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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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퀸네트는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http://blog.joins.com/yang412/13546285>에서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것도 정도껏 해야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영미 시인은 한 술 더 떠서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고 합니다. 이 책은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산문집의 1부는 각종 매체에 기고한 여행과 관련된 들을 담았고, 2부에는 문학, 미술, 영화 등 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담았습니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파괴시키기도 한다.(242쪽)”라면서 지루하더라도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여행이라고 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움에의 망명’이라는 소제목을 붙인 1부에는 모두 13편의 여행산문이 실렸다. 여행산문의 경우는 때로 매체의 청탁을 받아 여행에 나서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꽃보다!~~’ 시리즈를 보면서 엄청 부러워하는 것은 여행도 하고 출연료도 받고 하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행경비를 벌기 위해, 잡지에 글을 팔기 위해 그림들을 구경하겠지만, 내 관심이 축구와 야구로 옮겨간 지 몇 년이 되었다.(65쪽)”라고 고백하거나, 심지어는 ‘이 거지같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해....(74쪽)’라고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것을 보면 이런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역시 조건이 붙으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다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독자에게 여과 없이 투사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나를 고치지 못한다.(75쪽)’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같습니다.

 

리옹의 미니어처 박물관 근처의 카페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생각나서 레모네이드와 마들렌을 시켰고, 마들렌을 먹으면서 어떤 과거도 떠올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프루스트에게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가 된 것인데, 시인은 마들렌이 프루스트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각자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단초는 나름대로의 특별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교토의 료안지를 가보지 못해서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토의 바위정원에 깔린 돌조각들은 내게 하나인 전체에 묵묵히 복종하는 군복들, 고등학교 운동장에 줄선 교복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다가왔다(124쪽)”라고 적었습니다만, 시인이 일본의 군국주의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면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 대한 감상평에서 다음 대목을 읽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폼은 나나 너무 억지로 끼워 맞춘 ‘와꾸’라는 느낌이 든다(194쪽)” 제가 왜 실망했는지는 여러분들도 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바마에 관한 산문을 제외하고는 여행산문의 상당수가 미술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아마도 미술사학을 공부한 시인의 전공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매체가 시인에게 여행산문을 청탁하게 된 것도 시인의 이런 배경을 주목한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개인의 신변잡기에 관한 생각들이 더 많아 이를 따라가는 것도 고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의 제목을 어디서 얻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별도 설명이 없어서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제목은 참 멋있는데, 산문 어디에도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시인의 글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서 붙인 것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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