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공부법 - 통찰력을 길러주는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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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성공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티브 잡스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혁명을 구상하고 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있었다는 것을 꼽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과학기술에 비벼내어 소비자의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성공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월터 아이작슨 지음, 스티브 잡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43528).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마침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던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거나, 인문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 조차도 몰랐던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인문학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인문과학(人文科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인문학이 다루는 영역이 광범위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는 아직도 개념정리조차 못하고 있는 분야가 태반이구나 싶습니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책읽기를 시작했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닥치는 대로 읽고 보자는 식이었던 저가 인문학 책읽기의 방향을 정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안상헌님의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입니다. 안상헌님은 대학 때부터 시작한 4,000여권의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을 살피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독서와 자기계발 전문가라고 합니다.

 

저자는 “제가 아주 무식하다는 건 알았지만,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랐어요. 배움을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죠.(4쪽)”라는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책의 서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는 방법을 구하기보다는 무작정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경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저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보면 중도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길을 찾는 방법을 저절로 익히게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무작정 시작했던 책읽기를 통하여 찾아낸 인문학 공부방법을 관심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부에도 왕도는 있는 셈입니다.

 

사실 저는 자기계발서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쓰신 분의 경험이 녹아있는 자기계발서를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고,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입니다. 그래도 “자기계발이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경청을 잘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인문학은 ‘마음으로 들어라’라고 말한다. 자기계발이 행동이라면 인문학은 성찰에 가깝다.(27쪽)”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접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찾고 발견하도록 유도한다.”라는 저자의 생각에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철학, 3부에서는 문학 그리고 4부에서는 역사에 관한 대표적 저작들을 어떻게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저의 시선을 끈 대목은 “어떤 일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원리를 알면 세상이 분명해지고 일이 수월해진다. 이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본질을 찾기 위해서 모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접근방법이 있다.(83쪽)”라고 시작하는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한 부분입니다. 앞서 문학/역사/철학이 인문학을 대표하는 분야라고 말씀드린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현상을 살펴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하여 문제를 본질적 관점에서 해결하는 길을 쉽게 찾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본질적 접근법을 훈련하는 데는 역시 철학이 도움이 되는데, 그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불러온 원인은 또 무엇인지를 추구하여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사건과 문제를 발생한 순간의 상황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바로 잡아 시간을 거슬러 사건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역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발생한 사건 하나만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연결될 혹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부분을 동시에 바라보며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역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현실사회의 개연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합니다.

 

문학/역사/철학의 세 가지 영역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지만 본격적인 책읽기가 늦었던 탓인지 역시 철학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들을 공부할 때는 주요 개념과 핵심문장을 먼저 파악해두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철학사전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즉시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철학자 한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려면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를 먼저 공부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하여 니체를 설명하는데 두 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도 우연히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자연스럽게 <비극의 탄생/즐거운 지식/반그리스도교;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23753>를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0004>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니체가 철학자이자 문학가이고, 문학가이면서 또한 혁명가이기도 하다면서 철학과 문학의 경계는 없다고 적었습니다. 철학은 문학일 수 있고 문학은 철학일 수 있으며 역사 또한 그 자체로 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니체의 저술들은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물 흐르듯 읽힌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권위있는 기호학자이면서 뛰어난 철학자로 꼽히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론서를 통하여 철학적 사유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와 같은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91200>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설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인문학 책읽기 안내에서 제가 놓치고 있던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모든 공부의 시작과 마무리는 자기성찰과 수양이다.(154쪽)”라는 요약입니다. 즉 공부의 시작이 자기성찰이라면 마무리는 수양인 것인데 배운 것을 반복해서 갈고 닦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 공부는 죽은 공부가 된다고 콕 짚었습니다. 그리고 <논어>와 <맹자>가 바로 그런 공부에 가장 적합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문학부문에 대한 저자의 안내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저 역시 소설을 읽을 때 스토리 위주로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려면 주인공의 변화과정을 느끼면서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읽을 때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순간이나 갈등에 봉착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잘 살피는 것이 좋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어가기보다는 갈등의 순간에 더 머무르면서 문장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문학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의 목적은 느끼는 것이다. 느껴야 감동할 수 있다.(184쪽)”고 적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고전문학작품을 새롭게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글에 끌려 읽는 경우도 있고, 그동안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독서목록이 떠올라 읽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34300>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90738>을 완독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주요 일간지의 문예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303722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사교모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아 헷갈렸던 기억 때문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번역본에서 등장인물을 따로 정리해준 친절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런 대작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관계도에 적어 넣으면 책읽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내용만 파악하는 소설읽기는 국어시험공부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설에서 인생을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201쪽)”는 저자의 일갈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는 고백을 드리면서 저자가 정리하는 소설을 읽는 다섯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첫째, 인간군상을 만나는 재미, 둘째, 소설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셋째, 역경을 이겨내며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는 재미, 넷째, 스토리가 주는 재미와 감동, 다섯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점 등입니다. 그리고 이유에 따라서 읽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할 방법들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고 얻은 삶의 교훈을 자신의 문장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은데, 그 이유는 소설은 메시지를 문장으로 정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책읽기는 서평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평을 쓰려면 줄거리 뿐 아니라 그 의미를 파악하여 소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인생에 대하여 배울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역사의 바닥에 흐르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감을 잡는 것이므로, 역사책을 읽을 때는 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원인이 되는 사실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답다단한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 사물을 꿰뚫는 통찰을 얻고 현상의 이면을 제대로 바라보자”고 인문학으로서의 역사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동욱기자의 주장이 새삼 떠오릅니다.[김동욱 지음, 독사(讀史);  http://blog.joinsmsn.com/yang412/12061426]

 

“인문학 공부를 통해 진실함을 배울 수 있다면 제대로 공부한 것이라 믿는다(327쪽)”는 저자의 마무리는 인문학 책읽기의 최종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 인가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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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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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었지, 예들아? 물이 괜찮아?”하는 질문을 받으면 무어라 답하시겠습니까? 장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젊은이라면 멋있는 젊은이들이 많으냐는 질문으로 생각하고 대답을 준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든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면요? 당연히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라고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물고기들끼리 주고받은 이 이야기를 사람에게 통역을 한다면 “잘 있었지, 예들아? 공기가 괜찮아?”라고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기가 맑다 커니 혹은 탁하다 커니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까요?

 

이 이야기는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에 뽑힌 <한없는 웃음거리>를 쓰고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고 창조적인 작가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2005년 5월 케니언대학의 졸업식에서 한 주제강연문을 시작한 에피소드입니다. 월리스는 물고기 이야기를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힘들고 논하기 어렵다는 점(14쪽)”을 전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대학에서 인문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에게 인문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새겨보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즉 인문교육이란 학생의 머리를 지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연자 역시 젊어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서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허구한 날 독불장국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66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의 전공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저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출근하여 책상 위에 올려진 슬라이드를 판독하여 진단을 결정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었을 겁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이라고 해보았자 새로 나온 사례를 책을 통하거나 다른 의사들의 경험을 공유하여 공부하거나, 임상의사들과 사례검토회의를 통하여 저의 진단을 확인하고 실수를 줄여나가려 노력하는 정도였을 것 입니가. 그런데 그런 생활을 십여년 지나오다가 어느 날 울타리를 넘어 세상 밖으로 나선 것이 결국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곤 했던 것이니 이날 까지 도전이 반복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게 될 개인적 자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유가 있겠지만,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고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128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를 선택하는 것 또한 생각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몫일 것이므로, 진정한 교육의 진가는 우리 주위에 환히 보이는 곳에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현실, 매일 끊임없이 그 존재를 스스로 깨우쳐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현실, 그런 현실을 알고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물입니다.”라는 함축적인 메시지로 담아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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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 쓰레기마을 톤도에서 발견한 희망의 교육
이지성.김종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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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톤도의 파롤라 마을은 세계 3대 빈민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쓰레기산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어 ‘쓰레기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지금은 올림픽 평화공원으로 변신한 난지도의 옛날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난지도에서 사시는 분들을 위하여 진료봉사를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를 멀리 보면서 지나다닐 때는 몰랐지만 살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인데도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아직 어렵게 살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은 형편임에도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을 쓰신 이지성, 김종원님과 사진작가 유별남님이 톤도를 찾은 것은 이곳에서 12년이 넘게 톤도 아이들을 보살피며 봉사하고 있는 한국인 김숙향 선교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김숙향 선교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빵만 주어서는 안 되고, 인간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사업을 병행하는 것이 진정한 빈민구호 활동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2000년부터 톤도에 건물을 짓고, 가난과 무지 속에 방치된 톤도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런 김선교사님의 톤도교육센터가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세 분이 도와드릴 방법을 찾기 위하여 방문했던 것인데, 정작 이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참되게 바꾸는 교육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톤도 교육센터는 세 가지 특별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배움의 기회에서 차별을 주지 않는다, 둘째, 우등생이 아니라, 인간을 만든다, 셋째, 동반성장 학습을 교육 철학으로 삼는다, 라고 합니다.

 

흔히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과느느 달리 이곳의 학생들의 꿈은 소박하고 열정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하버드대학으로 유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톤도교육센터 출신 살로나 우바스는 자신이 공부한 톤도교육센터로 돌아와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후배들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선교사는 살로나와 같은 28명의 리더를 길러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데는 “리더십은 바이러스처럼 쉽게 퍼져나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리더가 되어 톤도를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너희들의 리더십을 지켜본 아이들 역시 엄청난 리더가 되어 세상을 바꿀 인재가 될 거야. 결국 너희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거야(123쪽)”라고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 김선교사의 평소 지론이 이들에게 심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들은 톤도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치관교육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의 자녀교육법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교육기관인 서당에서는 천자문을 떼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교훈적 내용이 담긴 계몽편을 가르쳤는데, 계몽편을 통하여 올바른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게 된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세상을 바꾸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물론 “필리핀 톤도의 많은 소녀들은 열세 살이 되기 전 가출을 한 후, 마음에 드는 이성과 동거를 하곤, 원치 않는 출산을 경험한다. (…) 톤도의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133쪽)”라고 이곳의 실태를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톤도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톤도교육센터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그리고 톤도교육센터에서 좋은 결실을 맺고 있는 교육방법들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사회적 여건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분명 있다는 점을 적고 있는데, 저자들의 종교적 배경에서 나온 제안도 한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주일학교가 1990년대0 들어서부터 쇠락하고 있다. 모두가 부모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272쪽)”는 주장은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점은 분명하지만 지나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는 느낌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지적하는 식탁에서 신문에 빠진 아버지, 핸드폰문자에 빠진 아이들, 드라마에 빠진 어머니라고 일반화시켜 우리네 가정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는 것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제도나 입시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우리의 전통교육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저자의 생각도 고려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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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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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게 죽기’는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이지만 아직까지도 손에 잡히는 무엇이 없는 것 같아 허전하기만 합니다. 오래된 화두인 만큼 지칠 법도 한데, 아직도 죽음을 논한 읽을거리라고 하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합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기대가 컸던 책입니다. 저자가 예일대학 철학과 교수이고, 예일대학교에서도 명강의로 손꼽히는 내용이라는 카피는 그렇다고 쳐도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으ㅟ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먼저 정리하자면 제가 아직도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탓인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탓에 책읽기에 익숙한 문어체가 아니라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이 집중을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요약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영혼, 죽음의 본질, 영생의 가능성을 논하고, 이어서 가치문제로 넘어가서 죽음이 정말로 나쁜 것인지를 철학적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끝으로 자살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철학개론서의 저자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접근방식, 즉 다양한 주장과 찬반론을 소개하면서 저자 자신은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거나, 저자의 입장을 밝히고 옹호하는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후자의 방식을 선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읽어가다 보면 저자가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거나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읽고 있는 저는 영혼의 존재나 영생의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의 논리전개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즉, 영혼의 존재나 영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중립적으로 논하기 위하여 무리한 가정을 세우고 논지를 전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라는 1장의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이미 죽음이 선언된 마당에 어떤 삶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무식한 제가 보기에는 무리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는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살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105쪽)”고 적고 있습니다. 자신은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지만 남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그는 “내가 ‘이원론’과 ‘물리주의’라는 두 가지 관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145쪽)”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강조하지만 나는 영혼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 영혼의 존재를 완벽하게 부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혼이라고 하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148쪽)”라고 적고 있으니 읽는 사람이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서 저자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하여 무리한 가정을 세운다고 했는데, 그 예를 들어보면, 미친 과학자가 내 인격을 린다의 몸에 이식한 상황에서 영혼과 육체의 동질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전개하는 논의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비슷하게 이미 죽은 나폴레옹의 인격을 현재 미국의 미시건에 살고 있는 남성이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두고 이 남성이 진짜 나폴레옹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한 걸은 더 나아가 뇌를 이식하는 상황, 특히 좌우 뇌를 각각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고 두 사람이 동등한 존재인지를 논하려는 시도는 참신하다고 해야하나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고 해야 하나 헷갈립니다.

 

저자는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만,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미국의 SF작가 올슨 스캇 카드의 단편소설에서 인간은 우주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죽는 종이라는 이유로 다른 생명체들이 부러워하는데, 그 이유는 ‘제한된 시간 동안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오로지 인간만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는 대목에 완전히 꽂혔습니다.

 

시작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책읽는 호흡은 결국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붙들지 못하고 끝에 이르렀습니다. 그래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507쪽)”는 마무리만큼은 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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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전세주택 - 전세대란의 마지막 희망
임성은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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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보유에 관한 세금부담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선회한 이후로 상승세를 보이던 주택가격이  하향세를 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매매가격이 분양가격보다 낮아 주택을 분양받은 분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 같습니다. 주택가격이 하향세를 타게 된 배경에는 세금정책에 맞물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추세에다가 주택보유보다는 현실적 소비에 비중을 두는 성향도 기여했다는 분석을 본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택가격은 떨어지는 상황인데 전세가격은 급등하는 이상현상이 일고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보유를 기피하는데서 오는 전세수요의 증가 때문이라고 한다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택은 중요한 제태크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신혼 초에 집을 장만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이 없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자고나면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망연자실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는 오르는 집값을 따라서 전세값도 덩달아 오르던 때라서 전세계약 만료일이 다가오면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올려주어야 할지 걱정이 앞서곤 했습니다. 전세대란이라는 단어가 그때 나왔던 것 같습니다. 아파트 분양을 받아보려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당첨이라는 행운과는 거리가 멀게 태어났기 때문이었던지 꽤 오랜 기간을 전세로 전전하던 아픈 기억입니다.

 

요즘처럼 전세가격이 뛰고 계약에 따라서 이리저리 이사를 다녀야하는 신세가 지겨울 때는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동향이 어떻게 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외국처럼 장기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방법이 있거나 장기간에 걸쳐 거주할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장기전세주택 박사1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임성은 박사님의 <장기전세주택>은 ‘전세대란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소유의 개념으로 보유하던 주택을 거주의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주택제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장기전세주택’이란 개념에 대하여 설명하고 이 제도의 도입과정, 그리고 다른 유형의 주택정책을 비교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민간에 의하여 주도되는 주택시장에 주택정책을 가지고 정부가 개입하고 있는 상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하 주택은 상품이다. 국가가 최소한의 주택시장 개입으로 사회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지만, 이 경우 시장메커니즘은 인간의 기초수요인 주택서비스를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하고 공평하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87쪽)”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시장에 맡겨진 주택이 필연적으로 야기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정부가 정책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는데, 국가의 형태에 따라서 그 개입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3장과 4장에서는 장기전세주택 정책에 대한 정책당국자들과 실제 입주자를 중심으로 인식의 변화를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리해보면 주택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투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거주수단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장기전세주택의 공급물량이 늘어가게 된다면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습니다.

 

임성은 박사의 <장기전세주택>은 저자가 연구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통계자료들을 인용하고 있고, 주제의 전개방식이 논문방식을 따르고 있어 딱딱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삼대요소 가운데 하나인 주거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주택의 개념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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