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적지 않게 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동물원에 가기>는 처음 눈에 띄었습니다. 이 책은 펭귄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70명의 문인들의 작품선집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합니다. 표제작 동물원에 가기를 비롯하여 모두 9편의 수필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사유의 날개를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그의 글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글 슬픔의 주는 기쁨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대상으로 하여 쓴 글입니다. 호퍼의 그림을 보면 인간은 외롭고 쓸쓸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호퍼의 작품 가운데 기차 안의 풍경을 그린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야기는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호퍼적인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리틀 셰프 식당처럼 소외된 장소를 호퍼적 공간이라고 설명합니다. 리틀 셰프 식당은 영국의 도로변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을 말한다고 합니다. 옛날 같으면 주막이 될 것이고, 요즘으로 치면 실비식당 정도가 될까요?


두 번째 이야기 공항에 가기히드로 다이어리라는 부제가 붙은 <공항에서 일주일을>과 맥을 같이 하는 글입니다. 흔히 공항하면 멀리 떠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타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보통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감상하듯 공항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공항에 앉아서 멀리서부터 날아온 비행기가 활주로에 앉는 모습, 어디론가 가기 위하여 이륙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다가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비행기에서 굽어보거나 바라보는 구름의 모습은 땅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보통은 비행기에서 보는 구름이 꺼지기 쉬운 면도용 거품을 쌓아 만든 고대한 오벨리스크 같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 진정성은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소개합니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자신 있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다라고 전제하는 것을 보면, 유혹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는 것임을 내비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유혹의 기술을 시전하려는 글로 보이기도 합니다.


직업과 행복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일과 행복은 건너뛰고, ‘동물원에 가기도 건너뛰려 했지만 표제작이라는 이유로 간단하게 적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보니 마지막으로 동물원에 가본 것이 10여년을 훌쩍 넘어가는 듯합니다. 아이들이 크고 보니 동물원에 가볼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 없이 동물원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라고 시작하는 대목이 십분 이해됩니다.


같이 가기로 한 조카가 마음을 바꾸었는데도 작가는 런던의 레전드파크 동물원에 가는 일정을 강행하였다고 합니다. 다양한 동물들을 돌아보면서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동물원에 갔을 때 내가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물이 나를 구경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한폐렴 사태로 해외여행을 나서지 못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여행사들이 다시 해외여행 상품을 내놓았다고 해서, 올 가을에는 스위스를 가보려 예약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취리히가 세상의 위대한 부르주아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묘사하는 것은 내 고향 취리히에 바칠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찬사다라고 시작하는 따분한 장소의 매력을 빠트릴 수 없습니다. 작가가 늘어놓은 취리히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취리히에 가볼 이유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냥 따분하고 부르주아적이기만해도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는 것이라는 마무리를 읽으면서 호기심이 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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