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ㅣ 이산의 책 10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 이산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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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리]를 통하여 토니 주트교수를 여러 번 소개한 것은 근세사에 대한 그의 객관적인 시각에 끌렸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토니 주트는 타계하기 전에 루게릭병으로 진단받고 투병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것입니다. <기억의 집; http://blog.joins.com/yang412/13652730>의 서문에 그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루게릭병이 진행되어 사지가 마비되면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피동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트교수는 생각하는 것만큼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잠자리에 들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시간이면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져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서로 맞추어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그 때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의식의 흐름에 고랑을 파는 작업으로 비유한 주트교수는 밤새 파놓은 고랑들이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다시 파묻혀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는 중세 기억술사들의 기억방식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중세의 기억술사들은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거대한 궁전을 지었다는 것인데, 주트교수는 자신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스위스 빌라르 지방의 작은 마을 체지에르에 있는 살레라는 이름의 가족호텔을 이용하여 정리된 생각들을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주트교수는 자신이 이용한 기억의 방법을 두어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역사학자 프랜시스 예이츠가 쓴 르네상스에 관한 에세이들에 멋지게 소개되어 있으며, 조너선 스펜스가 쓴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에서도 언급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조너선 스펜스의 <마테오 리치의 기억의 궁전>을 주트교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셈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리치가 설명한 기억술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의 마체라타에서 태어난 리치가 1610년 5월 11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의 행적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까지라면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의 신흥강국들이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로, 아메리카로 세력을 넓히던 대항해시대입니다. 리치가 중국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보면 피렌체와 로마에서 공부를 마치고 포르투갈의 대학도시 코임브라에서 포르투갈어를 배운 다음 인도의 고아와 코친에서는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말라카를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 것이 1582년입니다. 다음 해 중국의 자오칭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전교를 시작하여 사오저우, 난창, 난징을 거쳐 베이징에 거주허가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리치가 중국인, 특히 관리들과의 관계를 맺는데 기여했던 것이 바로 기억술이었다고 합니다. 리치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는 만력제가 다스리던 명나라의 말기입니다. 제국의 말기에 흔히 나타나는 혼탁한 사회상이 노정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 명나라 역시 과거에 급제해야 입신양명이 가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과거에 뜻을 둔 식자층이라면 당연히 리치의 기억술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기억술은 리치의 인맥관리에 중요한 기술이었던 셈입니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은 리치의 기억술을 설명하는 ‘궁전짓기’에 이어 리치의 행적을 4 시기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각 시기의 도입부에는 리치가 남긴 성화 넉 점을 담고, 이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넉 점의 그림들은 리치와 친분이 있던 베이징의 출판업자 청다웨가 출간한 중국 서화집 <정씨묵원(程氏墨苑)에 실려 있는 것들입니다. 청다웨는 서양 그림과 로마자를 책에 담고 싶어 리치에게 부탁했던 것이고, 리치는 이를 통하여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 생애의 주요 장면과 성서의 극적인 장면들을 기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리치가 그리고 주석을 달았던 그림들은 갈릴래아 바닷가의 그리스도와 베드로, 엠마오로 가는 그리스도와 두 제자, 주님의 천사 앞에서 눈이 멀어버린 소돔의 남자들, 그리고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림입니다. 리치는 그림들이 기억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기억의 궁전 자체의 기전을 보강하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고 들은 것이 오래 가지 않거나, 잘 못 기억하고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곤 하는 저로서도 기억술을 습득하여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의 첫 번째 장, ‘궁전짓기’을 특별히 집중하여 읽었습니다. 궁전 짓기, 즉 정확한 위치짓기를 통하여 기억을 훈련한다는 생각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연회가 열린 홀이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에 무너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는데, 죽은 사람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시모니데스는 사람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기억해내서 시체를 확인시켜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시모니데스의 기억이 정확하였을까요? 사실 사람의 기억이 저지르는 오류를 지적하는 책들이 많습니다만, 대니얼 L. 샥터교수의 <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http://blog.joins.com/yang412/12562617>은 읽을 만한 것 같습니다.

 

시모니데스 이후 기억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리치가 대학에서 공부할 무렵에는 수사학과 윤리학 수업의 기초과정에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수사학자 치프리아노 소아레스의 <수사학>은 1570년대 예수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억술은 모든 웅변의 뿌리, 곧 ‘웅변의 보고’로서, 기억술에 의해서 사물 뿐 아니라 말을 어떻게 정리하고 또 이 기술을 어떻게 말의 ‘무한한 진보’에 이용할 수 있는 지를 기록했다.(25쪽)”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극적인 다양한 이미지들을 창출하고 그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기억을) 배치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는 궁전 같은 건물이나 웅장한 성당 등이 제시되었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억술의 원리는 오늘날에도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의과대학의 해부학 문제를 예로 들었습니다. 3층짜리 생리학건물의 옥상에 있는 ‘두개골 방’에 프랑스 국기 같은 삼색 침대보에 관능적인 여인이 벌거벗고 누워서 작은 손으로 구겨진 100달러짜리 지폐를 수북하게 움켜쥐고 있는 이미지를 배치하고, “손님을 기다리며 벌거벗고 누워 있는 게으른 프랑스 매춘부(Lazy French Tart Lying Naked In Anticipation)”이라는 문장을 연관시킵니다. 이 문장에는 두개골의 눈구멍 위를 흐르는 신경의 명칭, 눈물샘(Lacrimal), 앞이마(Frontal), 활차(Trochlear), 외측지(Lateral), 코모양체(Naso ciliary), 내측지(Medial), 외전(Abducens) 신경을 의미하는 두문자를 담고 있습니다. 리치는 중국어로 쓴 <기법>이라는 기억술에 관한 책에서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각각의 장소에 배치하고 일관된 설명을 붙여 기억술을 익힐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6세기 무렵 이와 같은 방식의 기억술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530년대에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라는 사람은 <기술과 학문의 공허와 불확실함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기억술이 날조한 ‘기괴한 이미지’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연스런 기억력이 둔화된다고 말했다.(33쪽)”라고 적었으며, 16세기 말,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기억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묘기가 얼핏 보기에는 인상적이기는 하나 광대의 속임수에 불과한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지난주에 [북소리]에서 소개해드린 세기 히로시의 <나를 위한 교양수업; http://blog.joins.com/yang412/13774397>의 핵심처럼 “얻은 지식들을 횡적으로 연결하여 ‘넓은 시야와 독자적 관점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기억술로 얻은 지식들은 그저 자기 과시욕을 채우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리치가 중국에 머물던 시기는 왜가 조선을 침략하는 국제적인 사건이 있었던 만큼 명나라에서도 외국인의 동향에 민감하고 전쟁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1603년 필리핀에서는 마닐라에서 급증하고 있던 중국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선제공격을 해서 2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이민자와 상인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카오에서는 예수회원, 포르투갈인, 네덜란드인, 일본인 들이 연합해서 마카오를 중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으려한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중국인들이 마카오를 떠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우편제도가 없던 당시만 해도 멀리 나가있는 사람들이 고향에 소식을 전하려면 오가는 사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소식이 오가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인편이 오가는 중에 죽거나 다칠 수도 있어서 소식이 전해진다는 보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는 고향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예수회 분부 등에 소식을 전하거나 전교에 필요한 책이나 물품을 부탁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명대에 이미 중국에는 유대인, 아랍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들은 가지고 온 종교의 의식을 치르는 예배당까지도 짓고 살았으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문화를 중국에 소개하였는데, 리치만하더라도 중국의 문헌을 유럽에 번역소개하기도 하였으며, 중국어에 익숙해지면서 유럽의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거나 직접 집필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리치는 예수회의 사제로서 전교를 목적으로 중국에서 살았던 것인데, 특히 자기가 아는 만큼의 서양의 과학지식과 신학상의 수양을 원용하면서 기억술을 이용하여 중국인들의 전통 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 등을 배제하고 예수교를 믿도록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겠습니다.

 

리치는 저술을 통하여 중국의 전통종교의 본질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리치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인간의 영혼이 여러 형태의 동물의 몸으로 태어난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윤회설로부터 온 것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설은 유럽인들의 도덕적 관념이 방만하던 시기에 고안된 우화적인 교훈에 불과한 것으로 오류로 가득한 윤회설이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가설을 세웠던 것입니다. 리치가 윤회설을 강하게 부정한 것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천지창조의 기본틀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윤회한다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성립할 수 없게 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리치의 불교관에 대하여 당대의 유학자 위춘시는 리치에게 편지를 보내 불교를 비난할 만큼 불교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도덕적인 면에서 공통점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치가 불교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위춘시는 리치에게 꼭 읽어볼 불교서적 목록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불교가 십계명의 첫 계명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불교가 과연 중국인들의 도덕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었냐고 반문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중국의 지식층들은 리치가 타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궤변만 늘어놓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리치는 자신에 대한 중국 고관들의 비판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중국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덧없으며, 그리스도인만이 내세에서 영원히 환희로 가득 찬 삶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 리치는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기술, 책략, 훈련, 기억술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프리즘, 시계, 성화, 유클리드 기하학, 책자, 만찬, 교부 등을 성모의 성스러운 인도 아래 총동원하였던 것입니다.

 

유한한 삶을 신념을 지키며 살아내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마테오 리치야 말로 이교도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삶을 살았다고 하겠습니다. 그의 종교적 신념이 절대적 진리였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마테오 리치 기억의 궁전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주원준 옮김

415쪽

1999년 8월 31일

이산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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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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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읽고서 알랭 드 보통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보통의 책들은 <여행의 기술>만큼의 감흥을 얻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행의 기술의 보통의 첫 작품도 아니므로 루키 신드롬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책을 만나게 되면 암암리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의 건축>은 작은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속으로는 ‘보통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 하는 놀라움 같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보통을 읽을 수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개정판이 나와 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의 다른 책을 읽을 때의 느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건축에 대한 보통의 식견을 담았다면 어쩌면 존 러스킨의 <건축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 버금가는 정도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보통은 이 책에서 건축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글의 제목도 ‘행복을 위한 건축’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이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11쪽)’라는 구절이 주목받는 위치에서 읽을 수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든 건축에 있어서 아름다움이 행복에 우선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보통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행복이라는 주제가 슬며시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적인 관점으로 건축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은 대목입니다.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다시 종교와 예술로 넘어가서 행복과는 동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양한 건축물을 이야기 대상으로 올려놓으려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일 듯합니다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전히 행복이 있었더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의 미덕’을 논하면서는 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제어들은 대형건물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어서 행복과는 무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들의 미래’에서는 건물이 들어설 터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건축미 가운데 으뜸은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떨어지는 조화에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주제의 하나로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기대했던 것인데,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본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허세가 없고, 소박하고, 완성되지 않는 덧없는 것과 동일시 한다.’는 와비라는 개념을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장함이나 자연경관과의 일체감을 중요시하는 한국건축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가요? 한국 건축계가 일본건축계보다는 국제화가 미흡한 탓일까요?

 

보통은 무수히 많은 사진자료들을 곁들여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처음 책장을 넘기다보면 마치 화보집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물론 사진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을 직접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분위기를 이야기로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체코 공화국의 어떤 집 거실에서 우리는 벽, 의자, 바닥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가장 좋은 면들이 번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예를 본다.(13쪽)”라고 적고 체코 브르노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식당의 내부 사진을 한 장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흑백사진 한 장이 조화를 이룬 실내의 모습을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벽의 색깔이나 문의 형태에 달려 있다면’ 이라는 구절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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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 7년 동안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깨달은 것들
카트린 지타 지음, 박성원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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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아내와 함께 발칸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넣어가지고 갔던 책입니다. 사실은 지난해 봄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해외여행을 혼자서 다녔습니다. 모든 해외여행은 공무였고,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없었습니다.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혼자서 여행하는 이유>의 저자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궁금해졌던 것 같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여행짐에 넣어가지고 갈만한 책은 아니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여행칼럼니스트이며 셀프심리코칭 전문가라고 합니다. 두 분야에서 최고라고는 합니다만, 이런 류의 소개는 믿거나 말거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여행을 빙자한 심리적 조언을 담은 책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독자의 심리상태에 따라서는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는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효과적으로 자아 탐구의 과정을 진행하려면 혼자 여행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방점은 ‘혼자서’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에 방점을 둔다면 굳이 여행을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짬, 즉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여행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려면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집을 나서면서 현관문을 닫고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이 여행이 실제로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한 프랑스 철학자 미셀 옹프레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동안에 수많은 상황들 그리고 사람들과 부딪혀야 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그런 상황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려면 살고 있는 공간에서 세상과의 접촉을 끊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결국 저자가 내세운 자아탐구라는 거창한 화두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여행이 주는 새로운 자극이 바로 여행을 갈망하는 큰 이유임을 토로하고 있고, 여행을 통하여 얻는 경험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여행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방법 등등 여행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안전한 여행이었습니다. 흔히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인데 모두 아홉 가지의 체크리스트가 가장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특히 저자처럼 여성인 경우에 반드시 새겨둘만한 것들입니다. 1. 안전한 지역인지 확인한다, 2. 중요한 서류는 복사해서 따로 보관한다, 3. 귀중품은 호텔 금고를 활용한다, 4.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들을 경계한다, 5. 술을 마시다가 만난 사람과 술자리를 이어가지 않는다, 6. 강도를 만나면 물건을 아끼지 말라, 7.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목적지를 분명하게 밝히라, 8. 관광객 티를 내지 마라, 9. 자신의 여행일정을 지인과 공유하라, 등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하는 여행에서 얻은 바를 늘어놓고 있습니다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7년간 250회 이상 비행기를 타고 1000번 이상 낯선 도시에서 밤을 보내고, 50개국을 홀로 여행하며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냈다’는 카피를 읽다보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7년이면 364주이고, 2,555일입니다. 거의 격주로 비행기를 타고 집을 떠나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인데, 여행이라는 것이 그냥 훌쩍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보낸 시간들 속에서 과연 자아를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요?

 

출퇴근하는 지하철이 사람들로 넘쳐나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시간을 이용해도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하고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칼럼을 쓰기 위한 여행이라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집중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나, 누군가와 같이 하는 여행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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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민담 전집 10 - 폴란드·유고 편 ㅣ 황금가지 세계민담전집 10
오경근·김지향 엮음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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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옛 유고연방에 속하였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를 중심으로 발칸지역을 여행하면서 산과 강이 우리의 것과는 참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민족 구성이나 종교 등의 차이도 확연하게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칸여행을 마치고 이 지역을 더 이해하기 위한 책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민담전집-폴란드, 유고편>도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 사이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칸국가에 속하는 유고슬라비이아와 동유럽의 북부에 위치한 폴란드가 서로 연관이 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민담들을 읽다보면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공통점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유고연방지역이 오랫동안 오스만 투르크에 지배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제국 등 주변 강대국들이 부딪히던 현장이었던 것처럼 폴란드 역시 같은 나라들이 개입하여 국토를 분할하여 지배를 당한 고통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웃한 유고슬라비아 등을 점령한 터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폴란드의 민담에서도 간혹 터키사람, 터키풍습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드는 것 같습니다.

 

피침을 당한 나라의 서러움과 언젠가는 떨치고 일어나 되갚아주겠다는 각오 같은 것을 담고 있는 민담도 적지 않습니다. ‘바다의 눈’ 이야기에서는 몽골인과 독일인이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약탈하였으며.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나무 말뚝에 꽂아 죽이거나 잡아서 노예로 끌고 갔다(97쪽)라고 적어 이민족의 끔찍한 만행을 기억하면서, ‘타트리산맥의 잠자는 기사’에서 처럼, 민족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간절함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물론 유럽국가 특유의 마녀와 마왕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있고, 특히 예수와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아마도 이 땅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온 민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습니다.

 

유고민담에서 특이한 것은 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쑥과 마늘만을 먹는 수행을 이겨내고 여자로 환생하여 환웅천왕과 결혼을 하여 단군왕검을 낳는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유고의 민담에서는 한 여자가 산에 올랐다가 곰을 만나 같이 살면서 아들을 낳은 다음 마을로 돌아왔는데, 아빠곰과 살던 아기 곰이 인간세상으로 나와 겪는 이야기인데 끝에 가서는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 것이라는 ‘똥그랑 땡’ 같은 결말을 지어 너무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유고사람들이 싱거운 모양입니다.

 

오랫동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은 지역이라서 유고의 민담에는 터키 사람이 등장하곤 하는데, 주로 유고사람한테 당하는 처지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악마와 그 제자 편에서 보면 악마의 재주를 배운 사람이 터키인에게 말을 팔고서는 마술을 써서 돈을 빼앗는 장면 같은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터키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운 산사람들에게 꼼짝 못하고 당하는 모습 같은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터키사람은 허세를 부리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어느 터키 인이 물을 마시려고 길에서 벗어나 개울 쪽으로 갔다고 하이두크에게 잡혔다. 그는 길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료에게 소리쳤다. ‘이리 와 봐! 내가 하이두크를 잡았거든!’, 잡았으면 이리 데려와 보라는 동료의 말에 이 터키인은 ‘이자가 가려 하지 않네’라고 대답합니다.

 

폴란드에서 구비문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18세기 들어서라고 하고, 1830년 러시아의 점령 통치에 반발하여 일어난 11월 봉기를 계기도 불이 붙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일환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고에서는 19세기 초 부크 스테파노비치 카라짗피가 구비문학작품을 채록하기 시작하면서 민담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동유럽 지역의 민담들은 마녀와 마귀, 요정 등 초자연적인 존재에 관한 이야기, 왕가를 둘러싼 암투와 사랑 등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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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전설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발칸여행을 앞두고 제목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이번에 여행하게 될 옛 유고연방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요콥트의 단편소설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불가리아나 유고연방이나 오랜 기간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요르단 요콥트(1880~1937)는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3대 산맥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발칸의 전설>에 담긴 이야기들은 주로 터키의 지배당시의 불가리아의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영웅이,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대부분 영웅적이고, 때로는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발칸이라는 이름이 불가리아를 동서로 횡단하는 스타라 플라니나 산맥을 일컫는 중세 터키어라는 사실을 주석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상당히 낙천적이지 않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마을에 불길한 전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촌로는 ‘무릇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지. 불길한 징조라도 한편으로 나쁜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좋을 게 아닌가. 불가리아에는 좋고 터키에는 나쁜(77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가리아 사람들은 자연을 경외하는 경향이 있는가 봅니다. ‘양치기의 비애’편을 보면 마을을 둘러싼 세 개의 숲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숲은 세 개였는데, 교회 숲, 영감 숲, 집시 숲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항상 하 숲만 소리를 낼 뿐, 다른 숲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로마냐 평원에서 서풍이 불어 내려오면, 교회 숲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영감 숲과 집시 숲은 바람막이에 가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교회 숲이 들려주는 오래된 하이두틴의 전설을 듣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이번에는 다른 두 숲이 똑같이 어둡고 비밀스러운 언어로 교회 숲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북녘의 밝은 하늘 아래서세 숲이 출렁일 때면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우리곁으로 줄달음질쳐 왔다. 장맛비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억세게 퍼붓듯, 폭포수가 한꺼번에 우르르 쾅쾅 쏟아지듯, 아니면 숲 가운데 둥지에 모여든 숲의 요정들이 풀밭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이며 떠들고 웃어 젖히는 듯했다.(135-136쪽)” 여기서 하이두틴이란 터키 지배 시대 산에서 생활하면서 터키에 대항하여 불가리아를 보호한 사람,또는 그와 상관없이 강도짓을 일삼덕 사람 모두의 통칭이라고 합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1925년 지방사학자 다나일 콘스탄티노프가 수집한 제브라냐의 민요, 민담, 전설 등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마을마다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실일까 싶기도 한 것들도 있지만, 특히 식민지배자 터키에 대하여 대항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혈기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의 충동적인 마음을 다스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성모의 화신이라고 믿는 암사슴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현명한 아가씨의 이야기에서도 예쁜 동무의 정인의 마음을 홀려 많은 사람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집시여인의 충동적인 삶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 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여기 실린 작품들을 통하여 500년에 걸친 이민족 터키의 지배 속에서도 불가리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던 ‘불가리아인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럽 이야기와는 색다른 느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고,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들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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