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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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1월에 고전독서회에서 페터 한트케의 <소망 없는 불행>을 읽고 논의하는 가운데 다른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관객모독>은 그의 첫 번째 희곡이었는데 출판도 공연도 불가한 작품이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공연을 위하여 여러 극단과 접촉을 하였지만 관심을 보인 극단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실험적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하고 배우를 모집하고, 프랑크푸르트 시립 탑극장에서 젊은 연출가 클라우스 파이만의 연출로 무대에 올릴 수 있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합니다.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대학 극단은 물론 상업극단에서도 자주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 되었습니다. 제가 참여하던 연극동아리는 고전극을 주로 올렸기 때문에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이 연극을 관람한 기억은 없습니다. 극본도 이번에 처음 읽은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희곡은 등장인물의 대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관객모독>에서는 배우 4명이라고만 되어 있고, 그 배우가 맡을 배역은 물론 대사 배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선지 배우들을 위한 규칙들이 모두에 나옵니다. 작가가 배우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첫 번째 요구는 가톨릭 성당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번갈이 올리는 기도를 귀 기울여 들을 것.” 성당에 가본 분들인 이 요구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먼저 신부님께서 기도 말씀을 하면 신자들이 그 말씀을 따라 영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축구장에서 외쳐 대는 응원 소리와 야유 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것이라는 요구가 이어집니다.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작가의 의도가 이해되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열여섯 가지나 되는 요구사항이 있는데,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만 제목이 달려있을 뿐 이어지는 무대에 대한 설명, 즉 지문이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장막 구분도 없습니다. 무대나 장치, 조명, 효과 등에 관하여 연출자에게 주는 조언을 적어놓은 듯합니다. 네 명의 배우들은 동시에 무대에 등장하지만 혐오스러운 상판대기들아, 어릿광대들아, 눈딱부리들아, 가련한 몰골들아, 뻔뻔스러운 작자들아, 오락실 사격장의 허수아비들아, 멍청하게 서서 구경하는 꼴통들아.”와 같은 대사를 동시에 쏟아내라는 것입니다. 관객을 염두에 두고 의미 있는 말을 던져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하고, ‘이 작품은 일종의 머리말입니다라고 극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머리말이 다른 작품에 대한 머리말이 아니고, “(관객) 여러분이 과거에 했던 것과, 지금 하고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할 것에 대한 머리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관객은 배우들이 던지는 대사의 주제가 되는 셈입니다. 심지어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눈을 깜박이지 마십시오. 침을 모으지 마십시오. 속눈썹을 움찔거리자 마십시오. 숨을 들이마시지 마십시오. 숨을 내쉬지 마십시오라고 요구도 합니다. 숨을 안 쉬면 관객들 모두 죽으라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 배우들은 너희들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너희들은 이 연극의 주인공들이었다. 너희들은 움직이지 않고 굳어 있었다.”라면서 관객을 향하여 욕설을 던집니다. 이 장면에 이르면 관객들의 충격은 그야말로 절정에 달할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전개에 관객들이 흥분했던 것은 아닐까요? 초연 당시 <관객모독>이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말입니다.


이런 상황은 절정을 지나 막을 내릴 때까지 이어지다가 갑작스럽게 여러분들은 여기서 환영받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인사로 마무리가 됩니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연극이 끝납니다.


작가는 언어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만, 이 작품을 무대에서 만났다면 관극자로서 황당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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