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실비 제르맹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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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프라하를 다녀온 탓도 있지만,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그녀는 누구이고, 왜 울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열면 ‘그 여자가 책 속으로 들어왔다.’라고 시작합니다. 마찬가지로 ‘에필로그’ 역시 ‘그 여자는 책에서 밖으로 나갔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엄청나게 크고, 심하게 다리를 절며, 거친 천을 아무렇게나 재단한 옷을 걸치고 다니는 그녀는 누구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라하의 곳곳에서 열두 번에 걸쳐 나타나 울고 다닌 ‘그녀의 나타남의 연대기’를 통하여 그녀의 실체에 접근해갑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녀의 발자국들로만 이루어진 것인데, ‘그녀의 발걸음 속에 부는 잉크의 바람에 불려 낱말들이 허리를 구부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고, 망각의 경계에 이른 기억 속에 깊이 파묻혀 있던 이미지들의 뿌리가 뽑힌(17쪽)’ 결과인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작가는 그녀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걸음걸이가 보기 흉하고 어깨가 엄청나게 떡 벌어진 그 여자는 살과 피가 아니라, 눈물로, 오직 눈물만으로 된 존재였다. 그녀는 한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모든 남자 모든 여자의 고통에서 태어났다.(36쪽)’ 그렇다면 그녀가 존재하게 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백주 대낮에 등에 총알을 맞고 죽은 브루노 슐츠라는 사람이 일생 동안 수백통의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데생과 판화를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썼던 것인데, 갑자기 사라진 수백 통의 편지들이 갑자기 중얼거리기 시작하여 편지를 쓴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고 그 편지들을 읽은 모든 남자 여자들이 침묵과 망각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한 것입니다. 그 오래된 목소리들, 부서진 말들의 생명을 되살려놓은 것이 바로 그 여자입니다.


브루노 슐츠는 노란별을 달지 않고 거리고 나갔기 때문에 총알을 맞았던 것이고, 그 여자는 슐츠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빵덩어리, 아니 빵덩어리의 먼지와 피의 맛을 긁어모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슐츠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 슬로바네흐 수도원의 담장 아래 피어나는 꽃을 노래하던 프란타 바스의 시를 살려낸 것도 그녀입니다.


프라하의 돌틈에서 태어난 그녀는 도시의 기억, 특히 어두운 쪽의 기억이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억, 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고통을 잊어버린 남자 여자들의 기억이라고 작가는 정리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시를 떠날 수 없었고 영원히 버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열두 번의 등장을 끝으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도시가 아니라 가시적인 것을 떠났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다시금 나무껍질 속우로, 나무뿌리 속으로, 포도의 아스팔트 밑으로 스며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번에 프라하를 찾았을 때 유대교의 교회당 시나고그와 그들을 모아 살게 했던 게토지역을 찾아 나섰던 것인데, 자유시간, 아니 천문시계가 울리는 시간에 쫓겨 광장으로 되돌아와야 했기에 중간에서 포기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핀카소바 시나고그에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손에 죽은 7만7297명의 체코계 유대인들의 이름이 벽면 가득 적혀있고, 클라우소바 시나고그에는 나치의 테레진 수용소에 강제 수용되었던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글들, 장난감, 책가방과 도시락 가방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다음에 프라하를 다시 찾게 되면 그녀를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인 실비 제르맹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역사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면서도 상상력 가득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고 소개되었는데, 옮긴이는 ‘그의 소설에서는 가족과 마을과 나라의 집단적 기억, 몽환적인 이미지들로 점철된 기억이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으로부터 솟아오르곤 하는 것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소리를 내어 시를 읽듯 읽어야 제 맛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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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도시 이야기 - 상 -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시오노 나나미 지음, 정도영 옮김 / 한길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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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다녀온 발칸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베네치아였습니다. 오래 전에 이탈리아의 스트레사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 때 베네치아가 아닌 밀라노를 선택해서 구경하면서 베네치아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을 채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동안 베네치아에 대한 공부를 적지 않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소개한, 존 러스킨의 <베네치아의 돌; http://blog.joins.com/yang412/13712775>도 있었고, 패트리샤 포르티니 브라운의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http://blog.joins.com/yang412/13812136>도 있었습니다. 건축 혹은 예술사적 시각으로 베네치아를 들여다본 책들을 읽다보니 베네치아 사회의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한 책읽기입니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시오노 나나미가 가쿠슈인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서양철학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이탈리아의 역사를 천착하기 시작해서, 1968년에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中央公論」지에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권씩 발표한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대표작입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녀의 작품들은 교양서와 소설의 사이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또한 평가가 엇갈리는 점도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료를 취사선택하였다거나, 사료가 없는 부분은 별다른 언급 없이 창작으로 채웠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술적인 면이 강조되는 역사서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떨어뜨려 접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또 역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역사상 벌어진 일들에 대한 왜곡은 없으며, 지나치게 자세하지도 않고 생략되지도 않은 적절한 상황 묘사가 바로 그녀의 작품만이 가지는 힘이라고 합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녀가 쓴 <주홍빛 베네치아; http://blog.joins.com/yang412/13813357>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도록 유혹했던 것 같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베네치아공화국이 터를 잡을 때부터 공식적으로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요약하였습니다. 베네치아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초대 국가원수(doge)를 선출한 697년부터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항복한 1797년까지 무려 1100년을 이었던 최장수 국가입니다. 베네치아공화국과 견줄만한 나라로는 395년 – 1453년까지 1088년을 이은 비잔틴제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新羅)가 기원전 57년 ~ 935년까지 992년을 이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역사책의 주인공은 대체적으로 왕과 주요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사고를 나열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적으로 딱딱할 수밖에 없어 금세 읽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상권이 522쪽, 하권 이 579쪽으로 베네치아의 역사에 버금가는 쪽수에도 불구하고 책을 손에서 놓기가 싫을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작가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지금의 자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베네치아의 탄생으로부터 동방과 서유럽을 연결하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누리던 베니스의 모습 그리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몰락해가는 베네치아의 모습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의 침략에 굴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열다섯 개의 주제를 가지고 설명하였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상업, 문화예술, 여성문제 이르기까지 책읽는 이의 흥미를 끌어낼만한 것들입니다.


연대기에 의하면 베네치아 사람들이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침략을 피해서 지금의 장소보다 육지에 가까운 소택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서기 452년입니다. 그로부터 한 세기쯤 뒤에 롬바르드족이 침입하여 파도바로부터 이스트라반도에 이르는 아드리아해 연안을 파괴하자 이들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지금의 장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개펄 위에 나무를 박아 넣어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습니다. 요즘 간척사업을 하듯이 개펄을 모두 메운 것이 아니라 도시의 방어를 위하여 개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를 살렸으니 그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해야 했을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 운하 위에 다리를 만들어 도시를 효율적으로 오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50개가 넘는 섬, 180개에 가까운 운하와 410개나 되는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3요소, 국민, 강역, 주권 가운데 두 가지, 국민과 강역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을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식민지를 개척하여 영토를 넓히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 10만 내외의 베네치아 사람들로는 얻은 식민지를 제대로 다스리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외부에서 조달하고, 그러한 상업활동의 근간이 되는 부를 무역을 통하여 얻었던 것입니다. 섬이라고 하기보다는 바다에 떠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베네치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바다와 친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고 배를 부리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바다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승천일에 열리는 베네치아의 축제일에 국가원수는 리도항구로 나가 준비한 금반지를 바다에 떨어뜨리면서 “너와 결혼한다. 바다여. 영원히 내 것 이어라”하고 말할 정도로 베네치아에게 바다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지중해를 장악한 비잔틴제국는 동방의 페르시아와 맞서고 있었기 때문에 서쪽 바다를 대신해서 지켜줄 세력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를 비롯하여 피사, 제노바 등이 지중해를 누비는 해양국가였는데, 비잔틴제국이 선택한 것은 베네치아였습니다. 베네치아제국의 자주성은 인정하되 비잔틴제국에 속하는 것으로 하며, 제국의 영내에서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로서 경쟁국가들보다 상업활동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강력한 힘을 구축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베네치아가 공화정의 정치체제를 갖추고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견제장치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 장수국가로 갈 수 있던 근원이었습니다. 국가원수와 6인의 원수보좌관, 6인 위원회, 10인 위원회, 원로원, 국회 등이 각자 맡은 일을 하게 되는데, 정치에 관한 업무는 귀족계급이 맡아하였습니다. 베네치아의 귀족들은 전문정치인이었고, 이들은 맡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수업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나라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를 흘려가며 독립과 자유를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베네치아의 장수를 담보했던 정치체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는가 하는 점은 제5장 ‘정치의 기술’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4차 십자군전쟁에 관한 내용은 앞서 말씀드렸던 역사에 대한 작가적 해석의 차이인지 아니면 창작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난공불락이던 이스탄불(이전에 콘스탄티누폴리스이던 시절을 포함해서)은 꼭 두 차례 외부세력에 의하여 함락된 바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공격에 함락되어 라틴제국이 성립된 경우이며, 두 번째는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가 이끄는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비잔틴제국이 멸망한 때입니다. 지난 해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을 베네치아가 주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바다 도시 이야기>를 보면 반드시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4차 십자군은 로마교황 인노켄티우스3세의 주창으로 프랑스 제후들을 중심으로 결성을 하고 육로로 가는 것은 너무 멀고 위험하기 때문에 해로를 통하여 원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도 당시 여건으로 십자군의 병력과 병참을 수송할 수 있는 나라는 베네치아가 유일했기 때문에 십자군의 지휘부는 베네치아와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4,500명의 기사와 2만 명의 보병, 4,500마리의 말과 종자 마부 등 9천명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선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베네치아의 원수가 지휘하는 전투승무원 6천명이 출전하는 조건으로 8만5천 마르크를 내기로 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계약에 따라 필요한 함선들을 새로 건조하는 등 약속한 기일에 갤리선 50척, 범선 240척, 평저선 120척 등 480척을 준비했지만, 십자군을 이끌기로 한 상파뉴백작이 사망하면서 겨우 1만 내외의 병력만이 참여하였고 약속했던 수송비용도 2만5천 마르크밖에 지불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원정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곤혹스러운 십자군에게 베네치아에서 수정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헝가리왕국의 선동으로 베네치아에 반기를 든 자라(지금의 자다르입니다.)를 공략하는 것을 거들어준다면 계약을 즉시 이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자라공략에 성공하였을 때,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가 십자군을 찾아왔습니다. 십자군 원정비용과 그리스정교를 로마가톨릭교회 아래로 통합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콘스탄티누폴리스를 공격하고 황위를 찬탈한 동생을 제거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결국 비잔틴제국의 내분이 화를 불러들인 것이지, 베네치아가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트누폴리스 침공을 주도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십자군 입장에서도 원정경비문제도 있고 해서 찬성의 뜻을 나타냈고, 베네치아의 원수 엔리코 단돌로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친베네치아 성향이면 유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십자군 측이나 베네치아, 비잔틴제국의 알렉시우스황자, 심지어는 교황마저도 동서교회의 통합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 맞아떨어지면서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누폴리스 침공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십자군의 공격은 황제 알렉시우스 3세가 도주하면서 종결되었고, 알렉시우스황자는 황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비잔틴군과 십자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선제의 사위가 새로 즉위한 황제를 살해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2차 콘스탄티누폴리스 공성전이 전개되고 함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승리한 십자군은 당시 전쟁의 관례대로 3일에 걸친 약탈을 허락했고, 비잔틴제국 대신 라틴제국이 성립되었던 것입니다. 비잔틴제국 측에서는 베네치아가 예술품들을 약탈해갔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문화적 안목이 없던 프랑스군이나 플랑드르 군의 파괴를 면한 것도 베네치아 사람들의 예술품에 대한 안목이 한 몫을 했다고 해석합니다.


인구 10만 내외의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여왕으로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였을 뿐 아니라, 같은 기독교국가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오스만제국과의 협정을 맺는 등 치밀한 외교전을 전개한 과정을 <바다 도시 이야기> 후반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제국이나 이베리아반도를 통일하고 라틴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한 에스파냐왕국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동방으로 가는 신항로의 역할이 확립되면서 그동안 장악해온 지중해무역이 위축되는 것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본토를 차지해서 농업의 비중을 높이고 수공업을 발전시키는 등 대안을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화하는 내부사정은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대응이 과거처럼 명쾌할 수 없었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천년을 넘게 지나오면서 존립의 위기를 넘겨가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던 베네치아도 근세 유럽사회의 격랑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을 포기함에 따라 도시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서 지금도 그 옛날의 베네치아를 볼 수 있는 것이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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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 - 평생 가난할 운명에 놓인 청년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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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생긴 사회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서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사회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현상이 일본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합니다. 일본사회의 청년문제의 심각성을 분석한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를 읽고서 알게 된 것입니다.


저자인 후지타 다카노리(藤田孝典)는 NPO 법인 ‘핫플러스’의 대표이사이자 세이가쿠인대학에서 객원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반反빈곤 네트워크 사이타마 대표, 블랙기업 대책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고, 지역 내에서 생활 빈곤층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로 생활보호와 생활 곤궁자 지원에 대한 활동과 제언을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회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춘 행동파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를 읽다보면 먼저 일본청년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우리나라 청년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닮았다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만들어낸 사람은 당사자인 청년들이 아니라 기성세대라는 점까지도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지금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청년들이 빠르게 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금세 사회현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1990년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취직이 어렵던 시절의 청년들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 그 취업난이 일시적인 것을 넘어서 고착화되면서 평생 빈곤을 안고 살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몰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강요된 빈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빈곤세대’로 정의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1장에서 저자는 먼저 몇 개의 구체적 사례를 통하여 빈곤의 늪에 빠져든 과정을 살펴보고 있는데,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정이, 사회가 그들의 삶을 조금씩 옥조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장에서는 이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바로 기성세대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블랙기업, 심지어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허울을 앞세운 아르바이트자리까지도 청년들의 앞날을 가로막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미래를 위한 공부가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도 학자금대출이 평생의 짐이 되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4장에서는 독립해 살 곳을 구하는 것이 어려워 부모의 그늘을 찾는 청년이 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일본의 사회복지정책이 빈곤청년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고 앞으로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를 짚었습니다.


<우리는 빈곤세대입니다>는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하였거나, 심지어는 알면서도 외면해온 청년세대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저자의 말대로 ‘현대사회의 모든 청년들은 같은 비극’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성세대들이 지금까지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 아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외면해온 젊은 세대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의탁해야 할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가서 그들이 외면한다고 볼멘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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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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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초에 방문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이 겪은 끔찍한 참상을 보고 들으면서 인간이 이렇듯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독일정부는 어떻게 유대인들을 이곳까지 끌고 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피아니스트>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이 독일군 점령 하의 바르샤바에서 6년간 살아남은 경험을 기술한 작품으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함께 홀로코스트에 대한 탁월한 수기문학으로 꼽는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수행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이 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검은 속셈을 감추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폴란드를 전격 점령한 독일군은 초기에만 해도 폴란드 국민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인데, 점차 게토를 설치하여 유대인들을 게토로 몰아넣고, 재산을 몰수하며, 공연히 트집을 잡아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하는 등 광기가 점점 그 도를 더해가는 양상을 보이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수용소로 끌어가기 전에 게토로 몰아넣은 것은 심리적으로 교란작전을 폈던 것이라고 합니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게토로 이주하면서 재산을 처분하도록 유도하면서 싼값에 그들이 자산을 매입하고, 이어서 수용소로 이주시키면서 새로운 거주지로 간다고 속임으로서 값비싼 물건들을 휴대토록 하여 수용소에 도착한 즉시 처형시키고 그들이 들고 온 값비싼 물건들을 손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피아니스트>를 보면 게토에 머물던 유대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긴장된 와중에서도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우아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직접 통제하기도 했지만, 일부 유대인들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통제하도록 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지 않도록 하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 팔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합니다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불라디슬라브 스필만 스필만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고 바르샤바에서 숨어 모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친구층이 두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대인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등록 유대인을 숨겨주고 도와준 폴란드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리고 특히 독일군 장교이면서도 숨어 지내는 스필만과 우연히 조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즉결처분을 하지 않고 숨어살도록 조치를 해준 빌름 호젠펠트와 같은 깨어있는 독일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호젠펠트는 독일인이 게토에서 자행하고 있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절망을 이렇게 일기에 적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 가운데 어찌 그런 인간 쓰레기들이 있을 수 있는지 거듭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다.(274쪽)”


<피아니스트>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불라디슬라브 스필만이 자신의 겪은 일을 기록한 수기와 마지막 순간에 그를 지켜준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의 일기 초, 그리고 스필만의 부탁을 받은 볼프 비어만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옮겨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와 독일군 장교의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을 옮긴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해 손가락은 뻣뻣하게 굳어 있고 손에는 새까만 때가 켜켜야 앉았고 손톱마저 길게 자란 유태인은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쇼팽의 야상곡 C#잔도를. 독일군 장교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귀 기울인다.(312쪽)” 그리고 ‘아름답다. 그 끔찍한 정황에서 이런 기적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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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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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붙들려 꽃 지는 것도 몰랐다’라는 프롤로그의 제목에 그야말로 ‘심쿵’했습니다. 시인의 말대로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시가 있어 다른 세계로 향할 수 있었다는데, 저는 무엇이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가 뒤늦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는 내면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거나 사물이나 자연에 숨어 있는 나를 만나게 해주거나 지리멸렬한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확 바꿔 보게 하거나 자신이 받은 상처를 즐거움으로 바꾸어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11쪽)’라고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상에다가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생각들을 덧붙여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산문집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산문집은 시와 산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양수겹장이요 일석이조인 책읽기가 되는 셈입니다.


2010년 시인은 일 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 집배원으로 임명받아 동영상그래픽과 음악이 어우러진 멋진 시를 직접 낭독하여 전송하는 역할을 했고, 그때 선정했던 시와 시인의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가 담긴 시들을 고르게 되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시는 시인이 「봄, 가벼움의 본능이 깨어나다」라고 제목을 붙인 산문의 주제가 되는 봄의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황인숙 시인의 「봄」으로 시작합니다. 겨우내 이어진 추위에 움츠러들지 말고 ‘이불 박차고 두꺼운 옷 벗고 새 공기를 마시면서 뛰어보라고 권유하기에 십상인 시를 고른 것입니다. 송재학 시인의 「사물 A와 B」를 읽다보면 시인이 고른 시들이 나름 고심한 흔적을 나타내듯 형식조차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모내기를 막 끝낸 들의 풍경을 그린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에서는 벌써 추수를 마쳐 얻은 쌀로 밥지을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밥맛은 살맛이다」라는 산문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큰 주발에 소복하게 올라오도록 담은 고봉밥을 떠올렸습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고봉밥은 힘든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이 일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시인은 시골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시골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흥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 심심함, 매 맞기, 벌서기 따위로 채워져 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유년의 기억이 창작의 보물창고라는 작가들과는 달리 시인의 창고는 허름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어 그것을 엉뚱하게 변형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로 시작되는 유홍준 시인의 「가족사진」에서 아동폭력의 심각함을 지적하는 글 「폭력의 기억을 놀이로 만들기」를 읽으면서 두 아들이 어렷을 적에 상처가 되었을 일을 떠올렸습니다. 매를 맞은 사람은 마음에 새긴다지만 매를 든 사람은 일상이기 때문에 마음에 남겨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깨우쳐 사과하고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면 풀어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좋은 시는 몸속에 숨어 있는 기억이나 감정, 감각 본능 등을 흔들어서 깨우고 활동시킬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삶과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게 만들고 한숨 쉬거나 웃게 만든다고 합니다. 시인처럼 갑자기 새로운 시가 쓰고 싶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시인처럼 세상을 다시 보는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와 산문 읽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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