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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범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9
앙드레 지드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위폐범은 화폐당국의 최대의 적일 것입니다. 대량의 위폐를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행위는 국가의 존망을 흔드는 범죄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팀 보울러의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http://blog.joins.com/yang412/13491439>는 부모의 안전을 위협당한 소년이 위조화폐를 대규모로 유통시키는 범죄조직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뜨거운 가족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드의 장편소설 <위폐범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범죄스릴러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위폐범은 이야기의 말미에 잠시 등장하는 정도로 전체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즉, 스트루빌루라는 인물이 조종하는 소년들이 위조화폐의 유통에 간여하는 작은 규모의 범죄가 등장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제목과 이 소설의 주제의 상징적 의미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는 모두 마흔 명 정도의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복잡한 관계로 치밀하게 서로 엮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속이고, 비난하는데, 심지어는 자신마저도 속이는 경우도 있어 한마디로 총체적인 거짓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동성식 교수님은 작품해설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마치 위조화폐의 가치에 불과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등장인물 가운데 여성의 일부는 쉽게 남자들에게 넘어가기도 하며, 일부 남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외면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베르나르가 우연히 손에 넣은 어머니의 편지를 통하여 자신이 어머니의 외도의 결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가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어, 베르나르의 성장소설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하게 됩니다만, 어느 사이에 이야기는 작가 에두아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열네 살 때부터 일기를 꾸준히 써왔고, 그것을 발표한 것처럼, 소설에서도 에두아르의 일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작가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에두아르에 녹여냈다고 보입니다. 이야기 초반에 에두아르는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았음에도 오래전부터 구상해오던 소설의 제목을 ‘위폐범들’로 예고하고 주변의 반응을 떠보기도 합니다. 또한 작가가 뱅상의 입을 빌어 공쿠르형제를 비판하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자네가 빌려준 공쿠르형제의 일기에서 나는 마침 그들이 식물원 박물학실에 갔던 때의 이야기를 읽었지. 그 책에서 그 훌륭한 작가들은 자연 또는 하느님의 상상력이 빈약함을 한탄했네. 그런 서투르고 모독적인 언사는 협소한 그들 정신의 어리석움과 몰이해를 드러내는 셈이지. 사실은 정반대로 자연의 다양성이란 말할 수 없네!(207~308쪽)”
‘위폐범들’이라는 에두아르의 구상은 베르나르, 로라와 함께 스위스의 시아스 페에 갔을 때 만난 소프로니스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이때 에두아르는 음악의 푸가기법을 다음 작품에서 구현해볼 생각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의 일기를 훔쳐 본 베르나르가 ‘위폐범들’이라는 가제를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그 위폐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달라는 베르나르의 요청에 답변을 피하지만, 내심 동료 소설가로 등장하는 파사방 백작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지드가 열두 살이 되던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를 중심으로한 여성적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열다섯 살이 되면서 왕성하게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테오필 고티에의 시집에서 감명을 받았고, 빅토르 위고와 하이네의 시집도 탐독대상이었고, 르 콩트 드 릴이 번역한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을 통하여 그리스 신들의 세계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위폐범들>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 사이에 엮인 관계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주 놓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사이의 관계를 요약한 표를 만들어가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