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로 가는 길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 것은 앙코르와트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앙코르 유적을 몰래 반출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앙코르 유적을 찾았을 때 반띠아이 쓰레이의 중앙 사당에 있는 테바다(여신)상에 반하여 본국으로 반출하려다가 붙잡히기도 했는데, 이 여신상은 일찍이 서유럽 사람들에게 ‘동양의 모나리자’로 극찬을 받고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장관을 지냈던 이가 본국정부가 금하고 있는 해외식민지 유물의 반출을 꾀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 과정을 소설에서 그렸다고 해서 읽어본 것입니다.

 

<왕도로 가는 길>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클로드와 페르캉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에서 유물을 반출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 젊은 고고학자 클로드는 반출한 유물로 한몫을 잡으려고 생각하였고, 원숙한 탐험가인 페르캉은 캄보디아 오지에 있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무기구매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실종된 친구 그라보를 구출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여건이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탐험의 실패는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왔던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작가가 죽음을 천착하기 시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첫머리, 홍해를 빠져나와 시암으로 향하는 배안에서 만난 페르캉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시암의 왕이 되었던 백인 메이레나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마치 종기가 곪듯이 한평생을 건 자기 희망에 속아 온통 곪은 사내, 자기를 둘러썬 거대한 나무들에 울려 되돌아오는 제 고함 소리에 스스로 혼겁을 하며 죽어가는 사내…(17쪽)” 분명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들고 빠져들어간 고독에 지쳐 죽어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페르캉은 메이레나의 죽음을 자살로 이해합니다. “자살하는 자란 대개 스스로 빚어 놓은 자기 환상을 쫓아가는 법이다. 그러니 오직 자기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거야. 난 신에게 속아 넘어가는 게 싫단 말이야.” 나중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내가 내 죽음을 생각하는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니야. 살기 위해서야.(146쪽)”

 

복잡하게 얽힌 가정사로 할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클로드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클로드에게 전한 이런 말이 인상적입니다. “아가, 기억이란 한 가문의 성묘(聖墓)나 다름없는 거다. 산 자들과 함께 산다느니 보다는 더 많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다.(28쪽)” 그래서 유럽의 유서깊은 집안에는 조상들의 초상화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는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앙코르 유적에 관한 보고서는 1908년에 나온 것으로 그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새로운 발굴조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참고해보면 앙코르 유적이 발견될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부조면은 오랜 시일 동안 나무의 습기와 폭우로 인하여 심히 파손되었으며… 원형 천장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원형 천장에 사용된 사암이 사원 내부에 무너져 옛 자취를 살필 수 없게끔 되었다. 이 극히 처참한 파손의 원인은 건축에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말미암은 바 크다고 추측된다…. 그 퇴적물에 뿌리박은 거목들이 지금은 벽의 높이를 능가하며 그 뿌리가 그물처럼 틈틈이 얽혀 벽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지역은 거의 인적이 없는 황막한 밀림의 비경이다….(53-54쪽)” 하지만 고고학자라고 하는 클로드가 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밀림 속에 숨어있던 유물들이 인간의 눈에 띄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채석 망치를 들더니 온몸을 비틀고는 냅다 돌 뭉치를 후려쳤다. 돌가루가 다시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하얀 줄기에 홀린 듯이 돌가루를 바라보았다.(113쪽)” 고대 장인들이 피와 땀을 쏟아 만들어낸 예술품을 그저 훔치기에 적당한 크기로 나누기 위하여 마구잡이로 부쉈던 것입니다. 어떻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잘라낸 유물을 달구지에 싣고서 밀림을 빠져 나오게 되지만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원주민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페르캉은 그곳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도로 가는 길>을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 경우는 죽음에 대한 작가의 열린 생각이 주로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던 페르캉도 막상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죽음에 대하여 흥미가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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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수업 -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질문
박웅현 외 지음, 마이크임팩트 기획 / 알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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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생각수업>을 읽었습니다. 마이크임팩트가 매년 여는 ‘Grand Master Class’의 2015년 주제 ‘생각수업’에 초대된 진중권교수를 비롯한 아홉 명의 연자들이 발표한 내용을 다듬어 내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흔히 방황하기 쉬운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엇은 시대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해왔던 것 같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이 갈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콕 짚어낸 무엇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세상을 살아본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수업>은 지금 바로 돈이 되지는 않아도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순수한 ‘앎’과,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비하고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짚어볼 수 있는 ‘고민의 자리’라는 두 가지 화두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을 겨냥한 기획물이었다고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가를 드높이고 있어 이름만 들어도 아! 하는 아홉 분들―박웅현, 진중권, 고미숙, 장대익, 장하성, 데니스 홍, 조한혜정, 이명현, 안병옥님이 초대되었다고 합니다. 아홉 분의 연자들이 받은 명제는 ‘진정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자신의 인생에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을 만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른 최소한의 지식을 전달하는 한편, 그간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들을 청중들에게 던지도록 요청받았다는 것입니다.

 

광고를 하시는 박웅현님의 질문은 ‘왜는 왜 필요한가’인데 역시 광고를 하시는 분답게 심오한 질문을 준비하였지만, 내용을 보면 다양한 분들의 말씀을 끌어와 엮어내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느낌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시한 ‘동의할 수 없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자’라는 조언에 앞서 그 동의라는 것이 남이 보기에도 타당해야 할 것이라는 전제를 빼놓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본업인 미학에 관해서보다는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일반화되는 진중권님의 질문은 ‘우리는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인데 중요한 것은 가치중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 필요할 듯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대한 편향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님은 최근 번역한 <열하일기> 등을 통하여 우리 고전에 대한 사랑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만,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동양의 의역학의 핵심이론이라고 하는 음양오행설이 입증되지 않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현대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한 전통의학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내용은 과학철학을 전공하신 장대익님의 ‘과학은 가치에 침묵하는가’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인간에 대한 앎은 인문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 앎을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본다면 이에 대해 가장 새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과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21세기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요약된 내용은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왜 인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꼭 읽어본 책의 제목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생각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라는 질문을 준비한 로봇공학자 데니스홍님의 말씀도 마음에 와 닿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창의력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인데, 창의력으로 연결시킬 거리를 많이 가지기 위해서는 공부하고, 여행하고, 호기심을 키워야 하며, 다르게 보고, 생각의 틀을 깨야 한다는 어려운 주문을 하셨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주문이 많고 복잡하면 싫어하는데 어떨까 모르겠습니다.

 

아홉 분의 강연에 무려 4천명이 넘는 청중들이 몰려 열광했다고 합니다. 좋은 말씀을 듣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아무리 좋은 말씀도 자신만의 틀에 걸러서 들을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한때의 유행에 휩쓸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생각수업

박웅현 등 지음

316쪽

2015년 6월 25일

알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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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생각한다 - 20세기 사상의 정치학 :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토니 주트 &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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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한 역사가의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읽었습니다. 예일대학 역사학과의 티머시 스나이더교수가 뉴욕대학에서 유럽근대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토니 주트교수와 나눈 대담을 정리한 <20세기를 생각한다>입니다. 토니 주트교수는 지난 4월 <기억의 집; http://blog.joins.com/yang412/13652730>으로 라포르시안 독자들과 이미 만난 적이 있습니다. <기억의 집>은 저자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는 동안에 발표한 글들을 묶어서 사후에 내놓은 책인 반면,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스나이더교수가 예일대학에 잠시 머물던 2009년 1월부터 여름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뉴욕에 살고 있는 주트교수의 집을 방문하여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스나이더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을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라고 정의하고, “이 책은 유럽과 미국의 근대 정치사상사이다. 주제는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正義)다. (…) 이 책은 정치사상의 한계(그리고 쇄신능력)와 정치 영역에서 지식인들의 도덕적 실패(그리고 의무)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9쪽)”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세기를 생각한다>는 [북소리]에서 이미 소개했던 버나드 루이스교수의 <100년의 기록; http://blog.joins.com/yang412/13700052>처럼 토니 주트교수의 삶과 학문의 세계를 집대성한 기록입니다. <100년의 기록>의 저자 버나드 루이스교수가 유대계인 것처럼 토니 주트교수 역시 친가와 외가 모두 동유럽에 뿌리를 둔 러시아 유대인으로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발생한 유대인 학살사건 이후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두(冒頭)에서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밝히고, 출생경위와 성장과정을 정리하여 자신의 학문적 배경을 설명하는 모양새가 닮아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주트교수의 전공이 유럽의 역사이기 때문인지 유럽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까지 이야기가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저자는 유대인 문제가 자신의 지적활동이나 역사 연구에서 결코 중심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가운데 유대인 문제를 빠트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기억의 집>이 개인적인 삶에 관한 기록이었다고 한다면 <20세기를 생각한다>는 학문적 성과는 물론 자신의 철학이 형성된 과정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면, 책읽기도 환자 사례를 경험하는 일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평생 보기 힘든 사례를 누군가는 잇달아 경험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첫 번째 사례를 경험하면서 공부한 깊이 덕분에 다른 의사라면 놓칠 수도 있는 희귀 사례가 진단되는지도 모릅니다.

 

사전에 질문의 요지를 건네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하였고 때로는 장난기도 섞여있었지만, 두 사람의 정신적 도서관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잘 분류된 자료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녹취한 자료는 스나이더교수의 서문과 주트교수의 에필로그를 비롯하여 모두 9개의 장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 점에 대한 스나이더교수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장은 전기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토니의 생애와 20세기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현장들, 말하자면 유대인과 독일인의 문제인 홀로코스트, 시오니즘과 그 유럽적 기원, 영국의 예의주의와 프랑스의 보편주의, 마르크스주의, 유럽과 미국의 사회계획 등을 관통한다.(13쪽)” 책을 읽어가면서 철학은 물론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에 나온 다양한 저작물의 핵심내용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이 기억용량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히틀러의 파시즘이 느닷없이 등장해서 세력을 얻은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만,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등장했던 것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와 혁신을 내세우면서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인 정치적 방식으로 유럽대륙은 물론 심지어는 영국에서도 부상할 정도였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1930년 전후에 맞은 경제위기에 무능력한 정부에 반발하여 파시스트동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지만 1936년 폭력을 유발하고 공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대중적 호응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귀족들까지도 히틀러의 파시즘이 공산주의나 무질서를 막아줄 보루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트교수는 사회주의 성향인 가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저들을 탐독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작동방식과 이유를 놀랍도록 훌륭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1960년대까지도 지식인들에게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고 합니다. 무정부주의나 개혁주의, 심지어는 자유주의까지도 당대의 사회적 현상을 잘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기독교와 다윈주의와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주트교수처럼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1917년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은 공산주의가 보인 행태에 실망한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운동에 관하여 알고 있던 것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1909년 팔레스타인의 데가니아에 처음 세워진 키부츠는 재산을 공유하는 일종의 집단거주지로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주민들의 의식주와 복지·의료 활동 등에 쓰이고, 남은 재산은 키부츠에 재투자된다고 합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후 키부츠는 개인적인 생활과 사적인 소유에 더 많은 자유를 주고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에는 200개 이상의 키부츠에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다음백과, 키부츠(kibbutz),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2k1158a)

 

이스라엘 독립 직후에 외국에서 자란 유대 청년들을 키부츠로 끌어들이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디아스포라에서 돌아온 유대 젊은이들을 나약하고 현지에 동화된 삶에서 구원하여, 착취당하지도 착취하지도 않는 생명력 넘치는 유대인 농민을 창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주트교수가 키부츠 운동에 빠져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시오니즘이란 유대인성의 허식적 형태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아들의 선택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결국 1967년 6일 전쟁 직전에 소집된 예비군을 대신하여 키부츠에서 일할 자원자 모집에 호응하여 이스라엘에 도착한 주트교수는 이스라엘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국수주의자 이스라엘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종족차별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아랍에 반대했으며, 가능하다면 어디서든 아랍인들을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키부츠에 정착하려던 생각을 접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서 유럽에 파시즘이 대두된 배경을 간단하게 요약했습니다만, 스페인 내전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은 1936년 총선에서 승리한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군부가 주도한 군사반란으로 인민전선 연립정부의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반민주세력인 지구와 교회의 호응을 얻어 1939년 반란군이 마드리드를 점령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공화파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아나키스트 등 다양한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어 정부는 오히려 세력 간의 균형을 깨는 상황을 우려하여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http://blog.joins.com/yang412/13619208>에서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내전의 양상은 스페인 사회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따라 카탈루냐 대 마드리드, 남부의 토지 없는 노동자들 대 서부의 중간 계급 지주들, 가톨릭 세력이 강한 지역 대 반교권주의 지역의 대결구도였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가 병력·탱크·비행기 등을 보내 반란군을 지원하고, 프랑스와 멕시코 정부는 공화파에 장비와 물자를 공급하면서 국제전의 양상으로 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4만여 명에 달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좌파진영 인사들은 국제여단의 이름으로 공화파 편에서 싸웠습니다. 1936년 10월 스탈린이 공화파 지지를 선언하면서 복잡해졌습니다. 내전 초기 주변세력에 불과했던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공산주의자들이 지역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좌파의 다른 경쟁자들을 억누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지 오웰이 쓴 <카탈로니아 찬가; http://blog.joins.com/yang412/13668308>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바르셀로나의 시가전의 배경이 왜 일어났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버나드 루이스 교수는 <100년의 기록>에서 오늘날의 역사연구 역시 과학적으로 상당히 진화했으며, 무분별한 자유보다는 검증 가능한 과학적 방법을 선호하기에 이르렀다고 했지만, 주트교수는 역사라는 학문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어느 범주에 속하는지 그리 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과거를 발명하거나 이용할 수는 없다(333쪽)’라는 전제입니다. 이는 보기보다 명확하지 않지만, 지성인에게 혹은 견문이 넓은 독자에게 진실로 들린다면 그것은 좋은 역사책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과거를 무시하는 일보다도 과거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인용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 사례로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무처장이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미국의 전후 독일 점령을 인용하여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을 들었습니다. 상세한 설명을 더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사담 후세인이 히틀러의 환생이라는 비유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와 기억에 관한 비유도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기억이 역사의 배다른 형제라고 비유합니다. 유대인학자들은 오랜 세월을 이어오면서 다음과 같이 기억(zakhor, 자코르)에 관하여 강조해왔다고 합니다. “국가 없는 민족의 과거는 늘 다른 민족의 목적을 위해 기록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유대인에게 주어진 의무는 기억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352쪽)” 그런데 저자는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과거 자체와 혼동되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즉. “유대인의 과거는 집단적 기억에 유용한 과거 일부와 융합된다. 그러면, 당대 최고의 유대인 역사가들의 저술들이 있음에도, 유대인의 과거에 대한 선택적 기억은, 다시 말해 고난과 추방, 희생의 기억은 유대인 공동체의 기억된 내러티브와 합체되어 역사 자체가 되어 버린다.(352쪽)” ‘이와 같은 감성은 실제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라고 저자는 우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 역사학계에서 고조선 등의 상고사에 관한 기록을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학자의 입장 때문인가 봅니다. 자료로 입증되지 않은 역사는 가능성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이겠지요.

 

저자는 마지막 장을 사회민주주의에 할애하였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은 “현존 정치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라고 요약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로드베르투스와 페르디난트 라살레가 제창한 국가사회주의를 모체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카를 마르크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을 접목하여 만든 사회민주주의는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위한 혁명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기본원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서독·스웨덴·영국(노동당) 등 서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집권하여 현대 유럽 사회복지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대공황의 기억, 파시즘의 경험, 공산주의의 공포, 전후 호경기 등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했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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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 1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 1
장궁야오 지음, 박혜은 옮김 / 전남대학교출판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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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본고장 중국에서 전통의학을 국가보건체계에서 제외시켜 민간의학으로 되돌려 보래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장궁야오교수의 이론을 담은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I)>를 읽게 되었습니다. 장교수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도 전통의학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19세기 말부터 있어 왔지만, 국공내전의 틈바구니에서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이 대거 대만으로 탈출하면서 의료체계에 공백이 생기는 바람에 시골 구석까지 의사를 배치할 수 없었던 중국 정부가 전통의학을 의료체계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2005년 봄에 중국을 방문하여 중의학의 현황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만, 중의학은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속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중국 내부에서 전통의학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운동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하여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전통의학을 보건의료 체계 안에 두고 지원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같은 목표를 가진 장교수 등과 연결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I)>는 과학기술철학과 과학사상사를 전공한 장궁야오교수가 중의학의 이론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음을 알게 되고, 2005년 우한에서 개최된 전국과학기술 및 문화학술 토론회에 「고별한의한약」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논쟁이 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다양한 기회에 작성한 글들을 묶어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I)>로 편찬하기에 이른 것이라 합니다. 중국에서 중의학 퇴출을 거론한 것은 공자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1879년 유월선생이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I)>를 발표한 것이 최근의 일이고, 서구문물이 쏟아져 들어올 무렵 여운수와 노신, 쑨원, 호적, 양계초, 등 다수의 과학자들이 전통의학의 폐기를 강력하게 촉구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미상의 <황제내경>은 물론 중의학의 비조로 알려진 장중경의 <상한론> 등이 대부분 위작이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통의학이 인도나 이집트, 페르시아 등의 의학과 비교하더라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채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몇 가지 이유에서 전통의학을 폐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문화진보라는 명분으로, 단순히 전통적으로 지켜온 것이기에 이를 현대화하여 새롭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학의 명분으로 볼 때도 전통의학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통의학의 원리가 명백하고 믿을만한 원리관계 혹은 인과관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물다양성 옹호를 명분으로 하는 퇴출이유는 더욱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전통의학의 약재가 희귀동물이거나 식물이기 때문에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주의의 명분으로 보았을 때 전통의학은 환자중심의 사고가 결여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이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전통의학은 전혀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세웠다는 틀에서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통의학에서는 진단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진단만하더라도 의사에 따라서 진단이 다르고 치료 역시 다르기 때문에 병증을 통합하여 기준을 정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치험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일반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 바가 없는 것도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한기선생과 같은 이는 “음양오행 등 방술에 한의학이 부회했기 때문에 한의학은 천한 기예로 전락했다(236쪽)”라고 바판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주도하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허준의 <동의보감>은 허준의 원작물이 아니라 <황제내경>, <상한론> 등 중국의 고대한의서의 내용을 편집한데 불과한 위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보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현대의학과 비교한다면 <동의보감>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처럼 전통의학 역시 역사의 유물로 보관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편을 통하여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정부의 지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의학을 보건의료체계 안에 두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는 저자의 주장도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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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펜 공부법
아이카와 히데키 지음, 이연승 옮김 / 쌤앤파커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만족도 순위를 발표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학원 고객 만족도까지도 측정하는 모양입니다. 일본 오리콘 차트 ‘학원 고객 만족도’ 부분에서 6년 연속 1위를 기록한 입시학원, 와세다 학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파란펜 공부법’은 비밀이라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학습법이라고 합니다. 파란펜 공부법은 입시를 넘어 직장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하는데, 와세다 학원의 창립자 아이카와 히데키가 <파란펜 공부법>에서 그 비밀을 설명했대서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오직 파란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이 비밀의 핵심인 파란펜 공부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해보았다고 합니다. 실험내용은 검정, 파랑, 빨강 세 가지 색으로 각각 알파벳 20자를 써서 1분 안에 얼마나 많이 외울 수 있는가를 보았는데, 70퍼센트의 피실험자가 파란펜을 사용했을 때 가장 많이 외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의 문제는 이미 파란펜을 사용하고 있는 와세다학원의 학습법이 세상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피실험자들에게는 이미 파란펜의 우수성이 각인되어 심리적으로 강화된 상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파란펜 암기법을 응용하여 적, 녹, 청 삼색 펜을 구분하여 쓰는 법으로 발전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고백하는 것처럼 파란펜 학습법을 개발하게 된 동기는 단순했다고 합니다. ‘파란색은 안정감을 준다. 마음이 안정되면 집중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니 이색으로 써보면 어떨까?(52쪽)’하는데 생각이 미쳤고, 학원생들에게 권했던 것으로, 당시만 해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파란펜으로 공부하여 입시에서 성공하였다는 학생들이 나오면서 입소문을 타고 확산된 것이라고 하니, 일종의 마술과 같은 심리효과를 사용한 셈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60년대에도 이미 눈으로 보면서, 손으로는 적고 동시에 소리 내어 읽으라는 학습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연필을 사용하거나 파란 잉크를 사용하였고, 종이는 시험지를 사용했는데, 누군가와 비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결국은 오래 전부터 학원가에 알려져 있던 학습법을 다만 ‘파란펜으로’ 바꾸어 본 다음에 입시에 성공한 학생들의 성공담을 입혀 심리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받아 적을 것으로 주문합니다. 하지만 요사이 저는 강의하는 사람이 말하는 내용을 듣는데 집중하고 따로 받아 적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받아 적는 데 몰두하다보면 강의한 사람이 말한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파란펜 공부법’이라는 표지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는 ‘빨간펜 공부법’은 안될까 싶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빨간펜으로 첨삭지도를 한다는 학습지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저자는 빨간펜은 적절치 못하다고 설명합니다. 파란색은 대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하여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하는데, 세로토닌은 인간에게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는 효과를 나타냅니다. 반면 빨간색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이는 흥분작용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고조된 기분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빨간펜으로만 적혀 있는 내용을 읽게 되면 전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같은 조건이라면 파란펜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만, 결국 공부의 핵심은 공부에 쏟는 시간의 양과, 공부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집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입시와 같은 경쟁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모든 이들이 파란펜을 사용하게 된다면 파란펜의 신화는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는 정말 빨간펜의 신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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