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위키백과에 따르면 철학은 ‘존재, 지식, 가치, 이성, 인식 등의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합니다. ‘철학’으로 번역되는 영어 필로소피(philosophy)는 고대 희랍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여기서 지혜는 인간과 자연을 관조하는 지식, 즉 학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위키백과는 “앎, 즉 배움과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모든 학문의 출발점이라서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삶의 태도”라고 철학을 다시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은 철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만들어낸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대논쟁! 철학배틀>은 철학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는 시도라고 보았습니다. 철학이 추구하는 인간 삶의 본질을 밝히기 위하여 철학이 추구하는 화두는 가져오되 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론형식을 취하여 쟁점을 논하는 방식입니다. ‘토론’이라는 형식도 요즈음 뜨고 있는 배틀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주제와 관련이 있는 대표 철학자들을 배치하여 격돌하는 구도를 갖추어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모두 15개의 주제를 골라 15라운드로 구성하였는데, 아마도 과거의 권투의 세계챔피언 결정전 방식을 가져온 것 같습니다. 3라운드를 뛰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권투는 출전선수의 경력에 따라서 3분 4,6,8,10,12라운드로 경기가 치러집니다. 신인의 경우 4라운드를, 국내챔피언전은 10라운드를 지역 및 세계챔피언전은 12라운드경기입니다. 1982년 우리나라의 김득구선수가 경기 중에 사망하는 사고가 생기기 전까지 세계챔피언전은 15라운드의 경기를 치렀습니다.
라운드마다, 즉 주제마다 출전선수와 숫자까지도 다르기 때문에 권투경기와 철학배틀이 직접 비교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어떻든 흥미로운 발상입니다. 게다가 격돌을 중재하는 심판으로 문답법을 창시한 소크라테스를 모셔서 토론을 유도하고, 토론을 중재하며, 토론을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권투경기와 다른 점은 채점을 하여 승패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토론이 종료된 다음에 심판이 토론자의 주장을 요약정리하여 읽는이로 하여금 출전선수들의 사상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흑백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출전선수들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소크라테스라인을 비롯한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그리스 철학자는 물론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와 맹자, 장자와 순자로 이어지는 일군의 고대 동양의 사상가들에 더하여 일본의 철학자와 인도의 간디를 끼워넣은 것은 저자의 배려라고 보입니다. 그래서 모두 37명의 출전선수집단을 구성하였는데, 주제에 따라서는 다수의 라운드를 뛰는 선수도 있습니다. 헤아려보니 칸트가 가장 많은 5라운드에 출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니 동양철학자들은 모두 한 라운드만 출전하고 말아 끼워 넣기 차원이 아니었나 하는 의혹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주제에 따라 대표적인 철학자를 배치한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첫 라운드의 ‘빈부격차는 어디까지 허용될까?’라든가 세 번째 라운드의 ‘소년범죄, 엄벌로 다스려야 할까?’ 등과 같이 현대에 들어 떠오르고 있는 철학적 화두로부터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세계에 진리는 존재할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까?’ 등과 같이 해묵은 철학적 화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출전선수 역시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현대적인 쟁점을 과거의 철학자라면 어떻게 해석하였을까 하는 궁금증에 대한 배려도 엿보입니다. 작가가 그만큼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점잖은 동양선수들과는 달리 서양선수들 가운데는 ‘선생이야말로 병적인 부분이 있군요’라고 깐족대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그 선수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배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헤겔이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 제3제국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다양한 문제들은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으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나 가치 판단의 철학적 논거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수들이 주고받는 문답에 들어있는 핵심요소들에 대하여 각주로 설명을 달아서 이해를 돕고 있으며, 라운드의 말미에 소크라테스의 요약과 함께 저자 역시 한줄로 핵심을 요약해놓아 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