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한국에서의 일 년
베라 홀라이터 지음, 김진아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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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방송공사에서 <미녀들의 수다>라는 연예편성이 방송된 것은 2006년이었고, 2010년까지 5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50여 개국에서 온 125명의 미녀들이 순차적으로 출연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의 여성들이 출연하여 매주 일정한 주제를 두고, 그녀들이 우리나라에서 느낀 점을 자국의 문화와 비교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관련 주제에 대하여 가감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놓아서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독일에서 와서 이화여대 외국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던 베라 홀라이터가 우리나라에 처음 와서 적응하면서 겪었던 사건, 사고들을 솔직하게(?) 적은 수필집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독일어로 출간되었던 것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된 것인데, 번역서가 출간되기도 전에 화제를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외국에 사는 독일인 혹은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여행서의 한 분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관한 책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한국에 관한 책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작가는 재미와 웃음을 바탕으로 (독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썼다고 합니다. 당연힌 긍정적인 모습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속살을 여지 없이 드러내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작가의 솔직함이 독일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독일에서 출간된 책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전에 책에 담긴 내용의 일부가 누리망을 통하여 소개되면서 소동을 빚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발췌과정에서 전체의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오역되어 사실관계가 잘못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글쓴이의 의도는 ‘한국만의 특이한 모습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꼭 하게 되는 실수들, 그리고 특히 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유머를 끌어내자(7쪽)’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독일인 특유의 솔직함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실험실에 근무하던 여비서가 독일 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보면, 독일 사람들은 듣는 이의 귀에 달콤하게 변주하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 읽었던 루이자 메이 올코트의 <작은 아씨들>에도 독일 청년이 등장하는데, 다정다감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는 남자로, 큰 언니 맥과 결혼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에서도 독일에서 온 병리의사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부분 진중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는 여느 나라의 젊은 여성처럼 발랄하고 삶을 제대로 즐기는 그런 성격인 것 같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무도장에도 가고, 노래방에서는 부족한 노래실력을 대담한 엉덩이 흔들기로 보완할 줄도 아는 개방적이라고 합니다. 독일 사람들은 어떻더라는 것도 편견이었던 것입니다.


작가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 남자친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의 가족들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갈등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했는가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결혼이라는 단계까지 발전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개인사의 영역이라는 생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작가가 태권도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 참여했을 때, 송판깨기를 했다고 합니다. 각자의 소망을 적은 송판을 깨는 과정은 소망을 비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작가는 자신의 소망 자체를 깨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꿈과 야망을 놓는 일, 스스로의 자아를 깨는 일이라는 심오한 뜻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이야기는 물론 책의 전반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점은 글을 참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는 점이었고, 더하여 딱딱할 수도 있는 독일어를 참 유려하게 우리말로 옮겼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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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 영웅과 희생자, 괴물들의 세계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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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근무하던 사무실에 있던 책이었는데, <군인>이란 제목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군인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이렇듯 두툼한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군인이란 결국 누군가와의 싸우기 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대전은 이미 전쟁터에서 군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원격으로 작동하는 무기들이 전투에 투입되면서 군인은 전투 현장이 아닌, 심지어는 대륙 너머에서 전투를 조종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전투가 일어난 지역을 차지하려면 군인이 투입되어 깃발을 꼽아야 하겠습니다만....


‘영웅과 희생자, 괴물들의 세계사’라는 부제를 달아놓았습니다만, 지구상에 인류라는 존재가 출현할 때부터 시작된 싸움, 혹은 전쟁의 역사를 훑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저자는 ‘추도사’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대신하였습니다. 지난 3천년 동안 세계사의 큰 동력이자 공포와 경탄, 경악의 대상이었던 군인은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가했지만, 또 누구보다 스스로 더 큰 고통을 받을 때도 많았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의 전쟁은 군인이 전장에 투입되지 않는 사이버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군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전쟁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역사의 수많은 전선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군인’이라는 존재, 혹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 했다고 합니다.


1부 ‘이제 전쟁에는 군인이 필요없다’에서는 군인이 아닌 기계가 전투를 치르거나, 핵무기와 같은 가공할 살상무기가 투입될 수도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형태의 전투, 즉 인간폭탄이나 유격대를 운용하는 전투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2부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서는 전투 혹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3부 ‘어떤 무기로 싸웠을까?’에서는 군인이 전투에 혹은 전쟁에 사용한 무기의 변천사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선을 군인 자체로 돌려 4부에서는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 5부에서는 ‘무엇으로 강요하고 속여 넘겼을까?’, 6부에서는 ‘어떤 꼴로 죽었을까?’ 그리고 7부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이릅니다.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논리를 풀어냈습니다만, 간혹은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였습니다. 제가 요즈음 이집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저자는 ‘이집트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는 피라미드, 신전, 궁전, 용수로를 건설하는데 많은 노예가 필요했다.(220쪽)’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농삿일을 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금으로 거둬들인 물자를 보관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공공사업의 성격으로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고고학적 발굴에서 나온 유물들을 통하여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한획을 그은 테르모필레 방어전에 대한 부분도 제 생각과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형의 요새인 테르모필레에 방어선을 치고 페르시아군을 격퇴할 전략을 세웠던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은 자원하여 남은 스파르타군사 3백과 테스피아 군사 7백명을 주축으로 그리스 연합군이 철군하여 전열을 다시 가다담을 수 있도록 결사적으로 페르시아군을 막다가 전멸하였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델뷔르크가 <전술사>에 적은 “테르모필레의 방어는 그 자체로 보면 가망이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군사 실무적으로는 분명한 실수였지만, 도덕적으로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요청이었다. … 테르모필레 협곡은 처음부터 패배한 초소나 다름없었고, 그로써 레오니다스에게는 명예롭게 죽을 사명이 맡겨졌다. 그리스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는 부분을 인용하여 레오니다스왕의 분사(憤死)를 영웅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왕은 테르모필레의 천형적인 지형만을 믿고 우회로를 지키는데 소홀한 결과 페르시아군을 앞뒤로 맞아 독 안에 든 쥐 꼴을 자초한 전략적 실패를 한 셈이니, 사력을 다하여 페르시안군의 진격을 차단한 공은 높이 살 수 있겠으나 경계에 실패하여 패전을 자초한 점은 면죄를 받을 길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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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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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직장을 그만 둘 때 같이 근무하던 분이 주신 책입니다. 얄팍하지만 무게감이 적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책을 받았을 때는 고양이를 버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장해서 기억하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일상적인, 엄하셨던 모습일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아주 평범한 일상의 흔한 풍경이 가장 생생하게 되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작가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집에서 키우던 암고양이가 임신을 하자 버리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작가는 아버지를 따라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북적거리는 해수욕장에 고양이를 버리고 왔다고 적었습니다. 고양이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집에 돌아온 고양이가 반기는 바람에 놀랐다고 합니다. 결국 고양이를 계속 키우게 되었다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꼬투리로 하여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작가의 후기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글로 정리해보겠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무렵의 일을 글로 정리해보려는 생각을 수십 년째 하고 있지만 막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어 충분히 공감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면 가족과 관련된 일을 줄줄 풀어놓았던 고 최인호작가님은 참 대단하신 분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를 단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다보면 고양이를 버리러 해변에 갔던 일에서 시작한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일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지난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선친의 발자취를 뒤쫓는 일이었습니다. 하루키의 선친은 동자승으로 시작하여 장성한 뒤에는 주지승이 되어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1917년 12월 1일에 태어났으니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했을 터인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해야 할지....’라고 표현합니다.


참전 군인들의 경우는 전쟁터에서의 일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작가 역시 선친의 생전에 전쟁중의 일을 자세하게 묻지 않았고, 선친 역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족적을 뒤쫓는 일이 수월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키의 선친은 일본군 보병 16사단의 16연대에서 치중병으로 참전했는데, 16사단 20연대 소속으로 착각했다고 합니다.


20연대는 난징전투의 선봉에 섰던 부대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20연대에 배속된 사람들은 난징전투에서 참혹한 일들이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난징전투는 일본군이 30만명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중국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하여 작가는 선친이 난징대학살에 관여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시작한 본격적인 취재를 5년 만에 마치고 보니 하루키의 선친은 전투병이 아나리 치중병이었고, 전쟁 중에 소집이 해제되어 대학에 다녔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선친은 전쟁 중에 포로를 살해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보면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작가는 결국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쓰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러갔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역시 선친께서 참전했던 6.25 동란의 종전을 전후하여 수태되었던 터인데, 전쟁 기간 중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줄 분이 별로 없을 것 같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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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
장 루이 셰페르 지음, 김이석 옮김 / 이모션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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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폐렴이 창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극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3밀(三密)의 위험이 높은 장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명화극장은 즐겨보지만 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은 하는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를 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이자 미학자, 수필가라는 장 루이 세폐르의 책으로는 처음 읽는 책입니다.


프랑스 작가가 쓴 영화이야기라는 점에서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야 했습니다. 프랑스 영화는 느낌 없이 즐기는 희극이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종잡지 못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러다니는 평범한 남자’로서 나는 어떤 본질적인 이야기를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운을 떼는 것에서 책읽기기 지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저자는 결코 ‘평범한 남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쓴 것은 시간에 관한, 운동에 관한, 이미지에 관한 특정한 경험”이라고 이 책의 특성을 요약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형성하게 되는 어떤 ‘앎(savoir)’의 문제를 환기하려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순전히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 여기에는 영화들의 내용과 관련된 것도 있겠지만, 심지어는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줄기에 떠도는 먼지에 이르기까지 영화관에 관한 이야기도 논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서문에 이어지는 신(神)들(Les dieux)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의 수필 31꼭지를 담았고, 이어서 범죄의 인생(어떤 영화)에서는 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관련된 글 4꼭지를 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인용한 영화들 가운데 제가 본 영화는 한편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자의 사유가 어떻게 빚어졌는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이 형성하게 되는 ‘앎’의 문제라는 것도 저자의 것, 즉 저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것이므로, 듣고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것도 영화를 보았을 때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젊었을 적에 동아리를 같이 하던 선배가 바로 저자와 비슷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화입니다만, <러브스토리(1970년)>는 명문가의 상속자이자 하버드 법대생인 올리버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다니는 제니가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올리버는 제니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의절을 하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다웠습니다만,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제니가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니가 죽은 뒤에 올리버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병원에 찾아오는 아버지를 현관에서 만나게 됩니다. 올리버가 현관에 있는 회전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도 같이 회전문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두고 선배는 올리버와 아버지가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회전문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도 하지만, 굳이 회전문이 있는 현관에서 촬영을 한 감독의 장치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장면을 본 선배가 나름의 해석을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설명할 때, 영화는 이미 필름에 담긴 대로의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지만, 연극은 그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서 혹은 같은 배우라도 연기할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영화를 다시 보러 갔을 때, 동일한 효과가 동일한 순간에 발생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이 나이, 언어, 감정의 질 등에서 이미 변했기 때문에 역시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의문을 가졌던 ‘평범한 사람’의 조작적 정의를 옮긴이의 해설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상식을 갖춘 사회인’의 뜻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장소에 속하는 일종의 ‘이방인’이라는 점이다.(324쪽)”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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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시체 문화유산 탐방기 ㅣ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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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습니다. 생기를 잃은 신체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겠습니다만, 죽음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주검이라는 우리말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시체라는 단어를 넣어서 제목을 지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장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케이틀린 도티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 백화점에 갔다가 어린아이기 추락해서 죽음을 맞는 사고를 목격하고는 죽음을 화두로 삼았다고 합니다. 대학에서는 중세사를 전공하면서 죽음에 관한 역사와 문화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화장장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경험을 정리한 <잘 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을 썼다고 합니다. 미국의 장례문화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는 첫 번째 책의 후속으로 다른 문화권에서는 시체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미국에서도 다변화되는 장례문화를 소개하기 위하여 콜로라도의 크레스톤에서 하고 있는 야외화장, 노스캐롤라이나의 컬로위에서 하고 있는 인간 재구성 프로젝트, 캘리포니아주 조슈아트리에서 하고 있는 자연장을 비롯하여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 토라자에서의 마네네 의식, 멕시코 미초아칸의 망자의 날 축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알티마 장의사, 일본 도쿄에서의 고쓰아게부터 라스텔까지, 그리고 볼리비아 라파스에서의 냐티타 등,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여 장례의식에 참여해본 경험을 소개합니다. 물론 세상은 넓기 때문에 여기 소개된 지역의 장례의식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장례의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장례문화가 확 달라졌습니다. 제가 처음 겪은 장례식은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살아오시던 집에서 임종을 맞았고,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시골에서 3일장으로 치른 장례식 내내 안방에 모신 할머니의 주검 앞에 놓은 향로의 향불을 꺼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맡은 임무였습니다. 마당에는 커다란 천막을 치고 찾아오시는 문상객을 대접했습니다. 장지는 집에서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앞산이었습니다만, 발인하는 날에는 상여에 모시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사시던 동네와 작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도 1년 동안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밥과 국을 올리는 삭망 차례를 지냈고, 1년 뒤에 탈상을 하였습니다. 삭망차례를 지내는 동안 부모님과 손자들은 같이 곡을 하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렸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는 같은 형식으로 치렀습니다. 하지만 20년 전에 선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고, 화장을 하여 화장터에 있는 납골당에 임시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나서서 가족묘 형식의 납골당을 지어 모셨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상례를 치르고, 화장을 하여 가족묘인 납골당에 모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3년상을 치렀고,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장손이 시묘살이까지 했던 조선시대의 장례문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는 용광로방식의 산업적인 화장은 1869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의 의사들이 매장이 비위생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장례를 지낸 주검을 가매장하거나 집에 모셨다가 장례가 있는 날 유골을 닦아서 매장하는 본 장례식을 지낸다고 합니다. 종교나 장례 등과 같이 나름대로의 철학이 깃들어있는 분야에서는 어느 방식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작을 쌓은 위에 주검을 올려놓은 뒤에 화장하는 힌두교식 장례 절차를 다른 문명에서 따라하는 것은 힌두교도가 아니라면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멕시코의 미초아칸에서 열리는 망자의 날 축제가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2016년에 개봉된 영화 <007 스펙터>의 영향으로 생긴 것이라 해서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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