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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
장 루이 셰페르 지음, 김이석 옮김 / 이모션북스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우한폐렴이 창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극장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3밀(三密)의 위험이 높은 장소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명화극장은 즐겨보지만 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리 많지 않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 공감은 하는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를 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이자 미학자, 수필가라는 장 루이 세폐르의 책으로는 처음 읽는 책입니다.
프랑스 작가가 쓴 영화이야기라는 점에서 난이도가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야 했습니다. 프랑스 영화는 느낌 없이 즐기는 희극이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종잡지 못하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러다니는 평범한 남자’로서 나는 어떤 본질적인 이야기를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운을 떼는 것에서 책읽기기 지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일단 저자는 결코 ‘평범한 남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가 여기에 쓴 것은 시간에 관한, 운동에 관한, 이미지에 관한 특정한 경험”이라고 이 책의 특성을 요약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형성하게 되는 어떤 ‘앎(savoir)’의 문제를 환기하려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순전히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 여기에는 영화들의 내용과 관련된 것도 있겠지만, 심지어는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줄기에 떠도는 먼지에 이르기까지 영화관에 관한 이야기도 논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서문에 이어지는 신(神)들(Les dieux)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의 수필 31꼭지를 담았고, 이어서 범죄의 인생(어떤 영화)에서는 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관련된 글 4꼭지를 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인용한 영화들 가운데 제가 본 영화는 한편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자의 사유가 어떻게 빚어졌는지 알 도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영화를 보는 관객이 형성하게 되는 ‘앎’의 문제라는 것도 저자의 것, 즉 저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것이므로, 듣고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것도 영화를 보았을 때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젊었을 적에 동아리를 같이 하던 선배가 바로 저자와 비슷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화입니다만, <러브스토리(1970년)>는 명문가의 상속자이자 하버드 법대생인 올리버와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다니는 제니가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까지 하는 이야기입니다. 올리버는 제니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의절을 하기까지 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름다웠습니다만,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제니가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제니가 죽은 뒤에 올리버가 병원 문을 나서는데 병원에 찾아오는 아버지를 현관에서 만나게 됩니다. 올리버가 현관에 있는 회전문에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도 같이 회전문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두고 선배는 올리버와 아버지가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회전문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도 하지만, 굳이 회전문이 있는 현관에서 촬영을 한 감독의 장치였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 장면을 본 선배가 나름의 해석을 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를 설명할 때, 영화는 이미 필름에 담긴 대로의 장면이 반복되는 것이지만, 연극은 그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서 혹은 같은 배우라도 연기할 때마다 다른 감정으로 연기를 하기 때문에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작가는 영화를 다시 보러 갔을 때, 동일한 효과가 동일한 순간에 발생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 자신이 나이, 언어, 감정의 질 등에서 이미 변했기 때문에 역시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의문을 가졌던 ‘평범한 사람’의 조작적 정의를 옮긴이의 해설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상식을 갖춘 사회인’의 뜻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장소에 속하는 일종의 ‘이방인’이라는 점이다.(324쪽)”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