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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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 붙들려 꽃 지는 것도 몰랐다’라는 프롤로그의 제목에 그야말로 ‘심쿵’했습니다. 시인의 말대로 ‘일과 밥에 붙들려 꽃 지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시가 있어 다른 세계로 향할 수 있었다는데, 저는 무엇이 있었는지 돌아봅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가 뒤늦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빠져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는 내면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주거나 사물이나 자연에 숨어 있는 나를 만나게 해주거나 지리멸렬한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확 바꿔 보게 하거나 자신이 받은 상처를 즐거움으로 바꾸어주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11쪽)’라고 했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느낀 감상에다가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생각들을 덧붙여 <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제목으로 산문집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산문집은 시와 산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양수겹장이요 일석이조인 책읽기가 되는 셈입니다.


2010년 시인은 일 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 집배원으로 임명받아 동영상그래픽과 음악이 어우러진 멋진 시를 직접 낭독하여 전송하는 역할을 했고, 그때 선정했던 시와 시인의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가 담긴 시들을 고르게 되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시는 시인이 「봄, 가벼움의 본능이 깨어나다」라고 제목을 붙인 산문의 주제가 되는 봄의 새로운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황인숙 시인의 「봄」으로 시작합니다. 겨우내 이어진 추위에 움츠러들지 말고 ‘이불 박차고 두꺼운 옷 벗고 새 공기를 마시면서 뛰어보라고 권유하기에 십상인 시를 고른 것입니다. 송재학 시인의 「사물 A와 B」를 읽다보면 시인이 고른 시들이 나름 고심한 흔적을 나타내듯 형식조차도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모내기를 막 끝낸 들의 풍경을 그린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에서는 벌써 추수를 마쳐 얻은 쌀로 밥지을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밥맛은 살맛이다」라는 산문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큰 주발에 소복하게 올라오도록 담은 고봉밥을 떠올렸습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고봉밥은 힘든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이 일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시인은 시골에서 자란 것 같습니다. 시골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흥이 곳곳에 배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 심심함, 매 맞기, 벌서기 따위로 채워져 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유년의 기억이 창작의 보물창고라는 작가들과는 달리 시인의 창고는 허름하고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불분명한 기억을 더듬어 그것을 엉뚱하게 변형시키는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로 시작되는 유홍준 시인의 「가족사진」에서 아동폭력의 심각함을 지적하는 글 「폭력의 기억을 놀이로 만들기」를 읽으면서 두 아들이 어렷을 적에 상처가 되었을 일을 떠올렸습니다. 매를 맞은 사람은 마음에 새긴다지만 매를 든 사람은 일상이기 때문에 마음에 남겨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전히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깨우쳐 사과하고 마음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면 풀어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좋은 시는 몸속에 숨어 있는 기억이나 감정, 감각 본능 등을 흔들어서 깨우고 활동시킬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삶과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게 만들고 한숨 쉬거나 웃게 만든다고 합니다. 시인처럼 갑자기 새로운 시가 쓰고 싶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시인처럼 세상을 다시 보는 그런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와 산문 읽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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