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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평점 :
스페인의 론다에 갔을 때, 만난 은혜의 성모교회(Church of Our Lady of Mercy)가 성 테레사 수녀가 세운 봉쇄수도원이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봉쇄수도원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사회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면서 종교인들 역시 사치하는 풍조가 생겼다는데, 성 테레사 수녀는 교회의 변모된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수도에 정진하고자 세운 봉쇄수도원이라고 합니다.
다큐멘터리영화 <위대한 침묵>이 프랑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대수도원(The Grande Chartreuse)의 수도사들의 일상을 그려내면서 봉쇄수도원의 일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봉쇄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정결, 청빈 순명서원과 함께 침묵을 서원한 수도사들은 엄격한 금욕은 물론 침묵을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의 봉쇄수도원에 관하여 조사를 하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이창재감독이 2012년에 만든 영화 <길 위에서>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작은 절 백흥암에서 수도정진하는 비구니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의 뒷이야기가 <길 위에서>에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의 앞부분에서 백흥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은 참선 정진하는 수행도량이오니 외부인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품이 ‘봉쇄수도원 같다’라고 적은 것을 보면 <위대한 침묵>이 힌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소리와 찬송하는 음악 이외에는 묵음수행하는 유럽의 봉쇄수도원보다는 웃어야 할 때는 웃음꽃이 피는 백흥암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현재는 중국과 티베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에만 남아 있다는 무문관수행은 묵음수행보다도 더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문관수행은 감옥처럼 창문에조차 철창을 덧댄 세 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루 한끼만 먹으며 처절하게 정진하는 곳으로, 석 달이든 3년이든 정해진 수행기간을 모두 마치거나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문을 박차고 나와야만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 아니 감독께서는 <길위에서>를 제작하는 동안 객관적 시각에서 수행하시는 분들을 관찰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분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는데, 아마도 구도의 길에 나선 이유를 비롯하여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수도하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생의 자세와 내면 깊이 흐르는 보살심은 누구의 마음이라도 녹여낼 만큼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었기 때문(274쪽)”이라고 했습니다.
이창재 감독은 “무심한 듯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곳, 모자란 듯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곳, 백흥암은 바로 그런 절이다(35쪽)”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백흥암의 영운 스님은 “백흥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참 예뻐요. 불 없는 달밤에, 보름달빛이 기와지붕에 스르르 내려앉을 때 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지붕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됩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도를 찾아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36쪽)”라고 설명합니다. 한 폭의 그림 같지 않습니까? 아직 절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어 실감할 수 없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백흥암을 한 번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일년에 두 번, 초파일과 백중날에는 외부인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백흥암 극락전에 있다는 가릉빈가를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백흥암의 다양한 모습과 이곳에서 정진수도하시는 분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많이 곁들이고 있어 백흥암의 모습은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께서 <길 위에서>를 제작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입니다. 백흥암에서 수도하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제작 뒷이야기까지도 가감없이 담고 있어, 읽어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책읽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