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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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의 기틀을 다진 15세기에 이어진 16세기에 조선왕조는 두 차례의 큰 위기를 맞게 된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위기는 16세기의 벽두를 흔든 연산군의 폭정(1494~1506 재위)입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황제의 폭정은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인데, 조선왕조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민음한국사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의 서에서는 명군 세종의 핏줄을 이었을 것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살육극을 펼친 연산군에 대항하여 사대부들이 선택한 길은 왕조의 철폐가 아니라 왕조는 유지하면서도 임금을 바꾸는 반정 카드를 선택한 것이 왕조가 위기를 넘기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말로 치면 직업관료라고 할 사대부들이 수명이 다했다고 볼 수도 있는 왕조를 연명하도 한 것은 조선왕조를 세운 철학적 배경이 된 성리학이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성리학은) 왕권을 뒷받침하는 도구인 동시에 사대부가 왕권을 제약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게 할 도구이기도 했다. 연산군을 쫓아낸 사대부들은 굳이 새로운 왕조나 귀족 공화국을 세울 필요 없이 조선 왕조를 이용해 그들의 세상을 열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사회의 특성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리학은 정작 처음 시작한 중국에서는 그 한계를 논하는 양명학이 등장하여 위기를 맞기도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권력이 황제에 집중되는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조선에서는 이러한 군주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군주가 성리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권력을 사대부들과 공유함으로써 군주제의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리학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연구하는 기관으로 설립된 서원을 중심으로 입지를 확보하게 된 사림들이 성리학적 가치를 극대화하기에 이르렀고, 성리학은 우주의 원리를 논하기에 이르는 등, 중국에서 시작한 성리학은 조선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것이라 합니다.

 

조선 왕조가 16세기에 맞은 두 번째 위기는 세기말에 일어난 임진왜란입니다. 어쩌면 태풍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원나라 시절에 조선과 합동작전으로 벌였던 일본정벌 이후에 벌어진 동아시아지역에서 일어난 두 번째 국제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는 국제전이라는 의미는 3개 국가 이상이 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친다면 말입니다. 그 전에는 삼국시대에 수나라와 고구려,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벌어진 국소전이나,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왜군이 백제를 도와 연합군에 대항한 것을 국제 전쟁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였는지는 분명치 않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왜군에 압록강까지 일방적으로 밀려났던 조성왕조가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는 걸출한 무장이 왜군의 북상을 남해안에서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었던 것과 각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약으로 보급선이 늘어난 왜군을 곤경에 빠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년 시작한 전쟁이 정유년에 다시 불붙어 마무리되기까지 왜와 명나라 사이에 진행된 협상 테이블에 조선의 자리는 없었다는 것이 불행한 일이었지만, 왜가 물러나면서 조선은 한 세기에 생긴 두 차례의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전말을 소상하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왜란의 경과와 의미를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색당쟁으로 조선의 정치구조가 무너져내렸다고만 알아왔던 부분에 대하여도 조선의 사대부들이 만들어낸 붕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읽을 수 있습니다. “1583년을 즈음해 조성에는 학통, 학문적 입장, 그리고 지역적 기반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붕당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두 개의 붕당은 그 출현에서도 보았듯이 사림정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고, 사림 정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향하면서 공론에 따라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며 국정 운영의 동반자가 되었다. (…) 중국에서 같은 시기에 붕당이 거의 기능하지 못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조선이 선택한 길은 왕정 체제에서 신하들의 참여를 극대화함으로써 왕정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었다.(187쪽)”

 

이처럼 민음한국사는 지금까지의 우리역사 해석방식과는 차별화된 관점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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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이야기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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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단테의 <신곡>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만, 고전작품을 읽다보면 전체 플롯을 따오거나, 아니면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신화를 인용하여 비유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기 때문에 진즉 읽어뒀어야 하는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늦었다 싶을 때가 바로 해야 할 때라고 하던가요?

 

<지중해 신화; http://blog.joins.com/yang412/13181355>를 읽고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신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구전으로 전해오면서 새롭게 해석되거나 새로이 보태지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민족의 이동과 접촉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단들이 유사한 신화를 가지기도 하고, 배경이 서로 다른 신화가 융합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흔히 그리스․로마 신화라고 부르기는 합니다만, 한 대균교수님 같은 분은 진정한 의미의 로마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리스 신화를 자신들에 맞게 만들어 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을 읽다; http://blog.joins.com/yang412/12358459> 이와 같은 작업은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변신이야기>를 번역하신 이윤기교수님은 “오비디우스의 이 <메타모르포시스>는 한술 더 떠서 방대한 그리스 신화는 물론 당시에 떠돌던 소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戰史),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한 줄에 꿰어 아우구스투스에게 신성(神性)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비디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으로 유배를 당하고서 <변신이야기>를 집필을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랑의 기술>을 써서 유명해진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풍속을 새롭게 하려는 아우구스투스의 뜻과는 달리 방탕한 생활을 하던 딸 율리아를 찬양하였을 뿐 아니라 손녀딸 율리아의 애인 노릇까지 해서 아우구스투스의 분통을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이윤기교수님은 <변신이야기>야말로 로마판 용비어천가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변신이야기>는 카오스로부터 천지가 창조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거인족의 시대를 건너뛰면서 신들이 등장하고 인간과 요정이 만들어져 뒤섞여 살게 된 이야기를 설명하고, 순서대로 신들의 전성시대를 거쳐 인간의 무리가 커지면서 신들과 인간이 갈등을 빚는 시기의 이야기를 거쳐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를 거쳐 트로이 전쟁을 끝으로 그리스의 문명이 끝나고 트로이 유민이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로마를 세우는 과정, 카에사르를 거쳐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하는 데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윤기 교수님께서는 변형(變形), 변신(變身) 혹은 변모(變貌)로 번역되는 <변신 이야기>의 원제목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는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만, 생물학적으로는 한자어 그대로 이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다거나,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도 변태의 좋은 예가 됩니다. <변신 이야기>의 등장인물 가운데, 유독 신들이나 신성을 가진 존재들이 모습을 바꾸는 이야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신중의 신 유피테르(그리스식으로는 주피터신이죠)의 경우 신이나 인간이나를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여성만 보면 아내인 유노(그리스식으로는 헤라여신이죠)의 눈을 피해 관계를 가지곤 하는데, 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접근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예를 들면, 에우로파를 유혹하기 위하여 흰 소로 변해서 에우로파를 태우고 바다를 헤엄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용이 나타나서 여인을 범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아이를 가졌을 때 이웃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위하여 지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만, 신이라는 존재가 신분이 귀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일 것 같습니다.

 

어찌됐거나, 아는 이야기도 있고, 잊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전체를 로마신화를 전체적으로 개관하였으니, 가끔은 인용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예를 들면 태양신 헬리오스의 마차를 몰아보겠다고 욕심을 냈다가 유피테르의 번개를 맞고 죽음을 맞은 파에톤의 이야기는 곧 시작할 여행기에서 꼭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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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린저 평전 - 영원한 청춘의 상징,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케니스 슬라웬스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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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대표작 <호밀밭의 파수꾼; http://blog.joins.com/yang412/13330946>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추천되는 필독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1951년 출간되어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책이 꾸준하게 주목을 받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나온 책에는 작가의 이름과 책 제목만 적혀있을 뿐이며, 띠지에 젊은 시절의 작가의 사진이 곁들여져 있고, ‘1951년 출간된 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정신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작’이라는 카피가 눈에 띌 뿐 뒷표지에 나열되는 추천의 글이나 옮긴이의 해설, 심지어는 작가의 연보마저도 생략되어 있는, 읽는 이를 위한 서비스정신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불친절한 편집입니다. 아무리 문학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전적으로 읽는 이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된다고 해도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안내는 필요한 것 아닐까요?

 

위키백과사전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줄거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크리스마스 휴가 바로 전에 펜시 고등학교에서 쫓겨난 홀든의 72시간, 3일의 생활을 다룬다. 이미 여러 학교에서 쫓겨났고 부모님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홀든은 학교를 일찍 떠나고 뉴욕 시에서 홀로 며칠을 보내기로 하지만, 뉴욕에서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다. 끝에서 독자는 홀든이 자신의 심리학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텍스트의 서두부분에서 “이건 전부 형인 D. B에게 털어놓았던 이야기이다. 형은 할리우드에서 살고 있다. 그곳은 이 지저분한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고, 형은 주말마다 나를 만나러 오곤 했다.(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호밀밭의 파수꾼, 10쪽, 민음사, 2001년판)”라고 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많은 것을 묻고 있다’라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홀든은 지난해부터 형이 살고 있는 할리우드 부근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아왔음을 유추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정신과를 전공하지 않아서 놓쳤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2박 3일 동안 홀든의 행적에서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이는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퇴학사실이 집으로 알려지게 되면 아버지로부터 야단을 맞을 것으로 두려워하는 점이라거나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퇴학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등 때문에 홀든이 정신과치료를 받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반 질병으로 치료받은 사실도 개인의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물며 정신과진료 이력은 피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원에 1년 이상 입원치료를 받게 된 배경이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는 점이 저에게는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남았던 많은 의문은 결국 <샐린저 평전>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게 하였습니다. 1919년 1월 1일 뉴욕에서 태어난 샐린저는 2010년 1월 27일 오랫동안 은거하던 뉴햄프셔주 코니시에서 타계했습니다. 92세에 이르도록 장수하였음에도 1948년부터 1959년 사이에 발표된 1편의 장편소설과 13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는 1965년 이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세인의 눈을 피해 코니시에 은거하여 살았다고 하는데, 자신의 삶이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극단적으로 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린저 평전>의 저자 케니스 슬라웬스키는 샐린저가 타계하기 이전부터 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해왔다고 합니다. 샐린저가 데뷔할 무렵에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책이 정보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세인의 관심을 벗어나기 위한 샐린저의 노력이 어느 정도는 통할 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의 발달은 이런 노력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슬라웬스키가 샐린저에 관한 웹사이트를 7년 동안 유지하고, 그 노력의 결실로 <샐린저 평전>을 낼 수 있게 된 것도 인터넷의 확산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샐린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처럼 샐린저의 학창생활은 홀든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와중에서도 샐린저 가족은 부를 쌓아 사회적 지위를 높여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제롬은 웨스트사이드의 공립학교에서 YMCA가 운영하는 맥버니학교로 전학하였고, 여기에서 연극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을 뿐 아니라 펜싱부의 주장을 맡기도 했다고 합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지하철에서 펜싱장비를 잃어버리는 일을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은 퇴학처분을 받게 되면서 벨리 포지라는 사관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이 곳은 홀든이 다니는 기숙학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합니다. 홀든과는 달리 제롬은 벨리 포지를 졸업하고 뉴욕대학교, 어시너스 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특히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스토리>의 편집자인 휘트 버넷이 가르치는 단편소설 작법 수업과 시인이지 극작가였던 찰스 핸슨 타운의 시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버넷은 샐린저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였고, 샐린저는 휘트 버넷을 정신적 지주로 삼게 되었다고 합니다.

 

버넷이 샐린저의 재능을 키워가는 과정도 주목할 만합니다. “휘트 버넷은 샐린저를 응석받이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월요일 수업 때 매번 뒷줄에 앉아 있던 청년에게서 문학적 천재성을 발견하고, 곧장 명성을 안겨 준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버넷은 샐린저 스스로 성공을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정신적 지주로서 버넷은 자기 제자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스승으로서는 자기 제자가 먼저 다른 방법들을 모두 시도해 보기를 바라고 있었다.(53쪽)” 멘토가 멘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범을 보는 것 같습니다. 버넷의 뒷받침으로 샐린저는 1940년 1월 잡지 <스토리>에 ‘젊은 친구들“이라는 단편이 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듬해 9월에는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에 ’부서진 이야기의 핵심‘이 실렸고, 10월에는 그가 목표로 삼았던 <뉴요커>에 ’매디슨에서 시작한 작은 반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작품은 홀든 모리시 콜필드라는 뉴욕출신의 불만 가득한 청소년이 등장하는 자전적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밑그림이 그려진 것입니다.

 

이 무렵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휩쓸리면서, 샐린저도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 무렵만 해도 자신의 작품이 잡지에 실릴 수 있도록 다양한 궁리를 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의 작품을 할리우드에 팔아볼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 관심을 두고 있던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의 관심을 끌어서 좀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무렵 샐린저는 어느 정도 상업주의에 경도되고 있었는데, 군복무와 글쓰기를 병행하기에 가벼운 작품을 쓰는 것이 더 쉽고 고료도 좋았다는 것입니다. 1944년 1월 29일 조시워싱턴호를 타고 영국의 리버풀에 도착한 미군부대에는 샐린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샐린저의 독일어와 프랑스어 구사능력은 그를 방첩부대에 배속하게 하였고, 전투 중 첩보활동, 사병대상 안보교육, 점령지 수색, 적군 및 민간인 탐문 등의 활동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치열해지다 보면 전장 한 가운데 서있게 되고, 전쟁의 참혹한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참전경험은 그를 변하게 했는데, 어렸을 때보다 더 거칠어졌고, 덜 섬세해졌다고 합니다.

 

전투의 사이사이에 작품쓰기를 계속했는데, 그 배경에는 대학시절부터 그의 글을 보아온 휘트 버넷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 단편만 쓰고 있는 샐린저에게 장편소설을 써보라는 버넷의 격려에 힘입어 샐린저는 조각조각 나누어서 글을 쓰는 방법을 택하여 길이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체를 엮으면 하나의 장편이 될 수 있는 단편을 쓰는 방식입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많은 참전용사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는데, 샐린저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모든 참전 용사들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했습니다. 특히 1950년 4월 <뉴요커>에 실린 ‘에스메를 위하여: 사랑과 누추함을 담아’라는 작품은, 2차 세계대전 후 참전 용사들이 겪고 있던 트라우마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참전 당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들이 고통스럽게 견뎌낸 일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힘에 대하여 이야기하려고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전쟁 경험이 던진 질문들, 삶과 죽음의 문제, 신의 문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그 깨달음이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 “누구에게든, 무슨 이야기든 하지 말기를. 그러면 모든 이들이 그리워지지 시작할 테니까”에 녹아 있다고 했습니다.

 

잡지 <뉴요커>는 샐린저의 글에서 문장의 정확함, 특히 자연스럽게 흐르며 소리 내 읽었을 때도 듣기에 좋은 대사를 써내는 능력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만, 샐린저가 써낸 많은 단편들은 <뉴요커>를 비롯한 다른 잡지들에서도 거절되기 일쑤였고, 이렇게 거절된 작품을 손을 보아 다른 잡지사에 보내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고 합니다. 1944년 휘트 버넷의 격려로부터 영감을 얻은 <호밀밭의 파수꾼>은 1년여의 작업 끝에 1950년 가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르너 풀트가 쓴 <금서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273020>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1951년 런던에서만 출간될 수 있었고, 미국에 수입된 책이 더 이상 압수당하지 않게 되자 1958SYS에 뉴욕출판사가 미국판 출간을 감행했다고 하였는데, <샐린저 평전>에서는 1951년 7월 16일 미국과 캐나다에서 동시에 출간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하더라도 미국내 도덕주의자들의 잣대는 피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특히 열여섯살 소년이 지나치게 음란한 언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우연히 만난 창녀에게 동정을 잃었다는 부분이나, 술집을 전전하면서 꽤 많은 술을 마시는 등의 행위는 청소년이 본받을 만한 모범이 아닐 뿐 아니라 금지된 사항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호밀밭의 파수꾼>이 중학교 학생들의 필독도서로 읽도록 권장되고 있는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샐린저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홀든은 어른들 뿐 아니라 또래의 젊은이들 역시 속물이라고 경멸하고 스스로를 소외시키려 할 뿐 아니라 미래에 자신과 같은 위기를 맞게 될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역할, 즉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줄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뉴욕에 도착한 홀든은 자신이 비난하는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가고 있어, 얼핏 보면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작품을 통하여 이중적 구조들, 예를 들면 위선과 환상을 상징하는 상류층 기숙학교와 부유한 이스트사이드 아파트와 대비되는 허름한 에드먼드 호텔과 홀든이 하루 밤을 보내는 그랜드센트럴역 대합실, 기숙학교를 떠나면서 찾는 스펜서 선생님 댁의 조촐하고 검소한 집과 동성애적 접근으로 홀든을 놀라게 하는 앤톨리니 선생님의 화려한 아파트 등입니다. 이렇듯 대조적인 상황이 교차되는 것은 아직 성장기에 있는 젊은이가 어디를 택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작가로 자리 잡은 샐린저는 작품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자신의 견해를 앞세워 편집자를 곤혹스럽게 하곤 했다고 하는데, ‘프래니와 주니’의 표지에 적은 “작가가 글을 쓰는 동안 익명성을 유지하고 세상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그에게 두 번째로 소중한 가치일 것 같습니다. 이게 저의 불온한 생각입니다.”라는 글을 보면 샐린저가 뉴햄프셔주의 코니시에 은둔하게 된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샐린저 평전>의 후반부는 어떻게 하면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볼까 애를 쓰는 작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는 샐린저의 극단적인 노력을 적고 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여전히 젊은 세대들에게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의심의 눈초리로 부모세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홀든이 더 이상 기이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구세대를 가르는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하는 것이 좋은지를 안내하는 작품은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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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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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한국사 시리즈로 내놓은 첫 번째 책입니다. 책표지에 실린 기획의도를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혼란에 빠져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고개 돌려 뒤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은 과거가 단지 슬러간 시간만이 아니라 사람살이의 온축된 지혜이자 훌륭한 경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는 과거를 반복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의 문제를 담아 새로운 과거로서 쓰여야 한다.” 모두 열여섯 권으로 기획된 민음 한국사는 다섯 권의 고대편에 서기전부터 9세기, 즉 통일신라 이전의 시기를 정리하고, 이어서 다섯 권으로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고려편을 그리고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조선편을 그리고 마지막 현대편에서 20세기를 다루게 된다고 합니다. 역사책을 100년 단위로 끊어서 기록하는 것도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시리즈 가운데 조선사를 먼저 보면서 6부작 시리즈를 4부에서 시작한 스타워즈 시리즈 생각을 했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후반부에서 시작한 것은 제작을 시작한 1977년 당시에는 에피소드1,2,3편에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씬을 실감나게 할 수 있는 기술이 충분하지 못한 것과,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는 4편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민음 한국사 시리즈를 조선조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료와 연구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21세기 오늘의 현실적 관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학생 때 국사와 세계사를 따로 배우면서 느꼈던 점은 서로 연결되지 않아 세계사 속의 한국사, 심지어는 이웃한 아시아 역사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던 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민음 한국사는 세기를 새로운 서술 단위로 삼으면서 한국사의 큰 주제와 흐름을 종합적으로 조감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세계사의 흐름을 같이 짚어가면서 한민족만의 일국사적 성격을 넘어 tpraP사적 시각 위에서 한국사를 조망함으로써 사상과 문화의 교류, 산업과 전쟁 등 세계와 주고받으며 우리를 만들어온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15세기의 한국사를 열면서 저자들은 정화의 대항해로부터 이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화포와 인쇄술, 나침반과 대항해시대로 이어가면 지구적 변화를 같이 짚어보고 있는데, 이 시기를 “15세기의 세계는 몽골 세계 제국의 유산 위에서 전개되었다. 14세기 후반부터 세계 제국이 쇠퇴하자, 제국의 일부였거나 제국의 영향 아래 있던 각 민족은 저마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했다.(27쪽)”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나라가 멸명하고,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가, 중앙아시아에서는 티무르 제국이, 그리고 서아시아에서는 오스만튀르크가 세력을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서 15세기 유라아시아 대륙에서 어떤 사건들이 진행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별도의 지면을 나누어 15세기에 일어난 나라들을 지역별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말레이 반도에 믈라카 왕국(1402~1511), 유구왕국(1429~1879), 남아메리카지역의 잉카제국(1438~1533), 이베리아반도의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Z(1476~ ) 등입니다. 이어서 조선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1402년(태종 2년)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원나라에서 들여온 자료를 참고하여 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인 세계관에 이슬람지역의 지식까지 담아낸 놀라운 작품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1392년 개국을 한 이래 권력의 안정화를 꾀하면서 영토의 경계를 확장하고, 이어서 통치체계를 구축하는 과정, 농업, 천문, 예악의 정비하고 특히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를 창제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이론을 주장하기보다는 다양한 학설을 검토하고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설로 이끌고 있어 읽는 사람 역시 나름대로의 판단을 할 여지를 두고 있습니다.

 

태조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시기에 조선왕조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특히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 대한 저자들의 냉정한 판단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15세기 중반 조선의 상황은 멀리 중국 고대 국가 주의 초기와 매우 비슷했다. 그때 주공(周公-주 무왕의 동생)은 어린 조카 성왕을 보필해 나라의 기틀을 잡은 뒤 깨끗이 물러남으로써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단종의 숙부는 끝내 윤리나 이성으로 정치적 야심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조선 시대 유일한 찬탈 군주가 되고 말았다.(184쪽)”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의 근원을 요즘말로 하면 보수와 진보라고 할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이라고도 하는데, 그와 같은 관점을 바꾸어야 할 점이 있을 듯도 합니다.

 

요약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세계사와 연계하여 세계사 안에서 우리나라의 위치를 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히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은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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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면으로 읽는 세계 명작선 2
알퐁스 도데 외 지음, 박정임 옮김 / 부광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꽤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이라서 이 책을 읽으려고 한 이유를 잊어버렸습니다. 어쩌면 프루스트 읽기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아무리 목차를 들여다보아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프루스트를 다시 읽다보면 기억이 날 것 같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인 까닭에 일부분이라도 읽어볼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인 이 책에서는 모두 9명의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생소한 작품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분량이 제한되어 있는 탓에 각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오랜 기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대목을 중심으로 발췌 번역을 했기 때문에 한 권의 가벼운 분량으로 다양한 작품들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옮긴이가 마지막 작품 <한 줌의 흙>을 소개하면서 작가 헨리 반 다이크가 뭔가 이야기가 머리에 떠오르면 노트에 적어두고 식탁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이 대목은 이 책을 읽는 독자층이 바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가 될 것을 상정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는 천재성을 어떻게 키워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작곡에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지만, 그의 삼촌은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쓴 거야. (…) 음악의 세계에서는 교만해져서 거짓말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아. 음악은 겸손하고 성실해야만 돼. 그렇지 않다면 음악이란 신에 대한 불신이고 신을 모독하는 거야.(46쪽)‘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발췌한 내용이 지나치게 축약되어 이야기의 핵심파악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페인의 소설가 비센테 블라스코 이바녜스의 <다랑어 낚시>는 어느 해 다랑어 잡이가 호황을 이루자 배를 산 어부가 뒤이어온 흉어기를 버티기 위하여 아홉 살짜리 아들을 배에 태우고 먼 바다에 나갔다가 만난 커다란 다랑어를 잡아올리는 과정에서 아들을 잃고 만다는 이야기인데, 돌아온 배에서 아들을 발견하지 못한 어머니가 발작하듯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죽었어.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갔어. 나도 머지않아 그곳으로 가겠지. 바다로 먹고사는 우리들은 어차피 바다에 먹힐 운명이지. 어쩔 수 없는 거야. 태어난 사람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잖아.(72쪽)“라고 체념한 듯 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절절한 아픔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겠지요.

 

학교에서 친구의 나이프와 은화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고 신체검사를 받게 된 슈라의 억울한 사정을 그린 미하일 숄로호프의 <신체검사>에서도 엄마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구나. 좀 더 크면,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는 더 지독한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단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이 있으니까(90쪽)”라고 위로 같지도 않은 말로 아들을 달래야 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외지로 떠난 페르디난트 삼촌이 돈을 많이 벌어올 것이라고 믿는 크누트의 이야기를 담은 크리스찬 엘스터의 <페르디난트 아저씨>도 결말 부분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찾아온 페르디난트는 2천 크로넬을 맡기고는 다시 고향을 등지고 마는데, 고향에 찾아온 이유도, 다시 고향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벤저민 플랭클린의 <나의 소년시절>은 그의 <자서전>의 일부이며, 아나톨 프랑스의 <어머니 이야기>는 그의 소설 <피에르 노젤>의 일부라고 합니다. 전체 이야기를 발췌하여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일부만 골라서 제목도 다르게 소개하고 있어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전체가 아닌 일부의 이야기를 통하여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책읽기에 경험이 별로 없는 탓이지 싶으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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