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글줄이나 읽는 사람치고 한창 클 때 금지된 책을 은밀하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금지된 책의 의미는 물론 19금에서부터 이념서적까지 다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도 별다를 것은 없었지만, 뭐 그렇다고 친구들한테 자랑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고, 마음 한 구석에 감추어 두는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똑 같지 않아서 색다른 경험을 동무들과 공유하지 않으면 몸살이 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빨간책>의 저자들이 이런 분들인 듯, 폭풍상장의 상징으로 그런 책들을 읽은 기억들을 남들과 공감해보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요즘 개그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형식으로 방청객들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코너가 생긴 것 같습니다.

 

세분의 공동저자들은 잘나가는 SBS 라디오 피디이자, 저는 아직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화제의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세 분 중에 이재익님은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http://blog.joins.com/yang412/12899256>으로 저를 좌절케 만든 분이기도 합니다. 직업 탓인지 때로는 책을 분석적으로 읽기도 합니다. <빨간책>을 분해해보았습니다. 세분이 쓴 31꼭지의 글을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 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로 나누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김종훈님의 글은 세 가지 주제에 대하여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지만, 이재익님은 1부와 2부에 편중되어 있고, 이승훈님은 3부와 2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성장이라는 것이 칼로 무를 자르듯 재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적절하게 분류를 했더라도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빨간책>을 기획하신 분께서 목차에 글쓴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서 정리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모름지기 목차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생각하니 출판사로서의 시공사와 사주가 누군지를 들어가는 말에서 굳이 밝히는 자상함이 살짝 불편했다는 점하고, 첫 번째 글이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초등학교를 다니던 글쓴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엮은 책읽기를 앞세운 것도 이 책의 대주제를 생각한다면 썩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특히 이미 몇 권의 책을 내신 저자께서 관련 업계에서 쓰는 일본어 잔재를 반복해서 쓰신 것을 보고는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한글을 무너뜨리는 제1의 적은 방송계에 숨어 있는 오열(五列)이구나 하는 생각이 지나친 것이기를 바랍니다.

 

제목이 그래서 저자들이 생각을 끌어온 책들이 모두 그렇고 그런 책은 아닙니다. 윤동주, 롤랑 바르트, 데카르트, 제레미 리프킨, 칼 세이건, 하워드 진, 리처드 도킨스 등과 같은 쟁쟁한 석학들의 명저들이 즐비하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폭풍성장기의 저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인쇄매체가 만화는 물론 판타지소설, 잡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31가지나 되는 책 혹은 잡지들 가운데 읽어본 것이라고는 겨우 6종에 불과하여 제가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른 성장과정을 거친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5종류도 다 큰 다음에 읽어본 것이 대부분이라서, 아마도 저자들과 저 사이에 놓은 세월의 간극에서 오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쪽으로 1;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을 읽다보면 어린 마르셀의 책읽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할머니께서 마르셀의 생일에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작품 한 권, 그리고 조르주 상드의『엥디아나』를 고르면서, “어미야, 난 제대로 쓴 글이 아니라면 저 애에게 줄 생각이 없구나”라고 한 것을 보면, 저자들의 책읽기가 별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네 정서가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저자들은 자녀들이 ‘빨간책’을 읽는다 해서 반성문을 쓰게 하면서까지 금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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