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딱고개 문학공간수필선 127
오세하 지음 / 한강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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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도서관에서 소장도서를 정리해서 주민에게 나누어주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풍성하지 않은 가운데 고른 책입니다. 국어교사이신 오세하 선생님의 수필집입니다. 여러 곳에 실렸던 수필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보이는데, 국어를 가르치신 만큼 정제된 언어로 쓰인 수필집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수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침을 얻는 책읽기였습니다.


두 번째 작품 감나무를 예로 들어보면, 감나무가 가진 지혜, 듬직함, 나눔, 겸손 등의 성품을 설명하는데 감나무에 대하여 세밀한 것까지 파악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작품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렸을 적 친구들을 소환하여 기억하고 있음을 알리는 모습도 좋아보였습니다.


수필을 쓸 때 화제가 된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논설을 읽다보면 선친께서 남겨주신 글들을 대하는 느낌도 듭니다. 세월호 사건에서는 선원들의 의무를 제복에 견주어 준열하게 꾸짖었습니다.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가서는 대학시절에 치렀던 4.19의거에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시대가 혼란하고 어려울수록 이성적이어야 한다. 자신을 위한 삶이 가정을 위한 삶이고,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삶이어야 한다. 인생관과 국가관이 바르고 확고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으로 정리하셨습니다.


주제에 따라 원전을 달리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견공과 견자라는 글에서는 개만도 못한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충의를 다한 견공의 사례들을 인용합니다. 일본 시부야 역에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는 하찌의 사례를 비롯하여 고양군에 있는 고려 공양왕릉 앞에 있는 조그만 삽살개의 석상도 언급합니다. 공양왕부부가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이곳으로 도망쳐 숨어살다가 호수에 뛰어들어 구차한 생을 마감했는데 삽살개가 이를 알리기 위하여 호수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모양입니다.


공양왕의 죽음에 대하여 정설보다는 속설을 택한 이유는 아마도 삽살개의 충성을 이야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공양왕은 조선이 성립된 뒤에 강원도 삼척의 궁촌리로 유배되었다가 마을입구인 고돌산 살해재에서 왕세자와 함께 시해되었다고 합니다. 공양왕묘가 고양에 있는 것은 조선왕실에서 시신을 서울로 올려와 공양왕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 매장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표제작인 깔딱고개는 우이대피소에서 백운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깔딱고개를 지나는 산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오르막이 심하여 고갯마루에 오르기까지 숨이 몇 차례는 넘어갈 듯한 고초를 겪어야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필자가 가끔 오르던 우면산에도 깔딱고개가 있습니다. 오르막이 어찌 가파른지 처음에는 몇 발자국을 떼고는 숨을 돌려야 했습니다. 산행을 반복하면서 쉬는 빈도가 줄어들면서 언젠가부터는 단숨에 깔딱고개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깔딱고개의 산행을 가져온 것은 젊었을 때 집을 장만하기 위하여 준비했던 자금을 빌어간 선배가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처했던 곤경을 동창이 급전을 융통해주어 넘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깔딱고개를 처음 넘을 때는 숨이 턱에 차오르기 때문에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체력이 늘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깁니다.


모두 54꼭지의 글을 장수시대의 고민’, ‘감꽃 이야기’, ‘거리 풍경’, ‘사마귀의 허세’, ‘도시 비둘기’, ‘깔딱 고개등의 소제목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각각마다 소제목을 제목으로 한 글들이 있습니다. 소제목에 담긴 글들이 일정한 주제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발표된 수필들을 책으로 묶어 내게 된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상식과 도덕이 경시되고 사회환경이 험악해져가는 세상에, 어린 손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고 싶었다라고 합니다. ‘가난하고 아팠던 세데의 생활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배곯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싶다라는 마무리를 읽으면서 선친께서 남겨주신 글을 묶어 <소운집>이라는 책을 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연배가 있으신 만큼 보수적인 생각이 담긴 글들입니다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새겨두어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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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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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글은 적지 않게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동물원에 가기>는 처음 눈에 띄었습니다. 이 책은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70명의 문인들의 작품선집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합니다. 표제작 동물원에 가기를 비롯하여 모두 9편의 수필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사유의 날개를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그의 글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글 슬픔의 주는 기쁨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대상으로 하여 쓴 글입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인간은 외롭고 쓸쓸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호퍼의 작품 가운데 기차 안의 풍경을 그린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야기는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호퍼적인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리틀 셰프 식당처럼 소외된 장소를 호퍼적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리틀 셰프 식당은 영국의 도로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을 말한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주막이 될 것이고, 요즘으로 치면 실비식당 정도가 될까요?


두 번째 이야기 공항에 가기히드로 다이어리라는 부제가 붙은 <공항에서 일주일을>과 맥을 같이 하는 글입니다. 흔히 공항하면 멀리 떠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타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보통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감상하듯 공항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항에 앉아서 멀리서부터 날아온 비행기가 활주로에 앉는 모습, 어디론가 가기 위하여 이륙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다가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비행기에서 굽어보거나 바라보는 구름의 모습은 땅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보통은 비행기에서 보는 구름이 꺼지기 쉬운 면도용 거품을 쌓아 만든 고대한 오벨리스크 같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진정성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라고 전제하는 것을 보면, 유혹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는 것임을 내비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혹의 기술을 시전하려는 글로 보이기도 합니다.


직업과 행복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일과 행복은 건너뛰고, ‘동물원에 가기도 건너뛰려 했지만 표제작이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보니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가본 것이 10여년을 훌쩍 넘어가는 듯합니다. 아이들이 크고 보니 동물원에 가볼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 없이 동물원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라고 시작하는 대목이 십분 이해됩니다.


같이 가기로 한 조카가 마음을 바꾸었는데도 작가는 런던의 레전드파크 동물원에 가는 일정을 강행하였다고 합니다. 다양한 동물들을 돌아보면서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동물원에 갔을 때 내가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이 나를 구경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한폐렴 사태로 해외여행을 나서지 못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여행사들이 다시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았다고 해서, 올 가을에는 스위스를 가보려 예약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취리히가 세상의 위대한 부르주아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묘사하는 것은 내 고향 취리히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찬사다라고 시작하는 따분한 장소의 매력을 빠트릴 수 없습니다. 작가가 늘어놓은 취리히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취리히에 가볼 이유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냥 따분하고 부르주아적이기만해도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라는 마무리를 읽으면서 호기심이 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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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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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달달한 연애소설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적에 가슴 설레던 그런 추억을 소환하는 달달한 연애소설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주목받은 영화를 제작한 가와무라 겐키는 <4월이 되면 그녀는>에서 연애 감정이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사랑을 찾아 떠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제가 어렸을 적에 엄청 좋아했던 미국 가수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April Come She will>의 제목과 주제를 따왔습니다. 이야기는 4월에서 시작해서 3월에 마무리됩니다. 물론 1년 동안에 일어난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달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조금씩 달라지고, 같은 달에서 몇 년을 건너뛰기도 합니다.


<April Come She will>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4월이 오면 그녀도 오겠지. / 봄비로 냇물이 불어나는 5월이 오면 그녀는 내 품에서 다시 한 번 휴식을 취하며 머물겠지. / 6월이 오면 그녀는 마음이 변해 밤새도록 거리를 헤매다가 7월이 오면 그녀는 어디론가 훌쩍 날아갈거야. 한마디 말도 없이. /8월이면 그녀는 잊혀지겠지. /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면 나는 기억하리, 이젠 가버린 그날의 사랑을.”


이 책을 골라든 것은 표지 사진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호수에 마주 선 남녀의 사진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우유니에서 만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9년 만에 누군가에게, 아마도 사랑했던 연인에게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4월의 이야기에서는 문학부 신입생 이요다 하루가 사진동아리에 들어 의학부 3학년 후지시로 슌과 조우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혼슈 북쪽 끝자락에 있는 아오모리 출신의 하루는 비 냄새나 거리의 열기, 슬픈 음악이나, 기쁜 듯한 목소리,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같은 걸 찍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칩니다.


5월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9년이 흐른 뒤에 후지시로가 수의학과를 졸업한 사카모토 야요이와 3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한 장면으로 건너뜁니다. 후지시로와 하루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6월에는 다시 후지시로와 하루가 연애를 시작할 무렵으로 돌아갑니다.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어느새 시작되어 있다. 감기 바이러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몸속으로 침투해서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열이 나듯이.(55)” 사진동아리에서 만난 선배 오시마와 묘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후지시로를 사랑한다는 하루의 고백에 오시마 선배는 자신이 하루를 좋았다고 고백합니다.


6월은 복잡한가 봅니다. 사진동아리에서의 일화가 소개된 뒤에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야요이의 동생 준이 등장합니다. 정신과를 전공한 후지시로에게 상담으로 핑계로 접근하는 준에 대한 후지시로의 복잡한 감정이 그려집니다.


4월에 우유니에서 첫 번째 편지를 보냈던 하루는 7월에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10월에는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그리고 3월에는 일본의 어느 바닷가 병원에서 편지를 보내옵니다. 그 사이에 후지시로가 야요이와 사귀고 결혼을 하게 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2월에 야요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3월에 밝혀집니다만, 하루의 편지를 읽고서였습니다. 야요이가 떠난 뒤에서야 그녀의 침대에서 편지를 발견합니다만, 하루는 불치의 병을 앓게 되면서 여행을 떠났던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편지는 후지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내용입니다. 하루의 마지막 여행지는 인도의 최남단 바닷가 마을 카냐쿠마리였습니다. 후지시로와 함께 여행을 갔지만 이곳에서 꼭 맞아야 했던 일출을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습니다. 3월의 마지막에 후지시로는 카냐쿠마리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야요이를 만나게 됩니다. 심드렁하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누구에게는 좋은 결말이 된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이라서인지 요즈음 젊은이들의 사랑방정식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으로 결합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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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밟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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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자란 탓에 뱀을 볼 기회가 많았고,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본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는 어렸을 적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다뤘을 것 같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가톨릭을 비롯하여 개신교나 이슬람과 같은 일신교가 세력을 얻지 못한 탓인지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경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적 존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에서도 환상문학에 속하는 그런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와키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뱀을 밟다’, ‘사라지다그리고 어느 날 밤 이야기등 세 개의 중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입니다. 하나 같이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묘한 이야기들입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들인데, 고대 전설이나 신화와 달리 무게감 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포유류는 물론 파충류와 같은 동물들, 식물들 나아가서는 생물과 무생물, 기체와 액체 그리고 고체까지도 이 이야기 속에서 서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즉 복잡다단한 것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교환하고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합니다. 즉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서로 돌고 도는 윤회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는데, 따지고 보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몇 가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명을 다하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생명체의 구성요소가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무생물의 상태로 자연에 존재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뱀을 밟다미도리 공원 가는 길, 덤불에서 뱀을 밟고 말았다로 시작합니다. 출근 길에 숨어 있던 뱀을 밟았는데, 뱀은 밟히면 끝이죠라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녹아내리더니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뱀 인간은 주인공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자신이 주인공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등 살림을 도맡아 처리합니다.


잠은 기둥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가 잔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뱀이 들어와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뱀이 집을 나가면 그 집을 가세가 기운다고도 했습니다. 옛날 집들은 초가의 지붕 아래, 기와집도 기와 아래 혹은 대들보 등 뱀이 숨어있을 만한 공간이 분명했지만, 요즘에는 집안에 뱀이 숨어들 기회가 없으니 그런 이야기도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산이나 들에 나갔을 때 뱀을 만나는 것을 제일 무서워했던 것 같습니다. ‘은혜를 갚은 까치등 뱀을 두려워할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에서처럼 뱀과 동거를 한다면 끔찍할 것 같습니다. 또한 뱀을 세계로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끊임없이 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중에는 논에 날아드는 새들을 쫓기 위하여 공포총을 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옛날 이야기도 하니고 요즈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꿈에서나 볼 것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먹힐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옛날 참새들은 논에 세워놓은 허수아비가 무서와 논에 내려앉지도 못했다는 것인데, 요즘에는 허수아비의 어깨나 모자 위에 앉아 노닥거리기까지 하는 판이라서 가끔씩 총포를 쏘아서 놀래켜야 달아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새도 간이 배이 붓는 진화를 한 셈입니다.


사라지다에서 처럼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현대에서도 흔치 않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몸통이 줄어들어 눈으로 겨우 식별할 정도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쩌면 인간이 몸집이 줄어드는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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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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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월에 고전독서회에서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 논의하는 가운데 다른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관객모독>은 그의 첫 번째 희곡이었는데 출판도 공연도 불가한 작품이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연을 위하여 여러 극단과 접촉을 하였지만 관심을 보인 극단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실험적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하고 배우를 모집하고, 프랑크푸르트 시립 탑극장에서 젊은 연출가 클라우스 파이만의 연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합니다.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극단은 물론 상업극단에서도 자주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하던 연극동아리는 고전극을 주로 올렸기 때문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이 연극을 관람한 기억은 없습니다. 극본도 이번에 처음 읽은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희곡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모독>에서는 배우 4명이라고만 되어 있고, 그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물론 대사 배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선지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이 모두에 나옵니다. 작가가 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첫 번째 요구는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이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성당에 가본 분들인 이 요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먼저 신부님께서 기도 말씀을 하면 신자들이 그 말씀을 따라 영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구장에서 외쳐 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이라는 요구가 이어집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의도가 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열여섯 가지나 되는 요구사항이 있는데,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만 제목이 달려있을 뿐 이어지는 무대에 대한 설명, 즉 지문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장막 구분도 없습니다. 무대나 장치, 조명, 효과 등에 관하여 연출자에게 주는 조언을 적어놓은 듯합니다. 네 명의 배우들은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지만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어릿광대들아, 눈딱부리들아, 가련한 몰골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 오락실 사격장의 허수아비들아,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와 같은 대사를 동시에 쏟아내라는 것입니다. 관객을 염두에 두고 의미 있는 말을 던져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라고 극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머리말이 다른 작품에 대한 머리말이 아니고, “(관객) 여러분이 과거에 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할 것에 대한 머리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관객은 배우들이 던지는 대사의 주제가 되는 셈입니다. 심지어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눈을 깜박이지 마십시오. 침을 모으지 마십시오. 속눈썹을 움찔거리자 마십시오. 숨을 들이마시지 마십시오. 숨을 내쉬지 마십시오라고 요구도 합니다. 숨을 안 쉬면 관객들 모두 죽으라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 배우들은 너희들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너희들은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었다. 너희들은 움직이지 않고 굳어 있었다.”라면서 관객을 향하여 욕설을 던집니다. 이 장면에 이르면 관객들의 충격은 그야말로 절정에 달할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 관객들이 흥분했던 것은 아닐까요? 초연 당시 <관객모독>이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절정을 지나 막을 내릴 때까지 이어지다가 갑작스럽게 여러분들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로 마무리가 됩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연극이 끝납니다.


작가는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만, 이 작품을 무대에서 만났다면 관극자로서 황당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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