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산책 - 파리, 런던, 뉴욕을 잇는 최고의 예술 여행 미술관 산책 시리즈
최경화 지음 / 시공아트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년전에 동경가는 길에 장윤선님의 <도쿄 미술관 산책; http://blog.joins.com/yang412/12540845>의 도움으로 우에노공원에 모여있는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도쿄 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에서 좋은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예술작품에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알려진 작품만 챙겨 감상하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보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시공사에서 ‘이국적인 도시에서 즐기는 예술의 향기’ 시리즈로 나온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을 기회가 있어 소개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보면 책읽기에도 묘한 인연 같은 것 같습니다. 아내와 함께 걷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http://blog.joins.com/yang412/13056408>, 정진홍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http://blog.joins.com/yang412/13050186>, 최미선님의 <산티아고 가는 길; http://blog.joins.com/yang412/13089939> 등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리뷰에서 적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저도 가보고 싶은 길이기 때문에 이미지 훈련 삼아 그 느낌을 얻어 보려는 생각에서입니다.

 

유럽에서도 서쪽 끝에 있는 나라인 탓인지 지금은 금지되고 있는 투우 말고는 별로 기억되지 않던 스페인은 한 때 유럽을 제패한 나라이며, 배를 타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겠다는 콜럼버스에게 탐험비용을 대줄 정도로 진취적인 나라였습니다. 1492년 이사벨여왕의 승인을 받아 출항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1898년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미국과 붙은 미서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몰락할 때까지 400년 동안,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재화 덕분에 대제국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돈이 모이는 곳에 예술의 향기도 넘쳐나기 마련인데 그런 매력적인 모습을 누군가 먼저 보고 전하게 된 것이겠지요. 결국 역사 속에 잠자고 있던 스페인의 매력이 우리들에게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우리네 삶에 여유가 생긴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들과 함께 미술관을 중심으로 돌아본 42일간의 유럽여행을 담은 고형욱님의 <아빠의 자격; http://blog.joins.com/yang412/12327788>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 걸려 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비롯해서 200년째 공사 중이라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EBS인문학 특강]을 통하여 김상근교수님께서 엘 그레코와 카라바조의 미술에 대하여 설명해주셨는데, 특히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 미술이 완성되던 시기에 스페인의 톨레도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스페인에 대한 저의 동경을 키우도록 만들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184697).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 안내를 맡은 최경화님은 미술사학을 전공하셨는데, ‘꿋꿋하게 나만의 길을 가자’는 인생철학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고등학교(그리고 보니 큰 아이의 선배가 되시는군요)와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인연으로 스페인 어학연수와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를 비롯한 몇 차례의 스페인 여행 끝에 “이럴 바에 아예 스페인에서 살아보자”고 마드리드를 찾았고, 프라도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등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전문가이드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전공과 경험으로 볼 때, 스페인 미술관을 안내하는데 꼭 맞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의 삶을 이 길로 안내한 계기는 <스페인 미술관 산책>의 첫 번째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는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본 느낌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들이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고 죽는 것을 지켜본 어머니 마리아는 울다가 끝내는 기절했다. 죽은 아들보다 낯빛이 더 창백하다. 요한은 눈가가 붉어지도록 울었고, 시신을 내리는 남자들의 미간에는 주름이 져 있다. 십자가 밑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25쪽)” 이런 느낌은 베이던이 인간적인 감정을 잘 표현한 화가이기도 하지만, 예전 종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적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는 베이던처럼 플랑드르 출신 화가의 작품이 많은 이유라던가 지금의 벨기에 해당하는 플랑드르는 유화가 처음 시작한 고장이라는 이유로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까지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해골의 의미에 대한 저자의 설명으로 앞으로는 무식한 티를 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쓰러지는 마리아를 부축하려는 요한의 발밑에 놓여있는 해골이 바로 최초의 인간 아담의 해골이라는 것인데, 사람들은 예수를 매단 십자가가 아담의 무덤 바로 위에 세워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첫 번째 인간이자 인류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아담이 지은 죄를 씻기 위해 예수가 자신을 희생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방식(29쪽)”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런 해석은 그렇다고 쳐도 “서양회화에서 해골이 등장하는 경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너희도 곧 죽어서 이 해골처럼 될 테니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집니다. 오래 전에 루브르박물관을 찾았을 때 유난히 해골이 등장하는 그림들이 모여 있던 전시실에서 발길이 멈추어지더라는 이야기를 적은 바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7679738). 그때는 해골을 가지고 해부학 공부를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최경화님의 설명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페인 미술관 산책>에서는 프라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국립 카탈루냐 미술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따라가는 모데르니스모 루트,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그리고 작지만 알찬 미술관으로 마드리드의 소로야 미술관과 세랄보 미술관, 바르셀로나의 마드리드 카이사 포름과 호안 미로 재단, 그리고 톨레도의 산타크루스 미술관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술관의 대표작을 소개하기에 앞서 미술관이 설립된 배경을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을 예로 들면, “프라도 미술관의 기반이 된 컬렉션은 15세기 스페인 왕실에서 시작되었다. 왕들이 취향에 따라 수집한 작품들, 왕실화가의 그림, 그밖에도 왕실 소유의 건물에 걸려 있던 작품 등이 기반이 되어 1819년에 미술관이 설립되었다.(19쪽)”라는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루브르박물관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만(http://blog.joins.com/yang412/7664069), 프라도 미술관 역시 길을 잃기 쉽다고 합니다. 이렇듯 규모가 큰 미술관을 제대로 감상하는 팁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거대한 건물 안에 일정한 리듬으로 작품을 전시해 놓기 때문에 레게리듬에 몸을 맡기듯, 우리는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면 된다. 이럴 때 유용한 것이 미술관에서 제작한 안내 팸플릿이다. 건물안내도와 함께 색상별로 어느 구역에 어느 나라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 표시를 해놓고, 대표작품들도 명기되어 있다.(22쪽)”

 

저자는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작품과는 비교가 될 정도로 열 쪽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홉, 아니 열 한 사람에 더하여 개까지도 빠트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왕궁의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공간감 표현이 자연스럽다.(109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가운데 서있는 마르가리타 공주가 주인공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만, 사실은 벨라스케스가 국왕 펠리페4세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마리아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장면을 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정작 상황의 주인공인 왕과 왕비는 멀리 벽에 걸린 거울에 비쳐서 조그맣게 그려지고 오히려 화가는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전체 인물 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화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말입니다.

 

<시녀들>을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고 있는 것은 수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에 가면 피카소가 리메이크한 <시녀들>을 볼 수 있다고 하고, 그림 오른쪽에 앉아서 졸고 있는 덩치 큰 개가 주인공인 소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시녀들>보다도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제일 먼저 설명하고 있는 것은 바로, “어떤 미술관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그림을 발견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167쪽)”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만나는 도메니코 가를란다이오의 <조반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대단한 절세미인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단정한 옆얼굴의 선과 목에서 등으로 떨어지는 곡선 등은 첫눈에 봐도 시선을 확 끌 정도로 아름답다. 젊음, 부족함 없는 생활에서 오는 여유로운 무엇이 이 여인에게 있다.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앞을 바라보는 고요한 시선에는 무언가 명상하게 만드는 힘도 있다. 나와 별 상관도 없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도 아닌 500년 전 여인이 내 시선을 이렇게 잡아두고 있다는 것이 미술의 힘이다.(166쪽)”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들어왔습니다만,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을 대표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저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37년 4월 26일 오후 4시 30분경, 바스코지방의 한 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히틀러가 프랑코를 돕기 위해 최신 기종의 전투기를 보내면서 엄청난 양의 폭탄을 무차별 투하한 것이다. (…) 당시만 해도 비행기로 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게르니카는 이틀 내내 불탔고 1,5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인구의 3분의 2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223쪽)” 폭격이 있었던 3일 후에 피카소는 이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걸려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배경을 알면 “그림에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가 있다. 이미 죽어서 힘없이 축 늘어진 아이를 품에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 창에 찔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말, 불타는 건물, 폭탄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하늘을 보며 두 팔을 들고 절규하는 사람, 그는 하늘을 본다. 그들을 곧 끝장낼 죽음이 오는 하늘이다. 한 손에 부러진 칼을 든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도 있다. 그러나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꽃은 피어났다.(226쪽)”는 작가의 설명이 충분히 이해될 것 같습니다. <게르니카>를 준비하면서 피카소가 남긴 45점의 스케치와 당시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가 제작과정을 찍은 사진들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 같이 감상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도 주목할 작품이겠습니다만, 저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과학과 자선>을 꼭 보고 싶은 그림으로 꼽겠습니다. 피카소가 열다섯 살 때 고전적 유화기법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 중앙에는 침대가 놓여 있고 안색이 좋지 않은 여인이 누워 있다. 그 오른쪽에는 환자의 맥을 짚으면서 시계를 들여다보는 의사가 앉아 있다. 즉 ‘과학’이다. 침대 반대편에서 한 수녀가 어린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인에게 마실 것을 건네준다. 이 아이는 병든 여인이의 아이일 것이다.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 병자를 돌봐 주고, 그가 세상에 남겨둘 갈 곳 없는 아이를 돌봐 주는 역할을 하는 수녀는 ‘자선'이다.(337쪽)”라는 저자의 설명이 와 닿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걸음 나아가서 치료와 간병의 개념을 병존시켜 환자의 질병을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집니다.

 

스페인에 가실 계획이 있으시거나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을 읽고 소개할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센티브와 무임승차 - 성공전략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마야 보발레 지음, 권지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SK 플래닛의 박태현 매니저의 추천사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근래 많은 기업 혹은 기관에서 KPI(Key Performance Index)를 활용한 성과평가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가시스템을 알고 계시다면 이 책에 몰입되어 단숨에 읽어내려 가실 것 같습니다. 연초에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수준을 정하고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조직원들이 해야 할 지표들을 찾고 평가기준을 정하고, 연말에 성과분석을 통하여 그 기준과 비교하여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태현 매니저는 이러한 평가방식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1. 회사가 단위 조직의 KPI에 포함되지 않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2. 단위조직들이 만만한 KPI를 설정한다, 3. KPI는 직원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4. KPI는 측정이 어려운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 5. KPI는 신시장 개척을 목표로 할 때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6. 직원 개개인에 대한 KPI를 통한 평가 역시 문제가 많다.

 

<인센티브와 무임승차>는 공공경제학을 전공한 프랑스 경제학자 마야 보발레가 30여 년 동안 일반화되어 온 인센티브와 디스인센티브, 즉 당근과 채찍을 근간으로 하는 경영방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업과 사회 전반에 유행하고 있는 인센티브전략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자는 인센티브 자체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 인센티브 전략이 때로는 더 나쁜 상황을 초래하는 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 졸업반인 작은 아이는 가끔 투덜거리곤 합니다. 실습팀이 받은 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팀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적은 과제수행정도에 따라서 모든 팀원이 같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이 책의 제목처럼 무임승차를 하는 팀원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집단성과지표를 도입했을 때 일을 하지 않는 직원은 상사가 아니라 동료들에게 걸린다. 동료들이 그에게 충분히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꽤 빠른 시간 내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89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수준에서의 무임승차자는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경기할 때 심사위원의 점수가 나올 때 마음을 졸이면서 기다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심사위원은 생각보다 박하게 점수를 매기는 것을 보면서 투덜거린 적도 있습니다만, 피겨스케이팅 심사위원이 채점방식에 따라서 점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밀양송전탑을 세우는 문제를 두고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만, 최근 우리사회에 암암리에 커져온 보상심리가 사태를 키워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스위수정부에서 추진한 핵폐기물처리장 설립을 사례로 들어서 경제적 인센티브 전략이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경제적 인센티브는 의욕을 꺽는다. 시민정신에 입각해서 매립지를 받아들이겠다는 내재적 동기를 감소시킨 것이다.(39쪽)”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기획단계에서부터 모든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것이 시일이 많이 걸리더라도 바람직한 정책처리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와 직접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제4장에 나오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과 제왕절개분만이 늘어나는 현상입니다. 아마도 자연분만하는 비용과 제왕절개하는 비용에서 차이가 있는 미국에서의 사례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두 경우에서 비용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이 우리나라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뉴욕병원에서의 수술사망율과 관련된 평가는 제가 하고 있는 사업이기도 해서 관련 논문을 찾아서 깊이 공부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수술사망율이 높은 병원에 불이익을 주었더니 수술이 위험한 환자는 아예 수술을 하러들지 않더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심지어는 체온을 수집하는 경우에 체온계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에 대하여 근심이 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평가사업 역시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이 관련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참고할 점이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병원평가라고 하는 사회적 파장이 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만, 항상 고려하고 있는 점은 저자가 에필로그에서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관찰과 검증이 가능한 좋은 지표를 만들어 평가를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표는 가시적 데이터를 향상시키고 지식을 객관화하며 사람보다는 과정을 측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센티브를 매개로 한 평가의 본모습을 이해하게 된다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역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다시 읽기 위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발자크 작품은 학생 때 <골짜기의 백합>을 읽었던 기억이 전부입니다. 1827년 ‘올빼미당’으로 데뷔한 발자크는 1933년 무렵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담아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간희극>이라는 큰 제목의 이 구상은 「풍속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로 구분하여 137편의 소설을 계획하였고, 91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발작크의 작품세계는 프루스트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에는 <고리오 영감>에서 처음 시도된 인물 재등장 기법이라는 독특한 소설기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최근 읽은 이응준의 연작소설 <밤의 첼로; http://blog.joins.com/yang412/13184062>에서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점입니다. 유예진교수님은 발자크가 구사한 재등장 기법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독자는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인물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름 편 소설에서는 육체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접하며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 되고, 발자크의 소설들은 한결 빠르고 적접적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살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77쪽;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

 

<고리오영감>은 파리 뇌브 생트 주느비에브 거리에 있는 <보케르 집>이라고 하는 다락방이 딸린 4층 건물의 고급 하숙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입니다. 쉰쯤 되는 과부 보케르부인이 주인이고, 공화국 육군 출납 지불관의 미망인 쿠튀르 부인과 빅토린 타유페르양, 푸아레노인과 전직 도매상인 보트랭씨, 늙은 처녀 미쇼노양과 전직 제면업자 고리오영감, 그리고 앙굴렘에서 파리로 법학을 공부하러 올라온 청년 으젠 드 라스티냐크 등입니다. 제목은 <고리오 영감>입니다만, 이야기는 라스티냐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야기는 프랑스 사교계를 통해서 단숨에 신분상승을 꾀하는 군상들의 위선과 속임수, 그리고 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딸과 사위들의 배신, 그런 사람들에게서 좌절하는 젊은이의 순수함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라스티냐크는 시골에 있는 부모와 두 누이동생의 기대를 한 몸에 담고 파리로 올라오지만 하라는 법학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사촌누이 보세앙 자작부인의 후원을 받아 사교계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여성을 붙잡겠다는 꿈을 세우게 됩니다. 시골의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자금을 마련해달라는 편지를 내어 종자돈을 확보한 그의 눈에 띈 여성이 바로 고리오 영감의 작은 딸 델핀입니다. 젊어서 제분업으로 큰 돈을 번 고리오영감은 큰 딸 아나스타지와 작은 딸 델핀을 좋은 상대와 맺어주려 하지만 큰 딸은 레스토 백작과 작은 딸은 알자스 출신 은행가 뉘싱겐 자작과 결혼을 하게 되는데, 두 딸을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고리오영감은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두 딸에게 오륙십만 프랑씩 나누어 주고 자신은 지내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연금만을 남겨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딸은 각각 남편에 속아 재산을 빼앗길 위기를 맞게 되고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돈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화수분 같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고, 결국 두 딸이 위기에 몰리는 상황에 충격을 받아 숨을 거두게 되지만 두 딸과 사위는 임종은커녕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딸은 도둑이라고 합니다만, 프랑스도 비슷한 모양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딸은 우리 것이었고, 우리는 딸에게 전부였지요. 하지만 다음날에는 딸은 우리의 적이 되어버려요.(105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리오 영감의 딸에 대한 사랑은 요즘말로 딸바보라고 할 정도로 맹목적인 것 같습니다. “이 내가 두 딸이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성부와 성자와 성신까지도 팔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207쪽)”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미스터리한 인물 보트랭이 암수를 써서 오빠를 제거하여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 빅토린과 결혼하고 유산을 나누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것을 보면, <고리오영감>에 등장하는 라스티냐크는 야망은 있으나 아직 순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사교계에서 오가는 비밀스러운 남녀관계에 관한 발자크의 이야기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중심이 되는 사교계에서 화제거리로 삼기에 적절하였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만하게 제압하라 - 남자 직원들이 당신을 미치게 할 때
페터 모들러 지음, 배명자 옮김 / 리더스북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에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직접 다루고 책임을 지는 위치가 아니라 실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을 지원하고 자문하는 정도의 일이기 때문에 그녀들과 업무상 상하관계에 놓여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국외자의 시각으로 그녀들을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실무를 맡아서 할 때는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과 함께 일할 때를 다시 생각해보면 조직 안에서 남성과 차이를 둔 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전적으로 제 입장에서의 생각일 것이고, 저와 같이 일했던 그녀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조직 내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특성이 다르다고 합니다. 생각의 틀이 다르고 상황을 대하는 기본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조직에서 여성성을 내세워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분에게는 왜 저렇게 살까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을 하려고 조직에 들어왔으면 똑같이 일을 나누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데보라 테넌은 의사소통에서의 남녀 차이는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는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은 자라면서 각기 효율적인 의사소통방식을 발전시키다보니 두 집단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여자아이들은 ‘관계’를 중시하는 방식을 발달시키는 반면, 남자아이들은 ‘지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성장과정에서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키우고 교육하던 시절의 경향일 것입니다. 요즈음은 대부분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같이 놀고 교육도 같이 받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이미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있음에도 그것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여전히 많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직 리더그룹에 이른 연령대에서는 상대방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여성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컨설턴트인 페터 모들러는 이러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핵심적 조언을 <오만하게 제압하라>에 담았습니다. 남성이 여성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겠느냐는 의문에 대하여는 바로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숲 속에서는 나무를 볼 수 있지만 숲 전체를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회가 발전하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면서 수평적 언어체계의 중요성이 강조되다 보니 수직적 언어체계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직적 언어체계는 실제로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추진력, 결단력, 모험심, 서열의식, 영역 확보 의지 등과 같은 능력을 갖추는데 기여한다고 합니다. 이 점에 착안한 저자는 여성리더를 위하여 오만훈련법을 개발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직장에서 남자들과 소통하는 법을 몸짓 언어, 영역에 대한 태도, 권력 언어 등과 같은 여러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이론을 굳이 여성에 국한하여 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리더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여자들만 남자들의 언어를 배워야 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의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면 불공평하다면서 ’굳이 다른 성별의 언어를 익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불공평하게도 아직도 많은 권력을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도덕성 확보가 아니라 전략적 이익을 위해서 남자의 언어를 익혀야 하며, 남자들 역시 자신의 이익과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해 여자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116쪽)”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특정한 성(저자는 남성의 언어라고 못을 박았습니다만)의 언어가 아니라 리더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직장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남녀 간의 갈등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직장에서의 남녀 간의 갈등이 있다면 그것을 일종의 경기로 생각하라, 2.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하여 무브토크, 스몰토크, 하이토크(용어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만, 몸짓, 간단한 감성적 언어, 논리적 설명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를 적절하게 사용하라. 3. 다른 성의 언어를 이해하라, 등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리더가 되고 싶은 여성을 위한 책’이라는 저자의 의도에 더하여 ‘리더가 되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든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순례’라 하면 우선 기독교의 이스라엘, 이슬람의 메카와 메디나, 불교의 룸비니 등지가 있겠습니다만, 최근 불고 있는 걷기 열풍과 관련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먼저 생각납니다. 언젠가는 저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드라마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첫 번째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정말 놀라운 순례의 길을 걸어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남서쪽 끝에 있는 사우스햄스 킹스브리지에서 영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스코틀랜드와 만나는 북동쪽 끝에 있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대략 800킬로미터의 거리를 실수와 일탈 때문에 우회하는 경우도 있어 1,000킬로도 넘게 걸어서 87일 만에 도착하는 동안, 해럴드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해럴드와 아내, 아들 데이비드 그리고 해럴드가 만나러 가는 퀴니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해럴드의 순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닙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해럴드의 놀라운 순례여행을 시작하게 만든 퀴니의 편지는 4월 중순경에 받게 됩니다. 해럴드가 집을 나선지 한참 뒤에야 내용이 알려지기는 합니다만, 몇 가지 의문점 때문에 미리 인용을 합니다. “해럴드에게,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지난날을 쭉 생각해 왔어요. 작년에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이미 퍼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나는 차분해요. 또 편안해요. 어쨌든 오래 전에 해럴드가 나에게 보여준 우정에 감사하고 싶었어요.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 줘요.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데이비드를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171쪽)” 해럴드가 은퇴하기 전에 다니던 양조회사에서 경리를 보던 퀴니는 이십년 전에 쫓겨나 떠난 다음에 연락이 끊겼던 것인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연락을 보내온 것입니다.

 

퀴니 헤네시의 소식을 들은 모린은 위층에 있는 아들 데이비드의 방으로 올라갑니다. 사실 여기서 작가가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읽다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린은 위층 데이비드의 방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고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아이를 들이마셨다. (…) 그녀는 데이비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방을 늘 깨끗이 청소해 두었지만, 그날이 언제일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한 부분은 늘 기다리고 있었다.(17쪽)” 모린이 아들과 함께 있는 동안 해럴드는 퀴니에게 답장을 씁니다. “퀴니에게, 편지 고마워요. 정말 안타깝네요.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해럴드(프라이)” 이보다 더 무미건조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한 줄로 된 답장, 그리고 퀴니의 편지를 보면 퀴니와 해럴드 부부 사이는 특별한 관계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부치러 나간 해럴드가 집근처 우체통에서 편지를 밀어 넣지 못하고 다음 우체통 그리고 우체국까지 지나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간식을 사러 들른 주유소의 아가씨와 편지를 받을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건넨 것도 영국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일까요? 고모가 암이었다는 소녀가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돼요.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28쪽)”라고 전한 말이 해럴드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퀴니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해럴드 프라이가 가는 길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내가 구해 줄 거니까. 나는 계속 걸을 테니. 퀴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전해주겠어요? (…) 걸어갈 거예요. 사우스데번에서 버윅어폰트위드까지 쭉. 내가 걷고 있는 동안은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내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33쪽)”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불가입니다. 해럴드는 자신이 퀴니에게 걸어가는 것만으로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시작한 걷기입니다. 시내에 나갈 때나 신으면 좋을 보트슈즈에 갈아입을 옷도 없이 편지를 부치러 나가는 간편한 복장으로 말입니다. 휴대폰도 없고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8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이렇게 나서는 해럴드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혹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를 했다가는 아예 출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정작 모린은 전화를 건 해럴드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갈 것이라는 말을 하자 “뭐, 버윅에 가도록 해, 해럴드.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어디 당신이 다트무어를 넘어갈 수나 있는지 알고 싶어―(40쪽)”라고 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해럴드가 걷기를 이어가면서 비용이 문제가 되면서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계산은 다 해 본 거겠죠”라고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퇴직금을 쓰겠다는 해럴드의 말에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지는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걷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해럴드의 계획에 동감하고 응원하는 모습입니다. 정작 해럴드는 자신의 여행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어떤 부인은 <순례자가 되려면>이라는 찬송가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첫날 묵은 호텔에서 만난 웨이트리스나 손님들 모두 해럴드가 떠날 때 그가 여행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길에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면 영국 시골의 인심도 참 푸근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유럽 몇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지인의 여행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외지인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행기나 기차로 질 알려진 장소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여행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걷는 일이 별거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매일 10km 정도 꾸준하게 걸어서 휴가기간 중에 모두 100km를 걸었습니다. 걸은 다음 샤워를 하고나면 나른한 느낌에 더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해럴드 처럼 먼 길을 가는 경우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뒤꿈치가 따끔거리고 등이 아팠다. 게다가 발바닥에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주 조그만 돌만 들어가도 아팠다.”는 해럴드의 호소는 애교로 볼 정도일 것입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하면서 만난 여자의 말은 걷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 해요.(71쪽)” 먹는 것도 중요하고 잠을 자는 장소도 중요한 일이지요. 결국 해럴드는 노숙을 하고 길에서 먹을 것을 해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순례자의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까요?

 

헤럴드는 걷는 동안 꾸준히 모린과 퀴니 심지어는 그를 걷게 만든 주유소의 소녀에게까지 편지를 쓰고, 모린과 퀴니에게 줄 선물도 사곤 합니다. 그리고 해럴드의 걷기에 대한 모린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씩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린은 해럴드가 퀴니에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과 곧이어 찾아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노여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120쪽)”는 표현이 어쩌면 정상적인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내가 데이비드를 위해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121쪽)”라는 해럴드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린의 모습에서 이들 부부 사이에 놓인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린은 걷고 있는 해럴드를 찾아가고, “보고 싶었어, 해럴드. 당신이 집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305쪽)”라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던집니다. 해럴드 역시 “나도 보고 싶었어. 하지만 모린, 나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평생을 보냈어. 그러다 이제 마침내 뭔가 하고 있어. 나는 걷기를 마쳐야 해. 퀴니가 기다리고 있어. 퀴니는 나를 믿고 있어.”라고 화답을 합니다.

 

사실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어서 만난 믹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정말로 버윅까지 갈 수 있다고 믿느냐”는 믹의 질문에 “밀어붙이지도 않지만 미적거리지도 않아. 계속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거기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고 대답하는 해럴드는 이제 걷기에 달관한 모습입니다. 그런 믹이 헤어지면서 “그냥 아저씨를 기억하려고” 해럴드의 사진을 찍었는데, 믹이 해럴드의 이야기를 ‘코번트 텔레그라프’에 기고하면서 해럴드는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리고 보면 무엇이든지 꾸준하게 오래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해럴드를 따라 버윅까지 걷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누워있는 퀴니의 회복을 위한 성지순례단이 꾸려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례단의 일정을 해럴드가 아닌 사람들이 결정하고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면 자연히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해럴드는 순례단에서 빠지게 되고, 순례단은 결국 해럴드 없이 요양원에 도착하여 버윅 지역의 유력자들과 매스컴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요양원에서 순례단에게 따로 관심을 두지는 않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어떻든 순례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와서 하루, 또는 이틀을 걷다 돌아갔다. 날이 맑으면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운동가, 산책자, 가족, 낙오자, 관광객, 음악가, 깃발, 모닥불, 토론, 준비운동, 음악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암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일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후회가 되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가 늘수록 속도는 느려졌다. (…) 속도는 느렸지만 이 집단은 해럴드에게는 낮선, 묘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제 잡다한 몸통과 발과 머리와 심장이 아니라, 퀴니 헤네시로 묶은 하나의 단일한 에너지라고 말했다.(287-8쪽) 일종의 집단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데서 모이는 힘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걷기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신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헥섬으로 우회하는 문제로 순례단과 결별한 해럴드는 홀가분해졌지만, 정작 버윅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생긴 오한을 견디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동행한 개가 사라지면서 공황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모린과 통화하면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결국 모린의 격려의 도움으로 편지를 부치기 위하여 집을 나선 87일 만에 1000킬로미터도 넘는 길을 걸어서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도착한 해럴드는 이어 도착한 모린과 함께 퀴니의 죽음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해럴드와 모린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든 문제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눈빛만으로 뜻을 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부부도 대화를 통하여 진심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 담긴 비밀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