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존이 회사에서 잘나가는 법
팀 스커더 & 마이클 패터슨 & 켄트 미첼 지음, 정경옥 옮김 / 이담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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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자기계발서라고 하면 저자 나름대로 정리된 이론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까칠한 존이 회사에서 잘 나가는 법>은 관계인식이론의 실질적인 개념을 소설처럼 구성하면서도 적당한 간격으로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읽는 사람이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저자들은 감사의 말에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시카고대학교수였던 엘리아스 포터가 정립한 관계인식이론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라고 밝혔으며, 프롤로그에서는 이 책에 담긴 이야기가 순전히 허구이지만 개인과 조직 개발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일어남직한 상황들로 구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잘 나가는 세일즈맨인 존 도일이 인사부장으로부터 금년도 승진에서 누락되었다는 통지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입니다. 읽는 순간 25년 전에 당연히 되었어야할 승진에서 누락되는 바람에 결국은 대학을 떠나고 다양한 직장을 떠돌아온 저의 인생유전이 생각났습니다. 보스는 1년 뒤에는 문제없이 승진이 될 것이라고 달랬지만, 승진을 전제로 하여 준비하던 외국연수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에는 승진심사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수를 미루어야 하겠지만, 연수를 허락해주신 선생님과의 약속도 중요할 수밖에 없어서 진퇴유곡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연수를 마치고서는 대학을 떠나기로 작정을 하고 연수를 통하여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의 주인공 존 도일은 승진에서 탈락된 날, 퇴직한 부하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가 존 때문이라고 적시하여 승진탈락의 상처에 소금까지 뿌린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직장을 떠나는 선택을 했습니다만, 존 도일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존 또한 같은 고민을 하였지만, 그에게는 월터라는 멘토가 있었습니다. 월터는 존을 위하여 존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까지 도출할 수 있도록 맥 윌슨이라는 해결사를 소개합니다. 비즈니스를 통해서 만난 월터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해온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월터는 다양한 장소에서 존을 만나면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해결하는 방식을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임대주택의 기관실, 극장의 무대, 부두의 낚시터 등입니다.

 

어느 직장에서나 다양한 수준의 갈등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갈등을 겪는 사람들을 다루는 천편일률적인 방법은 없다.(90쪽)”라고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겪는 갈등은 같아 보이지만 그러한 갈등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해결방안이 똑 같을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유능한 영업맨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의 특장만을 앞세워 독주하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에는 무관심한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공 방정식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요소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을 아는 것(90쪽)”이라는 테오도르 루스벨트의 말은 누군가와 엮여서 살아야만 하는 우리가 반드시 새겨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갈등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기가치가 위협당한다고 느낄 때 발생한다.’라고 저자들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이 전개되는 과정을 3가지 단계로 구분하였는데, 1단계에서는 당신의 관심이 자기 자신, 문제, 다른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수준이며, 2단계에 이르면 초점이 자기 자신과 문제로 좁혀지고, 3단계에서는 초점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국한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갈등은 완전히 제거될 수 없지만, 막을 수 있는 갈등은 예방하고, 피할 수 없는 갈등은 관리하며, 더 깊은 갈등단계로 진입하는 횟수를 최소화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은 실제로는 관계를 개선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등을 관리하는 수준을 1단계로 고수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승진누락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존은 맥박사와의 만남을 통하여 스스로의 문제를 진단하고 위기를 타개하기에 이릅니다. 저자들은 맥박사의 말을 통하여 갈등관리에는 ‘자신에 대한 관리와 인간관계에 대한 관리’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정리합니다(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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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4-10-26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형식을 비린 자기 계발서라.. 꽤 참신한 아이디어지만.. 자기 계발서라는 것이 과연 정답이 없을 것 같은 인생 살기에 도움이 될지는 ...

처음처럼 2014-10-29 10:32   좋아요 0 | URL
자기계발서를 읽고서 나름대로의 정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읽는 것 아닐까요?
 
저스트 고 유럽 (2014~2015 최신개정판) - 자유여행자를 위한 map&photo 가이드북 저스트 고 Just go 해외편 26
최철호 글 사진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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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모로코를 아우르는 코스를 <참좋은 여행>사가 내놓은 상품으로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예술세계를 상세하게 설명해준 주영은 가이드와 그라나다에서부터 모로코, 포르투갈을 거쳐서 마드리드에서 여행을 마칠 때까지 이베리아반도를 둘러싼 역사와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깊이 있는 설명으로 앎의 지평을 넓혀준 조형진 가이드와 함께 해서 행복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인천을 출발해도 돌아올 때까지 여정의 전체를 세심하게 챙겨준 이봄 인솔자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단체여행이지만 사전에 준비하는 만큼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습니다. 출발을 앞두고 다양한 책들을 통하여 현지 정보를 얻었습니다만 최철호님의 <저스트 고, 유럽>의 스페인 편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자유여행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방대한 영역의 여행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11개국에 대한 여행정보와 이들 나라를 연결한 여행코스에 대한 정보 뿐 아니라, 유럽을 여행할 때 알아야 되는 기본사항 역시 말미에 별도로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기본 형식은, 해당국가의 간단한 역사, 지리와 기후, 숙소와 음식, 교통정보, 일상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먼저 소개하고, 지역별로 접근할 수 있는 경로에서부터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데 필요한 대중교통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여행정보를 얻는 방법, 관광 포인트, 명소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자유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단체 관광의 경우는 숙소, 음식은 물론 교통까지도 여행사에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정보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문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는 미리 알고 가면 이해가 빠를 뿐 만 아니라 자유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 포함된 포르투갈과 모로코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아쉬움이 컸지만, 그런만큼 스페인에 대한 정보가 크게 되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저스트 고, 유럽>의 스페인 편에 담긴 지역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톨레도, 세고비아, 그라나다, 세비야, 코르도바 등입니다. 이 가운데 세고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모두 방문하였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마드리드의 마요르광장에서 출발해서 솔광장을 거쳐 스페인광장에 이르기까지 걸어서 구경하였고 각각 자유시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정보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별책으로 되어 있는 미니 가이드북은 도시별 상세지도와 주요도시의 교통정보, 인기명소에 대한 정보 및 추천코스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내관광을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지도는 여행자 안내센터등에서 얻을 수도 있습니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쉽게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스트 고, 유럽>는 금년 초에 새로 나왔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것 같습니다. 교통, 식당 등의 정보들이 시간이 경과되면 달라지는 경우도 많아서 오히려 이용자에게 불편을 주는 경우가 많아 여행관련 책자들이 이런 정보를 다루는 것이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개나 되는 국가를 다루고 있고, 국가 마다 여러 도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 900쪽을 훌쩍 넘기는 부피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제 경우는 필요한 스페인편만 복사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책에 정리된 내용은 여행후기를 쓸 때 참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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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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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진숙님은 <위대한 미술책; http://blog.joins.com/yang412/13494632>에서 수전 손택을 사진예술분야의 대표적 저술가로 지목했습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일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라고 서문에 적은 것처럼 어쩌면 저자의 생각이 손택과 공명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진숙님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http://blog.joins.com/yang412/13505861>가 ‘사진이 어떻게 근대적 시각을 만들어 갔는가, 또 자본주의 사회와 공모했는가?’에 천착하고 있다면,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사진이 전쟁 미학을 위해 복무하게 되었는가?’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진숙님의 이러한 시각이 불편하시다면 1826년 최초의 사진으로부터 현대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예술의 발전과정을 뒤쫓고 있는 진동선님의 <사진예술의 풍경들; http://blog.joins.com/yang412/13251174>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위대한 미술책>에서 소개를 받은 ‘꼬리를 무는 책읽기’로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북소리]에서 소개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읽은 로버트 베번의 <집단 기억의 파괴; http://blog.joins.com/yang412/13514470>와 함께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사진에 관하여>처럼 사진을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만, 9․11사건 이후에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지전쟁과 테러에 대한 사유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포르노그래피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테러와 같이 잔혹한 상황을 담은 사진 역시 중독성이 있어서 반복될수록 시시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과대학생들의 해부학실습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는 해부학실습실이 옥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컴컴하고 우중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해부실습을 시작하는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습니다. 과거에는 실습 첫날 졸도한 학생도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주고받으면서 우리 반에서도 그런 사람이 나올까 내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습이 끝날 무렵에는 이미 무거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실습시험을 앞두고는 밤늦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시험을 준비하느라 무섭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손택은 일생동안 기계로 대량 복제되는 이미지가 문화의 감수성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를 일관되고 추적했으며,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베트남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1966년에 <파르티잔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 ‘미국적 삶의 특성은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향한 모독이다’, ‘백인은 역사의 암이다’와 같은 날선 구절로 미국의 은폐된 역사와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 아메리칸 드림의 실상 등을 폭로했다고 합니다. <타인의 고통>에서 저자는 전쟁과 테러로 점철되고 있는 지구촌에서 끝 모를 잔혹함을 보이는 인간들로 인한 연민이라는 알리바이를 페르소나로 하여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우리’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하여 “<타인의 고통>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제게 있어서 이 책은 스펙터클(압도될 만큼 엄청나고 굉장한 상황)이 아닌 실제의 세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14쪽)”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저자가 <타인의 고통>에서 인용하고 있는 자료들은 중세에서 현대까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만, 저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건은 보스니아 내전이었습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발칸반도를 무대로 벌어진 보스니아내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대규모학살이 벌어진 치명적 전쟁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연방탈퇴로 촉발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붕괴과정에서 정작 잔인한 전쟁이 벌어진 장소는 힘없는 보스니아였습니다. 보스니아는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계, (동방)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그리고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의 세 민족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보스니아의 독립선언이 계기가 되어 유고연방의 전 지역에 걸쳐 서로에 대한 인종청소를 벌이게 된 것입니다. 모두 27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2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전쟁이었는데, UN은 전쟁 초기에 군사개입을 주저하였을 뿐 아니라 3만 명이나 투입된 평화유지군의 역할 역시 미미해서 휴전과 확전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는 것입니다.

 

보스니아에서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잔악한 행위는 사진에 담겨 외부에 알려졌는데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던 것은 ‘보스니아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도 않으며, 자국의 지도자들이 이 전쟁은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했기 때문(153쪽)’이었다고 합니다. 속수무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로 싸우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고 한다면 강 건너 불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버트 베번은 세르비아군이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대규모 포격이 있고서야 유엔과 유럽연합 그리고 서구 언론은 이를 세계의 집단건축유산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포격을 멈출 것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고 적었습니다. 발칸반도의 이슬람 유산파괴에 상대적으로 미온했던 것에 비하면, 이 도시에 들어서 있는 후기 르네상스양식의 건축물들이 서구 시청자들의 눈에 친숙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먼 곳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 전쟁을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과거에는 사진, 더 이전에는 그림 등을 통해서 그 끔찍한 현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사진은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왔다.(46쪽)’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즉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말 그대로 렌즈 앞에 놓인 그 무엇인가의 흔적이었기 때문에, 사진은 사라져 간 과거와 떠나 간 사람을 추억케 해주는 데 있어 그 어떤 그림보다도 탁월했다.’라는 것입니다. 카메라 이전에 그림으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걸작으로 저자는 자크칼로의 『전쟁의 비참함과 불운(1633년)』와 고야의 『전쟁의 참화(1820년)』를 꼽고 있습니다. 자크칼로는 1630년대 초 로렌지방을 점령한 프랑스군대가 민간에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18장의 동판화로 제작하였으며, 고야는 1808년 프랑스의 지배에 맞서 봉기한 스페인에 진주한 나폴레옹의 군인들이 저지른 잔악한 행위를 83장의 동판화로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사진이 태어난 최초의 전쟁은 크림전쟁(1853~1856)이었습니다. 로저 팬턴은 영국정부가 파견한 이 전쟁의 ‘공식’ 사진작가였습니다. 당시 영국의 인쇄매체들이 영국군이 겪고 있던 위험과 결핍을 부각시키고 있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하여 전쟁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기술상의 문제에 더하여 정부의 이런 요구가 있어 사진작가의 연출에 따라 포즈를 취한 장병들의 모습만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터의 참상이 사진에 처음 담은 것은 영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일어난 세포이 반란(1857~1858)에 참전한 펠리체 베아토였습니다. 인도 군인들의 도전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영국군의 승리를 찬양한 것이지만 영국군의 포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럭나우의 시칸다바그궁전의 안마당이 반란자들의 뼈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본격적으로 사진에 담기 시작한 것은 남북전쟁(1861~1865)에 참전한 매튜 브래디가 이끌던 북부의 사진작가들이었습니다. 분명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사진들을 찍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들은 우리는 기록해야 할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카메라는 역사의 눈이다”라고 말한 것도 브래디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터의 사진들, 심지어 걸작이라고 칭송을 받는 것들까지도 대부분 연출되거나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점령한 이오섬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찍은 유명한 사진 역시 시간이 지난 뒤에 더 큰 성조기로 재현하도록 해서 찍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오섬은 우리식으로는 유황도라고 읽어 유명한 섬입니다. 전쟁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부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손탁은 “이 점이야말로 한 세대의 의식에 아로새겨지게 된 이미지들이 지닌 도덕적 진정성의 핵심이다.(90쪽)”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사진작가들이 높은 수준의 저널리즘적 성실성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 배경에는 텔레비전이 전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매체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사진작가들은 텔레비전 스태프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의도에 의하여 연출된 장면이 사진에 담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로 저자는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학살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올 초에 갔던 캄보디아의 왓트마이 사원에서 희생자들의 유골과 함께 전시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417431). 사진에 찍혀 있는 희생자들은 마치 저를 응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손택 역시 이 사진들에 대하여 “영원히 죽음을 응시하고 있으며, 영원히 살해당하기 일보직전에 처해 있고, 영원히 학대받고 있다.(96쪽)”라며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사진을 찍은 사람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셈으로 정말 구역질나는 경험이었다고 했습니다.

 

전쟁터의 참상을 어떻게 전하는가 하는 문제는 전사(戰史)를 통하여 다양하게 해석되어 왔습니다. 죽은 자들을 전장에 효수하는 일이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트린다고 해석하지만 때로는 적이 복수의 칼을 가는 계기가 될 것을 우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전쟁터와 후방의 개념이 모호해서 전쟁 지휘부가 고민하는 대중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제나 미묘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는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참상을 그려내는 이미지들이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메스꺼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야드바셈, 워싱턴 D.C.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그리고 베를린의 <유태인 기념관>과 같은 전쟁 기념관들이 집단학살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이런 자료들이 기록한 범죄를 사람들의 의식 속에 지속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고 재현될 수는 있지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죽으면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단의 기억으로 전해질 수는 있겠습니다만, 사진이야 말로 개인의 기억을 집단의 정신으로 챙겨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135쪽)”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사진 이외의 형태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은 퇴색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하겠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작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전쟁에 매혹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있을까?(178쪽)”라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줘서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도록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저자는 의외로 전장에서 찍은 사진이 아니라 캐나다의 사진작가 제프 윌이 아프카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을 주제로 스튜디오에서 찍은 『죽은 군대는 말한다(1992년)』를 반전(反戰)의 이미지로 인용하였습니다. 전장에서 죽어 쓰러져 있는 병사는 말하지 않지만, 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말한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뭔가를 고발하는 듯한 이미지에 빠져든다면 우리는 사진 속의 병사들이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려 말을 거는 듯한 상상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우리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이 어떤지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결국 사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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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 -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
스티븐 매크닉 & 수사나 마르티네스 콘데 지음, 오혜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방금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펑’하고 사라지거나, 사람이 들어가 있는 상자에 칼을 푹푹 찔러대도 갇혀 있는 사람은 웃고 있는, 그런 마술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언제가 그런 마술의 원리를 설명하는 TV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손 안에 없던 동전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텅빈 모자 속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등, 그런 마술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착각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뇌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이야기인데, 신경과학을 연구한다는 제가 마술과 사람의 뇌가 나타낼 수 있는 착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기만 합니다. <왜 뇌는 착각에 빠질까>를 읽으면서 속상하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진즉 착안했더라면 나도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뇌과학이 들려주는 속임수의 원리’라는 부제가 의미하는 것처럼 마술의 원리를 뇌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보는 카드 마술, 동전 마술, 배니싱 마술 등이 어떤 트릭으로 이루어지는지, 또 우리 뇌가 어떤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트릭이 먹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술사들이 전문마술사 조직에 가입할 때 마술의 비밀을 일반인에게 폭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폭로보다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마술사의 테크닉을 배우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이 속임수에 그토록 취약한지 근본적인 수준에서 설명해보려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가 주의를 기울이는 고유한 방식이 속임수를 가능하게 하며, 뇌가 우리를 그렇게 속여야 인간이 뇌의 자원을 더 알뜰하게 이용하고 더 잘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훌륭한 과학자일수록 속이기가 쉽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정직하고, 마술사가 어디까지 치사해질 수 있는지 모르며, 고의적인 기만에 대비하는 훈련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술사는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사회적 조종기술을 현란하게 구사해서 주의, 기억, 인과추론과 같은 매우 정교한 인지과정을 통제한다고 합니다. 요즈음 나온 책들은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해치우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운전하면서 문자를 보내기, 편지를 쓰면서 트위터 하기처럼 말입니다. 이미 운전하면서 통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처럼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잘못된 통념이라고 저자들은 잘라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착각의 심리학; http://blog.joins.com/yang412/12899785>에서 ‘인지적 편견’, ‘발견적 학습’ 그리고 ‘논리적 오류’의 주제에 속하는 모두 서른아홉 꼭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들 역시 카드 마술, 동전 마술, 배니싱 마술 등 다양한 마술 39가지가 성립하는데 필요한 뇌의 착각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숫자의 일치에 불과하였을까요? 저자들은 대부분의 심리학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릴라 인식게임과 같이 유명한 심리실험들의 결과를 통하여 우리 뇌가 작동하는 기전을 설명하고 그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 마술의 원리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술사들이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는 것이 뇌과학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발견된 부주의맹이나 변화맹은 인지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고 하였는데, 마술사들이 설계하는 트릭을 바탕으로 판단해볼 때, 마술사들은 분명 이러한 현상을 수 세기 동안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현대마술에서 보는 대부분의 기술은 19세기 이전의 마술사들이 개발한 것으로 현대 마술사들은 그저 동일한 원리의 트릭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온 것에 불과하다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술사들이 발견한 것을 일찍 뇌과학자들이 알았더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마술사가 어떻게 우리 뇌를 해킹하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와 동일한 인지트릭이 광고전략, 기업협상, 기타 다양한 대인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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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래
데이비드 와인버거 지음, 이진원 옮김 / 리더스북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체격이나 운동능력만을 고려하면 인간보다 월등한 생명체는 무수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가 지구별에서 최우세종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개체가 습득한 지식을 후세에 전달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여타 생명체들도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발성기관의 진화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게된 것이 첫 번째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보조장치에도 불구하고 찰나에 머무는 것이 언어의 단점입니다. 그래도 자식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주로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지식의 양은 대를 이어가면서 확대되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식은 타인과의 접촉을 통하여 집단으로 확산되어 집단의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집단을 떠나 홀로 생존하게 되는 인간은 인류가 남긴 어떠한 지식도 가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지식은 유전을 통하여 후대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하여 후세에 전달되는 것으로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http://blog.joins.com/yang412/12583563>에서 제안한 밈(meme)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가 공유의 개념을 통하여 축적하는 지식의 양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된 계기는 문자의 발명일 것입니다. 먹을 것을 따라 떠돌면서 수렵과 채취를 통하여 먹거리를 해결하던 시절에도 서로 간에 정보를 교환하기 위하여 표시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비옥한 초승달지역에 정착하여 채취경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하면서 잉여농산물의 유통이 가능해졌고, 그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문자와 그 문자를 기록하는 수단을 발명한 것입니다. 점토판에 돌에 나무쪽에 기록된 문자들은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왔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인류가 보유하는 정보의 양과 질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은 종이의 발명입니다. 종이가 발명되면서 인류에게 유용한 정보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책이라는 행태로 유통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활자의 발명은 책의 유통량을 늘리는데 기여하였으며, 여기에 더하여 인쇄술의 발전은 정보의 유통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이미 인류가 쌓아올린 정보의 양은 어느 개인이 종합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자산업의 발전은 정보의 저장 공간을 획기적으로 축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보의 보존기간 역시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개발된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의 유통의 범위가 무한대로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새로운 지식의 축적이라는 과제에 더하여 이렇게 쌓아올린 지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도 같이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지식의 인프라가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식의 형태와 본질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데이비드 와인버거의 <지식의 미래>는 인류의 지식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 산하 ‘인터넷과 사회 연구소’인 버크만 센터(Berkman Center)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저자는 인터넷이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고 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 <Too Big Too Know>는 정보산업의 발전으로 정보가 넘쳐흐르는 현실에 걸맞다고 하겠습니다. ‘세상은 다 알기에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지식의 네트워크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저자의 생각대로 전 세계는 빠르고 복잡하게 연결되고 있는 네트워크로 인하여 좁아지고 있습니다.

 

과거 특출난 천재에 의하여 주도되던 기술의 개발은 이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어떻게 엮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하는가에 따라서 성과의 수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일러 집단지성효과라고도 하는데,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 혹은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에 의한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라고 위키백과사전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중지(衆智, 대중의 지혜)라는 개념의 중요성이 제대로 평가받기에 이른 것입니다. 집단지성이 적용되어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는 앞서 인용한 위키백과를 비롯하여 크라우드 소싱, 그리고 오픈 소스라는 단어를 익숙하게 만든 리눅스의 예가 있습니다. 이처럼 집단지성이 긍정적 효과를 불러온 경우도 있지만, 구성원에 따라서 정보의 정확성이나 산출물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과 참여자들의 협동을 총괄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특정 세력의 선동이나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지식이 일반화, 대중화되면서 지식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넷은 소문, 험담, 거짓말이 무편집 상태로 뒤섞여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면서 생겨난 복합적인 두려움 속에서 위기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전제한 저자는 ‘지식의 위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터넷은 우리의 관심을 쪼개놓고, 천천히 오랫동안 숙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 네트워크의 발달은 어떤 멍청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교육과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떠들어댈 수 있도록 큰 확성기를 제공했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에 일종의 반향실(反響室)을 만들어 사실상 방송 시대에 접했던 것보다 더 우리의 사고의 폭을 좁게 가두고 있다. 구글은 우리의 기억력을 저하시키고 멍청하게 만든다. 인터넷은 열정적인 혹은 광신적인 아마추어들을 중심에 세우고 전문가들을 몰아낸다. 인터넷은 짐승 같은 인간들의 부상, 표절주의자들의 승리, 문화의 종말을 불러왔다. 그리고 진실을 오로지 올라간 손가락 숫자로, 지혜는 클릭 횟수로, 지식은 가장 재미있게 믿을 수 있는 것에 따라 판단하는 멍한 표정의 자위 행위자들이 거주하는 어둠의 시대의 발단이 되었다.(13쪽)”

 

이처럼 지식의 위기시대의 해결방안은 결국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지식의 미래>는 그와 같은 똑똑한 방을 만들어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가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의 전반부는 지식 과부하시대에 전문가의 영역이 파괴되고 있는 등 문제점들을 설명합니다. 이어서 지식을 둘러싼 과학의 본질 그리고 사고와 추론의 형식이나 지식이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설명하고 마지막 제9장에서는 지식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요약해보면, 인류는 역사적으로 항상 정보의 과부하를 겪어왔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도서관에는 수십만 개의 두루마리로 된 양피지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최근에서야 과부하를 논의하게 된 것은 정보를 여과하는 기능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과부하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무한정의 정보유통체계는 다양한 모습의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반면 서로 일치하지 않은 정보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때로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이렇게 정리하였습니다. “전통적인 매체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학자와 훈련받은 언론인들과 같은 강도로 떠들어내는 것을 불평한다.(132쪽)” 과거의 지식 전달매체는 때로는 전략상의 이유로 정보를 감추기도 하였던 것인데, 이제는 그런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전문가 집단마저도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해서 비전문가들을 혼란 속에 빠트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2008년 광우병파동에서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답을 구한 저자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정리해냈습니다. 첫째, 모든 지식과 경험은 해석이 중요하다. 둘째, 해석은 사회적이다. 셋째, 특권적 지위는 없다. 넷째, 해석은 담론 가운데 존재한다. 다섯째, 담론 내에서는 몇 가지 해석들이 특권을 갖는다.(167~168쪽)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인터넷 지식미디어가 이용자의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고 주장하는 니컬러스 카의 생각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혁명과 인간 사고의 확장,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인간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정리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86966>에서 니컬러스 카는 오늘날 많은 문명화 질병이 과거의 생활방식과 현대의 생활발식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디지털 미디어가 진화와 신경생물학적 부분에서 우리의 정신적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 또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니컬러스 카 지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19쪽, 청림출판, 2011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카의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지식의 네트워크화는 카가 주장하는 장문 형식의 사고가 지식과 지식 내에서 하는 역할과 성격에 몇 가지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권위는 더 이상 차지할 자리가 없다는 것, 주제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하이퍼링크가 매혹적인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 등입니다. 특히 전자책에서 하이퍼링크를 통해서 필요한 지식을 바로 찾아들어갈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이퍼링크를 뒤쫓다보면 정작 본문을 읽어가는 호흡이 끊어져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사태를 맞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지식을 둘러싼 과학의 본질이 변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과학이 대중과 충돌을 보이는 상황은 그동안 과학적 사실에 대하여 완고하던 믿음이 무너진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전 <플레이보이지> 모델 제니 맥카시가 백신에 의한 자폐증 위험을 강조하는 활동을 해온 것에 대하여 그녀의 무지로 인하여 자폐증을 피하는 아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병에 걸려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생길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백신과 자폐증이 무관하다는 것이 정통의학계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맥카시의 잘못된 믿음의 출발점 역시 백시과 자폐증이 연관을 가질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 의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제니 매카시 지음,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알마 펴냄, 2011년; http://blog.joins.com/yang412/12171623)을 고려한다면 <네이처>의 사설대로 과학자들끼리 한바탕 붙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토론의 장으로 나선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위기에 봉착했다고 주장하는 지식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저사는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첫째, 데이터가 풍부하다. 둘째, 더 많은 정보들이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어 있다. 셋째, 따로 허락을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넷째, 공개적이다. 다섯째, 궁극적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쳐나는 지식을 과연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에 대하여 저자는 인류의 기술혁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인터넷이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담겨 있는 도전을 해결하기 위하여 지식 네트워킹을 위기에서 축복으로 만드는데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하였습니다. 첫째, 접근을 개방하라, 둘째, 지능을 연결해줄 고리를 제공하라, 셋째, 모든 것을 연결하라, 넷째, 기관의 지식을 뒤에 남기지 마라, 다섯째, 모든 사람을 가르쳐라, 등입니다. 이런 제안이 나오게 된 것은 네트워크화된 지식이 우리를 지식에 대한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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