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다 - 가톨릭 신부이자 선 마이스터, 위대한 영적 스승이 전하는 내 안의 신을 만나는 길
빌리기스 예거 지음, 양태자 옮김 / 이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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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종교와 과학의 논리가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과학의 논리에 마음이 더 기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응용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의학을 전공한 탓도 있겠고 종교와는 거리를 두어온 때문일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의 시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생물 종의 존재를 진화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창조론은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존재가치를 부정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쌓아올린 성 안에서 무한하게 확산되고 있는 과학과의 교류를 금하고 있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 종교는 입지가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베네딕도회 빌리기스 예거 신부의 <파도가 바다다>를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그래도 깨트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거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관상에 몰두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가마쿠라 선방에서 선 수행을 경험하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신비주의 전통에 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비주의적 전통을 현대적인 세계관과 결합하여 잠든 인간 의식을 깨우고 꽃피우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와 죽음의 의미 등을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학적 성과와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파도가 바다다>는 예거 신부가 독일복음주의교회의 연구지도관이자 철학자, 그리고 유명한 출판사 헤더에서 스펙트럼 시리즈를 편집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크바르흐와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원저를 우리말로 옮긴이가 붙여놓은 풍부한 주석은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은 창조자로서 본체적으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의 존재와 비존재를 통합하여 하나의 관점에서 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과 세상, 정신과 물질, 존재와 비존재는 결코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20쪽)” 그리하여 저자는 신이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의 될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불교, 흰두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종교 간의 화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복합적이고 생화학적인 세포구조와 조직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지성은 정신세계의 특정한 표명이고 뇌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물질적으로 응고되고 농축된 존재입니다.(75쪽)” 저자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는 결국은 부처와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의 체험을 형식 안에 끼워 넣어 제도화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신의 죽었다’라고 주장했던 니체의 해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도달해야 할 ‘저쪽세계’는 사실 없습니다.(161쪽)”라는 그의 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시간을 배치해 설립한 신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살아 움직이는 진화의 과정”이라고 하면서도 명상훈련을 통하여 영성을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명상훈련에는 기도 뿐 만이 아니라 명상춤, 활쏘기, 태극권 등 수련법 나아가 일상생활을 통하여 영성적 욕구를 성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치유의 기적을 가져오는 기도의 영향력을 해석하는 것 역시 기도를 들은 신이나 성모 마리아, 혹은 천사가 하늘에서 즉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에너지 영역을 일으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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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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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님은 <위대한 미술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94632>의 사진예술 부문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위대한 미술책, 382쪽)”라는 수전 손택의 암울한 진단을 인용하였습니다. 1839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진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화가 폴 들라로슈는 “오늘로 회화는 죽었다.”라고 통탄했다고 합니다. 진동선님이 <사진예술의 풍경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51174>에서 폴 들라로슈의 한탄으로부터 1970년 테오도와 아도르노, 그리고 2000년 더글라스 크림프의 말까지를 종합하여, “결국 미술이라고 하는 불멸의 시각예술의 얼굴을 없앤 주인공은 사진이고, 미술을 하나의 모습으로 있지 못하게 한 것도 사진이고, 미술을 옛 모습으로 자리할 수 없게 만든 것도 사진이다. 예술이 끝없이 그 모습을 바꾸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사진인 셈이다.(사진예술의 풍경들, 7쪽)”라고 사진예술을 자리매김하고 한 것과는 상당한 의미의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사진예술의 발전과정을 잘 정리한 책들이 없지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진숙님이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와 <타인의 고통>을 추천한 이유는 아마도 저자생각이 손택과 공명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면서 전진해온 자본주의 체제가 줄곧 사진의 무한한 이미지 생산 능력과 공존해 왔다(위대한 미술책, 384쪽)”라는 손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진은 풍요롭고, 낭비를 일삼으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회의 본질적인 예술”이라고 단정하는데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잘 못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흔히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고 믿고 있습니다만, 손택은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또한 여행 중에 사진을 찍는 행동에 관해서도, ‘사진은 경험을 증명해주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경험을 거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26쪽)’라고 합니다. 여행 중 마주치는 것들은 앞뒤 재지 않고 사진을 찍어대는 것으로 자신의 경험을 확증하려고 할 뿐, 그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애처로운 감정을 자아내는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 스마트폰에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동생이 찍은 어머님 사진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사진은 폰에서 지워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저자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었습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을 야만적인 식민전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한국 전쟁은 자유 진영이 소련과 중국에 맞서 벌이는 투쟁의 일부로 받아들여졌고, 이런 특성을 감안할 때 무제한적으로 화력을 퍼붓는 미군의 잔인함을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여겨졌다.(41쪽)” 탱크를 앞세운 기습공격으로 국군을 괴멸시키면서 단숨에 낙동강까지 밀어붙인 북한이나, 변변한 무기도 쥐어주지 않고 전선으로 몰아넣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의 반인륜적 행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사진에 관하여>는 저자가 197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다이안 아버스의 회고전을 보고서 사진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생각하고서 1973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타임스 서평」에 발표한 여섯 편의 에세이가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은 ‘20세기의 주요 기록 매체인 사진의 본성에 관하여 그동안 제기된 적이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는 데서 찬사를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리한다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또 다른 각도에서 확인시켜주기를 바라는 독자의 바람과는 달리 저자는 서로 상반된 주장, 인용, 자료들을 태연하게 병치하여 독자들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불편하다는 비판으로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재원님의 번역으로 소개된 <사진에 관하여>도 번역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독자들도 있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읽고 이해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던 점이라든가, 이진숙님께서 <위대한 미술책>에서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꼽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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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물길을 거닐며 - 강은 넓고 깊고 오래고 길다
김주영 지음, 권태균 사진 / 김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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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을 주제로 한 한승원 작가님의 <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02859>와 같은 기획으로 만든 책 같습니다. 김주영 작가님이 맡은 낙동강 편의 제목은 <고향 물길을 거닐며>입니다. 작가께서 모두에 적은 것처럼 낙동강은 520킬로미터나 되는 남한에서 제일 큰 강입니다. 유역면적만해도 2만 3천 제곱미터에 달해서 남한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에 낙동강에 얽힌 이야기를 모으면 책 한 권으로는 어림없을 듯합니다. 한승원 작가님의 경우는 영산강의 시원에서부터 강이 흘러가는 쪽으로 따라가면서 이야기들을 정리해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래서 김주영작가님은 낙동강 유역의 지형과 기후, 낙동강을 둘러싼 역사와 유래, 풍경과 자연경관, 낙동강 유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요즈음 유행인 걷기 좋은 길들과 거기 얽혀 있는 이야기들, 그리고 낙동강에 사연을 묻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등의 작은 주제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서가 아닌 탓에 선사시대, 가야, 6,25동란, 그리고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페놀오염사건과 같이 작가 마음대로 고른 시대의 이야기를 정리하였습니다.

 

언젠가 지나는 길에 이름을 들어본 듯한 예천에 있다는 삼강나루의 주막 이야기 같이 자칫 잊혀질 수 있는 우리네 삶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내륙의 운송수단이 취약했기 때문에 강과 바다를 이용한 해운이 맡은 비중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낙동강은 그 규모에 걸맞게 하구에서부터 구포, 삼랑진, 현풍, 사문진, 왜관, 상주의 낙동과 신촌, 예천의 달지진과 마전, 안동의 영호진에 이르기까지 수운이 발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하류와 중류 그리고 상류의 지형에 맞는 나룻배가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큰 강에서는 큰 나룻배가 있고, 작은 강에는 거룻배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운하를 개발해서 한계에 이른 육상운송로를 대체해보겠다는 발상이 나왔을 때,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운하가 타당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세월호 침몰사고가 나면서 해상운송은 날씨와 지형 등 외적 요인들에 의하여 치명적 피해를 입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혀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니었구나 싶습니다.

 

작가는 낙동강 유역에 수없이 흩어져 있는 나루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공무도하가」와 서도잡가 「배따라기」를 인용하고 있는 것이 나루와 관련된 문학작품이라고 이해하면 그만이겠으나, 기원전 3,4세기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공무도하가」는 출전 등의 문제로 중국노래라는 이견도 있다고 합니다만, 대동강 나루 등 우리의 고대강역의 어느 나루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우리 노래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라고 합니다. 노래의 전문은 2세기 후반 중국에서 편찬된 채옹(蔡邕)의 〈금조 琴操〉에 실려 있으며, 우리나라 문헌에는 16세기말 또는 17세기 초의 저작으로 보이는 차천로(車天輅)의 〈오산설림초고 五山說林草藁〉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봉화 청량산을 비롯하여, 도산서원,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 등을 돌아본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낙동강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경북 상주시가 최근에 낙동강의 풍부한 자연유산과 아름다운 절경, 그리고 이곳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만든 13곳의 문화탐방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산길(mountain road), 강길(river road), 그리고 들길(field road)로 조성했다 해서 MRF라는 영어로 된 약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만, 단순하게 풍경을 즐기며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얽힌 이야기를 새겨가면서 걷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영산강편을 리뷰하면서 빠트렸던 권태균작가님의 사진도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낙동강의 사계를 담은 아름다운 사진은 물론이고 역사적 장소를 담은 사진도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책내용과 잘 어울려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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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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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이다.”라는 카피를 보니, 여행기를 정리하려고 준비하면서 독서목록에 올렸던 책이었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보면,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동안은 쳐다보지도 않는 버릇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나서 소설이라는 이 책을 그저 에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요약한 책 소개를 보면, 정신과의사인 저자가 진료실에서 약물과 심리치료를 통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리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환자진료를 통해서 정신질환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결국 ‘행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찾아낸 행복을 여행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찾아가는 형식을 취한 것 같습니다.

 

대도시에서 성공한 정신과의사로 살아온 꾸뻬 씨가 행복을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자신과 자신이 진료하고 있는 환자 모두 때문입니다. 꾸뻬 씨의 진료실을 찾아오는 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진짜로 병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진짜 불행한 삶을 산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또 행복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환자들을 진료하는 꾸뻬 씨는 나날이 늘어만 가는 세금이 부담이 되고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게 되면서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꾸뻬씨에게 환자로 오고 있는 이리나부인은 이렇게 권합니다. “당신에게는 여행이 필요해요. 그게 당신의 정신건강을 위해 좋을 거예요.(21쪽)” 누가 의사고 누가 환자인지 헷갈리죠?

그래서 꾸뻬 씨는 자신을 특별한 의사로 만들어 줄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꾸뻬 씨의 연인 클라라는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여행에 동행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진정 사랑하는 것 맞아요?) 독특한 것은 꾸뻬 씨가 살고 있는 곳이나 꾸뻬 씨가 여행한 곳은 중국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익명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꾸뻬 씨는 항공사의 배려로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되는 선물을 받게 되어 행복해집니다. 반면 옆 좌석에 앉은 비비엥씨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라는 점을 배우게 됩니다.

 

중국에서 친구 뱅쌍의 배려로 만나게 된 잉리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을 느끼고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행복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우연히 산에 오르게 된 꾸뻬 씨는 츄린 사원에서 노승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라고 믿는 것”이 문제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먼 나라에서 중국으로 일하러 온 여성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쉬면서도 행복해하고 있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라는 배움을 얻게 됩니다.

 

꾸뻬 씨는 이렇게 다양한 지역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기록해나갑니다. 이렇게 해서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23개의 행복에 대한 배움을 찾아 정리하게 됩니다. 행복에 대한 배움을 마친 꾸뻬 씨는 약속대로 다시 노승을 찾아갑니다. 총정리를 하는 셈입니다. 노승은 행복을 목표라고 여기는 것이 왜 잘 못된 것인지 답변을 해줍니다. “삶에서는 목표는 많은 일들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행복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190쪽)”이라서,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누구나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행복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란 진리를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보니 ‘행복은 선택이다’라는 제목으로 프롤로그를 썼던 박정효님의 <인생 디자인북; http://blog.joins.com/yang412/13309033>을 읽고 리뷰에서 인용한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 L'Oiseau bleu>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살고 있는 곳 가까이 있더라고 마무리되는 것처럼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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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
김성수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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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 점령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간섭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국가들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임 부시대통령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등지에서 벌인 전쟁이 실패한 전쟁으로 규정되고 대통령선거에 즈음하여 본격화된 금융위기가 반사이익을 가져다주었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개혁안들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 그가 초선 상원의원이라는 초짜 정치인에다가 흑인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감상해보지 못했습니다만, 2008년 발표됨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관심을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감독은 의료기관들이 수익논리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민간 의료보험제도의 불합리성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혹은 영화라는 매체가 감독의 기획의도에 따라서 특정한 부분을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청자 혹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무어 감독이 <식코>를 제작할 정도로 많은 미국 국민들이나 전문가 역시 미국의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제도를 뜯어고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이전의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역시 취임과 동시에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에 착수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보다 많은 미국 국민들이 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변화를 실행에 옮기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정치외교학과 복지학을 전공하신 김성수교수님이 쓴 <오바마케어의 복지정치>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개혁 과정과 제약요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체계의 핵심을 민간에 맡기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우리나라와 흡사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민간보험에 주로 의존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당수 국민들은 건강보험제도권 밖에서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래 되기는 했습니다만,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연수를 받던 시절 미국의 건강보험제도를 조금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지도교수님께서는 연간 7,600달러 정도의 연수비용을 지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걱정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으로는 건강보험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지도교수님께서 연봉을 12,500달러로 올려주신 덕분에 안심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아이들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험가입이 안된 이웃 가운데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시는 사고를 당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나중에 메디케이드의 지원을 받아 입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렵 유학생들이 출산을 하는 경우 역시 메디케이드이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은 건강보험 정책결정의 이론적 배경과 분석틀, 미국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과정과 제약요인,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 이후 과제와 전망, 그리고 결론 및 제언의 순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OECD 주요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주도의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가 보편적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미국만이 그런 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복지정치사적 배경과 미국이라서 가능한 건보개혁의 방향과 한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기존의 연구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보려 한다.”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차이란 선행연구들이 대체적으로 ‘이익집단’을 건보개혁의 주된 변수로 주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지배적 문화’가 ‘이익집단의 반발’ 못지않은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사회과학 연구방법 가운데 ‘질적 연구(해석적 연구)’를 채택하였고, 다양한 자료를 비교 분석한 결과를 이 연구의 이론적 배경으로 설정한 문화이론을 적용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고 합니다.

 

먼저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을 요약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먼저 이익집단이론입니다. 이익집단이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어떤 주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데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집단이 정책결정자와 국민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익집단이론은 “정책결정을 이익집단들 간 경쟁의 결과로 이해하고 한 시점에서 선택된 정책결정을 경쟁에서 이긴 이익집단의 전리품으로 이해한다.(34쪽)”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로 보면,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제도를 시발로 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의 보건의료정책의 상당부분을 이익집단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90년대 말 급부상한 약계의 파워가 의사들이 주도하던 약품선택권을 가져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엘리트이론은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책결정을 주도한다는 이론인데, 최근 보건의료정책이 이익집단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주도로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수렴이론은 산업화이론이라고도 하는데,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들 간에는 의료서비스 조직과 재원조달 등 사회보장이나 정책의 내용까지도 점차 유사한 유형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뒤로는 OECD국가에서 시행되어 성과를 올린 정책을 도입하게 되는 경우를 설명하는 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최근 심평원이 확대하고 있는 ‘평가연계 수가제도(pay for performance; P4P)’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역사적 제도주의 이론은 행위를 형성하고 제약하는 맥락으로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맥락이 형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중시하는 이론입니다. 정책연구에서 역사적 시각과 거시 구조적 분석을 통합함으로써 국가들 간 정책의 상이점과 한 국가 내 정책패턴의 지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합니다.

 

그 밖에도 보건의료정책을 설명하는데 있어 권력자원이론, 생산레짐이론, 권력중심적 행동이론, 세력균형이론 등이 나름대로의 설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건보개혁에 대한 정치과정과 결정요인을 설명하는데 있어 핵심요인들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화이론은 복지제도 자체가 해당 국가의 고유한 문화나 가치에 의하여 시기가 결정될 수 있으며, 한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신념이나 가치, 태도 등이 자원분배의 과정을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건강보장체계는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로 국한하여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만으로 구성될 수 없으며, 의료에 간여하는 다양한 영역이 참여하는 복합적 건강보장체계의 구축이 필수적이며, 관련된 정책은 국가차원에서 수립되고 시행된다는 점에서 해당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영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문화이론에 따르면 미국이 유럽사회와는 달리 복지정책의 발달이 지체된 것은 미국 특유의 강한 자유방임주의 가치, 개인주의, 그리고 자조정신이라고 하는 문화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건강보험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15년이었으니, 100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지 않고 있는 것은 국가주도의 건강보험 정책은 개인주의적이며 독립적인 정신을 강조하는 미국인의 문화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국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와 작은 정부의 선호, 개인의 선택 등 미국인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건강보장 부문에서도 민간주도로 발전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유럽사회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계층에 대한 인식이 그 맥을 이어져왔지만, 이러한 유럽사회를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정착해서 만든 미국은 계층에 대한 인식이 엷을 수밖에 없고 특히 서부개척시대를 지나면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미래가 결정된다는 인식이 굳어져왔다고 합니다.

 

저자는 미국의 건강보장체계의 구조와 문제점을 다루면서 미국의 GDP 대비 의료비가 16.0%, 1인당 의료비가 7,538달러에 달하면서도, 공공부분의 의료비부담이 46.5%에 불과한 상태로(2010년 기준) 여타 OECD국가들과 비교해서 고비용임에도 평균수명, 영아사망률, 비만율 등은 여타 국가들과 열세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 자료를 인용하지 않은 점은 물론,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나은 국가들의 자료만 골라 인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건강보장체제는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 저소득층 및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 군인관련 건강보험, 아동건강보험프로그램, 주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등이 30.6%의 미국인을 커버하고 민간보험이 63.7%를 커버하고 있어 전체 인구의 16.7%의 미국인은 무보험자로 건강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통한 건강보장기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 63.6%에 이르던 직장보험 가입자는 2004년에는 59.8%로 그리고 2009년에는 55.8%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의학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그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비용은 매우 높은 반면, 의료서비스의 경쟁력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학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건강보장체제를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능성만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정부도 마찬가지로 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과감한 투자의 성과로 얻어진 연구결과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산학연계체제 또한 미국의 의학수준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한 것입니다. 반면 국가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유럽의 경우 지난 세기까지 주도해오던 신약개발을 비롯한 보건의료 분야가 기술성과면에서 미국에 밀리게 된 것을 보면, 미국의 건강보건체계를 유럽 국가들의 그것과 단순하게 비교하는 작업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외교정책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핵심과제로 추진해오던 100년 숙원의 건보개혁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의회를 통과하여 2010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발효하게 되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약 1조 달러를 투입하여 전체 미국인의 약 95%가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신과는 배치되는 점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적 결단의 소산이었던 탓에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다고들 합니다. 실제로 공화당이 미국 하원을 장악한 2011년 1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개혁조치 중 하나인 건보개혁법을 폐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되었습니다. 물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실효적이지 못한 결정이지만, 건보개혁법의 험난한 앞날이 예견되는 대목입니다. 처음 기획되었던 것보다는 아주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실행에 옮겨진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들은 문화이론으로 미국의 건보체제를 검토한다고 하였지만, 미국적 시각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배경이 다른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의 발전방향을 구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그저 베끼는데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장성강화에는 부담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부 주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시행되어 온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 역시 한계에 이른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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