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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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월초에 방문한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는 이곳에 수용된 사람들, 특히 유대인들이 겪은 끔찍한 참상을 보고 들으면서 인간이 이렇듯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은 독일정부는 어떻게 유대인들을 이곳까지 끌고 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피아니스트>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이 독일군 점령 하의 바르샤바에서 6년간 살아남은 경험을 기술한 작품으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함께 홀로코스트에 대한 탁월한 수기문학으로 꼽는다고 합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수행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만, 이 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처음에는 검은 속셈을 감추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폴란드를 전격 점령한 독일군은 초기에만 해도 폴란드 국민 심지어는 유대인들에게 적의를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인데, 점차 게토를 설치하여 유대인들을 게토로 몰아넣고, 재산을 몰수하며, 공연히 트집을 잡아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하는 등 광기가 점점 그 도를 더해가는 양상을 보이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을 수용소로 끌어가기 전에 게토로 몰아넣은 것은 심리적으로 교란작전을 폈던 것이라고 합니다. 부유한 유대인들은 게토로 이주하면서 재산을 처분하도록 유도하면서 싼값에 그들이 자산을 매입하고, 이어서 수용소로 이주시키면서 새로운 거주지로 간다고 속임으로서 값비싼 물건들을 휴대토록 하여 수용소에 도착한 즉시 처형시키고 그들이 들고 온 값비싼 물건들을 손에 넣었다는 것입니다.


<피아니스트>를 보면 게토에 머물던 유대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긴장된 와중에서도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내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우아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독일군이 유대인들을 직접 통제하기도 했지만, 일부 유대인들을 뽑아서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통제하도록 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지 않도록 하는 치밀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 팔자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합니다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실감할 수 있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불라디슬라브 스필만 스필만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지 않고 바르샤바에서 숨어 모진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친구층이 두터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대인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등록 유대인을 숨겨주고 도와준 폴란드 사람들의 위대한 정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리고 특히 독일군 장교이면서도 숨어 지내는 스필만과 우연히 조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즉결처분을 하지 않고 숨어살도록 조치를 해준 빌름 호젠펠트와 같은 깨어있는 독일인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호젠펠트는 독일인이 게토에서 자행하고 있는 끔찍하고 야만적인 행위에 대한 절망을 이렇게 일기에 적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 가운데 어찌 그런 인간 쓰레기들이 있을 수 있는지 거듭거듭 되묻지 않을 수 없다.(274쪽)”


<피아니스트>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불라디슬라브 스필만이 자신의 겪은 일을 기록한 수기와 마지막 순간에 그를 지켜준 독일군 장교 빌름 호젠펠트의 일기 초, 그리고 스필만의 부탁을 받은 볼프 비어만의 해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화로 옮겨 200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와 독일군 장교의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을 옮긴이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지 못해 손가락은 뻣뻣하게 굳어 있고 손에는 새까만 때가 켜켜야 앉았고 손톱마저 길게 자란 유태인은 조율도 제대로 되지 않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쇼팽의 야상곡 C#잔도를. 독일군 장교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귀 기울인다.(312쪽)” 그리고 ‘아름답다. 그 끔찍한 정황에서 이런 기적 같은 정경이 펼쳐진다는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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