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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다 - 가톨릭 신부이자 선 마이스터, 위대한 영적 스승이 전하는 내 안의 신을 만나는 길
빌리기스 예거 지음, 양태자 옮김 / 이랑 / 2013년 8월
평점 :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대표되는 종교와 과학의 논리가 대치하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과학의 논리에 마음이 더 기울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응용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의학을 전공한 탓도 있겠고 종교와는 거리를 두어온 때문일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의 시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고 많은 생물 종의 존재를 진화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창조론은 빛을 잃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존재가치를 부정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스로 쌓아올린 성 안에서 무한하게 확산되고 있는 과학과의 교류를 금하고 있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 종교는 입지가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베네딕도회 빌리기스 예거 신부의 <파도가 바다다>를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과 함께 그래도 깨트리지 못하는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거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관상에 몰두하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가마쿠라 선방에서 선 수행을 경험하면서 동서양의 다양한 신비주의 전통에 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비주의적 전통을 현대적인 세계관과 결합하여 잠든 인간 의식을 깨우고 꽃피우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신의 존재와 죽음의 의미 등을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학적 성과와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파도가 바다다>는 예거 신부가 독일복음주의교회의 연구지도관이자 철학자, 그리고 유명한 출판사 헤더에서 스펙트럼 시리즈를 편집하고 있는 크리스토프 크바르흐와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원저를 우리말로 옮긴이가 붙여놓은 풍부한 주석은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은 창조자로서 본체적으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의 존재와 비존재를 통합하여 하나의 관점에서 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과 세상, 정신과 물질, 존재와 비존재는 결코 둘로 나누어져 있지 않습니다.(20쪽)” 그리하여 저자는 신이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의 될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불교, 흰두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에 대한 진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종교 간의 화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가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사람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복합적이고 생화학적인 세포구조와 조직이 아니라 정신입니다. 지성은 정신세계의 특정한 표명이고 뇌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물질적으로 응고되고 농축된 존재입니다.(75쪽)” 저자는 그리스도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는 결국은 부처와 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의 체험을 형식 안에 끼워 넣어 제도화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신의 죽었다’라고 주장했던 니체의 해석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도달해야 할 ‘저쪽세계’는 사실 없습니다.(161쪽)”라는 그의 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시간을 배치해 설립한 신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신이 창조한 세상은 살아 움직이는 진화의 과정”이라고 하면서도 명상훈련을 통하여 영성을 깨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명상훈련에는 기도 뿐 만이 아니라 명상춤, 활쏘기, 태극권 등 수련법 나아가 일상생활을 통하여 영성적 욕구를 성취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치유의 기적을 가져오는 기도의 영향력을 해석하는 것 역시 기도를 들은 신이나 성모 마리아, 혹은 천사가 하늘에서 즉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에너지 영역을 일으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