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셋, 안녕! 여행을 마치다 - 유쾌발랄 은근심각 정현욱의 유고 여행기
정현욱 글.사진, 김용훈 엮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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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해외에서 우리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이 그리 드물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내놓은 여행기도 자주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젊은이들의 여행은 은퇴한 사람들의 여행과는 달라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스스로의 나아갈 길을 찾는 탐사여행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물세 살과 스물네 살에 유럽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여행은 인도에서 시작해서 8개월에 걸쳐 네팔,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중국을 거쳐서 귀국하는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두 번째 여행은 중국에서 출발하는 러시아횡단열차를 타고, 몽골, 러시아를 거쳐 스웨덴, 덴마크,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터키까지 10개월에 걸쳐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두 차례의 여행의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이들 나라에서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요?

 

주인공이 자기소개서에서 ‘군대를 제대하고 많은 친구들이 어학연수를 떠나던 때에 저는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했습니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첫 번째 여행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두 번째 여행은 제대하고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우리가 고개만 돌리면 바로 세상의 시작점이 되는 이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 과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고, 둘째, 유라시아 대륙을 직접 발로 밟아가며 대체 이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겪어 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기간을 통하여 여행을 하고 얻은 감정들은 주인공의 삶에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 그리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편집을 하신 분은 주인공이 여행길에서 마주한 다양한 모습과 여행기간 중에 꼼꼼하게 적은 여행일기를 그대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여행을 하면서 메모를 합니다만, 아무래도 단편적일 수밖에 없어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풍부한 감정들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행이 끝난 다음에 메모를 바탕으로 감정을 되살려 글을 써내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가 남긴 메모들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하지만 젊음이 느껴지는 날 것 같은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삽입되어 있는 주인공의 메모를 보면 서툴러 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습니다. 숙소와, 교통편, 식사 등에 관한 사항들이 가격과 절차 등 세심한 부분까지 기록하고 있어 어쩌면 여행안내서를 만들어보려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 메모들 사이사이에는 번뜩이는 사유의 단편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너무 많으 허용된 자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택이란 기회가 별로 달갑지 않은 요즘이다.(33쪽)” “석양과 낙타는 멋졌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건, 어디서 머무느냐와 가까이에 누가 있느냐가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59쪽)” 여행에 달관해가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한 인도에서는 “공항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전부 사기꾼들이다.(12쪽)”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지나치게 현지인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경계하면 아무래도 다가설 수 없기 마련인데, 여행을 계속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모습도 읽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바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실감하게 됩니다. 산을 좋아하는 제 친구는 네팔여행에 엄청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이 책의 주인공은 “역시나 별 볼일 없는 포카라. 관광지 냄새가 너무 난다. 바로 옆에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늘어서 있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다.(91쪽)”라고 했네요.

 

주인공의 여행메모 사이에 편집되어 있는 가족 친지들의 진한 안타까움이 담긴 이야기들은 이들이 주인공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작별을 고하는 듯한 심상치 않아 보이는 제목에 끌렸습니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여행을 마친다’라는 말은 삶을 마무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책을 열어 서문을 대하니, 정말 그렇군요. 서른셋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하직한 젊은이의 죽음은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그의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분들이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엮은이는 주인공이 처음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나 친교를 맺은 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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