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
리처드 스티븐스 지음, 김정혜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남들이 모범생이라고 했던 필자 역시 학생 때 19금 영화관엘 갔다가 단속 나온 선생님을 피해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호기심이었던지 아니면 일탈을 꿈꾸었던 것인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일탈을 꿈꾸었던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똑 같이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 [북소리]에서는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는 이유를 알아보기로 합니다. 영국 중부의 스태포드셔에 있는 킬(Keele)대학에서 심리학을 연구하는 리처드 스티븐스(Richard Stephens)교수의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에서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또한 강의와 연구를 하는 사이에 자동차경주를 즐기는 독특한 면도 있습니다. 그의 연구주제는 욕설을 통해서 사람들이 얻는 심리학적 혜택은 무엇일까 하는 것도 있는데, 그 연구 성과로 2010년에 ‘처음에는 웃게 하나 나중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과학이라는 의미의 이그노벨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의 원제목은 <Black Sheep: The Hidden Benefits of Being Bad>입니다. 일탈에 숨어있는 이익을 ‘검은 양’으로 표현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검은 양(Black sheep)은 한 떼의 하양 양 무리에 섞여들어 환영받지 못하는 검은 양처럼 조직사회의 골칫거리, 말썽꾼, 이단아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검은 양이야 타고난 것을 어쩔 것이냐면서 억울하다고 하겠습니다만, 조직의 말썽꾼은 스스로 택한 길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심리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사회적 추방부터 감성지능, 음악감상부터 통증지각까지, 종교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주 방대합니다. 예로부터 심리학은 사람들에 관한 수많은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노력해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심리학실험을 통하여 욕설과 통증과의 관계를 추구했던 것처럼, 섹스와 중독, 고속운전, 낙서와 껌씹기, 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건너기와 롤러코스터 타기와 같은 일탈행위의 혜택에 관한 심리학 연구결과들을 모아 <우리는 왜 위험한 것에 끌리는가>에 담았습니다. ‘독자들이 과학의 본질을 확실히 납득하고, 심리연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도록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성생활’을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에는 공개된 장소에서 성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간 큰 젊은이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아무래도 은밀한 장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성행위를 연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행위를 하는 동안 얼굴표정의 변화를 본다거나 심지어는 뇌영상검사를 한 실험도 있습니다. 어떻든 성적 흥분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규칙적인 성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점 등을 추구한 연구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적 흥분은 마약을 복용하거나 좋아하는 축구팀이 득점을 하는 장면을 볼 때처럼 뇌의 보상경로를 활성화합니다. 즉 성행위는 즐거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오르가즘을 느끼는 순간 남녀 모두에서 비슷한 뇌의 활동을 보인다고 합니다. 남녀 모두 감정이 고양되면서 정신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지요. 셋째, 성행위로 젊고 탄력적인 외모를 유지할 수 있으며, 통증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성행위는 남녀 모두에서 의사결정력을 극단적으로 떨어뜨린다는 것인데, 성행위를 하는 동안의 일이기 때문에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외도와 같은 비정상적인 성행위는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관계에서의 성행위에서도 위와 같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비정상적인 관계가 공개되었을 때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성행위를 하는 동안 복상사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익과 위험을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주제는 ‘술’입니다. 아마도 저자가 국제숙취연구소의 창립위원이라는 점을 보면 당연한 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 역시 과거에 알코올 중독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만, 정신의학에서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용어가 사라진지 30년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미국정신의학회(APA)가 1980년대에 만든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III)에서는 ‘알코올 중독’을 ‘알코올 의존’, 혹은 ‘알코올 남용’이라는 용어로 대치하였습니다. 하지만 개념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알코올 섭취를 줄이거나 알코올 섭취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때,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섭취할 때, 손떨림 같은 금단증상을 보일 때, 내성이 생겼을 때 등의 경우를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하고, 그보다는 경미한 증상을 보일 때는 알코올 남용이라고 했습니다.


2013년에 개정된 DSM-V에서는 이마저도 주관적이라고 해서 ‘알코올 사용장애’라는 용어로 통일하고 모두 11개의 증상 가운데 몇 가지를 충족시키는가에 따라서 중증도를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마약과 같은 약물중독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중독은 약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각자의 생활방식과 환경에 달린 문제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때의 호기심으로 마약을 하던 젊은이들이 철이 들면서 마약이 삶에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완전히 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마시는 술은 분명 심뇌혈관질환이나 우울증과 같은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이점이 있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높여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은 사람들을 뭉치게 만드는 접착제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술이 인류문명의 토대 가운데 하나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은 <술의 세계사>에서 인간이 알코올을 소비한 역사를 보면, 인류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한 동기가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술을 제조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정지’단추를 작동시키는 현명함까지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나이가 들어가면 알코올 섭취에 제동을 거는 ‘정지’단추가 작동하면서 알코올섭취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욕설’입니다. 욕설과 통증과의 상관관계를 실험한 저자가 자신의 실험성적을 공개할 수 있는 주제를 세 번째로 미루어둔 것은 신사의 나라 영국출신이기 때문일까요? ‘스트레스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하여 저속한 말이나 상스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을 랄로체지아(lalochezia)라는 말로 나타냅니다. 그리스어로 말하기(spech)를 의미하는 ‘lalia’와 용변하다(to relieve oneself)를 의미하는 ‘chezo’를 결합해서 만든 용어로 아직은 적절한 우리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말로 풀어내다’라는 정도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용어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욕설을 주제로 한 연구를 수행한 학자로서 변명 비슷한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욕설이 심리학의 연구주제로 천박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탄생하는 경이로운 현장에서 흔히 욕설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순간에서도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욕설은 생과 사의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장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발견했습니다. 환자들의 인지상태를 검사하는 FAS검사가 치매환자를 분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것입니다. FAS검사는 특정한 알파벳 철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가능한 많이 생각해내서 말이나 글로 표현하도록 하는 검사입니다. 알츠하이머병환자와 비교했을 때 전두엽측두엽치매 환자들이 FAS검사에서 욕설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충동에 이끌려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기능이 있는 전두엽이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환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라서 결정적인 진단방법이 될 수는 없지만, 진단에 참고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네 번째 주제 역시 저자의 본심을 담았네요. 바로 ‘질주본능’입니다. 아마도 운전에 자신 있는 분이라면 고속주행할 때 느끼는 스릴감을 기억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속을 금하는 것은 사고의 위험이 크고, 사고가 나면 치명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같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루한 상황에서는 공상에 빠져 주행속도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상에 빠진 운전자는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대체적으로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운전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속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긴장의 강도를 높여서 위험에 대비합니다. 운전자들의 질주본능에 대하여 저자는 감각추구이론보다는 몰입이론으로 설명합니다. ‘고속운전은 운전에서 비롯하는 도전의 강도를 끌어올림으로써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수단(173쪽)’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충돌위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고 도전적 운전을 안전하게 해줄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숙제라고 한발 빠지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사랑’입니다. 가수 태진아씨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고 노래했습니다. 하지만 먼저 나온 봉봉사중창단은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라고 사랑을 예찬한 것과 비교해보면 사랑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 초콜릿, 돈, 코카인 등과 똑같이 뇌의 보상경로를 활성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사랑은 강력한 마약이라는 문학적 의미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있는 경우처럼,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탈이라고 하겠습니다. 일탈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기인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한편 저자는 가슴 뛰게 하는 초기단계의 사랑이 주는 효과와 함께 오랜 연인관계도 논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그놈의 정 때문에 산다고 하는 우리네 옛말이 있기도 합니다. 일종의 연민적 사랑을 에둘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민적 사랑은 일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부부가 서로에게 연민적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는 희한하게도 한쪽 당사자에게만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여성은 그런 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아직도 쓸모가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커지는 반면, 남성은 자신의 건강이 쇠약해졌다는 징후로, 심지어는 남편이 해오던 가족 부양의 책임이 이제는 아내에게 넘어가는 새로운 결혼생활의 단계로 들어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이 연민적 보살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유입니다.


여섯 번째 주제는 ‘스트레스’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흥미를 가지는 일에 몰입함으로써 기쁨과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위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삶에 유해한 부정적 스트레스를 지양하고 삶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강화토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곱 번째 주제는 ‘시간 낭비’라고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느리게 살기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이는 삶의 한 가지 유형이기 때문에 일탈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죽음’입니다. 특히 임사체험을 인용하여 죽음을 설명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삶의 또 다른 요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절한 일탈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일탈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부적적한 일탈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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