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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ㅣ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평점 :
이진숙님의 <위대한 미술책>을 읽고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를 위한 책으로 많은 미술관련 책들 가운데 필독서를 골라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실 요약한다는 표현보다는 그 책이 다루는 분야에 대한 저자의 생각까지 버무려 놓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궁극의 리스트>는 <미의 역사> 그리고 <추의 역사>와 함께 이진숙님이 고른 62권의 책들 가운데 포함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궁극의 리스트>는 꼬리를 무는 책읽기의 사례가 되는 셈입니다.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나의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과난 일련의 회의, 전시회, 공공낭독회, 콘서트, 영화 상영 등을 조직해 달라며 초대했을 때(7쪽)”, 제안한 주제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특정한 분야의 목록을 길게 열거하는 경우를 간혹 만나게 됩니다만, 에코가 엄선한(?) 목록에서처럼 방대할 줄을 몰랐습니다. 저자는 헤파이토스가 만들었다는 아킬레우스의 방패로부터 목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목록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까지 이르게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헤파이토스는 거대한 방패를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다양한 사물을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대지와 우주, 인간이 사는 두 도시, 농경지와 포도밭, 양을 치는 목장의 모습 등 너무나도 많은 장면을 설명하고 있어 이러한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방패는 쉽게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헤파이토스의 방패를 화제로 삼은 그림 3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림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다양한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목록을 주제별로 모아 그 성격을 설명하고, 작품 속의 목록을 인용하는 동시에 그 목록과 관련이 있는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시 예술작품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였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의 특성 때문인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예술작품들 가운데 다 빈치의 <모나리자>, 파올로 칼리아리의 <가나의 혼례>처럼 제가 알만한 작품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목록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이런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본질적으로 정의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그것의 속성들을 목록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목록은 유한할 수밖에 없어 무한한 속성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기원전 9세기의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무려 182행을 할애하여 트로이아를 압박하는 그리스군의 모습을 기록하였으며, 기원전 8~7세기의 헤시오도스는 <신통기>에서 무려 326행을 할애하여 신들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목록을 꼼꼼히 읽어내려면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것입니다.
저자는 사물, 장소, 신기한 것, 호기심 등 쉽게 이해되는 목록 뿐 아니라 말로 다할 수 없는 것, 혼돈스러운, 현기증 나는 등 애매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무려 21개의 카테고리로 목록들을 나누었습니다. 방대한 자료에서 목록을 추려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을 것이며, 이 책에 포함시킬 목록을 추려내는 작업이었다기 보다는 제외해야 할 목록을 골라내는 방식을 적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덕분에 단테의 <신곡>,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4984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 http://blog.joins.com/yang412/12879477>,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http://blog.joins.com/yang412/12883288>처럼 제가 이미 읽어 내용을 알고 있는 목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서 앞으로 챙겨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놓친 부분입니다만, 꼼꼼하게 읽어낸 옮긴이는 이 책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 속에 나타난 여러 가지 목록들과 열거의 예를 살펴보면서 목록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목록의 미학이 수집물, 백과사전, 박물관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생각해 보고, 이와 함께 회화 속에 나타난 시각적 목록들을 보여준다. 이런 시각적 목록을 제시하면서 에코는 그동안 그림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각을 넓혀 프레임의 물리적 한계 너머에 있는 형태, 어쩌면 그 너머에서도 계속될 <기타 등등>을 상상하도록 권유한다.(4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