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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영혼 - 로마에서 아시시까지, 강금실의 가슴으로 걷는 성지순례
강금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는 언젠가 꼭 가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나라이지만 몇 년 전에 학회 참석차 밀라노를 잠시 구경한 것이 전부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종교 분야는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 그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가톨릭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영혼>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께서 정치를 그만 둔 다음에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문화탐방프로그램으로 다녀온 이탈리아의 성지를 돌아본 기행을 정리한 것이라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로마와 바티칸, 수비아코, 피렌체와 시에나, 몬탈치노, 아시시 등지를 돌아보았는데 특히 사제님들이 직접 인솔하셨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체류하고 계신 사제님들께서도 합류하여 강론은 물론 성지에 얽힌 이야기까지 곁들였기 때문에 가톨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쓴 초고의 감수까지 맡아 내용이 충실하도록 했다니 가톨릭을 믿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가톨릭을 믿지 않는 저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생명대학원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우석교수의 인간배아줄기세포실험의 진위로 나라 안팎으로 떠들썩하였던 것도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윤리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줄기세포는 인간배아줄기세포 말고도 성체줄기세포와 탯줄줄기세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꼭 윤리적 문제를 배태하고 있는 인간배아줄기세포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성지순례 이외에도 순례기간 중에 듣게 된 김수환추기경님의 선종과 관련한 단상은 물론 동행한 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과의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이연학신부님과의 만남 등에 대해서도 적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활과 영생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풀어내고 있습니다. “무한인 사랑과 용서를 통해서만 죽음은 삶과 만난다. 사랑과 용서 속에서 삶은 죽음을 넘어가고 죽음 후에도 살아 있는 불멸에 이른다. 이 원리가 다시 생애 속으로 돌아와서 우리 삶 전체를 비추는 의미로 작용할 때, 그렇게 내 안에 체화되어 살 수 있게 될 때, 그것이 부활이며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 있음이다.(105쪽)”
이탈리아는 온 나라가 예술품이라고 할 정도로 예술작품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성지에서 만나는 건물, 조각은 물론 미술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작품을 사진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뒤에 방문할 기회가 되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예술작품 뿐 아니라 좋은 경관 역시 사진과 함께 설명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그 설명이 참 멋있습니다. 나폴리를 지나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바다는 묵직한 침묵 속에 서서히 움직이며 누워 있다. 바다에서 불러일으킨 물기 때문인지, 변화무쌍한 날씨 탓인지 축축이 젖어 있는 공기를 숨 쉬면서 아주 오래 전 탄생의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바다에 구애하듯 뻗어 있는 절벽과 해안 사이에 구태여 몸을 도사려가면서 요새처럼 서 있는 집들에는 세월의 때가 켜켜이 내려앉았다. 이 해안도로의 바다와 절벽과 거기에 어우러진 사람의 집들은 낡고 편안한 모습으로 거대한 장관을 이룬다. 헌함 절벽 지형 속으로 파고들어 힘들게 집을 지을지언정, 길을 넓히거나 편편히 펴거나 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사람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의 아름다운 인내를 이 나라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113쪽)”
토스카나 지방의 몬탈치노에서는 이 고장의 자랑인 와인에 대하여 설명과 함께 성경에 나오는 포도주에 관한 구절도 인용하여 해설하기도 합니다. 저도 자주 경험하는 것입니다만, 여행을 다니면서는 금세 글로 정리될 것 같지만 막상 시작하면 생각들이 서로 엉켜들기 시작하기 쉬워서 마무리가 수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의 정보와 느낌들을 잘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