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을 권함
김한민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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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277쪽)”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시는 위원님 한 분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화첩을 주머니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시는데,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제가 그리기에는 재주를 타고나지 못해서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권고를 제대로 실행에 옮긴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김한민님의 <그림여행을 권함>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림여행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에게 그림여행이란, 대가들의 명화를 찾아다니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낙서라도 직접 끼적거리며 다니는 여행, 그림을 그리면서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르는 여행, 여행 중 어느 날엔가는 과감히 사진기를 숙소에 팽개치고 포켓용 스케치북과 연필만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홀연히 문을 나서는 여행....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림여행이라 부른다.” <그림여행을 권함>은 그런 여행을 통하여 남겨진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여행’을 위하여 특별히 여행을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여행을 하다보면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 따라서 그림과 이야기거리들을 나누다 보니, 작가의 다양한 여행경험들이 뒤섞여 나오는 바람에 읽는 이가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림그리기에 중점을 두어 읽는다면 별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읽는 이가공감하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남미여행 때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에 화장실 하수구에 문제가 생긴 상황을 읽다보니,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서부로 열흘간 여행을 떠나기 전날 쏟아진 폭우에 침실로 물이 스며드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옆집에 뒤처리를 부탁하고 용감하게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물이 넘쳐흐르는 방을 놔두고 한 달간 여행을 나선’ 저자의 찜찜함이 오롯하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기내 생활의 지혜가 있다면, ‘옆좌석에 앉은 사람과는 말을 트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조언도 완전 공감합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던 초반에는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말을 트고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수다를 떨다보면 온몸이 파김치가 되곤 해서, 언젠가 부터는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책에 코를 처박곤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인데, 떠든다고 주변에 앉은 사람들로부터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한 것 같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저자의 그림들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릴려면 이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림들 가운데 글의 분위기를 완전 살리는 대목은 비에 관한 부분입니다. 사실 국내여행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외국여행에서 비가 오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도 긍정적으로 보는 저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비는 모든 관광의 적이라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거나 무료해하지 말자. 한 줄 한 줄 비를 그리다 보면 원치 않아도 어느 새 그쳐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여유일까요?

 

해왜여행에서 자주 부딪히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잠들기일 것입니다. 미국쪽으로 갈때는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유럽 쪽으로 갈 때는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고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잘 안 되는 침대 맡에서의 독서가 여행 중엔 참 잘된다. 몇 페이지 읽다가 그대로 편안히 잠이 들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은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 쪽으로 여행하면서 잠이 오지 않아 들었던 책에 빠져서 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에 잠들기 전 독서에 잘 어울리는 세 사람의 작가들 가운데 눈에 익은 분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94688>로 친숙해진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으려 하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림이 많은 탓에 쪽수를 표시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경우는 여행에 나설 때 들고 가는 노트북에 꼼꼼하게 느낀 점을 적곤 합니다만, 그림에 다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림그리는 여행을 한번 기획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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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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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전작 읽기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파묵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다양한 주제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은 파묵의 오랜 화두인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 이번 작품에서는 동서양의 종교원리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구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세속주의자의 갈등, 쿠르드족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들 사이의 갈등, 민간이 군부와 결탁하여 국지적 구데타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불안한 사회적 구조 등을 그리려다 보니, 이스탄불을 벗어나 아르메니아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도시 카르스를 무대로 삼은 것 같습니다.

 

주인공 카(Ka)는 시인으로 과거 반정부운동에 연관되어 독일로 망명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부음을 받고 12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오는데, 여성들의 연쇄 자살 사건과 진행 중인 시장 선거를 취재하라는 임무를 받고 폭설(Kar)을 헤치며 카르스(Kars)에 도착합니다. 카가 이곳으로 향한 가장 큰 이유는 이루지 못했던 옛사랑 이펙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카르시에서 마치 전염병처럼 일어나고 있는 여성들의 자살사건들은 최근에 읽은 최수철교수님의 소설 <페스트; http://blog.joins.com/yang412/13220780>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세력과 개혁세력 모두 카르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살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원리주의자인 라지베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살은 커다란 죄악입니다! 관심을 가질수록 이 병은 확산되지요!(115쪽)” 자살한 여성들의 뒤를 쫓는 한편 이펙을 만나는 과정에서 교내 ‘히잡’ 착용을 금해 한 여학생을 자살로 몰아넣은 교육원장이 살해되고, 이어서 무대예술가 수나이가 군부-경찰을 주도하여 일으킨 쿠데타에 휩쓸리게 됩니다. 쿠데타 세력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며 카는 두 개의 세력 사이에 끼어든 셈이 됩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우선 카에서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1권이 끝나면서 정작 작가가 카의 친구로 등장하면서 잠시 혼동에 빠지게 됩니다. 오랫동안 시작활동을 접고 있던 주인공은 카르스에서 급변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시적영감이 봇물 터지듯 일면서 시를 이어서 쓰게 되는데, 정작 그 시들을 적은 시작(詩作)노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맙니다. 또한 등장인물 들 사이의 관계 역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면서 이펙과의 사랑을 완성해서 독일로 돌아가려는 카의 생각은 꼬이고 마는데... 이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최근에 읽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 http://blog.joins.com/yang412/13243912>에서 설명하고 있는 비극의 이론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인으로서 느끼는 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파묵 역시 같은 모양입니다. “눈은 항상 도시의 더러움, 진흙, 어둠을 덮어 잊혀진 순수한 감정을 그에게 일깨워줬었다. 하지만 카르스에서 보낸 첫날, 카는 눈과 관련된 이 순수한 감정을 잃어버렸다. 이곳에서의 눈은 그를 지치게 하고, 지겹게 하고, 위축시키는 종류의 것이었다.(1권 22쪽)” 그러면서도 무신론자인 카로 하여금 “눈의 고요함은 나를 신에게 가까이 가게 만드는 것 같아.(93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파묵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교육원장의 죽음처럼 공공의 장소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이라든가, 2권에 등장하는 작가가 카의 유품을 챙기는 과정에서 <순수박물관>에 대하여 언급한다거나하는 등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등장인물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는 여러 차례의 반전을 보이면서 비극적 결말로 치닫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파묵의 전작 읽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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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 - 세계의 고전 사상 7-004 (구) 문지 스펙트럼 4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이상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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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리스 비극의 해석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할 때, 소포클레스 원작을 장 아누이가 해석한 <안티고네>를 공연할 무렵에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던지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 선 크레온왕보다는 인륜을 표방한 안티고네의 편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역시 소포클레스 원작의 <오이디푸스왕>과 연결하여 생각을 해보니 신의 의지에 따라서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해석이 영 마음에 들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고명섭님의 <니체극장; http://blog.joins.com/yang412/12970004>이 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극의 탄생>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세계관에 입각해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해명하고, 이어 바그너 예술을 그리스 비극의 부활로 해석하고 찬양하는 것이 핵심 내용(121쪽)”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 http://blog.joins.com/yang412/13023753>에서는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 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22쪽)”라고 시작하는 ‘음악정신으로부터 나온 비극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본문에는 “결국 우리는 그리스 비극의 근원과 본질은 서로 얽혀 있는 두 개의 예술 충동, 즉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이중성 자체에 있다는 것을 발견(74쪽)”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리스비극을 논한 책들을 읽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을 논한 바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비극이 무대에 올려지던 당시에는 어떤 시각에서 비극을 보고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게 만들었습니다. 이상섭교수님께서 옮긴 텍스트를 선택한 것은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30번 이상을 읽어온 <시학>을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롭게 느끼는 점이 많았다는 옮긴이의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근세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학이론의 고전으로 여기는 책이라고 합니다.

 

“나는 일반적인 의미의 시 창작 기술, 시의 여러 종류, 그들 각각의 본질적 기능들을 논의하고, 시 창작에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플롯 구성의 방법을 설명하고, 시를 이루는 부분들의 수와 성질을 가려내고, 기타 이 연구에 관련된 여러 문제를 취급하려고 한다.(15쪽)”고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예술 활동 전반이 인간의 모방 본능에 뿌리박고 있다는 유명한 모방설로부터 논술을 전개하는데, 모방의 수단·대상·방법에 의하여 예술의 장르가 나누어지는 것을 설명하고, 여기에 따라서 연극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비극은 플롯, 성격, 언어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그리고 노래 등, 여섯 가지의 요소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 요소 가운데 플롯이 비극의 구성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플롯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1장에서는 ‘뒤바뀜과 깨달음’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어떤 사람이 오이디푸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켜주려고 오지만 그는 본의 아니게 오이디푸스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42쪽)”는 설명은 뒤바뀜의 역할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러한 뒤바뀜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점을 이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작가들의 특징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우리피데스의 인물들은 일상적 현실을 반영하는 데 반하여, 소포클레스는 자기 인물들을 당위성에 따라, 즉 있어야 할 모습대로 그렸다고 했다.(87쪽)”

 

이상섭교수님은 본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주석을 달아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 왜 그리스시대의 작가들은 인간은 신의 의지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그리스비극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더 찾아 읽어봐야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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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적게 써도 행복해지는 소비의 비밀
엘리자베스 던, 마이클 노튼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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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사는 3선에 성공한 메르켈 독일총리의 고민을 전하고 있습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한 나라의 성과를 재는 척도로선 문제가 많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메르켈 행복 독트린’의 근거가 되었던 “‘돈=행복’이란 등식이 꼭 성립하는 것만은 아니다”는 ‘레이어드 가설’이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238737). 인간의 물질적 욕망엔 이른바 ‘만족점(satiation point)’이 있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 가설의 핵심인데, 레이어드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기준 1만5000달러(약 1650만원)를 만족점으로 제시했다가 몇 년 전에는 2만 달러로 상향 조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미시간대학 경제학과의 저스틴 울퍼스교수와 베시 스티븐슨교수는 실제 조사해보니 만족점은 존재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감은 커진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던교수와 마이클 노튼교수의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역시 돈과 행복의 관련성을 소재로 한 17,000건의 논문을 조사했더니 대부분 소득이 늘어나도 의외로 행복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과연 행복을 돈으로 사는 일이 불가능할까?’하는 의문을 두고 연구를 해본 결과 돈을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좀 더 행복한 방식으로 지출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행복한 지출’에 관한 연구를 벨기에부터 동부 아프리카에 이르는 세계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확대하여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려 노력하였고, 그 결과를 이 책에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돈만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행복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소득보다는 지출습관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행복을 담보하는 지출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체험을 구매하라, 2. 특별하게 만들어라, 3. 시간을 구매하라, 4. 먼저 돈을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5.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라. 원칙만을 보면 알쏭달쏭하게 보입니다.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예쁜 볼펜, 근사한 주택 등)보다 체험적인 것(여행, 콘서트 관람, 특별한 저녁식사)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2달러를 쓰던 20만 달러를 지출하던, 물질적 구매보다는 체험적 구매를 하는 경우에 구매자가 후회하는 경우가 적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그 체험이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나는 체험이라 고 하더라도 언제든 가능한 조건이라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 좋아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특별한 체험으로 바꾸게 된다면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닌 시간에 초점을 맞춰야 행복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과중한 업무로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돈으로 보상하는 것보다는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소비가 일어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면 즐거움이 배가 되는데, 더하여 당장 돈을 내는데 따른 고통 때문에 과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추가적인 이익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하여 지출을 하는 경우보다 타인을 위하여 지출하는 경우에 행복감을 훨씬 더 느낀다고 하는데 이런 베풂의 혜택은 두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에필로그에서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출을 통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우선시되는 방법은 먼저 시민들이 어느 정도 안정된 소득을 벌어들이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소득의 분배가 개선될수록 시민들의 행복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부유하든 빈곤하든 시민들의 행복수준은 상대적 소득격차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국가의 정책도 앞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는 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감 이외에도 다양한 조언을 참고하면서도 돈을 쓰는 일은 직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잘 써서 보다 행복해지는 길 역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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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바람 그리고 사막 - 미국 서부 횡단 김영주의 '길 위의' 여행 1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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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횡단’이라는 막연한 부제를 보고서 선뜻 읽기로 한 책입니다. 서부라 하면 시애틀에서 샌디에고까지? 아니면 조금 더 써서 요세미티 국립공원 정도일까 싶었습니다만, 의외로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에 흩어져 있는 볼거리를 잇는, 그러니까 미국의 남서부를 꿰는 여행이었습니다. 사실 이 곳은 여름에 여행하기에 쉽지 않은 코스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코스를 결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볼거리를 모두 이어붙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은 버릴 것은 버리고 볼 것은 확실하게 챙긴다는 전략으로 가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여행기를 읽어도 새로운 구석은 있기 마련입니다.

 

여행작가 김영주의 서부여행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유타-네바다-캘리포니아의 6개 주를 관통하는 코스는 위험하다고 힘들다고 모두가 말렸다고 하는데, 그리고 보니 이 지역은 1993년에 저도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로 달렸던 코스와 많이 겹치는 것 같습니다. 당시는 여행코스에 대한 자문해주는 미국 친구들이 많지 않았지만 누구도 위험하다고 말리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성 혼자서 가는 길이라서 걱정하는 마음이 얹혀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가 미국을 여행할 때는 코스와 하루 이동거리만 정하고 숙소는 현지에서 결정하는 식이었습니다만, 저자는 사전에 전체 코스를, 숙소는 물론 볼거리까지 미리 예약하는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 것이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약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일 그곳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긴 제가 여행하던 1990년대에는 인터넷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트리플A에서 나온 여행정보와 지도를 바탕으로 볼 곳을 고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놓친 볼거리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정보가 넘치기 때문에 오히려 코스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미리 목적지를 입력하면 교통상황까지 고려하여 운전을 유도해주지만 그때는 누군가 지도를 읽으면 코스를 확인해주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빠져서 헤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도를 읽어주는 사람과 미리 코스를 확인하고 이동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여행 이야기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계기가 되었지만 여행길에는 다양한 가수의 노래들이 함께 하고, 그 내용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뿐만 아니라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읽을거리에서 뽑아낸 이야기 거리가 여행지와 잘 엮어서 작가의 여행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주로 미국 가수들의 CD를 들고 가셨던 모양입니다만, 제 경우는 양수경씨, 노영심씨, 노사연씨, 심신씨(작은 아이가 좋아하던) 등의 CD도 아니고 테이프를 주로 틀면서 “계속 근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곤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저자는 크루즈운전에 익숙하지 않아 고생한 모양입니다만, 지평선으로 빨려가는 것처럼 변화가 없는 미국의 주간국도를 운전할 때 크루즈기능을 활용하면 액셀을 계속 밟고 있어야 하는 오른쪽 다리를 편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차량에 따라서는 언덕을 올라갈 때 부스터기능이 작동하면서 RPM이 갑자기 상승하기 때문에 언덕길에서는 크루즈 세팅을 풀지 않고서도 액셀을 지긋하게 밟아 속도를 높여 부스터가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센스를 더하면 지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여행코스 가운데 제가 가보았던 곳은 화이트 샌드, 그랜드캐년, 모뉴먼트 벨리 정도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곁들여 그녀와 같이 하는 여행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여행기에 다양한 색깔을 입혀준 읽을거리를 발견한 것도 좋았습니다. 사실 1990년대에 돌아보았던 미국여행기를 회고해보려고 준비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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