다. / 아무도 내 대신 죽지 않았다. 아무도.(…)(103쪽)” 살아 돌아온 사람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레비 역시 68세 되던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회고록에 대한 서평에서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를 해석함에 있어서 편의성을 취하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판합니다. 스탈린주의라고 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것과 마르크스가 예언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신뢰성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려는 알튀세르의 노력은 차라리 애처로울 지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에릭 홉스봄의 자서전에 대한 서평에서는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재앙과 같은 잘못에 눈을 감고 공산주의를 낭만적으로 묘사하였다고 비판하였습니다. 홉스봄이 악을 직시하기를 거부했고, 악을 악이라 부르기를 거부했으며, 스탈린 등이 한 정치적 유산은 물론이고 도덕적 유산에 대하여 언급을 피함으로써 미래의 진보주의자들이 오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좌파는 오랫동안 자신들의 안에 있는 악마 공산주의자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반공주의에 대한 무작정의 반대는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정치적 사고를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좌파가 자신감을 회복하고 일어서려면, 과거에 관하여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얘기는 그만 두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합니다. 저자의 이와 같은 논지는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목이라서 실감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3부에서는 20세기를 지나오면서 잘못된 정책을 선택한 프랑스,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 그리고 이스라엘 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전개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프랑스와 같이 두 꼭지를 할애하여 깊이 다루었습니다.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기억의 집>에는 젊은 시절 방학을 이용하여 방문한 키부츠에서 얻은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의 문제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집단 자치 정부를 꾸렸다거나 소비재를 평등하게 배급한다고 우리가 더 교양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타인에게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은, 자부심이 극단에 이를수록 가장 악질적인 인종적 유아론만 강해질 따름이다.(토니 주트 지음, 기억의 집, 103쪽, 열린책들, 2015년)”

 

사방이 이슬람국가들로 둘러싸인 조국을 지켜야 했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풍전등화 신세의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민족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국민 각자의 몫을 줄여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이 세계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뒤 이스라엘 내각은 영구 평화를 대가로 점령지를 반환한다는 원칙을 수용하기로 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은 이행되지 않았고, 점령한 땅을 계속 점유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랍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추방되거나 도피하여 이스라엘로 유입되고 있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한 처지가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같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저항하기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이들에 대하여 통행금지, 가옥파괴, 토지 강탈, 총격, 표적 암살, 장벽설치 등, 탄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과 아랍제국들 모두에게 좋은 중동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결국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들이 건설했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정착한 초현대적 사회라는, 어렵사리 쌓아올린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바뀌어 식민점령국에 인종차별을 일삼는 나라라는 정도의 비유는 진부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대인을 대신하여 박해받는 소수민족이며 희생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청년들에게 이스라엘은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과 비교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스라엘이 주요 정착촌을 해체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조건없이 협상을 재개하고 팔레스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맥락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모음집에 대한 서평에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민족일국가주의(二民族一國家主義)를 내세웠습니다.

 

쿠바위기에 관한 서평을 읽다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 정책에서 미국이 갈팡질팡한 속내가 가늠되기도 합니다. 1950년 1월 12일 미 국무장관 D. G. 애치슨은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영토적 야심을 저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沖繩]-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정하며, 타이완, 한국,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네시아 등은 이 방위선에 포함되지 않고 그들 지역들은 국제연합(UN)의 보호에 의존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극동에서의 미국방위선 구상을 발표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북한이 남침을 꾀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북한의 남침이 현실이 되고, 국군이 일방적으로 밀리게 되자 미국은 곧바로 국제연합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연합군을 투입하였습니다. 트루먼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은 소련이 독일의 분할된 국경선을 넘기 위하여 한국전선을 전략적 시금석으로 시험해보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모두 23개나 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거침없는 비평을 쏟아내고 있어 깔끔하게 요약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쉽게 읽히고 이해가 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보수와 진보가 양보 없는 대치국면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평가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616쪽

2014년 7월 20일

열린책들 펴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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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 ㅣ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5
임상래 외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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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경제가 회복될 기미 없이 총체적으로 난국에 빠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고 있다고 합니다. 브라질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자본이 10조원에 이르고 있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 가운데 브라질의 경제현황에 대하여, 혹은 브라질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투자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곳이기 때문입니다. 정은선의 영상소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http://blog.joins.com/yang412/13685980>에 등장하는 방송작가는 고단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을 찍었는데, 바로 아르헨티나였습니다. 이처럼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있는 탓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남미가 점차 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나라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혹은 무역량이 많은 미국이 아니라 남미의 칠레였습니다. 케이블방송의 유명한 배낭여행프로그램을 통하여 남미의 관광지가 소개된 이후로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남미여행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우리네 옛 속담대로, 지난해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처음 다녀온 뒤로는 다음 여행지를 어디로 할까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운이 팔팔할 때 먼 곳을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미여행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일단은 여행사 상품으로 이용할 계획입니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은 교통, 숙소, 식사 등의 문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여행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 역시 인솔자나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하지만 여행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준비하면 여행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남미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자료들은 많지 않습니다만, 부산외대가 1997년에 설립한 중남미지역원에서 좋은 자료들을 꾸준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중남미지역원에서 내놓은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을 전문학술서로 준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양서로 읽을 수 있도록 전문용어와 주석을 줄이고 내용 역시 평이하게 다듬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의 이런 노력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이 열다섯 개의 장을 나누어 맡은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를 있게 한 식민역사를 먼저 다루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필두로 한 유럽세의 정복에 따른 식민지배와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근대국가를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제일 먼저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정리하고, 이어서 라틴 아메리카 고대문명의 기원과 시대구분에 이어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으로 대표되는 메소아메리카의 문명과 잉카문명으로 대표되는 안데스문명을 정리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식민통치의 잔재로 인한 인종문제, 빈곤과 불평등, 종교와 언어, 도시화와 이주문제, 정치적 전통과 경제의 변천과정 등을 요약하고,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와 한국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처음 발견했다는 역사는 유럽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라고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메리카대륙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면 처음 발견한 것이 옳겠지만, 이미 선주민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르난 코르테스가 110명의 선원으로 구성된 11척의 배에 나누어 탄 508명에 불과한 군인으로 유카탄반도에 상륙하여 아즈텍제국(저자들은 스페인사람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라틴아메리카에 자리하고 있던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그리고 잉카문명은 제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가기반이 탄탄하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볼 수 없던 총과 말이라는 신무기가 결정적인 이유였을까요? 6.25동란에 뒤늦게 참여한 중공군은 무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무기체계를 병사의 숫자로 채운 인해전술이 당시만 해도 첨단무기로 무장한 연합군을 압박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이런 설명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즈텍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그 배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무기 이외에도 정복자이 얻은 결정적인 도움 가운데 하나는 원주민들이 선물로 제공한 귀족처녀 말린체였습니다. 그녀는 아즈텍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케찰코아틀 신화를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태초에 열세 번째 하늘에서 창조자들은 네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는 붉은 테스카틀리포카, 둘째는 검은 테스카틀리포카, 셋째는 케찰코아틀, 그리고 넷째는 우이칠로포츠틀리입니다. 검은 테스카틀리포카가 지배한 최초의 세계인 대지의 세계로부터 케찰코아들이 지배한 바람의 세계, 비의 신 틀랄록이 지배한 비의 세계, 그리고 틀랄록의 아내이자 강과 호수의 여신 찰치우쿠틀리쿠에가 지배하던 물의 세계를 거쳐 지금의 다섯 번째 세계는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찰코아틀이 힘을 합쳐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바다의 괴물 틀랄테쿠틀리를 죽여 하늘과 대지를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불사의 존재인 괴물이 울부짖는 것을 달래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과 피를 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박종욱 지음, 라틴아메리카의 종교와 문화 75-89쪽, 이담북스, 2013년; http://blog.joins.com/yang412/13723866)

 

하지만 케찰코아틀은 결국 테스카틀리포카의 계략에 빠져 아즈텍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케찰코아틀은 메조아메리카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희귀종 새 케찰과 뱀을 뜻하는 코아틀이 합쳐진 이름으로 날개달린 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케찰코아틀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하얀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습니다. 아즈텍에서 추방당한 케찰코아틀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예언하였고, 아즈텍사람들은 케찰코아틀의 전설을 굳게 믿어왔다는 것입니다. 말린체로부터 케찰코아틀의 전설을 듣게 된 코르테스는 자신이 돌아온 케찰코아틀이라고 속여 목테수마왕의 환심을 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험한 지형 때문에 거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아즈텍문명은 도시국가들이 느슨한 연합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도시국가들 사이에 맺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인하여 이들 간에 갈등요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즈텍으로부터 독립을 원한 뜰락스깔떼가족이 코르테스 원정대에 5,000명의 후원군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때마침 유럽으로부터 원정대에 묻어온 천연두가 원주민 사이에 창궐한 것도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수도 테노치띠틀란을 공략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코르테스의 아즈텍 점령으로 시작한 스페인은 황금을 찾아 점령지를 넓혀나갔는데, 삐사로와 알마그로가 이끄는 군대는 안데스의 꾸스꼬까지 함락하게 됩니다. 중남미지역을 정복한 스페인이 특히 관심을 보인 곳은 아즈텍문명이 있던 멕시코와 잉카문명이 있던 페루였습니다. 두 곳에는 금과 은광산이 있고 원주민이 많아 노동력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남미지역의 식민통치 초기에는 정복에 공을 세운 사람을 총독으로 임명하였던 스페인왕은 자신의 대리인을 부왕으로 임명하여 통치하도록 하는 부왕제를 실시하였습니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너무 광대하여 본국에서 직접 다스리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것도 이유였습니다. 1534년에 멕시코에 누에바 에스빠냐 부왕청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1543년 리마에 페루 부왕청을, 1717년에는 지금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를 관장하는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청을 설치하였고, 1776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리오 델라 플라타 부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북미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가족단위로 구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라틴아메리카지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남성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과 원주민 사이에 혼혈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끌어온 흑인노예들까지 더해서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과 유럽의 백인 그리고 아프리카의 흑인 사이의 혼혈이 복잡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의 사회구성은 필연적으로 백인→혼혈인→원주민,흑인의 인종적 위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백인도 스페인에서 건너온 뻬닌술라레스가 식민지의 고위직을 맡고, 끄리오요라고 부르는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역시 차별적 대우를 받아 지배계층으로 부상할 수 없었습니다. 혼혈인이 식민지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는데, 이들은 주로 생산활동에 종사하면서 힘든 생활을 영위했다고 합니다.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을 메스티조, 백인과 흑인의 혼혈을 물라토,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은 삼보라고 했는데, 그밖에도 순혈과 혼혈 사이의 혼혈을 구분하여 달리 부르는 등 혈통에 관한 명칭이 십수 가지나 되고, 백인과의 거리에 따라서 차별이 심해지는 경향을 보여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뿌리가 혼혈에 따른 차별정책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정복과정에서 수많은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죽었고, 식민지로 전락한 이후에도 농장이나 광산에서 고된 노동과 학대를 받는 동안 죽어갔으며, 유럽에서 건너온 신종 전염병 등에 희생되어야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무렵 3,000~3,500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은 불과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90%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8% 정도로 추정되는데,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아즈텍, 잉카 및 마야의 후손들로 2,200만명 정도이며, 아마존처럼 저지대이면서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100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국가가 출현하게 된 것은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것을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스페인의 위상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식민지에 대한 본국의 통제가 점차 강화되어갔지만, 식민지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산층 끄리오요를 중심으로 식민지배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북소리]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아메리카노; http://blog.joins.com/yang412/13691658>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독립과정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기여한 중산층계급을 중심으로 근대국가가 형성되었지만, 군대와 정치세력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졌으며, 쿠바사태에 놀란 미국정부가 라틴아메리카의 공산화를 억제하기 위하여 우파세력이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도록 지원하였지만, 부패한 정권에 대한 좌파적 성향의 반대세력들의 반발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현황은 혼란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들어선 정권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투명한 정부운용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라틴 아메리카의 어제와 오늘>은 자연과 신화, 역사, 특히 스페인의 식민지배과정과 독립, 그리고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북소리]에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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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세계를 삼키다 - 작지만 강한 한국 중소기업의 성공 DNA
진병호 외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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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등장하였지만, 탄탄한 중소기업이 뒷받침하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그저 대기업만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만, 탄탄한 중소기업이 많으면 좋은 취직자리도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은 취업인력의 15%만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85%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강소기업의 중요성이 누누이 강조되고 있지만, 글로벌 강소기업을 일구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브랜드, 세계를 삼키다>는 중소기업의 국제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힘을 모아 정리한 강소기업을 일구는 길을 안내합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소기업의 사례를 분석하여 성공요인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방법을 채택한 저자들은 국내 중소기업들 가운데 자사 브랜드를 가지고 해외진출에 성공한 13개의 강소기업을 골라 그들이 걸어온 길을 분석하였습니다. 기존의 자료와의 차별점으로는 첫째, 소비재 분야에서 자사 브랜드를 수출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사례분석을 통하여 실제적인 시사점을 도출해냈다는 점입니다. 셋째, 회사의 공식적인 자료는 물론 회사의 핵심인사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통하여 수집한 자료까지 포함하였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글로벌경쟁력을 제고하고 청년 일자리의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하였습니다.

 

저자들의 연구대상이 된 글로벌 강소기업들은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뛰어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전략에 있어서는 차별점들이 있었는데, 실행전략에 따라 점진 성공형, 마케팅 승부형, 금의환향형, 다품종 소량생산형, 일인 벤처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점진 성공형은 해외 또는 국내 대기업에 OEM방식으로 남품하는 형식으로 출발하여 자사 브랜드를 개발하는 단계로 이행하여 이제는 국내판매보다는 해외매출이 더 많은 회사들입니다. 마케팅 승부형은 OEM방식을 건너뛰어 자사 브랜드를 가지고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은 다음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로 활발한 마케팅으로 해외인지도를 높여나간 회사들입니다. 금의환향형은 자사 브랜드가 국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여 고전을 하는 바람에 눈을 해외로 돌려 성공을 거둔 다음에 거꾸로 국내시장을 장악하게 된 회사들입니다. 다품종 소량생산형은 다양한 해외 바이어의 입맛을 맞추기 위하여 디자인, 수량, 납기 등을 조절하는 발빠른 전략이 성공을 거둔 회사들입니다. 일인 벤처형은 독특한 사례로서 독특한 디자인으로 해외바이어의 관심을 끌게 된 브랜드를 하청을 통하여 생산하여 공급하는 방식으로 최소의 인원으로 해외주문에 응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13개 개별회사들의 연혁으로부터 창업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전과정, 해외진출의 계기와 전략 등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난관을 어떻게 돌파하였는지에 관한 내용들은 관계자의 인터뷰를 통하여 생생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개별 사례를 통하여 차별점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다음, 말미에는 이들 기업의 공통점을 정리하였습니다. 13개 기업의 사례에서 추출한 성공요인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확실한 제품력, 과감한 연구개발, 틈새시장 공략, 정직과 신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마케팅 등으로 요약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사 브랜드를 가지고 해외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제언을 더하였습니다. 세상은 넓다. 분명이 우리 제품을 팔 시장이 존재한다는 적극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넓은 만큼 시장이 다양하기 때문에 시장에 따라 차별화된 공략법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제품별로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하며, 단숨에 승부를 내기보다는 긴 호흡으로 실력으로 승부를 내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려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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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 - 유독 마음을 잘 다치는 나에게 필요한 심리 처방
최명기 지음 / 알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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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가 된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을 공부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최명기원장님은 필력도 대단하셔서 매년 한 권의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실천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무엇이 당신을 일하게 만드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93962>와 <내 몸은 내가 지킨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73430>를 읽으면서 대단하다는 느낌과 함께 책을 이렇게 써야한다는 것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두 종류의 책들은 심리에 관한 내용과 보건의료 정책에 관한 에세이였는데, 이번에는 전공을 살려 본격적인 심리치료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작은 상처가 더 아프다>는 누구나 금방 공감하는 내용을 특유의 쉽게 읽히는 필치로 설명합니다.

 

요즘은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만, 옛날에는 프로권투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권투시합을 구경하다보면 잽을 자주 던져야 한다는 해설을 듣게 됩니다. 큰 펀치 한방에 넉다운이 되는 것을 보기에는 시원하지만, 쉽게 만날 수가 없는데, 오히려 잔펀치를 맞다보면 가벼워 보이는 한 방에 넉다운되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잔매에 장사 없다는 우리 옛말이 꼭 맞아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한 마디에 마음이 크게 상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작은 상처가 왜 더 아픈지, 작은 상처를 입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정리해냈습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젖는 줄 모른다고 작은 상처가 쌓이면 큰 상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작은 상처는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작은 상처를 이기는 방법을 3단계로 구성하였습니다. 우선 왜 나만 상처를 받는지 파악하는 단계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주변의 변화를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쉽게 상처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그런 형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왜 그러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의 성격은 물론 심리까지도 파악하여 적절하게 대응해야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구체적인 전략을 짜는 것인데, 우선은 스스로를 변화시켜 정신적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의도적으로 혹은 무심결에 던지는 도전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의 도전에 단호하게 대응하여 나를 다시 보도록 만드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합니다.

 

작은 상처에 대응하는 방법을 3단계로 구분한 것처럼 ‘1부 왜 나만 상처받을까’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전형을 7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2부 왜 너는 상처를 줄까’에서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전형을 6가지로 정리하였고, ‘3부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에서는 작은 상처도 허용하지 않는 비법 6가지를 소개합니다. 모두 19개의 장에는 전형적인 상담사례를 먼저 소개하여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일종의 진단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1부와 2부에서도 구체적인 대응방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사례는 물론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순간들을 잘 포착하여 글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들 같으면 대범하게 넘길 수 있는 상황임에도 상처를 쉽게 받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진단하고, 자주 상처를 주는 상대방을 파악하여 맞춤형 대응방안을 안내하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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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ㅣ 인생학교 1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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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삶의 궤도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겠고, 찻잔 속의 태풍처럼 금세 수습될 정도로 작은 경우도 있겠습니다. 물론 남이 보기에는 별게 아닌 문제라고 해도 정작 문제를 안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심각한데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의논하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었지만, 요즈음에는 그런 문제를 일정한 범주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대중화시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는 2008년 영국에서 처음 문을 연 ‘인생학교’ 프로젝트에서 다룬 돈, 일, 섹스, 정신, 세상, 시간 등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인생학교’는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한 강연과 토론,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저술가들이 개별 주제를 맡고 있는데, 인생학교의 창립멤버인 로먼 크르즈나릭교수가 ‘일’을,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필립파 페리가 ‘정신’을,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존 폴 플린토프가 ‘세상’을, 철학자이자 미술사가인 존 암스트롱교수가 ‘돈’을, 작가이자 시사평론가인 톰 체트필드가 ‘시간’을, 그리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이 ‘섹스’를 맡고 있습니다.

 

살만큼 산편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다른 주제들은 별로 당기지 않는 반면 <인생학교 섹스>는 저자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이와 무관하게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별별 책들이 서점의 판매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만, 제가 자랄 무렵 만해도 어떤 경로로 팔리는지 분명치 않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성이나 이념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책들을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이재익 등 지음, 빨간책, 시공사, 2015년; http://blog.joins.com/yang412/13668551)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도 시절을 잘 만나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만, 그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인생학교 섹스>에는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과 맺음말을 제외하면 이 책은 섹스의 기쁨과 골칫거리에 관한 이야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톡 까놓고’ 말해서, “섹스에 관한 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18쪽)”라고 단정합니다. 이렇듯 섹스에 관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생활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합니다. 성에 관한한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럽에서도 성생활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하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적 취향’이라는 화제는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공공연한 화제로 삼기에는 여전히 껄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섹스의 요령에 관한 것보다는 스스로 섹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고통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논하려고 한다고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섹스의 기교문제가 아니라, 에로티시즘과 외로움, ‘섹시함’은 심오해질 수 있는가, 나탈리냐 스칼렛이냐 등의 제목으로 구성된 ‘섹스의 기쁨’편 역시 또 다른 시각에서의 섹스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국은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나 후손을 퍼트리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나는 일이 사실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있는 범위에서 스스로의 욕망과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부분은 종족을 발전시킬 특정 요소의 상징에 불과하다’라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 대하여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특정한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의식적 동기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공격성, 무분별함, 탐욕, 경멸 등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본성을 억눌러야만 남들의 관심과 애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면에 감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내서 상대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과정이야말로 관계의 완성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를 탐색하면서 거리를 좁혀가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관계를 맺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이유 외에도 “섹스를 통하여 얻는 쾌감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행복한 삶의 요소들을 인정하고 확실히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67쪽)”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섹스 후에 비참한 기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섹스와 일상의 격차로 인한 심리적 문제 때문이라 것입니다. 성욕이 수그러들고 나면, 방금 전까지 황홀했던 자신이 어쩔 줄 모를 만큼 부끄럽고 낯선 느낌이 남기도 합니다. 섹스는 특유의 다정함, 격렬함, 열정, 쾌락이 지배하는 반면, 삶의 일상적인 측면들은 반복, 지루함, 억압, 어려움, 냉담함으로 가득해서, 이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특정한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의식적 동기, 즉 성적 취향은 진화생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자는 성적 취향에 심리적 내력이 간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이론을 인용하였습니다. 보링거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내면의 무언가가 결여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결함이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호감 혹은 반감의 취향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보링거의 이론에 따라 94쪽과 95쪽에 아그네스 마틴의 「우정(1963년작)」과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1599년작)」를 나누어 싣고 독자의 뜻을 물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아름다운 걸작이지만 사람에 따라 둘 중 한쪽에 유독 마음이 끌린다. 유독 한쪽에만 끌리는 건, 그것이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우정」은 그녀 작품의 특징인 격자 줄무늬 캔버스에 금박과 젯소(젯소는 페인트가 잘 발라지도록 초벌작업의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입니다)로 구성된 추상화입니다. 카바라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는 구약성서의 유디트서에 나오는 일화를 그렸습니다. 기원전 2세기 경에 앗시리아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온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만취하게 만든 다음 목을 자르는 장면입니다. 여러 화가가 이 장면을 그렸지만, 카라바조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와 이런 일에 서툰 듯 겁먹은 표정의 유디트를 대비시켜 무기에 서툰 여인이라도 유혹으로 한 남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피가 튀는 끔찍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화가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카바라조의 그림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추상화를 잘 이해하시는 독자라면 아그네스 마틴의 그림을 고를 것 같습니다만, 저는 카라바조의 그림에 눈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성적 취향의 심리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객관적으로 막상막하의 미모를 자랑하는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외모에서 풍기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듯한 느낌과 걸핏하면 격렬한 분노를 터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반면 나탈리 포트만은 굳은 의지와 실용적인 성격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어쩌면 저자의 취향이 반영된 평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사랑에 빠지는 행위를 자신의 약점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희망의 승리라고 규정하면서 섹스도 그와 같은 의미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섹스의 기쁨에 이어 저자는 섹스의 골칫거리를 논합니다. 가볍게는 상대로부터 거절당하는 것부터, 오래된 커플의 권태, 외도, 포르노, 결혼제도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연을 당했다고 해서 소란을 피우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상대를 거부하는 이유가 의외로 단순하기 때문에 심각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즉 상대방이 우리의 영혼까지 들어다보고 우리의 모든 면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상대의 거절은 이성의 힘이 닿지 않는 무의식과 억압된 잠재의식에 의한 판단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 위안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No는 그냥 No일 뿐이니 복잡하게 생각해서 사건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태와 발기불능 역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섹스의 골칫거리입니다. 이 문제들 역시 섹스와 일상의 격차가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상대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는 무례를 범하거나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서 불쾌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문명병이라고 진단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커플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을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원망으로 발전하고 심하면 건너올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살아온 세월만큼 무덤덤해지려는 자신을 잘 다스려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지켜가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행복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터넷 세상에 넘치고 있는 포르노물에 대하여도 따끔한 일침을 아끼지 않습니다. 요즘 나오는 포르노물은 지나친 선정성으로 윤리, 미의식, 지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스토리는 황당하고, 대사는 엉터리이며, 배우는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수준일 뿐 아니라, 배경도 엉성하고 촬영도 거의 관음증 환자도 눈을 돌릴 지경이 태반입니다. 결국 다 보고나면 혐오감만 남는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과거 기독교 미술에서 포르노가 지향해야할 미래적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위트나 친절함, 기발함, 성실한 노동윤리 같은 고결한 인간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성적 흥분을 통해 행복한 삶을 이루는 섹스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까지 존경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 말입니다.

 

섹스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외도 역시 빠트릴 수 없는 주제입니다. 의외로 외도에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 점에 대해서, “결혼을 사랑, 섹스, 가족이라는 우리의 모든 희망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 순진한 착각이라면, 마찬가지로 외도가 결혼생활의 모든 좌절을 해결해줄 효과적인 해결방법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다(210쪽)”라는 저자의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성욕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성욕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는 고통에 더 둔감해졌을 수도 있고, 감성이 메마른 존재가 되고 말았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픔을 이겨낸 인간은 더욱 성숙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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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3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를 몇 권 갖고있어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움의 장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알랭 드 보통의 사유와 철학을 좋아합니다

처음처럼 2015-09-01 07:0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인생학교가 개설될 예정이라죠?
기대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