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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펀트래블 여행사의 중국현대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열심히 자료를 찾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만, 중국의 현대문학 작가들의 분류는 일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중국의 현대문학은 1919년의 5.4운동을 기점으로 시작되며 정치적 상황에 따른 시대적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1960년에 태어난 작가 위화가 1996년에 발표한 이야기입니다. 위화는 시기적으로 보아서는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에 작품활동을 한 신시기 문학 계열의 작가라 할 것이며, 유형별로는 현실주의 문학, 선봉 문학, 역사 소설 작가에 속한다고 합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의 50-60년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런 점으로 위화가 역사소설의 작가로 분류되는 듯합니다.
<허삼관 매혈기>는 매혈을 핵심적인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혈액 400ml를 뽑으면 혈액원에서 35원을 주는데 이 금액은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벌 수 없는 큰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헌혈을 통해서만 혈액수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식민시대에 도입된 매혈제도는 1974년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99년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헌혈 중심으로 혈액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삼관 매혈기>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시기에는 우리나라 역시 매혈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75년에는 혈액 320ml을 팔면 1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제 기억으로는 1973년에 우동 한 그릇에 100원 하였으므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매혈이 매력적인 돈벌이가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매혈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이 등장합니다. 피를 뽑기 전에 물을 엄청 마셔서 혈액의 양을 늘리려 하는 것입니다. 물을 마시면 혈액양이 증가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채혈을 할 때 혈액 중에 들어있는 혈색소량이 적정한가를 보기 위한 검사를 하기 때문에 피가 묽어지만 피를 뽑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경우 저나트륨혈증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에서는 피를 팔고나면 곧바로 식당으로 가서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을 시켜서 먹고 마시고 있는데, 피을 뽑고나면 그날은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실제로 헌혈을 한 날 술을 마신 청년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요즈음에는 혈액의 성분인 혈정이나 혈소판만을 헌혈하기도 합니다만, 전혈을 헌혈하는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8주내에 헌혈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80년대에는 3일이 지나야 피를 뽑을 수 있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매혈을 한번 하면 3개월 내에는 다시 매혈을 할 수 없는 규정이 있었던 듯한데, 다른 혈액원으로 가면 매혈이 가능하다는 점을 혈두가 알려주기도 합니다. 혈액수급이 전산관리되지 않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허삼관 매혈기>에서 매혈보다는 부자간의 키운 정이 끈끈하다는 점이 강조되어도 좋을 듯합니다. 피를 팔아 결혼을 하게 된 허삼관의 첫 아들이 사실은 아내 허옥란의 혼외자였다는 사실에서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쟁이졌다고 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자라 대가리 노릇이라고 한답니다.
큰 아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 허삼관은 의도적으로 자식과 거리를 했지만 키운 정 때문인지 결국 자식으로 인정하고, 아들 역시 친부보다는 계부를 따르게 된다는 점이 특별한 것 같습니다. 특히 문화대혁명 이후에 도시 청년들을 시골로 하방키로 한 정책에 따라 시골에 내려간 큰 아들이 중병을 얻자 상하이의 큰병원에 보내 입원을 시키고 병원비를 마련하여 허삼관이 상하이로 찾아가는 길에 곳곳에서 매혈을 하여 병원비에 보태려는 처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보고서 기른 정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허삼관을 둘러싼 인물들은 시쳇말로 장삼이사라서인지 대화가 거침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시대적 배경과는 달리 요즈음에도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두고 싶은 대목이 있습니다. 서문을 마감하면서 고대 로마시인 마티에르가 한 말, “지나간 삶을 추억하는 것은 그 삶을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13쪽)”를 인용한 작가는 “글쓰기와 독서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일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려는 뚜거운 욕망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낙숫물 떨어지듯 입은 은혜를 샘물이 용솟듯 갚으라는 말도 있다.(99쪽)”, (허옥란이 허산관에게) “피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거라, 사람이 꽈배기나 집, 전답을 팔 수는 있지만 피를 팔아서는 안된다고. 몸뚱이는 팔아도 피는 절대로 팔아서는 안된다고요. 몸은 자기 거지만, 피는 조상님거라구요. 당신은 조상을 팔아 먹은거나 다름없어요.(118쪽)”는 대목은 새겨둘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