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안), 캄보디아
정의한 지음 / 나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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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글을 쓰다 보니 다양한 여행기를 읽게 되는데, 참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다니시는구나 싶습니다. <安, 캄보디아>도 독특한 여행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단지 추위가 싫어서 어디든 남쪽으로 가야해서 고른 캄보디아여행이라고 합니다. 이미 다녀온 앙코르와트를 제외한 지역을 한달에 걸쳐 돌아보고 한달 쯤 시엠립에서 살아볼 계획으로 떠났다고 하니, 참으로 부러운 여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여행을 통하여 여행과 생활이 적절하게 이어져 해당국가에 대한 객관적인 복기와 애정의 여부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뉴욕과 엘에이, 멕시코시티, 페루의 뜨루히요, 태국의 치앙마이,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그리고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들을 누군가와 공유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을 출판하기 위하여 1인 출판사까지 차렸다고 하니 참 치열하게 사는 분 같습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은 70세가 되는 해에 집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돌며 생활하고 그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는 마틴씨 부부의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저자는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엠립 부근에 있는 캄보디아 제2의 도시 바탐봉에서 여행을 시작한 저자는 뽀삿을 거쳐 프놈펜에 도착하고, 이어서 캄퐁탐-시하눅빌-스떵뜨렁-반룽, 라따나끼리-끄라체-샌모노롬, 몬둘끼리-트벵 민체이와 쁘레아 비히어까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겨우 시엠립에 다녀온 것이 전부인 저로서는 저자가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신이 돌아다닌 경로를 지도 한 장으로 요약하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이런 불평입니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만, 무수하게 삽입되어 있는 사진들은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사진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책읽는 사람이 항상 저자와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자의 배경에 담긴 이미지 역시 책읽기에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친 다음에 시엠립에서 한달 정도 살 예정이라고 했지만, 시엠립에서 캄보디아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느낀 점은 여기에 담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하면서 스치듯 만난 사람들, 예를 들면 숙소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혹은 가이드와 나누는 몇 마디로 그 사람들의 깊은 속사정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결국은 밖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들에 대한 인상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스 옆자리에는 무척 어려 보이는 어린 엄마와 그녀의 역시 어린 아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가족이 자리했다. 그들은 모두 얼굴이 어두웠고 심지어 참담했다. 분명컨대 그들의 얼굴은 고민이나 그 너머의 수준마저 넘은 얼굴이었다. 삶에 근본적으로 고단함이 배어 있는 사람들, 난 그들과 나의 삶에 필연적인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연민 같은 싸구려 감정만을 가져본다.(15쪽)” 물론 그 가족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을 수 있겠지만, 한 가족의 인상으로 캄보디아 사람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일 수 있습니다. 곁들여진 많은 사진에 등장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표정은 구김없니 밝은 것을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일정이 없이 현지사정에 맞추어 일정을 짜는 여유로운 여행은 분명 좋은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쫓기듯 혹은 스쳐 지나듯 보는 여행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무엇이 분명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다만 숙소를 비롯하여 먹는 것 교통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 같습니다. 하나더... 저자는 앙코르와트 이전의 유적을 돌아보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하면서도 유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애당초 문외한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해석이나 미술적인 접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으로 가름하고 있는데, 여행지를 잇는 교통편이나 숙소에 대한 느낌이나 설명을 상세하게 늘어놓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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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5-07-01 14:37   좋아요 0 | URL
저도 지난 해 다녀왔는데, 이 책은 앙코르와트를 뺀 다른 지역을 돌아보셨더라구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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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큰아들 덕분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래된 잡화점에서 벌어지는 기묘하고 따듯한 이야기’라는 카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금새 알아차렸습니다만, 비교적 짧은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나고 두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면서 ‘옴니버스 스토리인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개의 에피소드는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면서는 ‘옴니버스 스토리 맞네’라는 생각으 들었지만, 이내 이야기의 흐름이 서서히 뒤섞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렇다면 따로 풀어낸 스토리들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하여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많습니다. 특히 사람이 과거 혹은 미래로 이동하는 형식을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소품-이 작품에서는 편지-가 이동하는 작품도 간혹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영화로는 <시월애>가 편지를 매개로 하여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사는 남녀가 편지를 매개로 연결되는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만난 타임슬립을 주제로 한 스토리에서는 등장인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쉽게 집중할 수 있는데 반하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은 모두 나미야 잡화점과 환광원이라고 하는 아동복지시설과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미야 잡화점을 처음 열었던 나미야 유지씨는 동네 아이들의 장난스러운 고민에 나름대로 깊이 있는 답변을 달아주던 것이 어느새 진지한 고민을 상담하는 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는 잡화점을 경영하는 일보다 오히려 고민상담이 더 중요한 일과가 되고 말았던 것이고, 나미야씨의 선행이 세상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합니다.

 

사실 본인의 문제에 대한 답은 본인이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답을 알면서도 뭔가 다른 길은 없을까 알아보기 위하여 상담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자신이 정한 답에 누군가 동조해주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상권이 옮겨가면서 손님이 들지 않는 잡화점을 지키던 결국은 도쿄의 아들집으로 옮겨가지만 이내 간암이 발병하여 결국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궁금한 것은 죽음을 앞둔 나미야씨가 마지막으로 잡화점을 찾던 날 아들에게 유지를 남깁니다. (자신이 죽은 뒤 33번째 기일이 다가오면 나미야 백화점의 상담창구가 한시적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공고를 내달라는 내용입니다. 나미야씨의 아들 역시 자신의 생전에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어 아들, 그러니까 나미야씨의 손주에게 그 일이 넘어가게 됩니다.) 바로 그날 밤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우선 나미야씨가 아들에게 남긴 유지대로 33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동안 나미야씨의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 혹은 상담자와 관련이 있던 사람들로부터 33년의 시간을 넘어서 배달된 답장을 받은 것입니다.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는 이야기가 33년이 지난 다음에 나미야씨가 공고한 그 시간에 잡화점에 우연히 스며든 쇼타, 고헤이, 아쓰다 등 세 명이 백수청년들에게 이번에는 과거로부터 상담편지가 날아든 것입니다. 세 사람이 잡화점에 머무는 동안 시간은 정체되는데, 세 사람은 나미야씨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담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그 답장은 과거의 사람들의 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박경리선생님의 <토지>처럼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에서는 등장인물의 관계가 애매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한치의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나미야씨는 남의 고민에 나름대로는 최선의 답을 고르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조언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만, 세 명의 청년은 자신들의 상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쉽게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미래에서 과거의 사람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타임슬립을 확인하기 위하여 청년들이 상담편지 투입구에 집어넣은 백지편지에 대한 나미야씨의 답장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대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 진심으로 기원합니다.(447쪽)” 백수인 세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상담이 없을 것 같습니다. 눈앞에 닥친 일이 힘들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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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처럼 2015-07-01 14:38   좋아요 0 | URL
책을 읽게 되는 것도 다 연이 닿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들 녀석 덕분에 읽게 된 책입니다.
 
아메리카노 -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 역사도서관 교양 17
존 찰스 채스틴 지음, 박구병.이성형.최해성 외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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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런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역시 커피 브랜드에 관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메리카노>는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의 과정과 의미를 정리한 책입니다. 옥스퍼드대학 출판부가 기획한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의 하나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 발발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것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세기 라틴아메리카, 특히 브라질과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의 정치문화와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존 찰스 채스틴교수가 썼습니다.

 

북아메리카에서 열리는 학회에는 선뜻 나서게 되지만 남아메리카의 학회는 너무 멀어 그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멀다보니 관심도 적고 그러다보니 남미 여러 나라에 관한 정보들도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정열의 나라, 본고장 영국보다 축구를 잘하는 나라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어서인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레프>, <픽션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등을 읽으면서도 작품 속으로 깊이 빠져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남아메리카가 얼마나 멀리 있는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여행작가 정은선님의 독특한 형식의 에세이 소설에 나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게스트하우스OJ에서 만난 나작가는 서울에서 복닥거리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온 사람이었습니다. 나작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 곳이 어디일까? 여기가 생지옥이니까 가장 먼 곳은 당연히 천국일 것이다. 책상 앞에 놓인 지구본을 발견했다.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대한민국을 찍고 그 반대편을 찾아 오른손으로 찍었다.”(정은선 지음,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150쪽, 예담, 2009년; http://blog.joins.com/yang412/13685980) 직선거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이 바로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것입니다.

 

칠레와의 FTA가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남미가 우리나라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여행지로 뜨고 있다는 남미를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무언가를 버리려 가는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으러 가는 여행으로 말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사를 독립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아메리카노>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독일의 박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시작한 1799년부터 그가 죽은 1840년까지를 서술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처럼 저 역시 ‘왜 훔볼트일까? 그리고 훔볼트가 누구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훔볼트인가?’하는 의문의 답은 이렇습니다. 19세기 초반 라틴 아메리카에서 독립투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훔볼트가 누구지?’하는 의문을 가진 분은 2013년 4월에 [북소리]에서 소개했던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을 다시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은 ‘호기심’이라는 여행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훔볼트를 인용하였던 것입니다. “훔볼트는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해발 5,076미터인데도 눈 위로 바위 이끼가 보였다. 이끼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00미터 정도 아래서였다. 봉플랑 씨[훔볼트의 동행자]는 해발 4,500미터에서 나비를 한 마리 잡았으며, 거기에서 500미터를 더 올라가서도 파리를 볼 수 있었다.’(153쪽)”라고 적어 훔볼트가 왜 뛰어난 박물학자인지를 알려주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호기심이 여행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가를 잘 설명하는 인용이었습니다.

 

훔볼트는 스페인왕 카를로스4세를 설득하여 남아메리카 여행을 허락받았을 뿐 아니라 탐험비용까지도 해결하여 1799년부터 5년간 남아메리카를 여행하였습니다. 여행을 마친 뒤에는 파리에 정착하고 30권에 달하는 <신대륙의 적도지역 여행>이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20년에 걸쳐 출간했습니다. 훔볼트가 여행을 떠날 무렵 만해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는 전혀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훔볼트는 5년 동안 1만5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남아메리카의 북쪽 해안선과 내륙을 여행했고, 1,600가지 식물을 채집했으며, 크로노미터와 육분의로 측정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도를 새롭게 그렸습니다. 아마존 유역 주민들의 혈족의식을 지리와 문화적 특성을 연관하여 추론해냈습니다. 해류의 개념을 생각해냈는데, 오늘날 태평양의 동쪽 칠레와 페루연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을 적도방향으로 밀어가는 페루해류를 처음 발견한 공로로 훔볼트해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훔볼트가 카를로스4세의 허락을 얻어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할 무렵에는 지금의 멕시코지역으로부터,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의 전체 지역이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영토가 너무 광대하여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임명한 부왕이 다스리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멕시코와 괘테말라에 이르는 누에바에스파냐, 콜롬비아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적도부근의 누에바그라나다, 지금의 페루와 칠레가 포함되는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를 포함하는 리오데라플라타 등입니다. 하지만 고산지대와 아마존의 밀림을 지나는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메리카노>에서는 이야기에 앞서 알파벳순으로 소개하고 있는 등장인물만 해도 57명에 달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생소하면서도 긴 스페인 이름이 혀끝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편년체 방식을 취하여 정해진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나열하고 있어서, 사건이 흩어져있고, 독립투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던 탓에 서로 연관을 가졌던 부분이 머릿속에 쉽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기전체로 풀었더라면 이해가 더 쉬웠을까요?

 

콜럼버스가 발견한 북대서양항로를 통하여 스페인이 라틴아메리카를 쉽게 손에 넣은 과정도 이해되지 않는 바가 많습니다.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이 지역에서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을 꽃피워왔던 사람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이유가 그저 정복자들이 가진 신식무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우리 사회에서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메르스처럼 그때까지 원주민들이 겪어보지 못한 천연두와 같은 신종전염병도 크게 기여한 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밖에 더 생각할 무엇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식민당국의 탄압으로 줄어든 원주민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서 붙잡아온 노예까지 더해져서 스페인에서 이주한 사람과 원주민 등이 복잡하게 섞이면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정체성이 복잡해졌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스페인왕실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충성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도 미스테리입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독립의 기운에 싹트게 된 것은 아무래도 1789년 프랑스에서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국민 의회를 열어 공화 제도를 이룩한 시민 혁명 영향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오랜 세월을 통하여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해온 신분차별을 지각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신분의 차이는 아프리카사람이나 원주민은 물론, 심지어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온 스페인 사람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출생한 스페인 사람 사이에도 차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에 불을 당긴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혁명에 이어 등장한 나폴레옹이 유럽의 지배할 야심을 가지고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침략에 대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응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1807년 포르투갈의 주앙6세는 리스본을 떠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반면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공격하는 길을 내준 스페인은 이듬해 나폴레옹의 공격을 받고 카를로스4세 왕과 페르난도 왕자가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나폴레옹의 형 조제프 나폴레옹이 왕위에 올라 스페인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의 반발도 거세었던 탓에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주민들의 봉기를 대량학살로 진압한 프랑스에 대하여 스페인은 군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나폴레옹에 대항하게 됩니다. 프랑스가 점령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저항협의체를 구성하고 군주가 없을 때는 주권이 각 지역에 귀속된다고 선언하였는데, 세비야가 핵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비야의 지역협의체는 누에바에스파냐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 부왕령에서는 스페인왕실에 대한 충성도가 여전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원주민과 메스티조(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와 파르도(유럽인과 아프리카계의 혼혈)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광범위한 참여를 유도하였지만, 훈련을 받지 않은 반란군은 부왕령의 정규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야기된 군주의 부재를 틈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려던 반란세력은 군주지지파에 밀려 반란이 실패한 것입니다. 문제는 영국의 지원을 받아 나폴레옹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한 뒤에 왕위에 오른 페르난도7세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극단적으로 탄압하는 바람에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원주민과 혼혈인들을 권력투쟁에서 배제한 채 크리요오(아메리카 태생의 백인)와 페닌슐라르(이베리아반도 출신의 백인) 간의 대립으로 발전하였으며 결국은 크리요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이후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까지도 신생독립국가의 내정에 깊숙하게 간섭하였고, 상업적 침투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스페인의 식민통치의 특징은, “식민지 아메리카가 ‘공포, 무지, 가톨릭’이라는 세 개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혁명가 마리키타 산체스의 말에 잘 함축되어 있습니다. 처형과 폭력을 통해 주민을 지배하여 공포를 조장했고, 일반인의 시민교육을 박탈함으로써 자유로운 사상이 뿌리내릴 수 없도록 하였으며, 가톨릭교회는 이단심문소를 통하여 지배세력의 이런 행위들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켰다는 것입니다.

 

90퍼센트에 이르는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독립투쟁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확보된 인쇄기를 통하여 만들어낸 정치팸플릿을 통하여 자유주의 사상이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공화주의자였지만 이들은 지역 내의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세계적 분위기가 공화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던 덕을 본 것입니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도 라틴아메리카의 주민들은 여전히 기존의 사회적 위계질서에 따르는 보수적인 경향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주권재민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형태가 자리를 잡기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의 초반 대서양 양안을 뜨겁게 달구었던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와 아시아 국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의미를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라고 저자는 요약하였는데, 식민지배를 탈피하여 주권이 인민들에게 있다는 점을 세계가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독립 직후에도 보통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유예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계기로 기승을 부리던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을 내리게 되는데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이 크게 기여하였던 것입니다.

 

저자는 유럽계, 아프리카계 그리고 원주민의 혈통이 혼합된 독특한 라틴아메리카만의 다인종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초반을 달구었던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씨를 뿌린 자유주의적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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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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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하롱베이와 앙코르와트를 연결하는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청룡부대와 맹호부대가 부산항을 떠나던 장면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밖에도 우리소설로는 황석영님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님의 <황색인>, 안정효님의 <하얀전쟁> 등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대체로 전쟁의 참상이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내용이나 베트남 전쟁의 근원까지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굿모닝 베트남>이나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디어 헌터> 등, 역시 전쟁이 인간의 정신을 얼마나 황폐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 영화 등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작품들은 모두 베트남전쟁에 뛰어든 외부인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과연 베트남사람들은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치렀는지, 그리고 전쟁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직전의 베트남사회를 그린 <하얀 아오자이>나, 베트남의 정글을 누비며 전투를 치른 참전작가 반레(본명은 레지투)의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이나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 등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전쟁의 슬픔>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바오닌은 196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일곱 살의 나이로 베트남인민군대에 자원입대하여 3개월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B3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소대원 대부분이 전사한 첫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입대 5개월 만에 소대지휘관이 되어 6년여에 걸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전방을 누비며 전투를 치렀다고 합니다. 베트남 전쟁에서는 전후방 개념이 분명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마지막 작전은 사이공진공작전으로 소대원들과 함께 떤 선 녓 국제공항 점령 전투에 투입되었다(우리는 탄 손 누트 공항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베트남 공수 부대와 치열한 교전 끝에 공항을 장악했을 때 살아남은 소대원은 그를 포함하여 단 두 명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전사자 유해발굴단에 참여하여 옛 전투지역을 누비며 전우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이 모든 과정이 <전쟁의 슬픔>에 녹여져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퇴역군인들이 심각한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전쟁의 슬픔>에서는 작가 또한 PTSD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초반에는 주인공 끼엔이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면서 그 지역에서 벌였던 전투장면을 회상하고 있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기억의 심연에 묻어버리고 싶은 전투장면들이 저절로 살아나오는 고통을 다시 겪어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지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이는 것 같아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은 그 시간들에 붙박여 있었다. 내게는 내 삶처럼 내 영혼을 바꿀 재주가 없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과거가 내 주변에 몸을 숨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때로는 눈만 감아도 내 안에서 기억이 스스로 몸을 돌려 옛길을 쫓고 오늘의 현실은 통째로 풀밭에 내던져지곤 했다.(64쪽)”

 

전쟁터에서 있었던 일만 적었다면 아마도 작가는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장의 이야기에 더해진 끼엔의 사랑 이야기는 더욱 안쓰럽고 슬픈 것 같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뜨겁게 사랑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는 욕심이 화를 불러 사랑하는 이를 곤경에 빠트렸던 것인데, 끼엔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지나가는 6년의 세월은 많은 것이 변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집에서 만난 그녀를 안았을 때 끼엔은 그녀의 우아한 몸에서 한없는 행복감에 뒤섞인 혼란과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요? 전쟁은 사랑을 망가뜨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가뜨립니다. 지나친 욕심과 오해가 끼어들면 더욱 그렇습니다.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온 사람은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을지 몰라도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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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신 - 이기찬 무역소설 손에 잡히는 무역 19
이기찬 지음 / 중앙경제평론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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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해 홍대리 시리즈로 나온 <중국 천재가 된 홍대리; http://blog.joins.com/yang412/13447503>를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인을 위한 다양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홍대리 시리즈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종합상사맨의 활동상을 그려냈습니다. 한 분의 저자가 모든 시리즈를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맞는 분야의 전문가가 경험을 살려 집필을 하기 때문에 전문성도 높이고 또 시리즈의 기획의도에 맞게 재미있게 읽2010년에 <무역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던 작품을 수정 보완하여 새롭게 꾸민 <무역의 신>입니다. 전작을 읽어보지 않은 저로서는 새롭게 읽히는 맛이 있었습니다.

물론 무역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만, 소설로서도 충분히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역 업무를 맡게 된 직장인이라고 한다면 처음 대하게 되는 무역 업무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읽을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전자산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미래전자는 샛별처럼 등장한 제이테크의 추격을 받게 되는데, 미국의 해리스전자와 수출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숨통을 조여 오는 제이테크의 맹추격을 뿌리치기 위하여 해외진출이라는 맞불을 놓으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는 수출입업무의 경험이 전무한 홍대리에게 떨어지고, 일단 단독으로 해외무역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홍대리에게 구세주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니까요? 대학에서 짝사랑을 하던 나현주 때맞추어 등장해서 무역의 달인인 아버지를 소개하는 것입니다. 현주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역실무를 배워가면서 수출을 모색하게 되는데, 무역업무를 하다보면 당할 수 있는 사건사고들이 등장하고 문제해결방법까지도 제시하게 되는 것은 무역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도 순풍에 돛단 듯 풀리면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한 일석이조의 효과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1970년대 우리나라 제계에 전설이 되었던 율산실업의 등장과 퇴장에 관한 비사도 소개되어 있어 옛날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경쟁 상대가 있으면 엎치락뒤치락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미래전자와 제이테크는 미국의 해리스전자를 상대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역시 미국회사와의 거래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상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관계를 통한 거래가 결국은 승리한다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단한 수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역시 정공법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입니다.

 

무역의 실무에 관한 스토리만 늘어놓아도 재미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랑 이야기가 들어가야 아무래도 읽는 재미가 더하기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대학시절 현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허준표사장이 결국은 대진실업의 박성진회장의 딸과 결혼하면서 현주를 버렸던 것인데, 홍대리가 무역업무를 통하여 현주를 대신해서 빚을 갚아준 셈이 되나요? 그러니까 홍대리-현주-허대표가 대학시절 각축을 벌였던 1라운드의 승부는 허대표로 기울었다면, 세월이 흐른 뒤에 무역전쟁에서는 홍대리가 허대표에게 패배를 안기고 현주와 새로운 관계를 암시하는 부수적 성과까지도 챙긴 셈이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는 셈입니다. 박성진회장 역시 근무하던 회사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자금을 빼내어 회사를 대진실업을 설립했다는 비사까지 들어나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과거에 대한 벌을 어떻게 받았는가 하는 데까지는 확대하지 않는 묘수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무역업무가 <무역의 신>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몇 줄의 조언으로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만, 일단은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같은 것을 없애주는 효과는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역의 신

이기찬 지음

308쪽

2015년 6월 20일

중앙경제평론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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