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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금년 1월과 10월에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과 중국현대문학기행을 함께 다녀온 분이 선물해주신 두 권의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녀를 지키다>는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네 번째 장편 소설로 2023년 공쿠르상을 비롯하여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수도원, 사크라 산 미켈레. 그곳의 지하에는 겹겹의 잠금장치로 가둬진 피에타 석상이 있다. 감금을 지시한 것은 다름 아닌 바티칸 교황청. 대체 이 석상에는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는 걸까?”라는 유혹적인 글이 달려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서른한 명의 수도사들이 죽어가는 이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에는 40년 전부터 대리석의 어둠에 갇혀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있습니다.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사크라 수도원에 유폐된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설명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면은 순식간에 바뀌어 죽음을 기다리는 이가 1904년 프랑스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난 이탈리아 사람으로 열 살이 되던 해 징집되어 전장으로 향했던 아버지가 죽음을 맞았고, 열 두 살이 되던 해에 이탈리아로 보내져 역시 조각가인 삼촌 치오 알베르토에게 맡겨졌다는 사연이 이어집니다.
전쟁으로 일감이 줄어들자 치오는 미켈란젤로(미모) 비탈리아니를 데리고 피에트라달바로 갑니다. 피에트라달바는 가상의 마을로 로마에서 하루 종일 차로 달려야 도착했다고 합니다. 피에트라달바에 도착한 치오는 우연히 오르시니 후작 가문의 장식을 개수하는 작업을 맡게 되고, 작업 과정에서 미모는 후작의 막내딸 비올라와 친분을 맺게 됩니다. 비올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려둔 밑그림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오의 공방에서 일을 거드는 미모와 별항, 별항의 동생 알베르토, 그리고 애인 안나까지 가세하여 날틀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처음에는 마치 아이들의 성장소설처럼 전개되던 이야기가 연회가 열리던 날 미올라가 날틀을 타고 날다가 추락하여 생사를 헤매게 되면서 미모가 피렌체의 공방에 보내지는 것으로 급전하게 됩니다. 피렌체에서는 조각은커녕 허드렛일이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다가 사고를 치고는 곡예단에 몸을 숨기는 등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미모는 조각가로서의 재능을 펼쳐내게 되는데, 그 무렵 무솔리니의 독재정권이 권력을 잡게 되고, 오르시니 가문은 독재정권과 손을 잡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예리하게 주목하고 있던 비올라의 귀띔으로 학술원 회원이 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독재정권을 비난하는 발언으로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무솔리니 정권이 무너지면서 미모는 반독재 행동파의 표상으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미모와 비올라는 운명처럼 엮이는 관계가 깊어지는데 그 관계가 굳이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미모는 조각가로서의 영감이 사라지면서 조각을 할 수 없는 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피에트라달바의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천정이 부서지면서 떨어진 돌덩이가 피에타 상을 부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미모에게 피에타상의 제작이 의뢰되지만 미모는 작업을 직접 할 수 없어 도제에게 부탁하려는 생각입니다.
그러던 중에 비올라는 입헌 의원 선거에 후보를 하고 오르시니 가문과 철천지 원수 사이인 감발레 가문의 큰 아들과 대결을 하게 됩니다. 비올라가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감발레 가문이 오르시니 가문과 협상을 통하여 비올라는 사퇴시키려는 작업에 들어가는데, 안타깝게도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면서 비올라를 포함한 오르시니 가문 사람들이 대부분 죽음을 맞게 됩니다. 비올라의 죽음을 맞은 미모는 접어두었던 피에타 상의 제작에 착수하는데, 미모가 제작한 피에타 상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교황청은 비탈리아니의 피에타를 사크라 수도원에 숨겨두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듯 긴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결과적으로 미모가 지키려고 한 그녀는 피에타가 아니라 비올라였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미모 역시 피에타가 유폐된 사크라 수도원에 몸을 맡기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열두 살에 만난 어린 남녀가 평생을 함께하면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632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책읽는 흐름도 좋았고, 이야기의 전개도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