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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두기 -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불가근 불가원(不可遠 不可近)”이라는 말은 특정 직업을 가진 분과는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할 때 사용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살면서 만나는 모든 분들과의 관계에 적용해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서 온 여덟 집이 한 동네 살았습니다. 그런데 몇 집을 돌아가면서 주말 마다 혹은 주중에도 집을 돌아가면서 만나 저녁을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려가거나 찾아오는 것으로 인하여 생활의 흐름이 깨어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불가근 불가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따’시켰던 샘인데, 그렇다고 왕따를 당할 지경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모임에 끼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던 분도 계셨던 것을 보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할 것까지는 없겠습니다만, 역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한 것 같습니다.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의 임춘성교수님께서 내신 <거리 두기>는 딱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일 수 있습니다. ‘거리 두기’란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힘”이란 부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휘둘리지도 않고, 헤매지도 않고, 혼자 속 끓이지 않고 스스로 중심 잡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하는 법인데, 바로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거리 두기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나와 세상, 그 사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휘둘리지 않는 법, 버림받지 않는 법, 치우치지 않는 법, 손해보지 않는 법, 상처받지 않는 법, 책임지지 않는 법(이건 조금 거시기할 수도 있습니다), 홀로되지 않는 법에 이어 꼴통되지 않는 법으로 완성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꼴통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겠지요. 그럼으로 해서 ‘세상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많은 사건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의 이 지식과 경험, 지금의 사고력과 판단력이라면, 과거로 돌아간 그때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를 알고, 사건을 겪고 인과관계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프롤로그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저자가 살아오면서 직접 겪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적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다 똑 같지는 않겠습니다만 많은 부분이 공통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속 모를 사람들이 모인 거대한 의문부호’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노래, 책,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것들을 끌어다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기 때문에 쉽게 읽히며 이해가 되는 것도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쩌면 저도 잘 알고 있거나 이미 본 영화 혹은 책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가 분명치 않은 경우도 있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원전이 분명한 것들은 찾아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리카르도 피글리아의 소설 <인공호흡>의 경우는 히틀러가 체코의 프라하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를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인용했다고 해서 <나의 투쟁>을 읽어보았지만 그런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술술 읽힌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딱 한 군데 저자의 뜻이 읽히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신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언가의 길목에 꽈리를 틀고 있다는 것입니다.(56쪽)” ‘꽈리’가 아니라 ‘똬리’가 맞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이 부분의 의미가 분명히 와 닿지 않은 것 같아 자꾸 반복해서 읽게됩니다. ‘거리두기’는 중용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판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중용은 극단을 피하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반면, 거리두기는 극단과도 소통하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품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거리두기는 저자의 말대로 ‘스스로를 지키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