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인생학교 1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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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삶의 궤도를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겠고, 찻잔 속의 태풍처럼 금세 수습될 정도로 작은 경우도 있겠습니다. 물론 남이 보기에는 별게 아닌 문제라고 해도 정작 문제를 안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심각한데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의논하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얻었지만, 요즈음에는 그런 문제를 일정한 범주로 나누어 포괄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대중화시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는 2008년 영국에서 처음 문을 연 ‘인생학교’ 프로젝트에서 다룬 돈, 일, 섹스, 정신, 세상, 시간 등 여섯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인생학교’는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한 강연과 토론,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저술가들이 개별 주제를 맡고 있는데, 인생학교의 창립멤버인 로먼 크르즈나릭교수가 ‘일’을,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필립파 페리가 ‘정신’을,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존 폴 플린토프가 ‘세상’을, 철학자이자 미술사가인 존 암스트롱교수가 ‘돈’을, 작가이자 시사평론가인 톰 체트필드가 ‘시간’을, 그리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알랭 드 보통이 ‘섹스’를 맡고 있습니다.

 

살만큼 산편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다른 주제들은 별로 당기지 않는 반면 <인생학교 섹스>는 저자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이와 무관하게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별별 책들이 서점의 판매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만, 제가 자랄 무렵 만해도 어떤 경로로 팔리는지 분명치 않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성이나 이념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요즘에는 이런 책들을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이재익 등 지음, 빨간책, 시공사, 2015년; http://blog.joins.com/yang412/13668551)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도 시절을 잘 만나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만, 그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인생학교 섹스>에는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들어가는 글과 맺음말을 제외하면 이 책은 섹스의 기쁨과 골칫거리에 관한 이야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정상적’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톡 까놓고’ 말해서, “섹스에 관한 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18쪽)”라고 단정합니다. 이렇듯 섹스에 관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성생활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합니다. 성에 관한한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유럽에서도 성생활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하니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성적 취향’이라는 화제는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공공연한 화제로 삼기에는 여전히 껄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섹스의 요령에 관한 것보다는 스스로 섹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고통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논하려고 한다고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섹스의 기교문제가 아니라, 에로티시즘과 외로움, ‘섹시함’은 심오해질 수 있는가, 나탈리냐 스칼렛이냐 등의 제목으로 구성된 ‘섹스의 기쁨’편 역시 또 다른 시각에서의 섹스의 문제를 우회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결국은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나 후손을 퍼트리려는 욕망을 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잘 어울리는 짝을 만나는 일이 사실은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있는 범위에서 스스로의 욕망과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부분은 종족을 발전시킬 특정 요소의 상징에 불과하다’라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 대하여 수긍할 수 있는 점도 있지만, 특정한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의식적 동기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나 예의바르게 행동할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공격성, 무분별함, 탐욕, 경멸 등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본성을 억눌러야만 남들의 관심과 애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면에 감춘 내밀한 욕망을 드러내서 상대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는 과정이야말로 관계의 완성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서로를 탐색하면서 거리를 좁혀가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관계를 맺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이유 외에도 “섹스를 통하여 얻는 쾌감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 그리고 행복한 삶의 요소들을 인정하고 확실히 받아들이는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67쪽)”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섹스 후에 비참한 기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섹스와 일상의 격차로 인한 심리적 문제 때문이라 것입니다. 성욕이 수그러들고 나면, 방금 전까지 황홀했던 자신이 어쩔 줄 모를 만큼 부끄럽고 낯선 느낌이 남기도 합니다. 섹스는 특유의 다정함, 격렬함, 열정, 쾌락이 지배하는 반면, 삶의 일상적인 측면들은 반복, 지루함, 억압, 어려움, 냉담함으로 가득해서, 이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특정한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의식적 동기, 즉 성적 취향은 진화생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자는 성적 취향에 심리적 내력이 간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이론을 인용하였습니다. 보링거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내면의 무언가가 결여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결함이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호감 혹은 반감의 취향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보링거의 이론에 따라 94쪽과 95쪽에 아그네스 마틴의 「우정(1963년작)」과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1599년작)」를 나누어 싣고 독자의 뜻을 물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아름다운 걸작이지만 사람에 따라 둘 중 한쪽에 유독 마음이 끌린다. 유독 한쪽에만 끌리는 건, 그것이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우정」은 그녀 작품의 특징인 격자 줄무늬 캔버스에 금박과 젯소(젯소는 페인트가 잘 발라지도록 초벌작업의 용도로 사용하는 제품입니다)로 구성된 추상화입니다. 카바라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는 구약성서의 유디트서에 나오는 일화를 그렸습니다. 기원전 2세기 경에 앗시리아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쳐들어온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만취하게 만든 다음 목을 자르는 장면입니다. 여러 화가가 이 장면을 그렸지만, 카라바조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홀로페르네스와 이런 일에 서툰 듯 겁먹은 표정의 유디트를 대비시켜 무기에 서툰 여인이라도 유혹으로 한 남자를 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피가 튀는 끔찍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화가의 의도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카바라조의 그림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추상화를 잘 이해하시는 독자라면 아그네스 마틴의 그림을 고를 것 같습니다만, 저는 카라바조의 그림에 눈이 더 가는 것 같습니다.

 

성적 취향의 심리적 측면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객관적으로 막상막하의 미모를 자랑하는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의 외모에서 풍기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듯한 느낌과 걸핏하면 격렬한 분노를 터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반면 나탈리 포트만은 굳은 의지와 실용적인 성격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어쩌면 저자의 취향이 반영된 평가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사랑에 빠지는 행위를 자신의 약점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희망의 승리라고 규정하면서 섹스도 그와 같은 의미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섹스의 기쁨에 이어 저자는 섹스의 골칫거리를 논합니다. 가볍게는 상대로부터 거절당하는 것부터, 오래된 커플의 권태, 외도, 포르노, 결혼제도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연을 당했다고 해서 소란을 피우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거부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상대를 거부하는 이유가 의외로 단순하기 때문에 심각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즉 상대방이 우리의 영혼까지 들어다보고 우리의 모든 면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상대의 거절은 이성의 힘이 닿지 않는 무의식과 억압된 잠재의식에 의한 판단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면 위안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No는 그냥 No일 뿐이니 복잡하게 생각해서 사건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태와 발기불능 역시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섹스의 골칫거리입니다. 이 문제들 역시 섹스와 일상의 격차가 원인이 될 수 있는데, 상대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는 무례를 범하거나 상대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서 불쾌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문명병이라고 진단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커플은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사소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을 놓고 티격태격하다가 원망으로 발전하고 심하면 건너올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의 출발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살아온 세월만큼 무덤덤해지려는 자신을 잘 다스려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지켜가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행복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인터넷 세상에 넘치고 있는 포르노물에 대하여도 따끔한 일침을 아끼지 않습니다. 요즘 나오는 포르노물은 지나친 선정성으로 윤리, 미의식, 지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스토리는 황당하고, 대사는 엉터리이며, 배우는 소모품 취급을 받으며 착취당하는 수준일 뿐 아니라, 배경도 엉성하고 촬영도 거의 관음증 환자도 눈을 돌릴 지경이 태반입니다. 결국 다 보고나면 혐오감만 남는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역설적으로 과거 기독교 미술에서 포르노가 지향해야할 미래적 방향을 찾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위트나 친절함, 기발함, 성실한 노동윤리 같은 고결한 인간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성적 흥분을 통해 행복한 삶을 이루는 섹스 이외의 다른 요소들에까지 존경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 말입니다.

 

섹스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외도 역시 빠트릴 수 없는 주제입니다. 의외로 외도에 환상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 점에 대해서, “결혼을 사랑, 섹스, 가족이라는 우리의 모든 희망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 순진한 착각이라면, 마찬가지로 외도가 결혼생활의 모든 좌절을 해결해줄 효과적인 해결방법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다(210쪽)”라는 저자의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는 성욕이 없었더라면 인간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성욕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그로 인해 우리는 고통에 더 둔감해졌을 수도 있고, 감성이 메마른 존재가 되고 말았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픔을 이겨낸 인간은 더욱 성숙해지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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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31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를 몇 권 갖고있어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움의 장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알랭 드 보통의 사유와 철학을 좋아합니다

처음처럼 2015-09-01 07:0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인생학교가 개설될 예정이라죠?
기대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