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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전설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발칸여행을 앞두고 제목에 끌려 고른 책입니다. 이번에 여행하게 될 옛 유고연방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요콥트의 단편소설들이라고 합니다. 사실 불가리아나 유고연방이나 오랜 기간동안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는 통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요르단 요콥트(1880~1937)는 불가리아 산문 문학의 3대 산맥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발칸의 전설>에 담긴 이야기들은 주로 터키의 지배당시의 불가리아의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영웅이, 때로는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은 대부분 영웅적이고, 때로는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발칸이라는 이름이 불가리아를 동서로 횡단하는 스타라 플라니나 산맥을 일컫는 중세 터키어라는 사실을 주석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상당히 낙천적이지 않나 싶은 대목도 있습니다. 마을에 불길한 전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촌로는 ‘무릇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지. 불길한 징조라도 한편으로 나쁜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좋을 게 아닌가. 불가리아에는 좋고 터키에는 나쁜(77쪽)’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불가리아 사람들은 자연을 경외하는 경향이 있는가 봅니다. ‘양치기의 비애’편을 보면 마을을 둘러싼 세 개의 숲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숲은 세 개였는데, 교회 숲, 영감 숲, 집시 숲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항상 하 숲만 소리를 낼 뿐, 다른 숲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로마냐 평원에서 서풍이 불어 내려오면, 교회 숲의 나뭇가지들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영감 숲과 집시 숲은 바람막이에 가려 소리를 내지 않았다. 마치 교회 숲이 들려주는 오래된 하이두틴의 전설을 듣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나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이번에는 다른 두 숲이 똑같이 어둡고 비밀스러운 언어로 교회 숲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북녘의 밝은 하늘 아래서세 숲이 출렁일 때면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우리곁으로 줄달음질쳐 왔다. 장맛비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를 억세게 퍼붓듯, 폭포수가 한꺼번에 우르르 쾅쾅 쏟아지듯, 아니면 숲 가운데 둥지에 모여든 숲의 요정들이 풀밭에서 한바탕 춤판을 벌이며 떠들고 웃어 젖히는 듯했다.(135-136쪽)” 여기서 하이두틴이란 터키 지배 시대 산에서 생활하면서 터키에 대항하여 불가리아를 보호한 사람,또는 그와 상관없이 강도짓을 일삼덕 사람 모두의 통칭이라고 합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1925년 지방사학자 다나일 콘스탄티노프가 수집한 제브라냐의 민요, 민담, 전설 등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마을마다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실일까 싶기도 한 것들도 있지만, 특히 식민지배자 터키에 대하여 대항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과장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젊은 혈기를 주체 못하는 젊은이의 충동적인 마음을 다스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성모의 화신이라고 믿는 암사슴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현명한 아가씨의 이야기에서도 예쁜 동무의 정인의 마음을 홀려 많은 사람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집시여인의 충동적인 삶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 개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 어느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여기 실린 작품들을 통하여 500년에 걸친 이민족 터키의 지배 속에서도 불가리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던 ‘불가리아인의 본질’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럽 이야기와는 색다른 느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고, 자연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소개된 작품들이 많지 않은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