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나라, 땅의 사람들 - 정직한 페루미술을 찾아서
유화열 지음 / 아트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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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초에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고양시에 있는 중남미문화원을 찾아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예술품은 물론 현대미술 작품도 꽤나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막상 남미여행을 하면서는 라틴미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라틴아메리카, 특히 페루의 미술세계를 돌아본 느낌을 정리한 <태양의 나라 땅의 사람들>이 반가웠는지도 모릅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저자는 멕시코로 유학하여 산카를로스 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술진흥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예술을 연구하게 되면서 페루미술의 본바탕을 직접 보아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페루행 비행기를 탔던 것인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행적을 보면 여늬 남미여행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일단 박물관과 미술관을 찾아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리마를 기점으로 하여 쿠스코, 푸노, 아케피카, 이카, 아야쿠초를 돌아서 리마로, 이어서 카하마르카, 트루히요를 거쳐 다시 리마로, 마지막으로는 나스카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페루하면 잉카문명만 떠올립니다만, 태평양을 따라 펼쳐진 안데스 산록에는 잉카 문명이 들어서기 전에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문명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기를 반복하면서 후대에 영향을 주어왔다고 합니다. 잉카문명에 이르기까지의 13개의 문명의 특징을 산악지역과 해안지역으로 구분하고 북부, 중부, 남부로 각각 구분하여 나누어놓은 저자의 착안이 독특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들 문명이 어떻게 후대에 영향을 미쳤는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술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페루 사람들과의 적극적으로 만나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꽤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내려오는 신화 혹은 민담도 적극적으로 채집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즈텍이 소수의 스페인군인에게 무너진 것은 지배부족이 피지배부족을 강압적으로 통제했기 때문에 피지배부족들은 스페인이라고 하는 외세를 빌어 복수할 기회를 구했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잉카제국 역시 피지배부족들의 반발심리를 이용하여 무너뜨릴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안타깝게도 스페인군에 호응한 원주민들은 스페인 군인들이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인데, 그런 순진한 생각이제 발등을 찍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제국의 멸망에 이어 도와준 원주민들까지도 식민지배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저 야만인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던 문명의 흐름을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고미술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가를 유추해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진과 스케치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기획도 돋보입니다. 페루미술을 돌아보고 난 저자는 느낀 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정직하다는 말은 왠지 재미없고 딱딱하고 고루할 것만 같아 미술에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구나 환상, 때로는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인한 과장도 서슴치 않는 게 미술 특유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페루미술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은 마음에서 나온 간절한 정직함이 있었다. (…) 절박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 것이 페루미술이고, 그런 탓에 그 정직함이 더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다.(279쪽)”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는 정말로 먼 곳이다. 그래서 관심이 별로 없었지만, 최근에는 남미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녀올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넉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터에 미술이라고 하는 특정부문에 대한 세밀한 기록을 내놓은 저자의 노고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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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리처드 스티븐스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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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들이 모범생이라고 했던 필자 역시 학생 때 19금 영화관엘 갔다가 단속 나온 선생님을 피해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호기심이었던지 아니면 일탈을 꿈꾸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일탈을 꿈꾸었던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똑 같이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 [북소리]에서는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는 이유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영국 중부의 스태포드셔에 있는 킬(Keele)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는 리처드 스티븐스(Richard Stephens)교수의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또한 강의와 연구를 하는 사이에 자동차경주를 즐기는 독특한 면도 있습니다. 그의 연구주제는 욕설을 통해서 사람들이 얻는 심리학적 혜택은 무엇일까 하는 것도 있는데, 그 연구 성과로 2010년에 ‘처음에는 웃게 하나 나중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과학이라는 의미의 이그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의 원제목은 <Black Sheep: The Hidden Benefits of Being Bad>입니다. 일탈에 숨어있는 이익을 ‘검은 양’으로 표현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검은 양(Black sheep)은 한 떼의 하양 양 무리에 섞여들어 환영받지 못하는 검은 양처럼 조직사회의 골칫거리, 말썽꾼, 이단아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검은 양이야 타고난 것을 어쩔 것이냐면서 억울하다고 하겠습니다만, 조직의 말썽꾼은 스스로 택한 길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사회적 추방부터 감성지능, 음악감상부터 통증지각까지, 종교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주 방대합니다. 예로부터 심리학은 사람들에 관한 수많은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노력해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심리학실험을 통하여 욕설과 통증과의 관계를 추구했던 것처럼, 섹스와 중독, 고속운전, 낙서와 껌씹기,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건너기와 롤러코스터 타기와 같은 일탈행위의 혜택에 관한 심리학 연구결과들을 모아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에 담았습니다. ‘독자들이 과학의 본질을 확실히 납득하고, 심리연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도록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성생활’을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간 큰 젊은이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은밀한 장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성행위를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행위를 하는 동안 얼굴표정의 변화를 본다거나 심지어는 뇌영상검사를 한 실험도 있습니다. 어떻든 성적 흥분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규칙적인 성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점 등을 추구한 연구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적 흥분은 마약을 복용하거나 좋아하는 축구팀이 득점을 하는 장면을 볼 때처럼 뇌의 보상경로를 활성화합니다. 즉 성행위는 즐거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오르가즘을 느끼는 순간 남녀 모두에서 비슷한 뇌의 활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남녀 모두 감정이 고양되면서 정신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셋째, 성행위로 젊고 탄력적인 외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 통증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행위는 남녀 모두에서 의사결정력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인데, 성행위를 하는 동안의 일이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외도와 같은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관계에서의 성행위에서도 위와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비정상적인 관계가 공개되었을 때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성행위를 하는 동안 복상사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익과 위험을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술’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국제숙취연구소의 창립위원이라는 점을 보면 당연한 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알코올 중독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만, 정신의학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용어가 사라진지 30년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1980년대에 만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III)에서는 ‘알코올 중독’을 ‘알코올 의존’, 혹은 ‘알코올 남용’이라는 용어로 대치하였습니다. 하지만 개념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알코올 섭취를 줄이거나 알코올 섭취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섭취할 때, 손떨림 같은 금단증상을 보일 때, 내성이 생겼을 때 등의 경우를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하고, 그보다는 경미한 증상을 보일 때는 알코올 남용이라고 했습니다.


2013년에 개정된 DSM-V에서는 이마저도 주관적이라고 해서 ‘알코올 사용장애’라는 용어로 통일하고 모두 11개의 증상 가운데 몇 가지를 충족시키는가에 따라서 중증도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마약과 같은 약물중독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중독은 약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각자의 생활방식과 환경에 달린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때의 호기심으로 마약을 하던 젊은이들이 철이 들면서 마약이 삶에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완전히 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마시는 술은 분명 심뇌혈관질환이나 우울증과 같은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높여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은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접착제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술이 인류문명의 토대 가운데 하나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은 <술의 세계사>에서 인간이 알코올을 소비한 역사를 보면, 인류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한 동기가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술을 제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정지’단추를 작동시키는 현명함까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나이가 들어가면 알코올 섭취에 제동을 거는 ‘정지’단추가 작동하면서 알코올섭취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욕설’입니다. 욕설과 통증과의 상관관계를 실험한 저자가 자신의 실험성적을 공개할 수 있는 주제를 세 번째로 미루어둔 것은 신사의 나라 영국출신이기 때문일까요? ‘스트레스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하여 저속한 말이나 상스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을 랄로체지아(lalochezia)라는 말로 나타냅니다. 그리스어로 말하기(spech)를 의미하는 ‘lalia’와 용변하다(to relieve oneself)를 의미하는 ‘chezo’를 결합해서 만든 용어로 아직은 적절한 우리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말로 풀어내다’라는 정도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용어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욕설을 주제로 한 연구를 수행한 학자로서 변명 비슷한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욕설이 심리학의 연구주제로 천박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경이로운 현장에서 흔히 욕설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순간에서도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욕설은 생과 사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장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의 인지상태를 검사하는 FAS검사가 치매환자를 분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것입니다. FAS검사는 특정한 알파벳 철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가능한 많이 생각해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도록 하는 검사입니다. 알츠하이머병환자와 비교했을 때 전두엽측두엽치매 환자들이 FAS검사에서 욕설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충동에 이끌려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기능이 있는 전두엽이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서 결정적인 진단방법이 될 수는 없지만, 진단에 참고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주제 역시 저자의 본심을 담았네요. 바로 ‘질주본능’입니다. 아마도 운전에 자신 있는 분이라면 고속주행할 때 느끼는 스릴감을 기억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속을 금하는 것은 사고의 위험이 크고, 사고가 나면 치명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같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루한 상황에서는 공상에 빠져 주행속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상에 빠진 운전자는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대체적으로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운전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속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긴장의 강도를 높여서 위험에 대비합니다. 운전자들의 질주본능에 대하여 저자는 감각추구이론보다는 몰입이론으로 설명합니다. ‘고속운전은 운전에서 비롯하는 도전의 강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수단(173쪽)’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충돌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도전적 운전을 안전하게 해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숙제라고 한발 빠지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사랑’입니다. 가수 태진아씨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나온 봉봉사중창단은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고 사랑을 예찬한 것과 비교해보면 사랑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 초콜릿, 돈, 코카인 등과 똑같이 뇌의 보상경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사랑은 강력한 마약이라는 문학적 의미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있는 경우처럼,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탈이라고 하겠습니다. 일탈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기인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가슴 뛰게 하는 초기단계의 사랑이 주는 효과와 함께 오랜 연인관계도 논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그놈의 정 때문에 산다고 하는 우리네 옛말이 있기도 합니다. 일종의 연민적 사랑을 에둘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민적 사랑은 일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부부가 서로에게 연민적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는 희한하게도 한쪽 당사자에게만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여성은 그런 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아직도 쓸모가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커지는 반면, 남성은 자신의 건강이 쇠약해졌다는 징후로, 심지어는 남편이 해오던 가족 부양의 책임이 이제는 아내에게 넘어가는 새로운 결혼생활의 단계로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연민적 보살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여섯 번째 주제는 ‘스트레스’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흥미를 가지는 일에 몰입함으로써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삶에 유해한 부정적 스트레스를 지양하고 삶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강화토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곱 번째 주제는 ‘시간 낭비’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느리게 살기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이는 삶의 한 가지 유형이기 때문에 일탈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죽음’입니다. 특히 임사체험을 인용하여 죽음을 설명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삶의 또 다른 요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절한 일탈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탈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부적적한 일탈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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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오브 유럽 230 Best of Europe 230 - 유로자전거나라 대표가 추천하는 베스트 유럽 여행지 셀렉트 북 ㅣ 테라 베스트 시리즈
장백관 지음 / TERRA(테라출판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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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단편적으로 유럽을 드나들다가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를, 동쪽으로는 발칸반도를 본격적으로 구경하였습니다. 이제는 유럽의 심장부를 본격적으로 구경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순서가 뒤바뀌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만, 구경에 순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면 되는 것이지요. 어떻든 남들이 좋다는 곳은 일단 목록에 올려 우선순위를 검토하도록 해볼 생각입니다. <베스트 오브 유럽>도 그런 속셈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유럽 전문 지식가이드 그룹 ‘유로자전거나라’ 대표인 장백관님입니다. 타고난 역마살 때문인지 지구촌 곳곳을 누비다 이탈리아에 정착하면서 유럽의 역사와 미술, 종교,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체득한 앎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하여 2000년에 유로자전거나라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지식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스트 오브 유럽 230>은 그 결실의 하나입니다. 유럽 최고의 대도시 20, 개성과 낭만이 넘치는 소도시 20, 감동적인 풍경 Best 30, 그리고 열여섯 가지 주제별로 베스트 10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도시 20곳 가운데 11곳은 일단 가보았습니다만, 소도시는 불과 두 곳, 감동적 풍경은 여섯 곳 밖에는 가보지 못했으니, 가보아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두 쪽 분량의 핵심요약과 함께 놓치면 섭섭할 포인트, 그리고 해당 지역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키워드로 하여 소략하게 요약하고 있어서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찾아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도 참신합니다. 기본적으로 도시를 소개하는 글이 두 쪽으로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고정적으로 기고했던 글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당연히 풍부한 사진을 수록하고 있어서 소개하는 곳마다 가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유럽이라고 하면서 러시아가 빠지고 터키가 들어간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유럽도 빠졌고, 최근에 뜨고 있는 아이슬란드도 빠져 있군요.


사실 대도시의 경우는 두 쪽으로 요약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구경해야 할 곳들을 그냥 이름만 적어도 한쪽은 넘어갈 듯합니다. 그리고 문화와 관련된 요소들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남습니다. 아마도 소개할 곳, 소개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욕심을 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때는 과감하게 버릴 것을 버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막상 글을 쓰다보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주제별 베스트 10의 경우는 소개 자체가 너무 소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선정된 것들도 저자의 주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는 점도 빠트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도시와 관련 있는 책을 연결한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유럽의 도시에 관한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완성한 이스탄불과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을 연결한 글을 쓰면서 이 책의 이스탄불 편을 많이 참고하였다는 점을 고백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책읽기도 묘하게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터키를 다녀온 여행기를 쓰면서 이스탄불에 관하여 11꼭지나 썼기 때문에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던 것이 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여행기에 썼던 내용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롭게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개할 책에 맞춘 글쓰기 말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유럽에서 꼭 보아야 할 볼거리들을 잘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앞으로 유럽여행에서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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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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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했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저자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과연 완벽하게 반쪽으로 나뉜 인간이 각각 생존 가능할 것인가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이 선함과 악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전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함만으로도, 혹은 악함만으로도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꼬투리잡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상황이 너무 많기는 합니다. 포탄이 맞아 조각이 난 젊은이의 신체를 긁어모아 반쪽의 몸을 만들어내는 신묘한 의술도 그렇구요, 포탄이 부족한 포병부대가 화약가루를 보충하기 위하여 흙을 채로 친다는 상황설명도 그렇습니다. 나머지 반은 수도자들이 구해서 또 다른 반쪽을 살려냈다는 설정도 그런데, 몸의 오른쪽이 악함을, 왼쪽이 선함을 대표한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젊은 메다르도자작의 불행이 시작된 기독교도와 투르크간의 전쟁은 아마도 교황의 요청에 따라서 오스만투르크를 상대로 했던 십자군 전쟁을 이르는 것 같습니다만, 십자군전쟁이 1095년부터 1456년까지 진행되었고, 오스만제국이 아나톨리아, 즉 지금의 터키반도 전역을 정복한 것이 1481년이며, 십자군을 패퇴시켰던 것이 1444년이니 아마도 이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유럽의 기독교군대에 위안소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병영입구 한쪽에는 천막들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화려하게 수놓인 비단옷을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천막 안에 서 있던 뚱뚱한 여자들이 그들을 복 고함 치며 폭소를 터뜨렸다.(11쪽)” 일본군이 러일전쟁 때 러시아로부터 위안소 운영을 배워왔다는 것이 사실인가 봅니다.


저자는 반쪽으로 나뉜 메다르도자작을 통하여 인간의 이중인격을 나타내려 한 것 같습니다. <반쪼가리 자작>의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두 가지 성격이 충돌하는 다중인격장애를 앓는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이중적 가치기준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들어와 그런 성향이 더 강화되어가는 경향에 대하여 작가가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자작이야 그렇다고 쳐도,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한센병 환자들, 종교적 윤리를 내세워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위그노들을 비롯하여 등장인물 가운데 많은 사람들 역시 비정상적인 생각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작가는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의 섭리는 극단으로 치우친 것들을 가운데로 이끌어내 균형을 맞추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함과 악함의 양 극단에 있는 각각 반쪽의 메다르도자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작가는 사랑을 내세웠습니다. 즉 파멜라라는 젊은 여성을 악한 반쪽과 선한 반쪽이 모두 사랑하게 만든 것입니다. 나아가 파멜라는 두 사람의 사랑을 하나로 승화시켜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두 사람의 갈등이 극대화되어 결투를 하는 상황을 맞게 되고,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을 수도 있는 결투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악함과 선함의 반쪽들이 다시 하나로 결합하게 된다는 해피앤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많이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동화 같은 소설이라서 충분히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쪼가리 자작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재결합한 다음에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인간은 결코 현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현명한 자작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이 행복한 시대를 맞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이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의 힘으로는 그것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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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1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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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서 2006년까지, 남들은 한번 가보기도 어려운 라틴 아메리카를 무려 다섯 번이나 찾았던 진보 정치학자의 여행기입니다. 민교협 공동의장을 비롯하여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지낸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손호철교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반을 1~3나라를 집중해서 돌아보는 일정을 소화했다고 합니다. 쿠바, 멕시코,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과테말라 등 8개국이나 되고, 특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4개국은 두 차례씩 방문하는 호사(?) 누렸으니 깊이 있는 사유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저자가 관심을 보였던 부분은 최근 지구촌 국가들이 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체제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웠던 진보 좌파세력의 부침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에서의 저자의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글 순서는 방문순서와는 무관하게 저자의 관심사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쿠바가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아마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잘 버텨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쿠바의 곳곳에서 숨어 있는 미국의 흔적들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게바라의 뜨거운 정신은 없고 게바라를 팔아 외화벌이로 연명하고 있는 쿠바의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쿠바가 이렇게라도 돈을 버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했다.(36쪽)” 어때서일까요?


미국이나 유럽이 라틴아메리카에 대하여 취해온 바에 대하여 지나치게 민감해 보이는 대목은 베네주엘라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이 내려진 것에서 볼 수 있는데, 저자는 굳이 콜럼버스기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당시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정복사업은 다른 스페인 사람들이 총대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구바의 의료인들이 베네주엘라에서 국제연대차원의 무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적은 것도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사실 쿠바가 의료진을 파견하는 대신 베네주엘라로부터 석유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1976년의 ‘더러운 전쟁’을 벌인 독재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5월의 어머니회의 강령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자식들은 죽은 것이 아니고 현재의 민주화 운동 속에 살아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체발굴을 거부한다. 모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우리 자식들이다. 둘째, 우리는 어떠한 기념물 건립도 반대한다. 기념물 건립은 우리 자식들의 민주화 투쟁 정신을 화것화시켜 건축물과 돌 속에 가두는 것이다. 우리 자식들의 정신은 기념물이 아니라 현재의 투쟁을 통해 기념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어떠한 금전 보상도 거부한다. 생명은 생명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지 어떠한 금전으로도 대치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을 금전으로 격하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118-119쪽)”


눈에 띄는 대목은 2007에 나온 책이라서인지 김대중정부에서 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역시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으로 도입한 신자유주의에 매몰되어있다는 비판입니다. 이어서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진보세력들은 책임을 보수세력에게 떠밀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아즈텍문명의 인신공양이 관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을 짚으려합니다. 유카탄반도의 치첸이사에 있는 세노테에서 저자는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산 사람을 우물에 던져 넣던 야만성을 끔찍하게 느껴졌다(240쪽)’라고 적은 반면, ‘자신과는 다르다는 이유(특히 인신공양)로, 원주민을 쳐부숴야 할 야만으로 단정해 강제로 기독교와 서구문명을 심으려 했던 스페인의 행동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247쪽)'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문명을 비판하는 일은 역시 조심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족이 될 듯합니다만,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최근 우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심지어 제가 방문했던 페루에서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4월에 치러진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고 6월의 결선투표를 남기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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