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여행을 권함
김한민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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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는 러스킨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심리적이고 시각적인) 요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에 관해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해서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알랭 드 보통 지음, 여행의 기술, 277쪽)”라고 하였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시는 위원님 한 분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화첩을 주머니에 항상 넣어가지고 다니시는데,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제가 그리기에는 재주를 타고나지 못해서 아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랭 드 보통의 권고를 제대로 실행에 옮긴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김한민님의 <그림여행을 권함>입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그림여행을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에게 그림여행이란, 대가들의 명화를 찾아다니는 미술관 투어가 아니다. 하잘것없어 보이는 낙서라도 직접 끼적거리며 다니는 여행, 그림을 그리면서 긴장을 풀고 숨을 고르는 여행, 여행 중 어느 날엔가는 과감히 사진기를 숙소에 팽개치고 포켓용 스케치북과 연필만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홀연히 문을 나서는 여행....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림여행이라 부른다.” <그림여행을 권함>은 그런 여행을 통하여 남겨진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림여행’을 위하여 특별히 여행을 기획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여행을 하다보면 부딪힐 수 있는 상황에 따라서 그림과 이야기거리들을 나누다 보니, 작가의 다양한 여행경험들이 뒤섞여 나오는 바람에 읽는 이가 헷갈릴 수도 있겠지만, 그림그리기에 중점을 두어 읽는다면 별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읽다보면 읽는 이가공감하는 상황을 만날 수도 있겠습니다. 남미여행 때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에 화장실 하수구에 문제가 생긴 상황을 읽다보니,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한국에서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서부로 열흘간 여행을 떠나기 전날 쏟아진 폭우에 침실로 물이 스며드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옆집에 뒤처리를 부탁하고 용감하게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물이 넘쳐흐르는 방을 놔두고 한 달간 여행을 나선’ 저자의 찜찜함이 오롯하게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그런가 하면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기내 생활의 지혜가 있다면, ‘옆좌석에 앉은 사람과는 말을 트지 않는 것이 편하다.’는 조언도 완전 공감합니다. 해외여행에 나서던 초반에는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말을 트고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수다를 떨다보면 온몸이 파김치가 되곤 해서, 언젠가 부터는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책에 코를 처박곤 하는 버릇이 생긴 것인데, 떠든다고 주변에 앉은 사람들로부터 눈칫밥을 먹지 않아도 되니 참 편한 것 같습니다.

 

책에 실려 있는 저자의 그림들은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릴려면 이 정도는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주눅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림들 가운데 글의 분위기를 완전 살리는 대목은 비에 관한 부분입니다. 사실 국내여행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외국여행에서 비가 오면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도 긍정적으로 보는 저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비는 모든 관광의 적이라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거나 무료해하지 말자. 한 줄 한 줄 비를 그리다 보면 원치 않아도 어느 새 그쳐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여유일까요?

 

해왜여행에서 자주 부딪히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잠들기일 것입니다. 미국쪽으로 갈때는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유럽 쪽으로 갈 때는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지고 새벽같이 눈이 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잘 안 되는 침대 맡에서의 독서가 여행 중엔 참 잘된다. 몇 페이지 읽다가 그대로 편안히 잠이 들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은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미국 쪽으로 여행하면서 잠이 오지 않아 들었던 책에 빠져서 밤을 하얗게 새운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에 잠들기 전 독서에 잘 어울리는 세 사람의 작가들 가운데 눈에 익은 분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94688>로 친숙해진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으려 하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림이 많은 탓에 쪽수를 표시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 경우는 여행에 나설 때 들고 가는 노트북에 꼼꼼하게 느낀 점을 적곤 합니다만, 그림에 다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림그리는 여행을 한번 기획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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