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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로 가는 길
앙드레 말로 지음, 김붕구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 것은 앙코르와트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과정에서 앙코르 유적을 몰래 반출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앙코르 유적을 찾았을 때 반띠아이 쓰레이의 중앙 사당에 있는 테바다(여신)상에 반하여 본국으로 반출하려다가 붙잡히기도 했는데, 이 여신상은 일찍이 서유럽 사람들에게 ‘동양의 모나리자’로 극찬을 받고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장관을 지냈던 이가 본국정부가 금하고 있는 해외식민지 유물의 반출을 꾀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그 과정을 소설에서 그렸다고 해서 읽어본 것입니다.
<왕도로 가는 길>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클로드와 페르캉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에서 유물을 반출하기로 합의를 하게 되는데, 젊은 고고학자 클로드는 반출한 유물로 한몫을 잡으려고 생각하였고, 원숙한 탐험가인 페르캉은 캄보디아 오지에 있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무기구매자금을 마련하려는 목적 이외에도 이 지역에서 실종된 친구 그라보를 구출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여건이 어려웠던 그 시절에도 탐험의 실패는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왔던 것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작가가 죽음을 천착하기 시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첫머리, 홍해를 빠져나와 시암으로 향하는 배안에서 만난 페르캉은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시암의 왕이 되었던 백인 메이레나의 죽음이 등장합니다. “마치 종기가 곪듯이 한평생을 건 자기 희망에 속아 온통 곪은 사내, 자기를 둘러썬 거대한 나무들에 울려 되돌아오는 제 고함 소리에 스스로 혼겁을 하며 죽어가는 사내…(17쪽)” 분명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만들고 빠져들어간 고독에 지쳐 죽어갔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페르캉은 메이레나의 죽음을 자살로 이해합니다. “자살하는 자란 대개 스스로 빚어 놓은 자기 환상을 쫓아가는 법이다. 그러니 오직 자기를 존속시키기 위해서 자살한다는 거야. 난 신에게 속아 넘어가는 게 싫단 말이야.” 나중에 페르캉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내가 내 죽음을 생각하는 건 죽기 위해서가 아니야. 살기 위해서야.(146쪽)”
복잡하게 얽힌 가정사로 할아버지 아래서 성장한 클로드는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할아버지가 클로드에게 전한 이런 말이 인상적입니다. “아가, 기억이란 한 가문의 성묘(聖墓)나 다름없는 거다. 산 자들과 함께 산다느니 보다는 더 많은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거다.(28쪽)” 그래서 유럽의 유서깊은 집안에는 조상들의 초상화를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는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앙코르 유적에 관한 보고서는 1908년에 나온 것으로 그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 사이에는 새로운 발굴조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참고해보면 앙코르 유적이 발견될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부조면은 오랜 시일 동안 나무의 습기와 폭우로 인하여 심히 파손되었으며… 원형 천장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원형 천장에 사용된 사암이 사원 내부에 무너져 옛 자취를 살필 수 없게끔 되었다. 이 극히 처참한 파손의 원인은 건축에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말미암은 바 크다고 추측된다…. 그 퇴적물에 뿌리박은 거목들이 지금은 벽의 높이를 능가하며 그 뿌리가 그물처럼 틈틈이 얽혀 벽을 둘러싸고 있으며… 이 지역은 거의 인적이 없는 황막한 밀림의 비경이다….(53-54쪽)” 하지만 고고학자라고 하는 클로드가 하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밀림 속에 숨어있던 유물들이 인간의 눈에 띄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채석 망치를 들더니 온몸을 비틀고는 냅다 돌 뭉치를 후려쳤다. 돌가루가 다시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하얀 줄기에 홀린 듯이 돌가루를 바라보았다.(113쪽)” 고대 장인들이 피와 땀을 쏟아 만들어낸 예술품을 그저 훔치기에 적당한 크기로 나누기 위하여 마구잡이로 부쉈던 것입니다. 어떻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잘라낸 유물을 달구지에 싣고서 밀림을 빠져 나오게 되지만 밀림 속에 숨어 있는 원주민에게 잡히는 신세가 되고, 페르캉은 그곳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왕도로 가는 길>을 여러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 경우는 죽음에 대한 작가의 열린 생각이 주로 눈에 띄었던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한다던 페르캉도 막상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죽음에 대하여 흥미가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