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90
윌리엄 워즈워스 지음, 김숭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여름 영국의 서북부 호수지역에 있는 원더미어와 글라스미어 지방을 여행하였습니다. 그때 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광을 생각하면서, 이곳에서 주옥같은 시를 썼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생각을 읽고 싶었습니다. 요코가와 세츠코가 쓴 <토토로의 숲을 찾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52542>와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이미 읽고 호수지역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만, 막상 가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실망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호수를 둘러싼 야트막한 야산을 흘러내린 곡선이 너무 부드러워 절로 시가 쓰여질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워즈워스를 비롯하여 내셔널 트러스트 사람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호수지역이 이제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더 이상 한적하지만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워즈워스의 눈을 통해서 고즈넉했던 호수지역의 분위기를 되새겨보기 위하여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http://blog.joins.com/yang412/15164580>를 읽었지만,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에 <서곡>까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서곡>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의 삶의 족적까지도 느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서곡>에는 워즈워스가 유년기로부터 프랑스체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 느낀 점을 모두 14권의 시에 담았습니다. 유년기에서부터 시를 썼던 것은 아니고 28살이 되던 해부터 전기적 시를 쓰기 시작해서 평생을 매달렸다고 합니다. <서곡>은 그 무렵 유행하던 성장소설에 대응한 일종의 성장시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시 영역에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되는 셈인가요?

마들렌 조각이 떨어진 홍차 한 모금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살린 프루스트처럼 워즈워스는 청명하고도 평화로운 어느 가을날, 은빛 구름이 떠있던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풀잎에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그늘 속에 가려져 또 다른 그늘을 드리우던 숲에 고요함이 감돌 때, 한 골짜기를 떠올렸고, 그 골짜기에 있는 언젠가 본 듯도 한 오두막의 문 앞으로 곧장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노래합니다. 그 오두막은 유년시절 살던 곳이었을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상념에 매달리는 시인의 특성에 따라 마음에 떠오르는 자신의 지난날을 기록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하게 될 일이 ‘어떤 영국적 주제도, 밀턴도 노래하지않고 남겨둔 어떤 오래된 낭만적 이야기를 택하게 되겠지’하고 예견하면서 말입니다.

‘골짜기를 휘감아 도는 안개의 은빛 화환, 혹은 공중에 걸린 구름 빛깔로 얼룩진 잔잔한 물의 평원으로부터 순수한 감각의 기쁨을 들이마시며ㅣ 천지창조만큼이나 오래된 미(美)와의 무의식적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니 워즈워스는 타고난 시재는 호수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얻어 화룡점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전적 시라는 한계와 번역되어 재해석된 시라는 제한점으로 인하여 <서곡>에 실린 시들은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 실린 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만, 그래도 곳곳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표한한 구절들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곡>이자전적 기록에 머물지 않는 것은 떠올린 기억을 토대로 하여 사유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순전한 과거의 회상’과 ‘이후의 명상에 의해 변화된 과거’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 것 같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떻든 <서곡>은 세 단계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정신적 성장의 단계, 두 번째는 무기력과 절망이라는 정신적 위기로 성장과정이 산산조각 나는 단계, 세 번째는 마침내 시인이 다시금 고결함을 회복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발전된 위치에 이르게 되는 단계 등입니다. 이런 과정은 워즈워스가 마음의 멘토로 모셨던 밀턴이 ‘인간에게 이르는 하느님의 길’을 설명한 서사시 <실낙원>에 비교하게 되는 것은 본인 스스로 밀턴의 위대한 전통의 계승자로 자처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가끔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 괜찮은 척 하지만 실은 나도 기대고 싶어
김이율 엮음 / 블루웨이브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제목보다는 아마도 ‘괜찮은 척 하지만... 실은 나도 기대고 싶어’라는 부제가 더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대로 감정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는 없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책을 열어 첫 번째로 만나는 내용은 활짝 핀 벚꽃 사진입니다. 그것도 치렁치렁 늘어진 가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런 사진 말입니다. 배경은 비스듬하게 열어  린 덧문 아래도 굵직한 창살이 질러져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는 모르겠으나, 컴컴한 외관이 그저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꽃이 더 화사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래로 ‘스쳐 지나간 것은 왜 하나 같이 다 그리운 걸까?’라는 구절이 눈길을 끕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젊은이 몇이서 비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옷을 뒤집어쓰고 무단횡단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죽죽 내리 긋는 빗방울이 선명합니다. 여기에서 ‘스며드는 것들은 왜 하나 같이 아픈걸까?’라는 구절이 젖은 아스팔트길에 깔려 있습니다. 광고계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작가의 내공이 절로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러면 언제 이유 없이 눈물이 날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글쓴이는 그런 순간을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만큼 아프고 눈물겨운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저자이지만, 막상 큰 슬픔이 찾아왔을 때는 희한하게도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달 쯤 지나면서부터 여러 개로 아주 작게 썰린 작은 슬픔으로 바뀌어 수시로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글이 있는 것을 보면 큰 슬픔은 아마도 어머니와의 이별인 듯합니다. 그것도 아주 영원한 이별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가 그리운 날이면 하염없이 우는 것을 빼고는 속수무책이라고 털어놓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던가 봅니다. 지금까지는 사랑하는 분들과 넉넉한 시간을 두고 이별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그 분들의 생각이 나더라도 눈물바람을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편히 쉬실 수 있게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 꽃이 피면 네 생각이’난다는 산문을 읽고나서야 첫장에 담았던 벚꽃 사진이 이해됩니다. 첫눈이 오면 만나자던 사람이 지금은 멀리 있나 봅니다. 벚꽃이 활짝 핀 날 만났던 그 사람과의 약속이 눈을 닮은 벚꽃 피는 날 되살아나는 모양입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라고 적고, 이어서 ‘사랑은 짧고 그리움은 일생이 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사랑했던 사람과 사별한 것은 아니고 부득이하게 떨어져 있나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당신을 담고 산다’라고 한 것을 보면 재회의 기약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 그를 떠나보낸 뒤로 ‘내 안에서 나를 채우고, 주어진 침묵의 소통을 즐기며 살아가겠다’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을 보면 글쓴 이는 참 마음이 여린 것 같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대가 괴로워하고 방황하고 눈물 흘리는 것이 가슴 아프다’라고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여전히 너를 들으며 아직도 나는 살아갑니다’라고 자기 위안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어서 작가가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읽는 이들이 각자 자신의 처지를 대입해서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각자의 감성의 키가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작가만큼의 감성을 키우려면 책을 자주 열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류동현 지음 / 루비박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몇 일 전에 늦게까지 방영하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영화를 보느라 밤잠을 설쳤습니다. 1편부터 4편까지를 초저녁부터 연달아 방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편을 다시 보았습니다. 최근에 다녀온 요르단의 페트라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승달계곡의 아름다운 협곡과 알카즈네가 등장합니다. 특히 커다란 방밖에 없다는 알카즈네 어딘가에 성배가 숨겨져 있다는 설정 때문에 영화를 볼 때는 알카즈네의 웅장한 모습에 눈길이 가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성배로 가는 길에 숨겨져 있는 비밀, 특히 마지막 절벽을 건너가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사자의 머리에서 뛰는 자 만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라는 구절은 절벽 위에 숨겨져 있는 다리는 신념이 있는 자만이 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사실 페트라를 방문했을 때, 아즈카네의 건너편 절벽 위로 가기 위하여 나무판으로 된 좁은 다리를 건너가면서 마치 인디아나가 된 느낌이었기 때문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은 고등학생이던 1981년 개봉된 영화<인디아나 존스와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에 빠져 결국은 고고학을 전공하게 된 저자가 그동안 모은 인디아나 시리즈의 영화 4편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책입니다. 조금 아쉽다면 2008년 개봉된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경우 개봉전에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을 출간한 까닭에 상세한 내용을 적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출간을 조금 미루어 개봉된 영화를 감상하고서 내용을 정리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8년을 기다렸는데, 몇 달 정도는 더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책은 오래 남는 것이라서 뒤에 책을 보게 되는 저 같은 독자가 불평을 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매 편마다 눈길을 끄는 소품이 등장하는데, 조금 비중이 떨어지는지 페루에서 발견된 <제의용 칼>이라고 간단하게 넘어간 것은 투미(Tumi)라고 부르는 선잉카문명의 제의용 칼입니다. 추수감사제에서 공양되는 야마를 희생하는 과정에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십자군>의 무대가 되는 알렉산드레타는 1921년 앙카라조약의 산물로 알렉산드레타와 안티옥을 묶어 탄생한 프랑스의 자치령이었던 것이 1938년 하타이국으로 독립을 선포했지만 결국 1939년 터키의 하타이 주로 편입되고 말았습니다. 하타이하고 요르단의 페트라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 보이않습니다만, 결국은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는 점을 보면 이해가 될만도 합니다.

모두에 “고고학이란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찾는 것입니다”라는 인디아나 존스 교수의 고고학에 대한 정의를 시작으로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고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고고학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인디아나가 고고학자이자 유물사냥꾼이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소개하면서도 고고학에 대한 개념이 변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19세기 중엽에 학문으로 자리잡은 고고학은 당시만해도 ‘과거 인류가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되었던 것이 최근에는 ‘과거 인류들이 남긴 물질적인 자료를 통해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고, 그들의 문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변화되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재정립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디아나 연속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바가 없지 않습니다만,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들이 영화인이라는 점을 보면 심오한 부분보다는 오락영화로서 즐기는 가운데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둘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요소를 위한 장치로 끼워넣은 것을 헷갈리지 않는 것도 중요할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박경민 옮김 / 한겨레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읽은 <내 인생 최고의 책; http://blog.yes24.com/document/9821751>에서 추천하는 책들 가운데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책을 드디어 읽었습니다. 1년 전에 읽은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http://blog.yes24.com/document/9088183>을 읽을 때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앨라바마에서 빈곤층, 흑인, 청소년,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하여 무료 변호를 하는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라는 비영리 법률사무소에서 활동하는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의 고향인 앨라배머의 먼로빌에서 태어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백인여성을 강간했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흑인남성의 변호를 맡은 백인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그의 무죄를 입증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먼로빌의 백인사회는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 단단했던 것입니다.

1960년대 발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앵무새 죽이기>를 지역홍보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먼로빌이지만 1980년대에도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편견은 깨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작가 하퍼 리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스카웃과 오빠 젬 그리고 오빠의 친구 딜이 스카웃의 이웃에 사는 부 래들리의 정체를 밝히는 모험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나이 무렵이면 누구나 경험했을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관심사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간범으로 몰린 흑인 톰 로빈슨의 변호를 아버지 애티커스 변호사가 맡으면서 세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커다란 발전이 생기게 됩니다. 과격한 백인들은 애터커스가 흑인을 변호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결국은 그를 죽이겠다며 협박에 나서게 되는데, 그런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스카웃이었습니다.  편견으로 똘똘 뭉친 어른들도 아이들의 순수함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애티커스 변호사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 톰 로빈슨이 무죄임을 밝혀내지만 배심원들은 톰이 유죄라는 평결을 내놓은 것입니다. 강간 피해자라는 마옐라는 주위로부터 소외된 존재였고,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그녀가 오히려 톰을 유혹했던 것이고, 그 장면을 목격한 아버지 이웰씨는 오히려 톰을 강간범으로 몰아간 것이 사건의 본질이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웰씨는 애티커스 집안에 복수할 기회만을 노리고, 스카웃과 젬을 위협하는 순간 은둔한 삶을 사는 이웃 부 래들리씨가 어린이들을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가 된 데는 젬에게 공기총을 사준 아버지가 ‘넌 분명 새를 쫓아다니게 될 거야. 그때에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는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죄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137쪽)’라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직접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웃인 머디 아주머니는 스카웃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앵무새는 노래를 불러 우리를 즐겁게 해줄 뿐, 곡식을 축내거나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만들지는 않아. 그저 온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주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면 죄라고 하셨을 거다’ 무고한 톰을 강간범으로 모는 일은 ‘앵무새 죽이기’였다는 것이 톰 로빈슨 사건을 통해서 작가가 배운 세상사였던 것입니다. 또한 편견으로 똘똘 뭉쳐있는 듯한 마을에도 행동하는 양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 래들리씨가 직접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셰익스피어 배케이션
김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지난 여름, 영국을 돌아본 여행상품의 이름이 ‘셰익스피어에게 여행을 묻다’였습니다. 여행지 가운데 셰익스피어와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는 그의 생가뿐, 오히려 해리포터와 관련된 곳이 훨씬 많았습니다. 어떻든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셰익스피어와 관련이 있는 곳을 다녀왔으니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란 이런 여행을 말하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읽어보게 된 것인데,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공직자들에게 3년에 한 번 꼴로 한 달 남짓의 유급휴가를 주었다고 합니다. 구글 검색에서 찾아보았지만, 사실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세종대왕께서 젊은 선비에게 휴가를 통해 집에서 책을 읽도록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처음 시행한 것을 빅토리아 여왕의 셰익스피어 배케이션과 같은 맥락으로 엮었지만, 궤를 달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은 독서휴가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름이야 어떻든 저자는 휴가를 받으면 집에서 책을 읽는 쪽을 선택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저자가 대실 헤밋의 <몰타의 매>를 읽게 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 과정을 정리한 것이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는 것입니다. 즉 1년의 무급휴가를 받았는데, 영국에서 휴가를 시작하여 몰타, 파리, 베르셀로나, 세비야, 리스본, 로마, 취리히, 부다페스트, 베를린, 하이델베르크, 뮌헨,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무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던 일을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어 부럽기도 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도 궁금합니다. 역시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아마도 결혼 전이었지 싶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책이 있는 휴가일 듯합니다. 물론 책에 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만, 딱히 책만이 아닌 일탈에 가까운 모습도 볼 수 있어서 책 읽는 이들이 선뜻 따라하려면 상당한 용기를 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원 나잇 스탠드’에서 변태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담아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잠시 머문 곳도 있지만, 한 달 이상 살면서 그 곳의 속살까지 들여다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이라면 책은 그저 핑계가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읽다보니 저자가 소개한 책들 가운데 버트런드 러셀이 <행복의 정복>,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은 마침 읽은 바가 있습니다만, 읽는 이 나름의 관점에서 책을 읽는구나 하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덕분에 여행과 책을 엮어서 쓰고 있는 글에 많은 도움을 얻는 책읽기였습니다. 저자의 관점에 대해서도 쓸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에 나온 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연이 많았던 모양으로 쪽수가 꽤나 되는 반면 뒤로 갈수록 쪽수가 얇아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잠깐 머물렀기 때문에 그만큼 느낀 무엇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사실 모로코의 탕헤르나, 나미비아, 케이프타운, 안나푸르나 등이 서운해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3부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저자가 보낸 1년의 휴가기간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다녀온 여행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이라는 긴 여행을 마치고, “여행의 매력은 휴식이나 도피, 혹은 기분전환이 아니라 그러한 사소한 체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기서 사소한 체험이란 ‘숙취에 시달리던 어느 일요일 오후 바르셀로나의 한 신호등 앞에서 만난 한 중년 남자와의 잡담을 나눈 일’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