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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 영웅과 희생자, 괴물들의 세계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지난해 근무하던 사무실에 있던 책이었는데, <군인>이란 제목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군인에 대한 무슨 이야기를 이렇듯 두툼한 한 권의 책으로 풀어냈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군인이란 결국 누군가와의 싸우기 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대전은 이미 전쟁터에서 군인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원격으로 작동하는 무기들이 전투에 투입되면서 군인은 전투 현장이 아닌, 심지어는 대륙 너머에서 전투를 조종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전투가 일어난 지역을 차지하려면 군인이 투입되어 깃발을 꼽아야 하겠습니다만....
‘영웅과 희생자, 괴물들의 세계사’라는 부제를 달아놓았습니다만, 지구상에 인류라는 존재가 출현할 때부터 시작된 싸움, 혹은 전쟁의 역사를 훑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는 서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저자는 ‘추도사’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대신하였습니다. 지난 3천년 동안 세계사의 큰 동력이자 공포와 경탄, 경악의 대상이었던 군인은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가했지만, 또 누구보다 스스로 더 큰 고통을 받을 때도 많았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앞으로의 전쟁은 군인이 전장에 투입되지 않는 사이버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군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붙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전쟁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역사의 수많은 전선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군인’이라는 존재, 혹은 현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 했다고 합니다.
1부 ‘이제 전쟁에는 군인이 필요없다’에서는 군인이 아닌 기계가 전투를 치르거나, 핵무기와 같은 가공할 살상무기가 투입될 수도 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형태의 전투, 즉 인간폭탄이나 유격대를 운용하는 전투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2부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서는 전투 혹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갑니다. 3부 ‘어떤 무기로 싸웠을까?’에서는 군인이 전투에 혹은 전쟁에 사용한 무기의 변천사를 다루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선을 군인 자체로 돌려 4부에서는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 5부에서는 ‘무엇으로 강요하고 속여 넘겼을까?’, 6부에서는 ‘어떤 꼴로 죽었을까?’ 그리고 7부에서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에 이릅니다.
저자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논리를 풀어냈습니다만, 간혹은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부분도 없지 않아 보였습니다. 제가 요즈음 이집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저자는 ‘이집트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는 피라미드, 신전, 궁전, 용수로를 건설하는데 많은 노예가 필요했다.(220쪽)’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는 나일 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농삿일을 할 수 없는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금으로 거둬들인 물자를 보관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공공사업의 성격으로 건설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고고학적 발굴에서 나온 유물들을 통하여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한획을 그은 테르모필레 방어전에 대한 부분도 제 생각과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형의 요새인 테르모필레에 방어선을 치고 페르시아군을 격퇴할 전략을 세웠던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은 자원하여 남은 스파르타군사 3백과 테스피아 군사 7백명을 주축으로 그리스 연합군이 철군하여 전열을 다시 가다담을 수 있도록 결사적으로 페르시아군을 막다가 전멸하였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델뷔르크가 <전술사>에 적은 “테르모필레의 방어는 그 자체로 보면 가망이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군사 실무적으로는 분명한 실수였지만, 도덕적으로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요청이었다. … 테르모필레 협곡은 처음부터 패배한 초소나 다름없었고, 그로써 레오니다스에게는 명예롭게 죽을 사명이 맡겨졌다. 그리스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라는 부분을 인용하여 레오니다스왕의 분사(憤死)를 영웅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레오니다스왕은 테르모필레의 천형적인 지형만을 믿고 우회로를 지키는데 소홀한 결과 페르시아군을 앞뒤로 맞아 독 안에 든 쥐 꼴을 자초한 전략적 실패를 한 셈이니, 사력을 다하여 페르시안군의 진격을 차단한 공은 높이 살 수 있겠으나 경계에 실패하여 패전을 자초한 점은 면죄를 받을 길이 없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