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ㅣ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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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이 세계로 확산된 지 벌써 1년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밀폐, 밀집, 밀접’의 3밀(密) 환경, 즉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곳과 많은 사람들이 밀집하게 모여서 1m 이내의 밀접한 접촉을 하는 것”을 통하여 확산된다고 알려지면서 대중영화관도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실공간에서의 만남이 제약을 받으면서 가상공간에서의 만남이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영화 역시 대중영화관이 지고, 누리망을 통하여 신작을 소개하는 추세가 빠르게 확산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제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서....) 넷플릭스는 가장 주목받고 있는 매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력인 미국의 다중매체기업이라고 합니다. 넷플릭스라는 이름은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라는 단어를 합성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1998년 비디어 대여사업으로 영업활동을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누리망을 통하여 TV연속방송극이나 영화를 제공하는 영업 위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2018년 1월 1일 출간된 폴란드 작가 블란카 리핀스카의 <365일>은 일약 작가를 유명인 대열에 올려놓았습니다. 각국에서 번역 소개되면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이 되었고, Wprost는 작가 블란카 리핀스카를 2019년 폴란드 최고작가, 2020년 폴란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소설의 독후감을 정리할 때, 이야기의 줄거리를 공개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만, 출판사에서 책을 소개하기 위하여 요약한 정도를 인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폴란드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는 라우라는 남자친구 등 2쌍의 친구들과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악몽이 되고 만 것은 라우라가 마피아 가문의 젊은 수장 마시모의 눈에 띄어 납치된 것입니다. 과거 피습을 당해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지경에 빠졌을 때 꿈속에서 만난 이상형의 여성이 바로 라우라였다는 것입니다.


납치된 사람이 납치한 사람에 빠져 오히려 두둔하는 경향을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라우라 역시 마시모의 치명적인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됩니다. <365일>의 주요 흐름은 성애에 기반합니다. 라우라 역시 순수한 사랑보다는 성을 즐기는 개방적인 여성이고, 마시모 역시 자유분방한 성격이라서 두 사람은 성애를 매개로 납치라는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관계가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애를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는 아무래도 비밀스럽게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365일>의 작가는 ‘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건 저녁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고,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폴란드 사회가 그렇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이 소설이 번역 소개되고 영화로 만들어져 넷플릭스에서 제공되면서 전 세계 여성들의 호응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물론 도색소설이나 도색영화가 남성들의 전유물일 것이라는 생각도 편견인 듯합니다. 여성 역시 관심이 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설 <365일>이나 영화 <365일>이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나라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는 것을 보면, 성애 이외에도 꿈도 꾸어보지 못한 상류사회에 진입한 라우라의 새로운 삶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 것은 아닐까요?


조금 아쉬운 점은 우리의 주인공들이 시도 때도 없이 성애를 즐긴다는 점인데, 이야기의 전개보다는 색다른 상황에서의 성애를 즐기는 듯한, 삼류여관에서 제공하는 맥락 없는 도색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성애에 대한 묘사도 미묘하고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남는 것 같습니다. <365일>, <오늘>, <또 다른 365일> 등 3부작으로 구성된 소설의 전편을 독파했어야 하는데, <365일>이 라우라가 피습되는 위기를 겨우 벗어난 상황에서 끝나는 바람에 아쉬웠습니다.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오늘>이 빨리 번역 소개되어 읽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 전체 이야기를 알 수 있겠습니다만, 영화와 소설은 즐기는 방법이 전혀 달라 제 경우는 소설을 읽는 재미가 더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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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ㅣ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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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가 주도한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럽의 중세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의 박승찬교수님이 쓴 <중세의 재발견>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중세가 암흑의 시대가 맞고, 동양의 각 지역은 개명시대였다고 주장하는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 째 이야기>을 읽게 되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박홍규교수가 쓴 이 책은 고대 인문학을 재평가한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기왕의 중세사가 ‘일반적으로 서양의 중세만 다루어져온 것과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고 했습니다. 서양의 중세도 다루기는 했지만, 분량으로 보아 동양 문명들과 비슷한 정도로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한다’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논리의 전개에 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큰 틀에서는 중세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중세는 게르만민족의 대이동(4-6세기)이 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1800년)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특히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라고도 합니다. 한국사에서는 고려시대(918년 1392년)에 해당한다고도 했습니다.


저자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보는 것은 근세에 들어와 힘을 얻은 유럽이 유럽 이외의 세계를 침략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서양의 중세가 기독교의 지배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서양 중세를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된 예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오를 뿐 아니라 중세와 근세의 경계를 모호하게 잡고 있기도 합니다. 무릇 이론을 세우려면 논리의 대상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변화가 거의 없는 암흑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중세가 무려 1천년이나 되는 장대한 세월이고, 논의의 대상인 인문학 역시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아우르는 영역이라고 보면 주로 유라시아의 중세를 한권에 몰아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하물며 논의의 대상이 인문학에서 예술과 건축에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다보니 논점이 흐려지고,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이론에 대한 지나친 저항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중세라는 특정한 시기를 개괄한 뒤에 인도, 이슬람, 서양, 중국, 한반도 등 5개 지역으로 나누어, 해당 지역의 중세를 간략하게 살핀 뒤에 사상, 문학, 예술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합니다. 일종의 비교문화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중세라는 시기의 특성을 이야기하다보니 논점이 섞이는데다가 저자의 주장을 앞세우는 관계로 개별 지역의 중세적 특성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사에서의 중세를 삼국시대에서 고려까지로 본 저자는 조선이 오히려 중세보다 암흑기였다고 주장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중세사를 논함에 있어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끌어다 비유하는 것도 적절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2019년에 시작한 코로나 대유행이 1980년대 이후 생긴 지구화 정책이 초래한 미증유의 대유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16세기에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는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오독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우한폐렴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여 중국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었지만, 코로나 대유행의 흐름은 분명 중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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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찾아가는 서울의 보물 - 서울 한양도성 보물집
권동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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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의 확산세가 오락가락하고 있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집밖 나들이를 줄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책읽기가 자칫 빠질 수도 있는 우울증을 막아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여행과 관련된 책읽기라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습니다. 동네 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마침 다시 문을 연 도서관에서는 신간서적 규모가 대폭 줄었습니다. 몇 안되는 신간서적 가운데 유독 눈에 띄어 고른 책이 <집에서 찾아가는 서울의 보물>입니다. 현 상황에 안성맞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비주얼스토리텔러라는 권준혁님이 쓴 책입니다. ‘비주얼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싶어 찾아보았습니다. 위키피디어가 설명하는 비주얼 내러티브(visual narrative) 혹은 비주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이란 기본적으로 시각매체를 사용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를 말 합니다. 시각매체로는 사진, 삽화, 동영상 등이 있으며,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목소리 등의 소리로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시각적 이야기하기’라 하면 좋을 것을 굳이 영어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있어 보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하기 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요즈음 우리말 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탓일 것입니다. 우리말의 어휘가 아주 풍부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외래어는 우리말로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은 서울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서울의 가치를 잘 몰랐던 것 같다고 자아비판을 합니다. 어느 날 보니 서울만큼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며 수많은 보물을 지키는 도시가 많아 보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전공을 살려 서울에 있는 보물들을 시각적으로 한 번에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막상 시작해보니 한 번에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아서 종로구, 중구, 용산구를 중심으로 국보와 보물을 모아보았다고 하는데, 국보와 보물을 섞어 만들 바에는 서울 전체에 있는 국보만 모아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국보나 보물이나 소중히 해야 할 우리들의 보물인 것은 틀림없겠습니다.


종로구에는 종묘, 탑골공원,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창덕궁, 창경궁, 청와대, 북한산, 신영동, 흥인지문, 동관왕묘, 서울역사박물관, 불교중앙박물관, 동방화랑 등의 국보와 보물을, 중구에서는 숭례문, 덕수궁, 동국대학교 등의 국보와 보물을, 용산구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성암고서박물관 등의 국보와 보물을, 그리고 3개 구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와 보물이 포함되었습니다. 3개구의 지도에 국보와 보물이 소장되어 있는 장소가 표시되어 있어 책을 읽는 이들이 사는 곳에서 출발하여 찾아가는 길을 연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찾아가는’이라는 제목을 단 모양입니다.


국보와 보물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좌우 두 쪽의 지면을 통하여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상단 혹은 오른편에 국보나 보물의 삽화를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왼쪽에는 간략한 설명을 두었습니다. 오른쪽 위편에는 QR코드를 두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된 음성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책에 실려있는 국보나 보물들은 원래부터 해당 장소에 있던 것들도 많지만, 타 지역에 있던 것들이 옮겨진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특히 박물관이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탑 같은 것은 가급적이면 원래 있던 장소에 두어 현장감을 살리는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보나 보물을 삽화로 만나면서 실물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현장에 가서 실물을 보면서 제대로 된 느낌을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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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폴로의 연인
황화치 지음, 김학철.이영남 옮김 / 북치는마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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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섬을 여행하면서 마르코 폴로가 태어났다는 집을 구경하였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동방견문록>을 읽었던 기억으로 고른 <마르코 폴로의 연인>입니다. 중국작가 황하치이(黃華旗)가 쓴 소설입니다.


<동방견문록>을 읽으면서 그 진위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키백과를 보면 마르코폴로는 17살이 되던 1271년 아버지, 삼촌과 함께 베네치아를 떠나 중국으로 향했고, 1275년 11월부터 1292년 2월까지 원나라 관리로 일하다가 베네치아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방견문록>을 보면 그가 실제로 중국에 체류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점을 정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거나 <마르코 폴로의 연인>은 1292년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의 명에 따라 로마교황을 비롯하여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기독교 국가의 군주들을 알현하고 친서를 전하는 일을 수행하게 되었고, 그와 병행하여 이르칸 국의 아루훈 칸과 결혼하게 된 코코친 공주를 수행하는 특사 역할을 맡았다는 설정입니다. 30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사절단은 모두 12척의 대형 복선에 탑승하고 복건성 천주항을 출발하여 말라카해협을 지나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스리랑카의 갈레, 인도의 뭄바이, 파키스탄의 카라치, 오만을 거쳐 호르무즈해협을 지나 페르시아만의 북쪽 끝에 있는 아바스에 상륙하여 이르칸국에 이르는 항로를 여행합니다. 천주항을 출발한 것이 1291년 여름이고, 이르칸 국에 도착한 것이 1294년 9월이니,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는 일치하지 않은 가공의 이야기임을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쿠빌라이칸의 특사인 마르코 폴로와 그가 모시고 가는 코코친 공주가 당시 원나라 당시의 중국 문화와 마르코 폴로가 여행했다는 아프카니스탄, 티벳,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의 풍습에 대하여 주고받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항해 중에 기항하는 곳에서 생긴 생사를 건 모험담을 곁들여 긴장감을 돋군다거나, 마르코 폴로와 공주 그리고 시녀들 사이에 벌어지는 질펀한 남녀관계까지 곁들이고 있습니다. 무려 3년에 걸쳐 동고동락하다보니 눈이 맞을 수도 있다고는 하겠으나, 지엄했을 쿠빌라이칸의 명을 받아 이르칸 국의 칸과 혼인할 공주와 몸을 섞었다가, 그것도 이르칸 국에 도착해서는 별다를 감정없이 헤어졌다는 결말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연인>은 그저 그런 흥밋거리에 불과할 뿐이고, 원나라 당시의 사회상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가가 상상으로 빚어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프카니스탄, 티벳,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도 실제로 마르코 폴로가 가보지 않은 장소였을 것입니다. 작가가 후기에 따르면, 작가는 마르코 폴로의 인생행로의 거의 모두가 모험적이고 탐험적인 색채가 아주짙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작가 역시 마르코 폴로의 ‘탐구를 위한 여행’에 따르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20여개 국가의 백여 곳에 달하는 자연경관과 역사유적, 건축문화를 답사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마르코 폴로의 연인>이 한 편의 여행기로서 슬프로 비장한 희곡적인 갈등, 소박한 민간 사투리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진솔한 감정을 담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답적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혹여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허구임을 암시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은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이야기를 많이 닮은 듯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마르코 폴로는 코코친 공주에게 영국 서머싯에 있는 바스의 온천을 소개하는데, 마르코 폴로는 당연히 영국에 가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바스가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온천’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작가의 착각이거나 의도적인 바가 아닐까 의심해봅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인쇄술이 유럽보다 200년이나 앞섰다는 코코친 공주의 주장에서도, 당시 원나라에서는 유럽을 유럽이라 부르지 않았을뿐더러,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한 것이 1440년 경이므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도 필사로 보급되었던 시절입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서적이라해도 1337년 고려에서 찍어낸 <직지심체요결>임을 고려하면 13세기 말의 중국와 유럽의 인쇄술을 논한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책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고 하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를 믿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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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 -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니얼 클라인.토마스 캐스카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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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갈등이 고조될 무렵, 모 화백의 만평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부른 적이 있습니다. 만평이란 사회현상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를 말합니다. 하나 혹은 두 장면으로 구성되고, 만화의 구성을 함축한 짧은 설명이 더해지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만평의 경우는 금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만평을 그리는 작가는 다방면에 깊은 앎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심지가 있는 비평을 담으려면 철학에도 조예가 깊어야 하겠습니다.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수업>은 그런 만평에 담긴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짚어내어 설명해주는 글을 모았습니다. 이 책은 하바드대학 철학과의 동문인 대니얼 클라인과 토마스 캐스카트가 같이 쓴 책입니다. 두 사람이 쓴 <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 http://blog.yes24.com/document/2581950>를 아주 흥미롭게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니얼 클라인은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http://blog.yes24.com/document/7863223>으로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하버드 철학자들의 인생 수업>은 앞서 말씀드렸던 한 편의 만평에 담겼을 만평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짐작하고, 이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덧붙입니다. 부제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인 것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읽기입니다. 저자들은 철학과 만화에는 인생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좋아하는 철학적인 만화들과 그 만화들의 가르침에 관한 나름의 해석을 모았습니다.


이 책의 부제로 달았던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의문으로부터 ‘철학은 여전히 쓸모 있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8개의 주제를 선정했고, 이에 부합하는 66개의 만평을 골랐습니다. 저도 강의를 할 때 주제에 합당한 만평을 골라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합니다만, 만평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것처럼, 만평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콕 짚어내는 설명을 읽다보면 ‘옳지!’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실 만평의 구성요소가 되는 만화만으로도 생각거리가 많습니다만, 만평에 더해진 짧은 경구는 그야말로 촌철살인의 묘가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독후감에서 인용할만한 구절에 표시를 합니다만, 이 책에는 표시를 덕지덕지 붙여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두어 가지만 소개해보겠습니다. 요즈음 진료현장으로 돌아온 제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만평이 있습니다. 생쥐의사가 발에 가시가 박혀 찾아온 사자를 진료하는 장면입니다. 생쥐의사는 사자환자에게 “육안으로 봐서는 가시가 박힌 것 같은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봐야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저자들은 생쥐의사가 ‘행위별수가제’라는 제도에서 검사를 하나라도 더 해야 보험금을 많이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제시하면서도, 생쥐의사가 자신이 관찰한 바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험주의적 연구를 더 수행하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만평의 주제는 경험주의 철학의 개념을 살펴보는 장이 되는 셈입니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이론을 소개합니다.


이 만평에서는 만평작가의 경구를 인용했습니다만, 만평과 관련된 철학자들의 경구는 물론 저자들의 경구 역시 울림이 크게 느껴집니다. 19세기 이탈리아의 문필가이자 철학자 자코모 레오파르디가 남긴 금언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온갖 것을 다 찾아낸다. 어른들은 온갖 것이 다 있는 데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23쪽)”라는 경구에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입니다.


마키아벨 리가 당시 피렌체의 정치인 피에로 소데리니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은 어떻습니까? “정책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 정책을 실행하는 데 동원된 수단이 아니라 그 정책으로 무엇을 얻었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223쪽)” 최근 우리정부가 벌이고 나서 하는 변명과 아주 흡사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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