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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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을 읽고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를 위한 책으로 많은 미술관련 책들 가운데 필독서를 골라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약한다는 표현보다는 그 책이 다루는 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까지 버무려 놓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는 <미의 역사> 그리고 <추의 역사>와 함께 이진숙님이 고른 62권의 책들 가운데 포함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궁극의 리스트>는 꼬리를 무는 책읽기의 사례가 되는 셈입니다.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과난 일련의 회의, 전시회, 공공낭독회, 콘서트, 영화 상영 등을 조직해 달라며 초대했을 때(7쪽)”, 제안한 주제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특정한 분야의 목록을 길게 열거하는 경우를 간혹 만나게 됩니다만, 에코가 엄선한(?) 목록에서처럼 방대할 줄을 몰랐습니다. 저자는 헤파이토스가 만들었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로부터 목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까지 이르게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헤파이토스는 거대한 방패를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다양한 사물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대지와 우주, 인간이 사는 두 도시, 농경지와 포도밭, 양을 치는 목장의 모습 등 너무나도 많은 장면을 설명하고 있어 이러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방패는 쉽게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헤파이토스의 방패를 화제로 삼은 그림 3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림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다양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목록을 주제별로 모아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작품 속의 목록을 인용하는 동시에 그 목록과 관련이 있는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시 예술작품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였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 때문인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예술작품들 가운데 다 빈치의 <모나리자>, 파올로 칼리아리의 <가나의 혼례>처럼 제가 알만한 작품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목록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이런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본질적으로 정의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그것의 속성들을 목록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목록은 유한할 수밖에 없어 무한한 속성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기원전 9세기의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무려 182행을 할애하여 트로이아를 압박하는 그리스군의 모습을 기록하였으며, 기원전 8~7세기의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무려 326행을 할애하여 신들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목록을 꼼꼼히 읽어내려면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입니다.

 

저자는 사물, 장소, 신기한 것, 호기심 등 쉽게 이해되는 목록 뿐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것, 혼돈스러운, 현기증 나는 등 애매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무려 21개의 카테고리로 목록들을 나누었습니다. 방대한 자료에서 목록을 추려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을 것이며, 이 책에 포함시킬 목록을 추려내는 작업이었다기 보다는 제외해야 할 목록을 골라내는 방식을 적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덕분에 단테의 <신곡>,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984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 http://blog.joins.com/yang412/12879477>,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http://blog.joins.com/yang412/12883288>처럼 제가 이미 읽어 내용을 알고 있는 목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 앞으로 챙겨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놓친 부분입니다만, 꼼꼼하게 읽어낸 옮긴이는 이 책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목록들과 열거의 예를 살펴보면서 목록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목록의 미학이 수집물, 백과사전, 박물관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이와 함께 회화 속에 나타난 시각적 목록들을 보여준다. 이런 시각적 목록을 제시하면서 에코는 그동안 그림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각을 넓혀 프레임의 물리적 한계 너머에 있는 형태, 어쩌면 그 너머에서도 계속될 <기타 등등>을 상상하도록 권유한다.(4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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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9
앙드레 지드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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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은 화폐당국의 최대의 적일 것입니다. 대량의 위폐를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행위는 국가의 존망을 흔드는 범죄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팀 보울러의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91439>는 부모의 안전을 위협당한 소년이 위조화폐를 대규모로 유통시키는 범죄조직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뜨거운 가족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드의 장편소설 <위폐범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범죄스릴러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폐범은 이야기의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정도로 전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즉, 스트루빌루라는 인물이 조종하는 소년들이 위조화폐의 유통에 간여하는 작은 규모의 범죄가 등장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제목과 이 소설의 주제의 상징적 의미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는 모두 마흔 명 정도의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복잡한 관계로 치밀하게 서로 엮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속이고, 비난하는데,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속이는 경우도 있어 한마디로 총체적인 거짓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동성식 교수님은 작품해설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위조화폐의 가치에 불과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여성의 일부는 쉽게 남자들에게 넘어가기도 하며, 일부 남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베르나르가 우연히 손에 넣은 어머니의 편지를 통하여 자신이 어머니의 외도의 결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가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베르나르의 성장소설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만, 어느 사이에 이야기는 작가 에두아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열네 살 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왔고, 그것을 발표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에두아르의 일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작가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에두아르에 녹여냈다고 보입니다. 이야기 초반에 에두아르는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았음에도 오래전부터 구상해오던 소설의 제목을 ‘위폐범들’로 예고하고 주변의 반응을 떠보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가 뱅상의 입을 빌어 공쿠르형제를 비판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자네가 빌려준 공쿠르형제의 일기에서 나는 마침 그들이 식물원 박물학실에 갔던 때의 이야기를 읽었지. 그 책에서 그 훌륭한 작가들은 자연 또는 하느님의 상상력이 빈약함을 한탄했네. 그런 서투르고 모독적인 언사는 협소한 그들 정신의 어리석움과 몰이해를 드러내는 셈이지. 사실은 정반대로 자연의 다양성이란 말할 수 없네!(207~308쪽)”

 

‘위폐범들’이라는 에두아르의 구상은 베르나르, 로라와 함께 스위스의 시아스 페에 갔을 때 만난 소프로니스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이때 에두아르는 음악의 푸가기법을 다음 작품에서 구현해볼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의 일기를 훔쳐 본 베르나르가 ‘위폐범들’이라는 가제를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그 위폐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달라는 베르나르의 요청에 답변을 피하지만, 내심 동료 소설가로 등장하는 파사방 백작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지드가 열두 살이 되던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중심으로한 여성적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열다섯 살이 되면서 왕성하게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테오필 고티에의 시집에서 감명을 받았고, 빅토르 위고와 하이네의 시집도 탐독대상이었고, 르 콩트 드 릴이 번역한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그리스 신들의 세계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폐범들>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에 엮인 관계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주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사이의 관계를 요약한 표를 만들어가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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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거장들 살림지식총서 82
김홍국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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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겠습니다만, 미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축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미국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데 기여한 요소로는 넓은 땅과 풍부한 자원을 들 수 있겠습니다만, 역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적 자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조그만 땅덩어리에 자원까지도 빈약한 우리나라의 지금을 만든 것도 바로 좋은 인적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거장들>의 저자 는 일단 경제분야에서 돋보이는 23명의 업적을 정리하였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활약한 저자의 경험을 녹여낸 것입니다. 저자가 주목한 인물은 중공업 뿐 아니라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기업가뿐 아니라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 그리고 경영학의 피터 드러커교수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 가운데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제일 먼저 꼽았습니다.아마도 미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포춘>이 밀레니엄 특징 ‘20세기의 기업가’에서 헨리 포드를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탁월한 경영인으로 선정한 영향을 받았지 싶습니다. 미국을 여행하면서 디트로이트시 근처에 있는 헨리포드 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그저 다양한 볼거리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작 포드가 가장 미국적인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기업인이며, 컨베이어 벨트 체계라는 새로운 관리방식으로 대량생산체계를 창안하여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차량을 일반대중이 보유할 수 있도록 대중화했다는 점이 고려된 것 같습니다. 1908년 탄생한 ‘T모델’의 자동차는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1,500만 7,033대가 팔리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그 배경은 처음 대당 850달러이던 찻값을 290달러 수준까지 대폭 낮출 수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헨리 포드가 미국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 이외에도 고임금을 내걸고 노조를 탄압하거나 회유한 사실, 컨베이어 벨트 방식의 조립라인을 도입한 것이 인간성상실로 이어진 결과를 낳았다거나 하는 부작용까지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서구식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자체로서의 가치를 부각시키는 휴머니즘, 그리고 각 나라나 민족 고유의 문화적 특성과 장점들이 스러지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구식 성과주의의 편협함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기여하는 기술문명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용한 철강왕 카네기에서는 기업을 운영하면서 관련 산업을 철저하게 독점하면서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여지를 없앤 행태를 비판하면서도 1899년 자신이 한평생 모은 재산 3억 5천만달러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개념을 기업과 경영에 접목시켜 시대를 앞서간 경영자였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부분은 저도 익히 아는 분들입니다만, 간혹은 그 분들이 일궈낸 기업은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이름은 낯선 느낌이 드는 분도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미국 경제를 이끌었던 경제나 경영계 인물들의 족적을 살펴 미국적 가치가 어떻게 20세기의 세계를 지배했는지 살펴보고, 이들의 모습에서 배울 점과 버려야 할 점을 가려내는 시각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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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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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이 도를 넘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지만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 일진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만, 덩치가 크고 교실 뒷자리에 주로 앉던 그 친구들이 체구가 작은 친구들을 괴롭힌 적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같은 반 친구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학급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친구였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데이비드 미첼의 <블랙스완그린; http://blog.joins.com/yang412/13413557>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만, 유럽 국가에서도 학교 안에서 왕따와 친구 괴롭히기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똑 같습니다. 최근 주목받는 영국의 청소년소설작가 팀 보울러의 신작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에서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바람에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꼬맹이 고등학생 지니가 어느 날 닥친 폭력조직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구하기 위한 용감한 행동을 적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체모를 사람들이 집 밖을 배회하면서 감시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 같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구할 것 같습니다만, 지니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니 그럴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학교를 빼먹고 집안에 숨어 있을 때 엄마가 누군가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지니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기도 하는데, 술에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바람을 피우는 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지니 이지만 막상 가족들이 위기에 몰리게 되면서 부모의 안위가 제일 큰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을 보면 부모 자식 간의 핏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앞서 학생들 사이에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처리하는데 있어 우리나라는 사태가 악화되어 표면화되는 상황에서도 애써 사건을 무시하거나, 축소하기에 급급한 경향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지니가 다니는 학교의 레이섬 교장선생님은 문제 학생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이들의 학교생활을 정상화시키고 사건을 예방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는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지니를 달래는 장면입니다. “누구든 이 학교 안에 너를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게 누군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너는 내게 와서 이야기할 용기를 내야만 해. 그건 고자질쟁이가 되는 것과는 다르단다. 그건 용감해지는 거란다.(178쪽)” 흥미로운 일은 지니를 못살게 구는 스핑크 역시 정체모를 사람들이 심부름을 하는 말단 조직원이었고, 지니가 그 일에 휩쓸리면서 일을 같이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스핑크의 모습에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등장하는 엄석대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평소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다음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고, 아내가 정체모를 남자가 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자 지니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실 지니의 가족을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은 장본인은 어머니의 외도 때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니와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하여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해피앤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지니는 달리기를 잘하는데, 그 특기가 가족을 구하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콩가루같은 집안의 부모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달리는 대목입니다. “나는 달리면서 운다.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언제부터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지금 울면서 공원을 지나고 주택단지를 가로지른다. 온통 엄마 얼굴이 떠올라 머릿속이 터져 버릴 것 같다. 아빠 얼굴도.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150쪽)” 지니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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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J. 페페(곽효정) 지음 / 현자의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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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뇌졸중으로 투병하시는 동안 형제들이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명절과 제사 때나 만나던 것을 보면 갑자기 몇 년이 지나간 셈입니다. 전혀 기억에 없는 오랜 옛날 일까지도 시시콜콜하게 기억하고 있는 셋째를 보면 놀라곤 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저도 한 기억한다고들 했는데, 그 기억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억을 화두로 붙들고 있는 저로서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J 페페님의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어 읽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에세이를 써온 그녀는 “(이 책에) 일상의 장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살던 집, 학교, 동네 수영장, 카페, 식당… 매일 지나던 길, 가족, 친구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8쪽)” 예민한 저자가 남들과 만나면서 느끼게 되는 자신과 남들의 마음에 생기는 상처와 그 치유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기억’에 관심이 많은 듯, ‘최초의 기억’을 내밀었습니다. 리뷰를 적는 이 순간 지나 온 저의 삶 가운데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네 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다음은 할머니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던 생각들... 그리고 보니 저자와 최초의 기억을 이야기하던 분이 내놓은 최초의 기억과 같은 것인데, 아마도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건은 그 나이에도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기억의 바닥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가 하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기억을 읽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사실은 치매환자들은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즉 보고들은 것들을 기억의 창고에 들여보내는 능력이 사라진 것이지 이미 기억의 창고에 들어가 있는 것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보고들은 것 가운데 느낌이 약한 것들부터 기억이 약해져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을 지키기 위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기록도 즉시성이 있어야 정확한 것이지 시간이 지나면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한 시간과 그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을 정리해보려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과 함께 했던 시간에서 얻은 느낌들은 빠뜨리지 않고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벽에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북받쳤던 저자는 마음을 추슬러서 수영장에 나갔는데, 수영을 하는 동안 다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친지가 주셨다는 위로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한 거예요. 내 나이쯤 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나와 오히려 힘들어요.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는 자꾸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살다 보면 진짜 울어야 할 때에도 눈물이 안 나와서 씁쓸해요.(2341쪽)” 어머니와 이별을 한지 불과 열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탓인지 이야기를 하다가, 심지어는 혼자있을 대도 울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을 가라앉히기는 합니다만, 굳이 그런 모습을 남이 어떻게 볼까 걱정스럽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보시는 분들도 이해해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는 살만큼 살아온 셈이라서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호기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에서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저를 낳아주시고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두 분에 대한 기억이 흩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두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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