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밟다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자란 탓에 뱀을 볼 기회가 많았고,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본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는 어렸을 적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다뤘을 것 같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가톨릭을 비롯하여 개신교나 이슬람과 같은 일신교가 세력을 얻지 못한 탓인지 다양한 신을 숭배하는 경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적 존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문학에서도 환상문학에 속하는 그런 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가와키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뱀을 밟다’, ‘사라지다그리고 어느 날 밤 이야기등 세 개의 중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입니다. 하나 같이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묘한 이야기들입니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환상적인 이야기들인데, 고대 전설이나 신화와 달리 무게감 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포유류는 물론 파충류와 같은 동물들, 식물들 나아가서는 생물과 무생물, 기체와 액체 그리고 고체까지도 이 이야기 속에서 서로 넘나들고 있습니다. 즉 복잡다단한 것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교환하고 서로의 역할을 바꾸기도 합니다. 즉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삼라만상이 서로 돌고 도는 윤회라는 개념을 도출해냈는데, 따지고 보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즉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은 몇 가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명을 다하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생명체의 구성요소가 되거나 그렇지 못하면 무생물의 상태로 자연에 존재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표제작이기도 한 뱀을 밟다미도리 공원 가는 길, 덤불에서 뱀을 밟고 말았다로 시작합니다. 출근 길에 숨어 있던 뱀을 밟았는데, 뱀은 밟히면 끝이죠라고 인간의 목소리로 말하면서 녹아내리더니 인간의 모습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뱀 인간은 주인공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자신이 주인공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는 등 살림을 도맡아 처리합니다.


잠은 기둥을 타고 천정으로 올라가 잔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집집마다 뱀이 들어와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건 뱀이 집을 나가면 그 집을 가세가 기운다고도 했습니다. 옛날 집들은 초가의 지붕 아래, 기와집도 기와 아래 혹은 대들보 등 뱀이 숨어있을 만한 공간이 분명했지만, 요즘에는 집안에 뱀이 숨어들 기회가 없으니 그런 이야기도 더 이상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산이나 들에 나갔을 때 뱀을 만나는 것을 제일 무서워했던 것 같습니다. ‘은혜를 갚은 까치등 뱀을 두려워할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와카미 히로미의 뱀을 밟다에서처럼 뱀과 동거를 한다면 끔찍할 것 같습니다. 또한 뱀을 세계로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끊임없이 꼬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중에는 논에 날아드는 새들을 쫓기 위하여 공포총을 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옛날 이야기도 하니고 요즈음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꿈에서나 볼 것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먹힐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옛날 참새들은 논에 세워놓은 허수아비가 무서와 논에 내려앉지도 못했다는 것인데, 요즘에는 허수아비의 어깨나 모자 위에 앉아 노닥거리기까지 하는 판이라서 가끔씩 총포를 쏘아서 놀래켜야 달아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새도 간이 배이 붓는 진화를 한 셈입니다.


사라지다에서 처럼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은 현대에서도 흔치 않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사람의 몸통이 줄어들어 눈으로 겨우 식별할 정도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어쩌면 인간이 몸집이 줄어드는 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실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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