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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레이철 조이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종교상의 여러 성지나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순례’라 하면 우선 기독교의 이스라엘, 이슬람의 메카와 메디나, 불교의 룸비니 등지가 있겠습니다만, 최근 불고 있는 걷기 열풍과 관련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이 먼저 생각납니다. 언젠가는 저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도 합니다. 영국의 드라마작가 레이철 조이스의 첫 번째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는 정말 놀라운 순례의 길을 걸어간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순례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남서쪽 끝에 있는 사우스햄스 킹스브리지에서 영국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스코틀랜드와 만나는 북동쪽 끝에 있는 버윅어폰트위드까지 대략 800킬로미터의 거리를 실수와 일탈 때문에 우회하는 경우도 있어 1,000킬로도 넘게 걸어서 87일 만에 도착하는 동안, 해럴드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엮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해럴드와 아내, 아들 데이비드 그리고 해럴드가 만나러 가는 퀴니 사이에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해럴드의 순례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미스터리 소설은 아닙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내용을 미리 말씀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해럴드의 놀라운 순례여행을 시작하게 만든 퀴니의 편지는 4월 중순경에 받게 됩니다. 해럴드가 집을 나선지 한참 뒤에야 내용이 알려지기는 합니다만, 몇 가지 의문점 때문에 미리 인용을 합니다. “해럴드에게, 이 편지를 받고 좀 놀라실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지난날을 쭉 생각해 왔어요. 작년에 종양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이미 퍼져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나는 차분해요. 또 편안해요. 어쨌든 오래 전에 해럴드가 나에게 보여준 우정에 감사하고 싶었어요. 부인에게도 안부 전해 줘요. 여전히 좋은 마음으로 데이비드를 기억하고 있어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171쪽)” 해럴드가 은퇴하기 전에 다니던 양조회사에서 경리를 보던 퀴니는 이십년 전에 쫓겨나 떠난 다음에 연락이 끊겼던 것인데 그야말로 느닷없이 연락을 보내온 것입니다.
퀴니 헤네시의 소식을 들은 모린은 위층에 있는 아들 데이비드의 방으로 올라갑니다. 사실 여기서 작가가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읽다보면 이들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린은 위층 데이비드의 방에 들어가 문을 조용히 닫고 잠시 그 자리에 선 채로 아이를 들이마셨다. (…) 그녀는 데이비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방을 늘 깨끗이 청소해 두었지만, 그날이 언제일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의 한 부분은 늘 기다리고 있었다.(17쪽)” 모린이 아들과 함께 있는 동안 해럴드는 퀴니에게 답장을 씁니다. “퀴니에게, 편지 고마워요. 정말 안타깝네요.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빌며-해럴드(프라이)” 이보다 더 무미건조할 수는 없을 것만 같은 한 줄로 된 답장, 그리고 퀴니의 편지를 보면 퀴니와 해럴드 부부 사이는 특별한 관계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부치러 나간 해럴드가 집근처 우체통에서 편지를 밀어 넣지 못하고 다음 우체통 그리고 우체국까지 지나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간식을 사러 들른 주유소의 아가씨와 편지를 받을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건넨 것도 영국인들의 일상적인 모습일까요? 고모가 암이었다는 소녀가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약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사람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돼요. 인간의 마음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주 많아요. 하지만 있잖아요. 믿음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28쪽)”라고 전한 말이 해럴드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퀴니가 입원하고 있는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해럴드 프라이가 가는 길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내가 구해 줄 거니까. 나는 계속 걸을 테니. 퀴니는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전해주겠어요? (…) 걸어갈 거예요. 사우스데번에서 버윅어폰트위드까지 쭉. 내가 걷고 있는 동안은 반드시 살아있어야 한다고. 이번에는 내가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세요.(33쪽)”라고 하는 것까지는 이해불가입니다. 해럴드는 자신이 퀴니에게 걸어가는 것만으로 그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시작한 걷기입니다. 시내에 나갈 때나 신으면 좋을 보트슈즈에 갈아입을 옷도 없이 편지를 부치러 나가는 간편한 복장으로 말입니다. 휴대폰도 없고 지도나 나침반도 없이 8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이렇게 나서는 해럴드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혹시 집에 돌아가 아내와 상의를 했다가는 아예 출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하지만 정작 모린은 전화를 건 해럴드가 버윅어폰트위드까지 걸어갈 것이라는 말을 하자 “뭐, 버윅에 가도록 해, 해럴드. 그게 당신이 원하는 거라면. 어디 당신이 다트무어를 넘어갈 수나 있는지 알고 싶어―(40쪽)”라고 쿨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해럴드가 걷기를 이어가면서 비용이 문제가 되면서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계산은 다 해 본 거겠죠”라고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퇴직금을 쓰겠다는 해럴드의 말에 반대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지는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걷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해럴드의 계획에 동감하고 응원하는 모습입니다. 정작 해럴드는 자신의 여행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어떤 부인은 <순례자가 되려면>이라는 찬송가를 불러주기도 합니다. 첫날 묵은 호텔에서 만난 웨이트리스나 손님들 모두 해럴드가 떠날 때 그가 여행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걷는 길에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먹을 것과 쉴 곳을 제공하는 모습을 보면 영국 시골의 인심도 참 푸근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유럽 몇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했다는 지인의 여행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는 외지인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행기나 기차로 질 알려진 장소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여행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걷는 일이 별거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매일 10km 정도 꾸준하게 걸어서 휴가기간 중에 모두 100km를 걸었습니다. 걸은 다음 샤워를 하고나면 나른한 느낌에 더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잠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해럴드 처럼 먼 길을 가는 경우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뒤꿈치가 따끔거리고 등이 아팠다. 게다가 발바닥에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주 조그만 돌만 들어가도 아팠다.”는 해럴드의 호소는 애교로 볼 정도일 것입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하면서 만난 여자의 말은 걷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걷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셨군요. (…) 그냥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내놓으면 되는 거라고요. 하지만 본능적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놀라곤 해요.(71쪽)” 먹는 것도 중요하고 잠을 자는 장소도 중요한 일이지요. 결국 해럴드는 노숙을 하고 길에서 먹을 것을 해결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야말로 순례자의 진정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까요?
헤럴드는 걷는 동안 꾸준히 모린과 퀴니 심지어는 그를 걷게 만든 주유소의 소녀에게까지 편지를 쓰고, 모린과 퀴니에게 줄 선물도 사곤 합니다. 그리고 해럴드의 걷기에 대한 모린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씩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린은 해럴드가 퀴니에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받은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과 곧이어 찾아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한 노여움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심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120쪽)”는 표현이 어쩌면 정상적인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내가 데이비드를 위해서 이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121쪽)”라는 해럴드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린의 모습에서 이들 부부 사이에 놓인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느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모린은 걷고 있는 해럴드를 찾아가고, “보고 싶었어, 해럴드. 당신이 집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305쪽)”라면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던집니다. 해럴드 역시 “나도 보고 싶었어. 하지만 모린, 나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평생을 보냈어. 그러다 이제 마침내 뭔가 하고 있어. 나는 걷기를 마쳐야 해. 퀴니가 기다리고 있어. 퀴니는 나를 믿고 있어.”라고 화답을 합니다.
사실 걷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해럴드가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어서 만난 믹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정말로 버윅까지 갈 수 있다고 믿느냐”는 믹의 질문에 “밀어붙이지도 않지만 미적거리지도 않아. 계속 한 발 한 발 걸어가면 거기에 도달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고 대답하는 해럴드는 이제 걷기에 달관한 모습입니다. 그런 믹이 헤어지면서 “그냥 아저씨를 기억하려고” 해럴드의 사진을 찍었는데, 믹이 해럴드의 이야기를 ‘코번트 텔레그라프’에 기고하면서 해럴드는 일약 화제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리고 보면 무엇이든지 꾸준하게 오래하는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해럴드를 따라 버윅까지 걷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누워있는 퀴니의 회복을 위한 성지순례단이 꾸려진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례단의 일정을 해럴드가 아닌 사람들이 결정하고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면 자연히 생길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결국 해럴드는 순례단에서 빠지게 되고, 순례단은 결국 해럴드 없이 요양원에 도착하여 버윅 지역의 유력자들과 매스컴의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요양원에서 순례단에게 따로 관심을 두지는 않는 이유는 나중에 밝혀집니다.
어떻든 순례단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와서 하루, 또는 이틀을 걷다 돌아갔다. 날이 맑으면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었다. 운동가, 산책자, 가족, 낙오자, 관광객, 음악가, 깃발, 모닥불, 토론, 준비운동, 음악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암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일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했다. 후회가 되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가 늘수록 속도는 느려졌다. (…) 속도는 느렸지만 이 집단은 해럴드에게는 낮선, 묘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이제 잡다한 몸통과 발과 머리와 심장이 아니라, 퀴니 헤네시로 묶은 하나의 단일한 에너지라고 말했다.(287-8쪽) 일종의 집단의 힘이라고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이는데서 모이는 힘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됩니다.
걷기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신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헥섬으로 우회하는 문제로 순례단과 결별한 해럴드는 홀가분해졌지만, 정작 버윅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생긴 오한을 견디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동행한 개가 사라지면서 공황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한 확신이 사라집니다. 모린과 통화하면서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자신이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결국 모린의 격려의 도움으로 편지를 부치기 위하여 집을 나선 87일 만에 1000킬로미터도 넘는 길을 걸어서 세인트버나딘 요양원에 도착한 해럴드는 이어 도착한 모린과 함께 퀴니의 죽음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해럴드와 모린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든 문제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눈빛만으로 뜻을 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부부도 대화를 통하여 진심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에 담긴 비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