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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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론다에 갔을 때, 만난 은혜의 성모교회(Church of Our Lady of Mercy)가 성 테레사 수녀가 세운 봉쇄수도원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봉쇄수도원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종교인들 역시 사치하는 풍조가 생겼다는데, 성 테레사 수녀는 교회의 변모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수도에 정진하고자 세운 봉쇄수도원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위대한 침묵>이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수도사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봉쇄수도원의 일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정결, 청빈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 수도사들은 엄격한 금욕은 물론 침묵을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봉쇄수도원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창재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길 위에서>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작은 절 백흥암에서 수도정진하는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의 뒷이야기가 <길 위에서>에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백흥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품이 ‘봉쇄수도원 같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위대한 침묵>이 힌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와 찬송하는 음악 이외에는 묵음수행하는 유럽의 봉쇄수도원보다는 웃어야 할 때는 웃음꽃이 피는 백흥암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만 남아 있다는 무문관수행은 묵음수행보다도 더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문관수행은 감옥처럼 창문에조차 철창을 덧댄 세 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처절하게 정진하는 곳으로, 석 달이든 3년이든 정해진 수행기간을 모두 마치거나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 아니 감독께서는 <길위에서>를 제작하는 동안 객관적 시각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을 관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구도의 길에 나선 이유를 비롯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수도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생의 자세와 내면 깊이 흐르는 보살심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녹여낼 만큼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었기 때문(274쪽)”이라고 했습니다.

 

이창재 감독은 “무심한 듯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곳, 모자란 듯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곳, 백흥암은 바로 그런 절이다(35쪽)”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백흥암의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참 예뻐요. 불 없는 달밤에, 보름달빛이 기와지붕에 스르르 내려앉을 때 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지붕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됩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도를 찾아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36쪽)”라고 설명합니다.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습니까? 아직 절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 실감할 수 없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백흥암을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일년에 두 번, 초파일과 백중날에는 외부인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흥암 극락전에 있다는 가릉빈가를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백흥암의 다양한 모습과 이곳에서 정진수도하시는 분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많이 곁들이고 있어 백흥암의 모습은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께서 <길 위에서>를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백흥암에서 수도하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제작 뒷이야기까지도 가감없이 담고 있어,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읽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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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나무 - 겨울눈에서 스트라디바리까지, 나무의 모든 것 생각하는 돌 9
라인하르트 오스테로트 지음, 모이디 크레치만 그림 / 돌베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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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작은 나무로부터’라는 리뷰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나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담았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책을 받아 펼쳐보니, “세상의 모든 것은 원래 나무로 이루어졌다.(6쪽)”는 글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정말 그럴까 하는 미심쩍은 생각이 들면서 공감할 구석이 있는가 싶어 눈에 힘을 주어 읽으려는 찰나, ‘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바로 꼬리를 내리는 바람에 김이 샜습니다.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베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공연히 낚였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서문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이 책에서는 우리와 잘 어우러져 살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주는 나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7쪽)”라는 속내를 드러냅니다. 서문이 끝나고 본론에서 만나는 수납장에 관한 이야기는 도대체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 종잡지 못하게 됩니다. 저자는 모두 15꼭지의 이야기 가운데 무려 4꼭지를 폐기물 사이에서 발견한 낡은 수납장을 리폼하는 과정을 넣었습니다. 화자와 저자와의 관계도 분명치 않은 사족 같은 글을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인지 원....

 

독일 니더작센 주 헬름슈테트에서 태어나 역사학을 공부한 저자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숲과 나무의 선진국 독일 출신답게 나무에 관한 앎의 깊이가 대단하다는 점은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나무와 숲에 관한 이야기들의 상당부분이 독일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이 책이 가지는 한계로 보았습니다. 특히 인쇄술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쏙 빼고 중국과 일본만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인은 이미 6세기에 목판 인쇄술을 발명했고, 그 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일본인은 많은 유럽 예술가의 경탄을 자아낸 대가다운 기교를 완성했다(67쪽)”

 

책을 읽다가 의문이 들었던 것은 태풍이 유럽을 강타했다고 번역을 해놓은 것입니다. 학생 때 배우기를 태풍은 태평양에서 시작해서 동북아시아로 향하는 열대성 폭풍을 말하고, 북미 동부에서는 허리케인이라고 하고, 동 인도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사이클론이라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유럽에 열대성 폭풍우가 생기는 것이 가능한지부터가 의문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태풍이라고 번역한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사이에 나무에 관한 상식 6꼭지를 삽입하였는데, 숲과 작업장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 나무에 관한 최고 기록, 종이의 역사, 나무에 관한 관용적 표현, 나무에 깃든 전설과 치유력, 그리고 나무인증서 등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왜 정리하였는지 독자들이 더 궁금해하는 것은 없을까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종이의 역사를 달랑 2쪽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읽은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의 <종이의 역사; http://blog.joins.com/yang412/13542229>는 자그만치 524쪽이나 되는데 말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도 앎의 부피를 키울 수 있는 무엇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미치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지구에서 가장 가벼운 나무는 남아메리카에서 나는 발사나무라는 것, 가장 단단한 나무는 서인도제도를 둘러싼 지역에서 나는 유창목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오래된 나무는 캘리포니아주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해발 3000미터에 사는 브리슬콘 소나무로 수령이 무려 4,700년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큰 나무는 저도 직접 가서 보았던 캘리포니아에 사는 지름이 12미터, 높이는 140미터에 달하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라는 것 정도를 확인하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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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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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퀸네트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46285>에서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것도 정도껏 해야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은 한 술 더 떠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고 합니다. 이 책은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산문집의 1부는 각종 매체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들을 담았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담았습니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파괴시키기도 한다.(242쪽)”라면서 지루하더라도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여행이라고 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에의 망명’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1부에는 모두 13편의 여행산문이 실렸다. 여행산문의 경우는 때로 매체의 청탁을 받아 여행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꽃보다!~~’ 시리즈를 보면서 엄청 부러워하는 것은 여행도 하고 출연료도 받고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글을 팔기 위해 그림들을 구경하겠지만, 내 관심이 축구와 야구로 옮겨간 지 몇 년이 되었다.(65쪽)”라고 고백하거나, 심지어는 ‘이 거지같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74쪽)’라고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것을 보면 이런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조건이 붙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독자에게 여과 없이 투사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나를 고치지 못한다.(75쪽)’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같습니다.

 

리옹의 미니어처 박물관 근처의 카페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나서 레모네이드와 마들렌을 시켰고,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떤 과거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프루스트에게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가 된 것인데, 시인은 마들렌이 프루스트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각자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교토의 료안지를 가보지 못해서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토의 바위정원에 깔린 돌조각들은 내게 하나인 전체에 묵묵히 복종하는 군복들, 고등학교 운동장에 줄선 교복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다가왔다(124쪽)”라고 적었습니다만, 시인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 대한 감상평에서 다음 대목을 읽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폼은 나나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춘 ‘와꾸’라는 느낌이 든다(194쪽)” 제가 왜 실망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바마에 관한 산문을 제외하고는 여행산문의 상당수가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사학을 공부한 시인의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매체가 시인에게 여행산문을 청탁하게 된 것도 시인의 이런 배경을 주목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신변잡기에 관한 생각들이 더 많아 이를 따라가는 것도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의 제목을 어디서 얻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별도 설명이 없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제목은 참 멋있는데, 산문 어디에도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시인의 글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서 붙인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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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살람, 마그레브! - 지중해 연안, 북아프리카 4개국을 가다
이철영 지음 / 심산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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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의 태동을 이룬 현대사의 주역이라고 생각한 유럽을 주로 여행하던 저자가 눈길을 돌린 곳이 북아프리카라고 했습니다. 서계역사의 변방으로 알았던 북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면서 저자는 이곳에 로마의 유적이 그렇게 거대하게, 또 광대하게 존재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들이 오스만투르크라는 이슬람제국과 가톨릭을 앞세운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주변부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역시 불쌍한 인생이라고 안쓰럽게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북아프리카의 역사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하기 이전에 북아프리카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페니키아 사람들이 정착하여 카르타고를 건설하였고, 카르타고가 로마에 멸망한 다음에도 다시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아랍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지배하는 거대한 이슬람왕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북아프리카의 원래 주인인 베르베르족이 세운 알모라비데왕국과 알모아데왕국이 이베리아반도까지 지배한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제국은 중세유럽이 그리스에서 발아한 문명을 어둠에 묻어두었을 때, 이를 소중하게 이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해석까지 더하여 유럽이 르네상스를 열 수 있도록 기여하였으니, 인류사에서 중세 이슬람의 역할은 분명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세 유럽 제국주의의 침탈을 받은 것으로 이 지역을 과소평가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저자는 2007년에 튀니지에서 시작하여 리비아, 알제리를 거쳐 모로코까지 여행하면서 마그레브 지역을 여행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그레브란 “해가 지는 지역” 또는 “서쪽”이라는 의미를 담은 아랍어로 오늘날의 북아프리카 지역, 즉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아우르는 지역을 말하며,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지배한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몰타를 포괄하여 지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자가 리비아를 포함하여 마그레브라고 적은 것은 1989년에 출범한 북아프리카 5개국(알제리, 리비아,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의 지역협력체, 아랍 마그레브 연합과 혼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여행담을 읽다보면 모로코를 제외한 세 나라는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관광인프라가 열악하여 배낭여행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의 소통 문제는 기본적으로 어렵고, 숙소나 교통편을 미리 예약하는 일도 수월치 않은데다가 주로 이용하게 되는 택시비용 역시 눈치껏 협상을 해야 한다고 하니 섣불리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행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자료도 빈약해서 저자의 경우는 론리플래닛을 토대로 여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을 많이 여행한 탓인지 저자는 로마문명에 대하여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역에 산재해있는 로마의 유적을 보면서 “로마가 더 대단해 보이고, 문명사의 모든 분야에서 모범이 될 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이렇게 많은 감동과 영향을 주는 제국은 흔치 않다(37쪽)”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카르타고와의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이들이 존재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한 로마에 대해서는 로마를 파괴한 반달족을 비난하는 반달리즘은 있으면서 로마이즘이란 말은 없는가 묻는 것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어렵게 찾아갔다는 리비아의 로마유적지 렙티스마그나는 최근에 읽은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에서도 어렵게 찾아가 감동을 적고 있는 것을 읽으면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인데, 많은 사진을 곁들인 상세한 설명을 새겨두게 됩니다.

 

아무래도 젊은 탓인지 현지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말을 엮어가는 모습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특히 여성들과 작업(?)을 쉽게 거는 능력자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해서 불편한 느낌이 남는 것은 공연한 투정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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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견문록 - 외교관 임홍재, 베트남의 천 가지 멋을 발견하다
임홍재 지음 / 김영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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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베트남 하롱베이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온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느낌만 소략하게 적어두었던 것을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곁들여 이곳을 가려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여행기가 되었으면 해서 고른 책입니다. <베트남 견문록>은 2007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베트남에서 근무하신 임홍재대사께서 재임 기간 보고 느꼈던 베트남의 역사, 문화, 자연 등을 정리하고, 특히 프랑스,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동력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는 베트남하면 청룡부대, 맹호부대, 백마부대 등 파월장병과 관련된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적국인 셈입니다. 월남파병과 관련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런 과거에도 불구하고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외교관계를 맺은 지가 벌써 18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2,000여 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해 있고, 9만 여 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거의 같은 숫자의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선 베트남에 부임하면서 느낀 첫인상을 ‘너는 내 운명’이라고 느꼈다는데, 그 이유를 한국과 베트남이 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낯선 고장에 가면 그곳 사정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일 터이다. 그래서 저자는 ‘베트남은 어떤 나라인가’를 요약하고,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얽혀 있는 질긴 인연을 들추어냅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의 뿌리를 찾아들어갑니다. 그 뿌리는 베트남 민족의 발원이 되는 용의 전설에까지 이릅니다. 전설에 의하면 바다의 용과 산의 요정이 결혼해서 10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산과 들로 나가 비엣(越)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북쪽이 험한 산악지형인 반면 동남쪽으로는 바다를 면하고 있는 베트남의 지역적 특성에서 나온 전설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인류학자들은 50만 년 전부터 베트남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추정하지만 베트남의 역사는 대체로 기원전 1000년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사람들은 그들의 역사과정을 ‘1000 + 1000 + 900 + 80 + 30 + 40’으로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 1000년, 중국 지배 1000년, 베트남 민족 독립 왕조 시대 900년, 프랑스 식민통치 80년, 독립 통일 전쟁 30년, 개방과 국제화, 지역화 40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프랑스 식민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과정과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그들을 승리로 이끌어낸 결정적 리더십을 보인 호찌민의 삶과 철학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나 그 이후 읽은 책을 통하여 알게 된 호찌민 주석의 삶에 대한 철학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찌민 주석은 일생을 베트남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살았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136쪽)”라는 지나치게 간략해 보이는 저자의 요약이야 말로, 길어지면 군더더기가 되어 호찌민주석을 욕되게 할 수도 있는 점에서 최선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이어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는데, 생각 같아서는 프랑스나 미국과의 전쟁에 앞서 정리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노이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인식이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설명하고 그로부터 베트남의 숨은 매력과 미래까지도 아우르는 치밀한 생각이 감추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반도를 토끼에 비유한 것은 일본의 간계이며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도차이나반도의 동쪽 바다를 따라 길게 늘여져 있는 베트남을 떼어놓고 보면 용을 닮았다고 합니다. 1박2일로 하롱베이를 스치듯 구경한 것을 가지고 베트남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치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베트남을 제대로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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