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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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줄이나 읽는 사람치고 한창 클 때 금지된 책을 은밀하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금지된 책의 의미는 물론 19금에서부터 이념서적까지 다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뭐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자랑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고, 마음 한 구석에 감추어 두는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똑 같지 않아서 색다른 경험을 동무들과 공유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빨간책>의 저자들이 이런 분들인 듯, 폭풍상장의 상징으로 그런 책들을 읽은 기억들을 남들과 공감해보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요즘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방청객들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코너가 생긴 것 같습니다.

 

세분의 공동저자들은 잘나가는 SBS 라디오 피디이자, 저는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화제의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세 분 중에 이재익님은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http://blog.joins.com/yang412/12899256>으로 저를 좌절케 만든 분이기도 합니다. 직업 탓인지 때로는 책을 분석적으로 읽기도 합니다. <빨간책>을 분해해보았습니다. 세분이 쓴 31꼭지의 글을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 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로 나누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종훈님의 글은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지만, 이재익님은 1부와 2부에 편중되어 있고, 이승훈님은 3부와 2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성장이라는 것이 칼로 무를 자르듯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적절하게 분류를 했더라도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빨간책>을 기획하신 분께서 목차에 글쓴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모름지기 목차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생각하니 출판사로서의 시공사와 사주가 누군지를 들어가는 말에서 굳이 밝히는 자상함이 살짝 불편했다는 점하고, 첫 번째 글이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초등학교를 다니던 글쓴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엮은 책읽기를 앞세운 것도 이 책의 대주제를 생각한다면 썩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특히 이미 몇 권의 책을 내신 저자께서 관련 업계에서 쓰는 일본어 잔재를 반복해서 쓰신 것을 보고는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한글을 무너뜨리는 제1의 적은 방송계에 숨어 있는 오열(五列)이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친 것이기를 바랍니다.

 

제목이 그래서 저자들이 생각을 끌어온 책들이 모두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닙니다. 윤동주, 롤랑 바르트, 데카르트, 제레미 리프킨, 칼 세이건, 하워드 진, 리처드 도킨스 등과 같은 쟁쟁한 석학들의 명저들이 즐비하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폭풍성장기의 저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인쇄매체가 만화는 물론 판타지소설, 잡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31가지나 되는 책 혹은 잡지들 가운데 읽어본 것이라고는 겨우 6종에 불과하여 제가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른 성장과정을 거친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5종류도 다 큰 다음에 읽어본 것이 대부분이라서, 아마도 저자들과 저 사이에 놓은 세월의 간극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쪽으로 1;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을 읽다보면 어린 마르셀의 책읽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할머니께서 마르셀의 생일에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조르주 상드의『엥디아나』를 고르면서, “어미야, 난 제대로 쓴 글이 아니라면 저 애에게 줄 생각이 없구나”라고 한 것을 보면, 저자들의 책읽기가 별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네 정서가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저자들은 자녀들이 ‘빨간책’을 읽는다 해서 반성문을 쓰게 하면서까지 금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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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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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더라도 작가의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는 1939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비교되는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조지 오웰이 직접 전투에 참가한 경험을 서술하는 형식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 조던이 반파시스트 게릴라의 협조를 받아 파시스트군대를 저지하기 위한 후방교란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역적으로도 <카탈로니아 찬가>는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마드리드와 중간쯤에 해당하는 사라고사에서 파시스트군과 전투하는 장면과 바르셀로나 안에서 인민정부와 통일노동자당이 분열하여 서로 싸우는 과정까지 그리는 반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조던은 라그랑하를 거쳐 세고비야를 점령하려는 골츠장군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마드리드와 세고비아 사이에 위치한 과다라마 산맥에 위치한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역의 반파시스트 게릴라들의 입장과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스페인내전은 1936년 2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의회를 장악한 인민전선은 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 좌파 공화파, 스페인 공산당 등으로 구성되어 토지개혁을 포함한 개혁 정책들을 강하게 밀어붙여 지주, 자본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불만이 고조되었던 것이 단초가 되었습니다. 정부의 식민지정책에 불만을 품은 프랑코장군이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를 공격했는데, 내용은 스페인 영토 안에서 일어난 내전이었지만, 전투는 국제전의 양상을 보였습니다. 소비에트 연방과 서방의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 전선에 가담하였고,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과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프랑코의 반란군을 지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피아구분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웰이 소속된 의용군의 무장은 물론 군수지원을 보면 도대체 전쟁을 치루는 부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조던이 집시 점에서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도 다리 폭파임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명분때문이었던 것처럼, 조지 오웰 역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이유가 명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그 후 얼마 동안도, 정치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다(66쪽)”라면서,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해서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파시즘과 싸우기 위하여, 그리고 공동의 품위를 위하여”라고 답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내와 함께 가는 것도 이상합니다. 아내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조지 오웰은 의용군에 입대하여 사라고사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수행하는 한편 후방인 바르셀로나로 휴가를 나와 아내와 만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연합세력이 분열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시가전을 벌이는 극적인 상황에 몰리면서 아내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오웰의 아내 역시 전투에 직접 참여하거나 후방지원에 나선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시가전은 람블라스거리를 중심으로 정부군이 통일노동자당을 포함한 무정부주의자들을 제압하기에 나서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적을 앞에 두고 후방에서 같은 편이 분열하여 시가전을 벌였으니 인민정부가 그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더 이상한 노릇일 것 같습니다. 결국 프랑코의 파시스트군이 승리를 거두고 말았던 것인데, 마드리드에서도 인민정부는 노동자계급들이 자발적으로 무장을 해서 파시스트군에 대항하다가 패퇴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사이에 전쟁은 끝인 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적전분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병서에 다 나와 있는 것 아니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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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의 여인, 지나
타하르 벤 젤룬 지음, 조은섭 옮김 / 밝은세상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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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책에서 힌트를 얻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지금 마무리하고 있는 스페인-모로코-포르투갈 여행기에 삽입할 에피소드를 얻기 위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가기 전날 탕헤르에서 하룻밤을 묵기는 했지만, 늦게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배를 타러 간 것이 전부라서 탕헤르의 느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타하르 벤 젤룬의 소설 <탕헤르의 여인, 지나>는 읽으면서도 무엇을 뒤쫓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뒤에 역자 후기를 읽고서야 소설에 담긴 저자의 의도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나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어머니의 태안에 자리하는 순간부터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상처가 아물기까지의 과정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지나(Zina)의 이름은 아름다움과 사생아를 의미하는데, 그녀는 기도, 양심의 점검과 침묵 속에서 묵상 이외에는 아무 짓도 해서는 안되는 실수의 밤에 어머니가 다섯 명의 노상강도에게 윤간을 당하여 수태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출생하는 날에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러 온 보호천사들의 저주를 받고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녀는 완전히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사랑받지 못한 삶을 살았던 존재들에게 둘러싸이면서 묘한 마력을 지니게 됩니다. 그녀 주변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유혹하여 관계를 맺었다가도 무단히 관계를 끊어버리는 등, 성에 관한한 자유로운 행보를 보이던 그녀는 호주여자의 인도로 목매단 자의 오두막집에서 사내들에게 윤간을 당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한 팔이 잘린 타잔이라는 별명의 다만느와 치타라는 별명을 가진 아내 자밀라를 이야기꾼으로 등장시켜 지나에 관한 이야기를 천일야화처럼 풀어갑니다. 지나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다는 다섯 남자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이 타잔과 치타의 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식으로 설명이 되는데, 전후 관계가 쉽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그 남자들의 이름은, 바샤르, 비랄, 아비드, 카를로스 그리고 살림입니다.

 

지나는 부모가 돌아가시자 동쪽의 작은 산간 마을 샤우앙으로 옮겨가 셰리파라는 이름으로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성스러운 길을 걷게 됩니다. 우랜 세월이 지나 살림이 셰리파를 찾아가 그녀와의 관계를 되돌리고자 하지만 그녀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말에 속절없이 탕헤르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게 소략하게 정리를 합니다만, 이야기의 갈래가 두서없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작가가 꿈을 꾸며 밤을 새우듯이 가상의 인물들과 대화를 하거나 이야기를 꾸며내 자신의 몽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듯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지나에게 모로코의 현재 모습이 겹쳐지도록 그려내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탕헤르는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포루투갈의 다섯 나라에 휘둘린 국제적인 사생아였다는 것입니다. 탕헤르가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작가가 그려낸 지나는 다섯 명의 아버지와 다섯의 얼굴을 가진 여자로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가 중복되는 다중인격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장과정에서 그녀가 겪는 종교와 섹스의 제의, 향락, 마약, 부패와 불법, 광기가 난무하는 현장들은 모로코의 현실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며, 온갖 비리와 성적 유희를 탐하면서 이슬람에 몰입하는 모로코 남성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특히 억압받는 모로코 여성들이 종교와 관습의 속박에 저항하여 자유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려왔다고 합니다. 작가가 패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던 열한 살에 탕헤르로 이사해서 프랑스 학제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라바트에서 대학을 마쳤고, 지금은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체험한 것들을 이야기에 담아 모로코의 암담한 현실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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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움직이기 - 행동경제학자의 발칙한 역발상
조재형 지음 / 이담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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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유행하던 우스갯소리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3단계에서 시작한 우스개가 날로 진화하였는데, 처음 나온 3단계의 정답은 이렇습니다.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 요즘 젊은이의 유머코드로는 ‘이거 웃기는 이야기 맞아?’ 할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일해본 분이라면 번거롭게 3단계까지 갈 필요 없이 ‘인턴선생에게 시킨다.’가 정답이라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느닷없이 코끼리에 관한 우스갯소리를 내놓은 이유는 조재형교수의 <코끼리 움직이기>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선택을 이끄는 ‘행동경제학’이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는 만큼, 설마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를 움직이는 특별한 방법이 소개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행동경제학(行動經濟學, 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는 “이성적이며 이상적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를 전제로 한 경제학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규명하기 위한 경제학이다.”라고 위키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 분야에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어왔습니다. 이론이 많다는 것은 정작 현실에 맞추어 보았을 때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울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경제활동 자체가 사람들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상적인 사회에서나 구현이 가능한 것수도 있습니다. 왜냐구요? 인간 자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닙니다만,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는 스스로도 모르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경제학 이론이 적용되는 사회는 다양한 인간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인지적, 감정적 요소와 편향 등에 의해 일어나는 심리학적 현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것이 행동경제학입니다. 심리학, 특히 실험심리학이 발전하면서 행동경제학의 이론이 공고해지게 된 셈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가?’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은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을 먼저 설명합니다. 자동시스템은 일종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하품을 하는 등의 행위입니다.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인데, 슬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감정 혹은 감성이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숙고시스템은 취직을 하기 위하여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원서를 어디에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처럼 이성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에 간여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양분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는 발의 위치나 그립을 잡는 것부터 스윙과 팔로우까지 코치에게 배운 것을 되새기면서 따라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보기를 넘어 싱글에 이르게 되면 일부 과정은 의식하지 않은 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즉, 훈련을 통하여 숙고시스템이 자동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맞던 공이 무너지게 되면 자신의 스윙을 원점에서 검토하게 됩니다. 즉, 자동시스템을 숙고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은 상호 전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책 내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국제공항의 화장실에 있는 특별한 무엇이라든지, 90년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서 핵폐기물 매립지 설립과 관련한 주민투표 사례를 인용하여 인간의 사고와 의사결정과정에 작용하는 자동시스템과 숙고시스템을 설명하고 있어서입니다. 적절한 사례마저도 군더더기를 쳐내고 핵심을 간추려 내고 있어, 그 어렵다는 심리학이나 경제학의 개념을 설명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것입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행동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왜 당신은 흔들리는가?’입니다. 14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앞부분에서는 사고와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근본적 원인을 설명하고, 12꼭지의 이야기를 담은 뒷부분에서는 의사결정을 머뭇거리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제가 크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웠던 것도 있고, 나름대로 고민하던 것은 해답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사례를 인용하고, 여기에 적절한 심리학실험의 결과를 연결하여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는데, 책을 통하여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는 ‘공정성’으로 귀결된다고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통업계에서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있어왔던 최저가격보상제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목을 예로 들어봅니다. 최저가격보상제란, “고객이 구입한 상품과 브랜드 품목 규격 모델이 똑같은 상품을 다른 점포에서 더 싼값에 팔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차액을 즉시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이다. 이는 어떤 상품이든 동일한 것을 다른 유통점에서 더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면 이미 그 제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추후에라도 그 차액을 내준다는 것으로, 말 그대로 유통점이 고객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과 같은 유통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랜 전부터 시행되어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5월 신세계 이마트가 처음으로 실시했다.”라고 다음백과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형유통업체가의 가격경쟁을 유도하여 물가안정과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로 인식된 최저가격보상제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제도는 결국은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동일하게 만드는, 즉 담함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입니다. 좋은 취지를 내세워 소비자를 배려하는 척 했지만 오히려 소비자를 우롱하는 제도로 전락할 운명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자의 결론은 싼 값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과 공정한 시장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의 가격비교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의료기관의 서비스 가운데 건강보험의 적용대상이 아닌 비급여항목의 수가를 고지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는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지속적으로 하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담아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제도 역시 가격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무한경쟁이 소비자에게 꼭 유리한 것인가 되묻기도 합니다. 누구나 품질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서비스를 원하겠지만, 경쟁을 통하여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싼 게 비지떡’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허실에 관한 이야기도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저자가 인용한 사례는 아주 놀랄만한 것입니다. 모 텔레비전 방송의 퀴즈프로그램과 유사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라는 프랑스판 퀴즈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지구를 도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달, 태양, 화성, 금성 이라는 예시가 주어졌는데, 초등학생도 답을 알만한 문제임에도 웬일인지 출연자가 당황하면서 방청객 찬스를 쓰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방청객의 42%만이 정답인 ‘달’을 선택하였고, 무려 56%의 방청객이 ‘태양’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출연자는 다수의 답은 ‘태양’을 선택하여 탈락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출연자는 그렇다고 쳐도 방청객은 왜 그런 선택을 하였을까요? 방청객이 잘못된 답을 제시한 건, 이 정도의 쉬운 질문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퀴즈쇼의 승리자가 되어 100만 유로를 받을 자격이 될 수 있느냐는 것으로, 참가자의 선정이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오답을 선택한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공정성과 경제민주화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저자는 최후통첩게임을 인용합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일정한 금액을 나누어 갖는 게임입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시한 조건과 다른 사람이 이를 수락하는가에 따라 가져갈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즉 한 사람이 제시한 금액에 다른 사람이 동의하면 두 사람이 돈을 나누어 가질 수 있지만, 동의하지 않으면 두 사람 모두 돈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실험을 해보면 대체적으로 제안을 하는 쪽에서 30%이상을 제시해야 두 사람이 모두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어느 정도의 노동을 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더 공평한 비율로 돈이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분배에 노동의 대가에 대한 보상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과정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부자가 돈을 버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돈을 버는 과정을 바로 잡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 역시 땀 흘린 만큼 돈을 버는 것이라면, 단순히 많이 벌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이 공정한가 싶습니다. 201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는 595만5,000명, 종합소득세 면세자 수는 140만 명으로 총 735만 명이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수입이 적은 계층에 대한 배려라는 차원의 정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도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고, 대신에 복지를 통하여 이를 보전해준다는 것입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보다는, 다만 조금이라도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입니다. 조세와 정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 움직이기’는 커다란 덩치의 코끼리를 타고 있는 왜소한 모습의 기수가 코끼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들어, 타성적인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코끼리에 올라탄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기 때문에 코끼리가 기수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코끼리는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기수의 말에 따르면 먹이 등으로 보상을 해주었기 때문에 기수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코끼리를 훈련시키는 과정은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조금씩 진행된다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 아침잠을 줄여 운동을 하기로 정했으면, 갑자기 1~2시간을 일찍 일어나 운동하기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 10분 정도 운동을 하는 식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우선 코끼리를 아주 조금만 움직여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잘한 코끼리를 토닥거려 칭찬해주고, 적절하게 보상을 해주는 것처럼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고 있는 일을 밖에 알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 저에게는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식의 저주’에 관한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맡고 있는 일 가운데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내용을 비전문가들에게 설명할 때는 상대를 초등학생으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만, 막상 설명을 하다보면 어느새 본래의 자세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이 참 좋은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어려운 행동경제학이론을 사례는 물론 심리실험에 이르기까지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행동경제학의 입문서로는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이 책이 절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성이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저는 베스트셀러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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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
이종헌 글.사진 / 소울메이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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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해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조우한 현장 스페인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이베리아의 이슬람은 고대 그리스문명을 보존하고, 재해석하여 유럽에 전한 숨은 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만남은 새로운 형식의 건축과 예술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만난 또 다른 현장 동유럽을 찾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키가 그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터키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이종헌기자님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은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오르한 파묵의 전작 읽기를 통하여 근대 터키사회의 분위기를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미처 몰랐던 터키 역사기행>은 터키에 대한 앎의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신을 다루는 기자로서 세계의 역사에 관심이 큰 저자는 해답을 여행에서 찾았습니다. “직접 가보는 것이 해답이다. 여행은 역사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큰 감동을 준다.(8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보는 것에만 머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숨어 있는 역사를 찾는 진정한 ‘여행’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세 차례의 터키 여행을 통하여 터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유적을 찾아 그 내력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여행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여행이었고, 두 번째 여행은 터키의 서부를, 세 번째 여행은 터키의 동부를 누볐습니다. 터키 전역을 커버하는 서른다섯 곳입니다. 그 가운데는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격돌한 현장도 있고,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끼고 메소포타미아문명의 시원이 되는 장소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터키인의 조상 튀르크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돌궐족이라고 합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튀르크족은 522년 처음으로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넓혔다가,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이 있는 중앙아시아지역의 서튀르크와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한 동튀르크로 나뉘었습니다. 동튀르크가 망한 다음에 서튀르크는 중국에 밀려 터키의 아타톨리아 지방으로 넘어가 터키를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고구려가 망하면서 흩어진 유민의 일부가 돌궐지역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터키와 우리나라가 형제의 나라라는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스만 튀르크의 멸망 이후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터키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저자는 보았습니다. 사실 이슬람이 장악했던 이베리아 반도에서나 발칸반도에서도 이슬람은 타 종교에 대하여 관대한 입장이었던 것인데, 기독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충돌의 배경에도 인종과 종교가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 것이 서로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터키 모델의 성공여부가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문명이 충돌한 장소에서는 새로운 문화적 경향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끔찍한 일도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역사여행은 다양한 시선을 찾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주로 화려하고 낭만적인 풍경과 겉모양에 머물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그 뒤에 존재하는 야만적 역사도 같이 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있으면 여행의 최고 목적을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여행을 통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터키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을 찾은 느낌뿐만이 아니라 그 유적의 역사적 배경까지 상세하게 들려주면서, 그곳에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무엇인지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터키여행에서 꼭 챙겨가지고 갈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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