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닿는 거리, 17년
타마라 아일랜드 스톤 지음, 서민아 옮김, Ensee(최미경) 일러스트 / 놀(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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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두 장소 간의 가장 먼 거리다’라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을 발견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구분하는 작은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합니다. 2011년 10월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애나라는 이름의 여성이(몇 살인지는 밝히지 않았네요. 다만 ‘우리 사이에는 16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라는 구절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열여섯 살 된 베넷이라는 청년(?)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여성은 청년을 아는 것 같은데 청년은 여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순간을 위하여 몇 년을 고민했던 터라 이제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또 다시 그가 그립다.(12쪽)’라는 애나의 심정은 이야기 전체의 맥을 흩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시간여행의 고전 <백투더 퓨처>에서 <시간여행자의 아내> 등, 그 결과가 항상 해피앤딩이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장 해볼 수 없는 판타지에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말 방영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별에서 온 그대>의 경우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내용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시간여행에 초능력까지 보태서 판타지에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까지 더했던 것이 인기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마라 아일랜드 스톤의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은 시간여행자의 사랑을 그린 청소년소설입니다. 사랑이라는 예쁜 감정이 싹이 트고, 한창 감수성이 많은 십대 후반에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시간여행이라는 초능력이 사랑에 보탬이 될지 아니면 제약이 될지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젊은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흥미를 더하기 위하여 시간여행에 제약을 두고 주인공들이 그 제약을 깨야하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야기에 굴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6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5년 3월부터 시작합니다.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 애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입니다. 집근처 노스웨스턴 대학의 트랙에서 훈련을 하던 애나는눈쌓인 스탠드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는 청년을 발견하는데, 다음 순간 청년은 사라지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앉았던 흔적은 있지만 이동한 흔적은 없는 미스터리한 상황을 맞습니다. 이날 애나의 학급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전학생이 새로 옵니다. 아침에 트랙에서 만났던 바로 그 청년, 베넷입니다. 그런데 베넷은 애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공원에서 편두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베넷을 발견하게 되고, 아버지의 책방에서 강도를 만나게 된 애나를 베넷이 구해주는 과정에서 베넷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베넷은 자신의 정체를 애나에게 고백하면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지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여행에는 제약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가는 경우 자신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등장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인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왜곡된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도 또 중요한 제약은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는 것인데, 시간여행을 통하여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그린 스티븐 킹의 소설 <11/22/63: http://blog.joins.com/yang412/12956549>에서는 과거를 왜곡시키려는 시간여행자의 시도를 저지하려는 무형의 힘이 작용한다고 설정하기도 합니다.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에서는 절친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애나의 강력한 요구를 베넷이 거절하지 못한데서 두 사람의 관계에 왜곡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펼쳐보기에 부담스러운 부피입니다만, 단숨에 읽어갈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애나에게 찾아온 행운으로 얻는 멕시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하여 방문한 멕시코의 어느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는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왜 헤어져야 했고,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시간여행의 비밀을 푼다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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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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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달에 다녀온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스페인을 연결하는 여행에서 방문한 리스본 -포르투갈에는 리스보아라고 한답니다- 에 머문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처음 열었던 포르투갈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세비야를 떠난 지 10여분 만에 타호강을 건너 리스본에 들어갔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리스본 시내에 머문 시간이 몇 시간에 불과했던 탓에 호시우광장 부근에서 점심을 먹고, 벨렘탑과 바스코 다가마를 기리는 대항해탑을 거쳐 성 제로니모 수도원을 돌아본 것이 전부입니다. 리스본의 속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를 필명으로 하는 페터 비에리(Peter Bieri)는 1944년 스위스 베른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런던과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 고전언어학, 인도학, 영어학을 전공했는데, 박사학위를 취득한 다음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인지’ 및 ‘뇌’ 분야를 연구하면서 ‘철학적 심리학’,‘인식론’,‘윤리학’ 등에 관심을 두었다고 합니다.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의 철학사 교수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학계에는 본명으로 저술한 「자유 논고―‘개인 의지의 발견에 대하여’」가 널리 알려져 있고, <페를만의 침묵(1995)>, <피아노 조율사(1998)>, <리스본 행 야간열차(2004)>, <레아(2007)> 등의 소설이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카네이션혁명의 싹이 움트던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저는 다양한 이슈를 발견했습니다. 600여 쪽에 가까운 긴 내용을 읽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직소퍼즐 맞추기와 보물찾기입니다. <디 자이트>의 오토 에이 뵈머는 “프라두의 족적을 따라 사유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레고리우스는 결국 ‘사유의 바깥쪽에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고 결론짓는다.”라고 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일종의 ‘의식의 추리물’이다(585쪽)”라고 이 작품의 성격을 규정하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처음 부딪치는 의문은 바로 일탈입니다. 이마누엘 칸트만큼이나 정확하고 자신이 맡고 있는 고전문헌학 수업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한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가 지금까지 살아온 스위스의 베른을 떠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찾아가기로 한 것은 분명 일탈일 것입니다. 도올 김용옥이 ‘여행은 이탈이다’라고 한 것(김용옥 지음,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통나무 펴냄, 2005년;  http://blog.joins.com/yang412/13543663)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에서 떠나 휴식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일탈’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다.(10쪽)”면서도 출근길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미지의 포르투갈 여성과 조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 저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점입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이 여성은 끝내 모습을 다시 드러내지 않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57세가 된 그레고리우스는 왜 그녀와의 만남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장악해야 하겠다는 인식이 들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을 교실에 버려두고 키르헨펠트 다리로 돌아간 것은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다리를 떠나 들른 에스파냐 책방에서 여학생이 살까 망설이던 책을 집어 드는데,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사람이 쓴 <언어의 연금술사>입니다. 책방 주인은 이 책의 서문을 번역해서 그레고리우스에게 들려줍니다.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체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27쪽)” 이 책을 사겠다는 고레고리우스에게 책방 주인은 선물로 줍니다. 결국 그레고리우스의 일탈은 우연히 만난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이 쓴 책,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41쪽)’라고 하면서도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편을 알아보고 짐을 싸고 맙니다. 교장선생 앞으로 편지 한 장 달랑 보내는 것이 마무리의 전부입니다. 그 편지에 인용된,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44쪽)”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이 그의 심리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결정은 오래전에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으로 가려던 꿈을 접어야 했던 아픔이 무의식 속에남아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입니다. 밤 산책길에서 몸집이 큰 남자와 부딪치면서 안경이 부서지고, 다음 날 아침에 본 유혹적인 햇살이 그의 발길을 붙들었다고 적었습니다. “빛나는 광채는 지나간 모든 것을 아주 낯설고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고, 과거의 그림자를 모두 지워버릴 정도로 눈부셨다. 모습을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떠나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었다.(82쪽)” 기차에서 만난 실우베이라가 연결해준 마리아니 에사는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삶을 조명하는 일에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프라두는 그레고리우스의 바람대로 리스본에 머무는 이유를 만들어주게 됩니다. 연줄을 타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프라두의 삶의 흔적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마치 직소퍼즐처럼 말입니다.

 

이쯤해서 두 번째 의문을 만나게 됩니다. 은퇴한 책방주인 코우팅뉴노인은 프라두은 인기가 좋고 존경받는 의사였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간백정이라고 부르던 비밀경찰 후이 루이스 멩지스의 목숨을 구한 다음에는 사람들로부터 기피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진료소 옆에 쓰러진 멩지스를 사람들이 진료실에 들어다 놓았을 때, 프라두는 잠시 멩지스를 내려다 본 다음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강심제를 투여해서 소생시켰습니다. 프라두 역시 고문과 살인과 국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의 책임자라고 짐작하는 멩지스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의사의 사명을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배신자’라고 외치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나는 의사요’라고 변명하듯 말합니다. 그리고 ‘그자는 살인자요!’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그는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인간이에요.(240쪽)’라고 또렷하게 말합니다. 대중의 시각에서 보면 프라두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한 인간에 대한 복수이며 앞으로 일어날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정의를 방해한 셈입니다. 하지만 프라도의 입장에서는 의사로서 구할 수 있는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프라두의 의사로서의 확고한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라두는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면서 저항운동에 몸을 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프라두의 일관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라두는 학창시절 절친했던 조르지와 마리아나 에사의 외삼촌 주앙 에사 등과 함께 하는 비밀결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모임은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에스테파니아 에스피노자가 주도하는 문맹자를 위한 학습모임형태를 가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멩지스의 부하가 이곳에 나타나고 단원 중 한 명이 체포됩니다. 에스테파니아와 연인관계에 있던 조르지는 그녀를 죽여서 단원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프라두는 그녀를 스페인으로 탈출시키는 대안을 마련합니다. 조르지의 주장을 읽으면서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http://blog.joins.com/yang412/11902444>에서 논한 철길에서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문제를 떠올렸습니다. 조르지는 센델의 논리대로 사랑하는 연인을 희생시켜서라도 단원들을 구하겠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우선 생각하는데 반하여 프라두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탈출시키는 대안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역시 생명을 중하게 여기는 그의 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행적을 뒤쫓는 과정에서 <언어의 연금술사> 이외에도 그가 남긴 많은 글을 읽게 됩니다. 그 가운데는 스승인 바르톨로메우 신부가 건네준 프라두의 졸업식 연설문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쓴 연설문의 제목은 ‘신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혐오’입니다. 프라두는 “마비시킬 듯한 그들의 잔혹한 군화 소리가 골목에서 울려도, 그들이 고양이나 비겁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거리로 숨어들어 번쩍이는 칼날로 등 뒤에서 희생자의 가슴까지 꿰뚫어도.....설교단에서는 이런 무뢰한을 용서하고 더구나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장 불합리한 일 가운데 하나다.(216쪽)”라며 무능한 교회를 통박하였습니다. 독재자의 잔혹함에 대한 프라두의 혐오는 아버지에게로 연장되고 있습니다. 프라두의 아버지는 대법원의 판사였는데, 독재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범법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는 아버지에 대하여 깊이 실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남긴 편지에 “점점 더 너는 나에게 왜 아직도 법복을 입고 있냐고, 독재의 잔인함에 왜 눈을 감고 있냐고 비난하는 독선적인 판사처럼 보였다.(386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프라두의 아버지 역시 나름대로의 고통을 안고 살아왔고, 결국은 사퇴청원을 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합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넌 나 때문에 의사가 되었지. 네가 내 고통의 그림자 속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에게 빚이 많구나. 내 고통이 여전하고, 내 저항이 이제 무너지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389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아버지가 판사직을 유지한 것도 나름대로 저항하는 길을 모색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프라두가 세상을 떠난 2년 뒤에 그가 남긴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은 같이 살던 누이동생 아드리아나였습니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서문에서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27쪽)’라고 한 것처럼 프라두가 포르투갈어를 다듬는 글쓰기를 했다는 점을 저자는 넌지시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라두의 또 다른 누이동생 멜로디는 프라두가 잘못된 단어의 독재와 올바른 단어의 자유, 유치한 말 때문에 생기는 보이지 않는 감옥과 시의 광채에 대하여 말하곤 했기에, 그의 영혼이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언어의 연금술사>에서 다양한 단어의 의미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원한 젊음. 젊은 시절 우리는 우리가 불멸의 존재라고 생각하며 산다. 죽을 운명이라는 인식은 종이로 만든 느슨한 끈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어 피부에 거의 닿지 않는다.(…)(300쪽)”

 

‘여행은 이탈이다’라고 한 도올 김용옥이 새로운 체험의 획득이 없다면 그 이탈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전제한 것처럼 우리의 그레고리우스 역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해서 리스본으로 가지만, 그곳에서 언어의 의미를 추구한 프라두의 족적을 뒤쫓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현기증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베른으로 돌아옵니다만 언젠가는 리스본을 다시 찾을 것 같습니다.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즉 그냥 떠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인식, 즉 깨달음이 절대적이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해주는 인식작용 말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래도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거요.(5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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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혼 - 로마에서 아시시까지, 강금실의 가슴으로 걷는 성지순례
강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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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언젠가 꼭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나라이지만 몇 년 전에 학회 참석차 밀라노를 잠시 구경한 것이 전부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종교 분야는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가톨릭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혼>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께서 정치를 그만 둔 다음에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문화탐방프로그램으로 다녀온 이탈리아의 성지를 돌아본 기행을 정리한 것이라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로마와 바티칸, 수비아코, 피렌체와 시에나, 몬탈치노, 아시시 등지를 돌아보았는데 특히 사제님들이 직접 인솔하셨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체류하고 계신 사제님들께서도 합류하여 강론은 물론 성지에 얽힌 이야기까지 곁들였기 때문에 가톨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쓴 초고의 감수까지 맡아 내용이 충실하도록 했다니 가톨릭을 믿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톨릭을 믿지 않는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생명대학원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우석교수의 인간배아줄기세포실험의 진위로 나라 안팎으로 떠들썩하였던 것도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윤리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줄기세포는 인간배아줄기세포 말고도 성체줄기세포와 탯줄줄기세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꼭 윤리적 문제를 배태하고 있는 인간배아줄기세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성지순례 이외에도 순례기간 중에 듣게 된 김수환추기경님의 선종과 관련한 단상은 물론 동행한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과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이연학신부님과의 만남 등에 대해서도 적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활과 영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한인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죽음은 삶과 만난다. 사랑과 용서 속에서 삶은 죽음을 넘어가고 죽음 후에도 살아 있는 불멸에 이른다. 이 원리가 다시 생애 속으로 돌아와서 우리 삶 전체를 비추는 의미로 작용할 때, 그렇게 내 안에 체화되어 살 수 있게 될 때, 그것이 부활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있음이다.(105쪽)”

 

이탈리아는 온 나라가 예술품이라고 할 정도로 예술작품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성지에서 만나는 건물, 조각은 물론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작품을 사진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뒤에 방문할 기회가 되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예술작품 뿐 아니라 좋은 경관 역시 사진과 함께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 설명이 참 멋있습니다. 나폴리를 지나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바다는 묵직한 침묵 속에 서서히 움직이며 누워 있다. 바다에서 불러일으킨 물기 때문인지, 변화무쌍한 날씨 탓인지 축축이 젖어 있는 공기를 숨 쉬면서 아주 오래 전 탄생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바다에 구애하듯 뻗어 있는 절벽과 해안 사이에 구태여 몸을 도사려가면서 요새처럼 서 있는 집들에는 세월의 때가 켜켜이 내려앉았다. 이 해안도로의 바다와 절벽과 거기에 어우러진 사람의 집들은 낡고 편안한 모습으로 거대한 장관을 이룬다. 헌함 절벽 지형 속으로 파고들어 힘들게 집을 지을지언정, 길을 넓히거나 편편히 펴거나 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사람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의 아름다운 인내를 이 나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113쪽)”

 

토스카나 지방의 몬탈치노에서는 이 고장의 자랑인 와인에 대하여 설명과 함께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에 관한 구절도 인용하여 해설하기도 합니다. 저도 자주 경험하는 것입니다만, 여행을 다니면서는 금세 글로 정리될 것 같지만 막상 시작하면 생각들이 서로 엉켜들기 시작하기 쉬워서 마무리가 수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의 정보와 느낌들을 잘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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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수업 (양장) - 글 잘 쓰는 독창적인 작가가 되는 법
도러시아 브랜디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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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고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꾸준하게 정리하다 보니, 주변에서 그 방법을 물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개는 타고난 재주라는 생각을 하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는 답변은 꾸준하게 훈련을 하시면 가능한 일이라고 답변을 드립니다. 그런 저이지만 역시 전업작가로 소설을 쓰는 일만큼은 타고 나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은 그와 같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소설을 써보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것을 보면, 작가란 글솜씨를 타고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저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작가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은) 첫 강의에서, 책 서두에서, 작가의 강연 첫머리에서 ‘재능은 배운다고 해서 트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거기서 그의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런 부정적인 문장 속에서 그가 찾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부정이다.(2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쓰기에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비법은 분명히 있고, 또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저자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유별난 분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부딪치는 네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글쓰기 자체의 어려움인데,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하여 글이 풀어나가지 않는 상황에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 책’ 작가인데, 좋은 작품을 하나 발표했지만, 그 이후에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운동에서 말하는 2년차 증후군에 해당되겠습니다. 셋째는 가뭄에 콩 나듯 쓰는 작가인데, 앞의 두 가지 어려움이 뒤섞인 결과라고 합니다. 마지막 넷째는 기복이 심한 작가인데, 이는 기술적 측면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즉 이야기는 생동감이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끝까지 매조지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식이라 함은 어른스러움, 분별력, 절제와 공평함이라고 하는 요소를 갖춘 장인과 비평가로 발전해가는 훈련과정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한다면 무의식은 오랜 경험을 통하여 축적된 기억, 감정, 사건, 장면, 성격과 관계의 의미를 불러내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은 의식이 무의식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자료들을 관리하고, 통합하고, 추려낼 수 있도록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이라고 하는 마음의 두 가지 기능을 가능한 멀리 떨어놓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이 둘을 동일한 마음의 두 측면이 아니라 서로 별개인 인격으로 바라보는 법을 터득한다면 일종의 모의 작업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무의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무언의 공상을 하는 시간을 만들고 그 결과를 쉽게 써내려가기를 권유합니다. 이른바,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의식이 기선을 잡았을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글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79쪽)”라는 것입니다. 첫걸음은 평소보다 30분이나 한시간쯤 일찍 일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 아무 내용이나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합니다. 즉 수면상태와 깨어있는 상태의 중간수준에서의 글쓰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전날 써놓은 글은 읽지 말라고 합니다. 이런 습관이 자리를 잡으면 쓰는 분량을 늘려가라고 합니다. 이어서 일정한 시간에 글쓰는 습관을 들이고, 이제는 자신이 써놓은 글을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합니다. 작가의 꿈을 꾸는 분이라면 이미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을 것입니다만 이제는 작가로서 책을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답니다. 그러다 보면 좋은 글을 모방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며, 그러다 보면 순수한 시각을 찾아내게 되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작가 수업>이 발표된 것이 1934년임에도 예비 작가들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고 있는 것은 글쓰기의 기교를 가르치는 교본이 아니라 작가의 기본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옮긴이의 설명대로 글쓰기의 기교는 시대와 작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글쓰기의 목적이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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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셋, 안녕! 여행을 마치다 - 유쾌발랄 은근심각 정현욱의 유고 여행기
정현욱 글.사진, 김용훈 엮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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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우리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여행기도 자주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젊은이들의 여행은 은퇴한 사람들의 여행과는 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스스로의 나아갈 길을 찾는 탐사여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물세 살과 스물네 살에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여행은 인도에서 시작해서 8개월에 걸쳐 네팔,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중국을 거쳐서 귀국하는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두 번째 여행은 중국에서 출발하는 러시아횡단열차를 타고, 몽골,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 덴마크,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터키까지 10개월에 걸쳐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두 차례의 여행의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들 나라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요?

 

주인공이 자기소개서에서 ‘군대를 제대하고 많은 친구들이 어학연수를 떠나던 때에 저는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했습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첫 번째 여행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두 번째 여행은 제대하고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우리가 고개만 돌리면 바로 세상의 시작점이 되는 이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 과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고, 둘째, 유라시아 대륙을 직접 발로 밟아가며 대체 이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겪어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기간을 통하여 여행을 하고 얻은 감정들은 주인공의 삶에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 그리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편집을 하신 분은 주인공이 여행길에서 마주한 다양한 모습과 여행기간 중에 꼼꼼하게 적은 여행일기를 그대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여행을 하면서 메모를 합니다만, 아무래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어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풍부한 감정들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행이 끝난 다음에 메모를 바탕으로 감정을 되살려 글을 써내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남긴 메모들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하지만 젊음이 느껴지는 날 것 같은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삽입되어 있는 주인공의 메모를 보면 서툴러 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습니다. 숙소와, 교통편, 식사 등에 관한 사항들이 가격과 절차 등 세심한 부분까지 기록하고 있어 어쩌면 여행안내서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메모들 사이사이에는 번뜩이는 사유의 단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너무 많으 허용된 자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택이란 기회가 별로 달갑지 않은 요즘이다.(33쪽)” “석양과 낙타는 멋졌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어디서 머무느냐와 가까이에 누가 있느냐가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59쪽)” 여행에 달관해가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한 인도에서는 “공항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전부 사기꾼들이다.(12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지나치게 현지인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계하면 아무래도 다가설 수 없기 마련인데, 여행을 계속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실감하게 됩니다. 산을 좋아하는 제 친구는 네팔여행에 엄청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이 책의 주인공은 “역시나 별 볼일 없는 포카라. 관광지 냄새가 너무 난다. 바로 옆에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늘어서 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다.(91쪽)”라고 했네요.

 

주인공의 여행메모 사이에 편집되어 있는 가족 친지들의 진한 안타까움이 담긴 이야기들은 이들이 주인공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작별을 고하는 듯한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제목에 끌렸습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여행을 마친다’라는 말은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책을 열어 서문을 대하니, 정말 그렇군요. 서른셋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한 젊은이의 죽음은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분들이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엮은이는 주인공이 처음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나 친교를 맺은 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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