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읽고서 알랭 드 보통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읽은 보통의 책들은 <여행의 기술>만큼의 감흥을 얻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행의 기술의 보통의 첫 작품도 아니므로 루키 신드롬을 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책을 만나게 되면 암암리에 기대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의 건축>은 작은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속으로는 ‘보통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 하는 놀라움 같은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보통을 읽을 수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개정판이 나와 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의 다른 책을 읽을 때의 느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건축에 대한 보통의 식견을 담았다면 어쩌면 존 러스킨의 <건축의 일곱 등불; http://blog.yes24.com/document/7498515, 버금가는 정도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보통은 이 책에서 건축물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글의 제목도 ‘행복을 위한 건축’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이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성소가 되었다(11쪽)’라는 구절이 주목받는 위치에서 읽을 수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떻든 건축에 있어서 아름다움이 행복에 우선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다고 보는 것이 보통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집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서는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면이 강조되면서 행복이라는 주제가 슬며시 물러나는 것 같습니다. 건축가적인 관점으로 건축을 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은 대목입니다. ‘집,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에서는 이야기의 중심이 다시 종교와 예술로 넘어가서 행복과는 동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양한 건축물을 이야기 대상으로 올려놓으려다보니 자연스러운 일일 듯합니다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전히 행복이 있었더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건물의 미덕’을 논하면서는 질서, 균형, 우아, 일치, 자기인식과 같은 모호한 개념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제어들은 대형건물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어서 행복과는 무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들의 미래’에서는 건물이 들어설 터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사실 한국의 건축미 가운데 으뜸은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떨어지는 조화에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기대했던 주제의 하나로 주변경관과의 조화를 기대했던 것인데, 충분히 다루어지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본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허세가 없고, 소박하고, 완성되지 않는 덧없는 것과 동일시 한다.’는 와비라는 개념을 인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장함이나 자연경관과의 일체감을 중요시하는 한국건축에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인가요? 한국 건축계가 일본건축계보다는 국제화가 미흡한 탓일까요?

 

보통은 무수히 많은 사진자료들을 곁들여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처음 책장을 넘기다보면 마치 화보집 같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물론 사진에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을 직접 느낄 수도 있겠지만, 사진이 담아낼 수 없는 분위기를 이야기로 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체코 공화국의 어떤 집 거실에서 우리는 벽, 의자, 바닥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가장 좋은 면들이 번창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예를 본다.(13쪽)”라고 적고 체코 브르노의 미스 반 데어 로에 식당의 내부 사진을 한 장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흑백사진 한 장이 조화를 이룬 실내의 모습을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벽의 색깔이나 문의 형태에 달려 있다면’ 이라는 구절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조금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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