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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닿는 거리, 17년
타마라 아일랜드 스톤 지음, 서민아 옮김, Ensee(최미경) 일러스트 / 놀(다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시간은 두 장소 간의 가장 먼 거리다’라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말을 발견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이야기하는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구분하는 작은 제목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합니다. 2011년 10월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애나라는 이름의 여성이(몇 살인지는 밝히지 않았네요. 다만 ‘우리 사이에는 16년이라는 시간이 놓여 있다’라는 구절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열여섯 살 된 베넷이라는 청년(?)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여성은 청년을 아는 것 같은데 청년은 여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순간을 위하여 몇 년을 고민했던 터라 이제는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또 다시 그가 그립다.(12쪽)’라는 애나의 심정은 이야기 전체의 맥을 흩어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시간여행의 고전 <백투더 퓨처>에서 <시간여행자의 아내> 등, 그 결과가 항상 해피앤딩이었던 것만은 아니지만 시간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장 해볼 수 없는 판타지에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해 말 방영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별에서 온 그대>의 경우는 외계인이 등장하지만 내용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시간여행에 초능력까지 보태서 판타지에 살인사건이라는 미스터리까지 더했던 것이 인기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마라 아일랜드 스톤의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은 시간여행자의 사랑을 그린 청소년소설입니다. 사랑이라는 예쁜 감정이 싹이 트고, 한창 감수성이 많은 십대 후반에 만나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시간여행이라는 초능력이 사랑에 보탬이 될지 아니면 제약이 될지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젊은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말입니다. 시간여행을 다루는 이야기에서는 흥미를 더하기 위하여 시간여행에 제약을 두고 주인공들이 그 제약을 깨야하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이야기에 굴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6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5년 3월부터 시작합니다. 일리노이주 에반스톤에 살고 있는 여주인공 애나는 크로스컨트리 선수입니다. 집근처 노스웨스턴 대학의 트랙에서 훈련을 하던 애나는눈쌓인 스탠드에 앉아 자신을 지켜보는 청년을 발견하는데, 다음 순간 청년은 사라지고 그가 있던 자리에는 앉았던 흔적은 있지만 이동한 흔적은 없는 미스터리한 상황을 맞습니다. 이날 애나의 학급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전학생이 새로 옵니다. 아침에 트랙에서 만났던 바로 그 청년, 베넷입니다. 그런데 베넷은 애나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공원에서 편두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베넷을 발견하게 되고, 아버지의 책방에서 강도를 만나게 된 애나를 베넷이 구해주는 과정에서 베넷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국 베넷은 자신의 정체를 애나에게 고백하면서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지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여행에는 제약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가는 경우 자신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등장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인데,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왜곡된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도 또 중요한 제약은 시간여행자가 과거의 사건에 개입하는 것인데, 시간여행을 통하여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그린 스티븐 킹의 소설 <11/22/63: http://blog.joins.com/yang412/12956549>에서는 과거를 왜곡시키려는 시간여행자의 시도를 저지하려는 무형의 힘이 작용한다고 설정하기도 합니다. <너에게 닿는 거리, 17년>에서는 절친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가자는 애나의 강력한 요구를 베넷이 거절하지 못한데서 두 사람의 관계에 왜곡이 생기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펼쳐보기에 부담스러운 부피입니다만, 단숨에 읽어갈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애나에게 찾아온 행운으로 얻는 멕시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하여 방문한 멕시코의 어느 바닷가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는 장면을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은 왜 헤어져야 했고,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만, 시간여행의 비밀을 푼다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