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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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합니다. ‘철학’으로 번역되는 영어 필로소피(philosophy)는 고대 희랍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인간과 자연을 관조하는 지식, 즉 학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위키백과는 “앎, 즉 배움과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라서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라고 철학을 다시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은 철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논쟁! 철학배틀>은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는 시도라고 보았습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인간 삶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 철학이 추구하는 화두는 가져오되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론형식을 취하여 쟁점을 논하는 방식입니다. ‘토론’이라는 형식도 요즈음 뜨고 있는 배틀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주제와 관련이 있는 대표 철학자들을 배치하여 격돌하는 구도를 갖추어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모두 15개의 주제를 골라 15라운드로 구성하였는데, 아마도 과거의 권투의 세계챔피언 결정전 방식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3라운드를 뛰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권투는 출전선수의 경력에 따라서 3분 4,6,8,10,12라운드로 경기가 치러집니다. 신인의 경우 4라운드를, 국내챔피언전은 10라운드를 지역 및 세계챔피언전은 12라운드경기입니다. 1982년 우리나라의 김득구선수가 경기 중에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세계챔피언전은 15라운드의 경기를 치렀습니다.


라운드마다, 즉 주제마다 출전선수와 숫자까지도 다르기 때문에 권투경기와 철학배틀이 직접 비교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떻든 흥미로운 발상입니다. 게다가 격돌을 중재하는 심판으로 문답법을 창시한 소크라테스를 모셔서 토론을 유도하고, 토론을 중재하며, 토론을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권투경기와 다른 점은 채점을 하여 승패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토론이 종료된 다음에 심판이 토론자의 주장을 요약정리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출전선수들의 사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흑백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출전선수들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소크라테스라인을 비롯한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그리스 철학자는 물론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와 맹자, 장자와 순자로 이어지는 일군의 고대 동양의 사상가들에 더하여 일본의 철학자와 인도의 간디를 끼워넣은 것은 저자의 배려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모두 37명의 출전선수집단을 구성하였는데, 주제에 따라서는 다수의 라운드를 뛰는 선수도 있습니다. 헤아려보니 칸트가 가장 많은 5라운드에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동양철학자들은 모두 한 라운드만 출전하고 말아 끼워 넣기 차원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제에 따라 대표적인 철학자를 배치한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첫 라운드의 ‘빈부격차는 어디까지 허용될까?’라든가 세 번째 라운드의 ‘소년범죄, 엄벌로 다스려야 할까?’ 등과 같이 현대에 들어 떠오르고 있는 철학적 화두로부터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계에 진리는 존재할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까?’ 등과 같이 해묵은 철학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출전선수 역시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적인 쟁점을 과거의 철학자라면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배려도 엿보입니다. 작가가 그만큼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점잖은 동양선수들과는 달리 서양선수들 가운데는 ‘선생이야말로 병적인 부분이 있군요’라고 깐족대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그 선수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배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헤겔이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 제3제국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문제들은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가치 판단의 철학적 논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수들이 주고받는 문답에 들어있는 핵심요소들에 대하여 각주로 설명을 달아서 이해를 돕고 있으며, 라운드의 말미에 소크라테스의 요약과 함께 저자 역시 한줄로 핵심을 요약해놓아 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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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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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표지에 있는 <장교와 웃는 소녀>라는 그림을 보면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Jan Vermeer)를 떠올리게 됩니다. 베르메르하면 흔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델프트 풍경 View of Delft>이 우선 생각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에서 읽은 기억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델프트의 풍경>을 매우 좋아할 뿐만 아니라 구석구석까지도 잘 안다고 여기고 있는 작가 베르고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르고트는 <델프트의 풍경>에 그려진 ‘황색의 작은 벽’이 귀중한 중국의 미술품처럼 알찬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고 쓴 비평가의 글을 읽었지만, ‘황색의 작은 벽’이 기억나지 않아서 그림을 다시 보러갑니다. 그리고 그림 앞에 섰을 때 “황색인 작은 벽면의 값진 마티에르(matière)를 발견했다”고 하였습니다. 마티에르는 작품 표면의 울퉁불퉁한 질감 자체나 회화기법필치, 혹은 물감에 따라 야기되는 화면의 표면 효과를 의미합니다. ‘황색의 작은 벽’의 질감을 새겨 본 베르고트는 ‘나도 이처럼 글을 썼어야 옳았지’하고 생각합니다. 최근 발표한 작품들이 건조하다는 생각을 가졌던 참이라서, ‘황색의 작은 벽’처럼 ‘채색감을 거듭 덧칠해서 문장 자체를 값진 것으로 했어야 옳았다’라고 자책하게 된 것입니다.(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 245쪽, 국일미디어 1998년) 유예진교수의 <프루스트의 화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484901>에서 <델프트의 풍경> 이외에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베르메르의 여러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작품을 두고서도 참 다양한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베르메르의 모자>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특히 캐나다출신으로 중국학을 전공하는 작가의 배경을 알고 나면, 17세기에 활동한 베르메르의 그림들에서 당시 동서문명의 흐름을 읽어낼 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표제를 <베르메르의 모자>라고 한 것은 <장교와 웃는 소녀>라는 그림의 배경에 걸려있는 지도가 이 책의 기획을 잘 담고 있다고 보았거나 혹은 작가가 캐나다 출신임을 암시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티머시 브룩교수는 캐나다출신으로 1973년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하고, 2년 동안 상하이의 푸단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여러 대학을 거쳐 지금은 옥스퍼드대학교 중국학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들을 보면 특히 중국 명대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메르의 모자>에는 제목과는 달리 <델프트의 풍경>, <장교와 웃는 소녀>,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 <지리학자>, <저울을 든 여인> 등 5개의 베르메르의 작품 이외에도 헨드리크 반 데르 부르흐의 <카드놀이>, 레오나르트 브라메르의 <베들레헴으로 여행하는 세 동방박사>, 그리고 중국화원의 풍경이 그려진 17세기 말경의 접시 하나를 다루었습니다. 이들 작품들은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일기작가 새뮤얼 피프스는 1660년 5월 델프트를 방문하고서 ‘가는 거리마다 강과 다리가 있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도시’라고 묘사했다고 합니다. 브룩교수가 델프트, 나아가 베르메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스무 살 때였다고 합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스코틀랜드의 벤네비스까지 가는 여행의 마지막 여정에 자전거로 암스테르담에서 북해연안을 달리게 되었는데, 델프트에서 비를 만나는 바람에 도로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준 아주머니가 건네준 그림엽서에 담긴 델프트의 풍경을 구경하러 나섰다가 얀 베르메르의 무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그가 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매우 섬세하고 과학적인 지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즉 물체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과 빛의 영향을 다양하게 분석한 결과가 그림에 담겼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상을 화폭에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아주 신중하게 의도적으로 구성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베르메르의 회화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통하여 17세기의 세계를 읽어보려 했고, 그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창문처럼 17세기로 통하는 통로가 될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문은 <델프트의 풍경>을 그린 장소로 지금은 작은 공원의 둔덕인데, 이 장소에 있었을 건물의 2층 높이가 딱 화가의 눈높이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문은 <델프트의 풍경>의 오른쪽 아래 묶여 있는 두 척의 배, 그리고 중앙 구교회의 첨탑 왼쪽으로 죽 이어지는 붉은 지붕의 건물이 세 번째 문입니다. 두 척의 배는 청어잡이 배인데, 1550년 무렵부터 1700년까지 전 세계에 몰아닥친 추위 덕분에 북해의 노르웨이연안의 청어떼가 발트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네덜란드 어부들 차지가 되면서 네덜란드의 번영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붉은 지붕의 건물들은 동인도회사의 창고였다고 합니다.


16세기 말, 에스파냐의 탄압적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룬 네덜란드는 곧 해외 무역의 황금시대를 맞았습니다. 1492년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를 통하여 이슬람세력을 몰아낸 에스파냐는 곧이어 이교도들을 추방하였는데, 당시 에스파냐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대거 네덜란드로 이주하였고, 상거래에 밝은 유대인들이 네덜란드 무역의 중심역할을 했습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동방무역에 나서자 네덜란드 상인들은 2년 뒤인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를 설립하여 해외무역에 나섰습니다. 네덜란드상인들의 발길은 남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지에까지 식민지를 건설하였습니다. VOC는 세계최초의 주식회사이자 다국적기업이었으며 17세기 세계 최대의 회사였습니다. VOC는 암스테르담을 비롯하여 모두 여섯 곳에 지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델프트에 위치했습니다. VOC의 여섯 지부는 단일화된 정책과 지침에 따라 각자의 자본과 사업을 자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유연함과 강함을 결합하여 아시아와의 해상 무역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주도한 17세기 동서양의 교류는 발견의 시대에서 소통의 시대로의 전환을 모색하던 시기라고 평가받습니다. ‘완전한 변형이나 치명적인 충돌 대신 협상과 차용을 선택했고, 승리 아니면 패배라는 태도보다는 주고받는 방식을 선택했으며, 문화를 바꾸기보다는 상호 교류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도래한 포르투갈이 가져온 기독교가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에 놀란 일본은 쇄국정책으로 전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내세우지 않은 네덜란드만은 예외로 나가사키에 만든 축구장 2개 크기의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통하여 무역과 교류를 허용했습니다. 데지마는 난학(蘭學)이라는 이름의 서양학문이 일본에 소개되는 ‘숨구멍’이었다고도 말합니다.


한편 저자는 베르메르의 그림 속에서 숨어 있는 17세기의 흔적을 찾아 과거를 재발견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만들어낸 다양한 원인과 결과를 반영하는 거울로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베르메르가 구체 유리, 황동기구, 진주 등과 같은 사물의 표면에 주변의 모든 사물을 비추는 표현양식을 즐겨한 것을 저자는 ‘인드라의 그물’과 연관을 지었습니다. 인드라는 인도신화에 나오는 천신(天神)으로 그가 거처하는 수미산의 궁전에는 인드라의 그물이라고 하는 커다란 그물이 걸려있고, 그 그물코마다 구슬들이 매달려 서로를 비추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구슬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각각의 존재를 의미하고 서로 인연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의 구슬이 변하면 다른 구슬에 비친 모습도 변할 뿐 아니라 다른 구슬의 모습도 변해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이를 ‘모든 존재는 서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의존관계에 있다“라고 설명합니다.


<델프트의 풍경>에서 17세기에 델프트를 중심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대륙이 서로 연결되었던 사정을 개괄한 저자는 이어서 등장하는 작품들을 통하여 각론에 해당하는 세계문명의 교류상황을 짚어냈습니다. <장교와 웃는 소녀>에서는 장교가 쓴 비버 펠트모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비버의 모피로 만든 모자는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16세기 유럽에서는 이미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비버가 멸종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16세기말 들어 시베리아와 캐나다가 새로운 비버 모피의 공급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공급선이 불안정했던 시베리아보다는 캐나다가 더 각광을 받았습니다. 캐나다산 비버모피를 구하려면 서로 입장이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협상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캐나다 동부를 차지한 프랑스가 적대적인 모호크족을 제압하기 위하여 휴런족을 비롯한 다른 이로쿼이족을 연합시켜 모호크족에 대항하게 만든 역사적 사실 등을 소개합니다.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 등장하는 중국산 과일접시를 두고는 VOC가 동방무역을 주도하던 포르투갈 등과 벌인 주도면밀한 싸움 과정을 소개합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무역선을 약탈하다가 교역은 어느 나라가 독점할 권리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만든 자기가 유럽으로 건너가다가 점차 유럽 사람들의 취향을 맞춘 자기를 대량생산해서 보내는 유연성을 보였다니 중국인들의 유연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지리학자>에서는 당시 네덜란드에서 중요시하던 세계지도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1569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 세계지도를 발표하여 장거리항해에 크게 도움을 준 메르카토르가 네덜란드의 루벵 출신인 것도 참고가 되겠습니다. <지리학자>편에서는 아시아지역의 바다를 주름잡던 유럽 배의 활약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이 무렵 우리나라에도 표류해온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경우는 해당국가로 송환토록 조처하였지만, 기타 외국인의 경우는 별도 조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인조 5년(1627년)에 제주도에 표류해왔다가 귀화하여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온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Jan Jansz Weltevree)나 효종4년(1653년)에 표류해왔다가 탈출한 하멜 등이 네덜란드 출신으로 일찍이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와 인연을 맺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열어 네덜란드와 교역을 했던 일본과는 달리 청나라의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의 경우는 쇄국정책을 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벨테브레이에 관한 이야기는 흑인소년의 모습을 담은 헨드리크 반 데르 부르흐의 <카드놀이>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미상의 접시는 중국화원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 이 접시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델프트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합니다. 비싼 중국자기의 대체상품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 이런 사실에 더하여 담배가 확산된 흐름을 뒤쫓고 있습니다. 아메리카대륙에서 건너온 담배는 생각보다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모양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현실세계에서 초현실세계로 이동해 영혼과 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우던 담배가 유럽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1550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596년 중국의 지방관청의 구매목록에 등장하고, 일본에는 1605년에, 조선에는 그 이후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저울을 든 여인>에서는 은을 주제로 하여 페루의 포토시광산과 일본에서 생산된 은을 매개로 중국산 상품을 구입해 유럽으로 보내던 17세기 무역의 구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베르메르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왜란과 호란으로 피폐했던 17세기 무렵 조선의 강역을 조금 벗어난 동아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해준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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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ㅣ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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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반도에서 시작하여, 터키, 발칸반도를 거쳐 동유럽까지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북소리]에서 소개드린 제리 벤틀리교수는 <고대 세계의 만남>에서 ‘문명의 충돌’보다는 ‘문명의 교류’를 이야기하였습니다만, 두 개의 문명이 늘 적대적 충돌만 일으킨 것은 분명 아닐 것 같습니다. 충돌이 불가피한 국면의 사이에도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의 교류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곳곳에 남아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이 얼마나 방대하던지, 여행기를 통하여 그것들을 언급하다보니 단편적이지만 로마제국의 역사를 귀동냥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로마제국의 본거지인 이탈리아와 로마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로마제국의 역사를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게 된 동기입니다. 모두 6권에 4,1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18세기에 출간된 저작이다 보니 출간 이후에 발견된 역사적 사실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제한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중해를 아우르던 로마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1737년 영국 런던 근처에 있는 퍼트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기는 했지만, 병약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관심도 별로 받지 못한 가운데 이모의 보살핌으로 독서의 취미와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특히 호메로스,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우스, 테렌티우스 등의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과 로렌스 리처드의 <로마사>를 포함하는 다양한 역사서를 탐독하면서 미래의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쌓아갔습니다. 건강이 회복된 1752년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하였지만, 적응하지 못하였고, 1년반 뒤에는 스위스 로잔으로 가서 학자로서의 훈련을 제대로 받게 됩니다.


27세인 1764년 로마를 여행한 기번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에 서서 로마 의 폐허를 바라보면서 영감을 얻어 <로마제국 쇠망사>를 구상하였습니다. 1773년 저술을 시작하여 1776년 2월 17일 제1권을 출간하였고, 1787년 마지막 제6권을 탈고하였으니 무려 15년에 걸친 대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제6권은 그의 51세 생일에 맞추어 1788년 5월 8일 출간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황제가 취임하면서 출범하였습니다. 로마제국 이전의 고대 로마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에 의하여 건설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비역사적 허구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 무렵 로마의 여러 언덕에 마을들이 들어섰고, 서로 통합되어가면서 기원전 7세기 무렵 도시국가 형태의 왕국이 성립하게 됩니다. 기원전 500년경에 왕국이 무너지고 귀족과 평민계급이 같이 참여하는 공화정을 세웠습니다. 평민과 귀족들은 투쟁과 타협을 이어가면서도 기원전 272년경에는 반도를 통일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150여 년간의 정복전쟁을 통하여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면서 지중해 전역을 제패하였습니다. 기원전 1세기 중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하여 시작한 삼두정치가 공화정을 기틀을 흔들면서 제국 성립의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오현제시대(서기 96년~180년)에 융성하여 최대의 강역을 이루었습니다. 서기 293년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는 효율적 관리를 위하여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고 각각 두 명의 황제와 부제가 지배하는 사두체제를 도입하였습니다. 하지만 테오도시우스 1세 사후인 395년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에 의하여 멸망하였으며, 동로마제국은 1453년 오스만제국에 멸망하였습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가장 큰 이유로 게르만 이주민들의 반란을 꼽는 경향입니다만, 기번은 로마제국의 국력이 쇠퇴하게 된 근본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로마제국의 명운이 다했다고 보았습니다. 동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이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게 되면서 동로마제국의 존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라고 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고 있는 로마제국의 쇠망과정이 동로마제국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쇠망사>에도 18세기 유럽역사학자들이 동로마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기번은 오현제시대까지의 로마제국을 ‘위대한 인류의 견고한 구조물’이라고 비유하였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처럼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견고한 구조물도 세월의 풍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저자는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제국에 멸망하기까지 1,300여년에 이르는 장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제국이 무너져가던 과정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트라야누스황제와 안토니우스 황제 무렵 시작하여 지금은 가장 세련된 유럽 국가들의 야만적 선조라 할 게르만족과 스키타이인들에게 서로마제국이 전복되었던 시기까지를 말합니다. 고트족 정복자들이 일으킨 변혁은 대략 6세기경에 완성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동로마제국의 영광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킨 이후 롬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입과 이슬람세력이 소아시아에서 아프리카를 지나 이베리아반도까지 침략하던 시기를 포함하여, 서기 800년 게르만의 서로마제국을 건설한 샤를마뉴가 등장한 시기까지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서로마제국이 부활했던 시기로부터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누폴리스를 함락하여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의 시기로 대략 650년 정도에 이른다고 보았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80여년의 행복한 시기(서기 98-180년)로부터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퇴위 이후 혼돈에 빠진 제국을 추스르기까지의 시대를 <로마제국 쇠망사1>에 담았습니다. 황금기를 지나면서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근위대의 무력에 기대어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위대의 기대치에 따라서 황제가 바뀌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단의 특징은 속주 혹은 정복지에서도 차출되는 병력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비천하더라도 군생활을 통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황제위에 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군의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견고히단 로마제국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마지막 2개의 장에서는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본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기술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책과 함께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신학적 해석과 기적과 순교 등을 부풀렸던 것에 힘입어 세력을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때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그리스도교도들이 로마의 상징인 신들을 경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2>에서는 밀라노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의 수도로 공표한 서기 324년부터 훈족에 밀려난 고트족이 로마의 영역에 자리 잡은 서기 395년까지의 시기를 다루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그리스도교의 공인과 이어 벌어진 삼위일체를 둘러싼 교리다툼으로 그리스도교 안에서 다양한 파벌이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교가 타 종교에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같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다른 교리를 가진 세력들이 갈등의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의 대립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즉 권력을 쥔 쪽이 그렇지 않은 상대를 엄청나게 탄압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세력을 잃은 쪽이 숨어 권토중래를 노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는데, 소아시아의 동굴에서 숨어 지냈다는 그리스도교도들이 로마제국이나 이슬람제국의 탄압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반대파를 피해서 숨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3>에서는 제국의 변방에 살던 고트족, 반달족 등이 세력을 얻어가는 과정, 아시아에서 이동해온 훈족의 영향, 그리고 서로마제국의 멸망 등을 다루었습니다. 이 무렵에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통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향락을 탐닉했다고 합니다. 궁정은 물론 속주에 이르기까지 매관매직과 부정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지만, 이들의 죄를 물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국정장악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로마는 아우구스투스와 콘스탄티누스의 마지막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4>에서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반도를 무대로 벌어진 다양한 민족들의 각축전과 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동로마제국의 서방정복운동 등을 다루었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동고트, 프랑크, 롬바르드족, 반달족 등이 이탈리아반도를 차례로 침공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테오도리크왕이 다스리던 시절 동고트족은 로마를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지만 그의 사후 빠르게 무너져 금세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과거 한 나라의 운명은 지도자의 영명함에 달려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그리스도교 내부에서 예수의 성격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은 세력들끼리 끔찍할 정도로 갈등을 빚은 역사를 정리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네스토리우스파, 야고보파, 마론파, 아르메니아파, 콥트파 등으로 갈려진 정황을 설명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5>에서는 프랑크족의 이탈리아 정복에 이은 신성로마제국의 성립과정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한편 헤라클리우스 황제 이후 비잔틴제국은 끊임없이 강역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는데, 전성기의 로마제국을 이끌던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황제가 없었고,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제위를 둘러싸고 권력싸움이나 벌이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가 아랍부족들을 하나로 묶어내면서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동쪽으로는 인도북부까지 무서운 기세로 강역을 넓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잔틴의 영토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6>에서는 교황의 주도로 전개된 십자군전쟁의 본질과 십자군이 동로마제국에 미친 영향으로 시작하여 비잔틴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내부적인 갈등, 몽고제국의 성립과 유럽원정 그리고 티무르의 사마르칸트제국의 성쇠에 이어 오스만제국의 성립, 교황에 의하여 주도된 라틴교회와 비잔틴제국의 동방교회의 통합 논의,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멸망, 12세기 이후 로마에서 벌어진 교황의 세속지배와 교황청의 아비뇽시대와 로마로 복귀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긴 논설을 맺으면서 기번은 로마제국의 쇠하게 된 것은 1. 군사 전제 정치의 무질서, 2.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확립, 3.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제국의 분열, 4. 게르만과 스키타이 야만족들의 침략과 정착, 5. 이슬람교의 창시, 6. 교황의 세속 통치, 7. 십자군 원정, 8. 사라센과 투르크인의 정복 등이 주요 요소였다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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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워드 - 내 인생을 바꾸는 한 단어의 힘
존 고든.댄 브리튼.지미 페이지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4.0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정유년 새해가 시작되었나 싶은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기 마련입니다. 돌아보면 그렇게 세웠던 목표들 가운데 막상 달성한 것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웠거나,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추진동력을 잃으면서 흐지부지하고 말았던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달성이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할 동기를 분명하게 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더하여 수시로 그 동기를 강화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원 워드>는 미국 최고의 동기부여 전문가 존 고든이, 기독운동선수협의회 임원인 댄 브리튼과 지미 페이지 등과 함께 개발한 동기부여방법을 담았습니다. ‘one word’ 그러니까 목표달성을 위한 동기를 끊임없이 부각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단어’를 골라 마음에 새기게 된다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저자들은 작심삼일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비법으로 ‘원 워드 이론’을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즉 “자신을 위해 이것(원 워드)을 실시한다면 한 해의 새로운 목적과 의미를 찾고 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는 힘을 얻을 것(14쪽)”이라고 하였습니다. 원 워드이론은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어서 자신만의 원 워드를 찾는 단계, 마지막으로 원 워드를 실천하는, 세 단계를 통하여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원 원드>는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먼저 저자들이 원 워드이론을 개발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원 워드의 힘과 실천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어서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의 단계를 각각 설명합니다. 나아가 원 워드 이론을 통하여 이룬 성공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말고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이 방법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원 워드의 사례를 소개하였고, 원 워드 이론이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 자신의 원 워드를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원 워드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기간 동안에 한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면, 그 목표가 달성되면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면서 이에 맞는 원 워드를 다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서론에 적은 것처럼 45분이면 이 책을 독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45분을 투자하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을 저자들은 내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원 워드를 찾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장애가 되는지는 책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합니다. 첫째.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둘째. 내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셋째, 무엇을 버려야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오르면 이를 떠오른 순서대로 기록하고,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을 염두에 두고서 원 워드를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권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단어가 떠오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시행하라고 합니다. 첫째, 마음을 열어라, 둘째, 원하는 하나에 집중하라, 셋째, 귀를 기울여라, 등입니다. 언듯보면 아주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원 워드를 찾아냈으면,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 두 가지를 마음에 새기라고 합니다. 첫째, 원 워드를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즉 거처하는 공간은 물론 스마트폰 등, 눈에 쉽게 띄도록 곳곳에 적어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원 워드가 뇌리에 각인될 수 있도록 격언이나 인용문, 혹은 노래 등 원 워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원 워드를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입니다.


원 워드를 발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곧 자신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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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 -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불가근 불가원(不可遠 不可近)”이라는 말은 특정 직업을 가진 분과는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살면서 만나는 모든 분들과의 관계에 적용해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서 온 여덟 집이 한 동네 살았습니다. 그런데 몇 집을 돌아가면서 주말 마다 혹은 주중에도 집을 돌아가면서 만나 저녁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려가거나 찾아오는 것으로 인하여 생활의 흐름이 깨어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불가근 불가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따’시켰던 샘인데, 그렇다고 왕따를 당할 지경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모임에 끼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던 분도 계셨던 것을 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할 것까지는 없겠습니다만, 역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한 것 같습니다.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의 임춘성교수님께서 내신 <거리 두기>는 딱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일 수 있습니다. ‘거리 두기’란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이란 부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휘둘리지도 않고, 헤매지도 않고, 혼자 속 끓이지 않고 스스로 중심 잡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법인데, 바로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거리 두기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나와 세상, 그 사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휘둘리지 않는 법, 버림받지 않는 법, 치우치지 않는 법, 손해보지 않는 법, 상처받지 않는 법, 책임지지 않는 법(이건 조금 거시기할 수도 있습니다), 홀로되지 않는 법에 이어 꼴통되지 않는 법으로 완성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꼴통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럼으로 해서 ‘세상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많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의 이 지식과 경험, 지금의 사고력과 판단력이라면, 과거로 돌아간 그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를 알고, 사건을 겪고 인과관계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프롤로그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직접 겪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적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다 똑 같지는 않겠습니다만 많은 부분이 공통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속 모를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의문부호’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노래, 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끌어다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기 때문에 쉽게 읽히며 이해가 되는 것도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쩌면 저도 잘 알고 있거나 이미 본 영화 혹은 책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원전이 분명한 것들은 찾아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소설 <인공호흡>의 경우는 히틀러가 체코의 프라하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인용했다고 해서 <나의 투쟁>을 읽어보았지만 그런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술술 읽힌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딱 한 군데 저자의 뜻이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언가의 길목에 꽈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56쪽)” ‘꽈리’가 아니라 ‘똬리’가 맞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이 부분의 의미가 분명히 와 닿지 않은 것 같아 자꾸 반복해서 읽게됩니다. ‘거리두기’는 중용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판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중용은 극단을 피하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반면, 거리두기는 극단과도 소통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품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거리두기는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를 지키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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