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커의 마케팅 인사이트 - 피터 드러커의 놀라운 마케팅 통찰력
윌리엄 A. 코헨 지음, 이수형 옮김 / 중앙경제평론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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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원고를 두고 의논할 일이 있어 출판사에 갔을 때, 대표께서 읽어보기를 권했던 책입니다. 책을 받으면서 속으로는 전공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 역시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표의 생각을 읽느라 고민을 잠시 했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는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마케팅에 관한 저술을 낸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 마케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필립 코틀러가 쓴 서문에서 드러커를 현대 마케팅의 할아버지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드러커는 마케팅을 기업경영의 중요한 무기로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 자체가 일종의 자기 경영이라고 본다면 기업경영에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의 삶이 보다 효율적이 될 것 같습니다. 출판사의 대표께서 책을 건넨 이면에는 경영에 눈을 떠보라는, 아니면 삶의 경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겼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러커의 마케팅 인사이트>는 피터 드러커가 마사토시 이토와 함께 클레어몬트대학에서 운영한 경영간부대상 박사과정의 첫 졸업생인 윌리엄 코헨이 마케팅에 관한 드러커의 고찰을 정리한 것입니다. 드러커가 남긴 교훈을 바탕으로 하여 드러커의 개념을 장래 어떻게 발전시켜 실천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1부 ‘마케팅의 지배적 지위’에서는 마케팅의 시원과 발전과정, 드러커의 마케팅관 등을 담았고, 2부 ‘이노베이션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발전가능한 기업경영의 핵심이 되는 이노베이션의 핵심을 담았습니다. 3부 ‘드러커의 마케팅 전략’에서는 미래를 대비하는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는가를 정리하였고, 4부 ‘신제품과 서비스의 도입’에서는 마케팅의 기본이 되는 시장조사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마지막 5부 ‘드러커의 특별한 통찰력’에서는 그야말로 마케팅에 관한 드러커의 선구자적인 시각을 담았습니다.

 

드러커는 생전에 ‘기업의 목적은 이익이 아니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 이익을 목적으로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업이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다고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시도가 거꾸로 발목을 잡아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과도한 이익은 사회에 해를 끼치고 조직 건전성에도 해롭다는 점을 유의하라고 합니다.

 

드러커가 인구동태 분석을 기업경영에 선구적으로 접목하였다고 합니다. 인구통계는 이미 일어난 현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현상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최근 출산율 감소에 따른 인구감소가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구동태를 제대로 감시하고 있었다면 일찍이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드러커식 인구동태분석의 좋은 사례를 보면 1946년 시작된 베이비붐은 유아기, 유소년기에 필요한 완구와 아기용품의 수요 증가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며,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이들이 고령자가 되어 의료와 헬스케어에 관한 분야에서 수요가 증대될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 생각없이 살다보니 뒤늦게 그렇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드러커와 함께 미래로’라는 마무리하는 글에서 저자는 드러커의 통찰은 여전히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생전에 그가 내놓은 개념들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남겨졌다고 적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속한 조직과 사업을 지속적으로 번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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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골프에서 리더의 언어를 배웠다
김미성 지음 / 알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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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있었던 사업설명회에서 발표하신 분이 던진 한 마디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아마도 다른 설명회였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이날의 분위기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는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말하기와 소통하는 법을 가르치는 김미성님은 그 비법을 골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말하기를 골프와 연관 지을 수 있는 그녀의 감각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은 골프에서 말하기를 배웠다기 보다는 말하기와 골프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골프를 배운지는 오래되었습니다만, 운동신경이 무딘 탓과 함께 자주 운동을 나갈 형편이 되지 않았던 탓에 빠져들지는 못하고 잊어버릴만 하면 한 번씩 하기 때문에 여전히 100타가 넘는 수준입니다. 그런 저이지만 재기가 번뜩이는 저자의 설명은 여러 차례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말하기는 이미 일상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대중 앞에 서서 말하는 경우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학회에서 처음 발표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떨었던지 안쓰럽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꽤 오래 들어야 했던 기억부터,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기에 이력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학회에서 처음 발표할 때 떨림증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미리 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떨렸던 것을 보면 심리적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 연구소와 학술교류 차 방문했을 때 가졌던 만찬에서 갑작스럽게 해야 했던 만찬사에서는 그것도 영어로 감사와 비전을 제대로 담아냈다는 평을 듣기도 한 것을 보면 아마도 만찬에서 마신 술의 힘을 빌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골프에서 리더의 언어를 배웠다>에서는 자신이 골프를 배워 처음 라운드에 나섰을 때 했던 헛스윙을 하는 실수를 했는데, ‘모든 경기의 승부는 티오프 전에 끝납니다.(9쪽)’라는 골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서부터 말하기의 성공법칙을 골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골프를 하지 않는 많은 분들은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그래도 대중 앞에 나서 말하기를 해야 하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골프를 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을 통하여 말하기를 잘하려면 챙겨야 하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저자가 홍천군에서 했다는 강연의 시작부분이었습니다. “잣과 나물이 유명한 이곳 홍천에서 새해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곳 홍천은 서울보다도 세 배나 큰 자치 단체이니, 자부심 또한 서울보다 세 배는 크리라 믿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강의할 때보다 세 배 더 열심히 강의하겠습니다.(162쪽)” 지나친 느낌도 들지만 청중의 마음을 먼저 빼앗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비결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강연을 할 때나 책을 쓸 때 모두 사실 확인이 중요하다는 점을 저자도 짚었습니다만,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이는 대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특정한 활동이나 사고를 많이 하면 뉴런을 연결하는 끝부분의 섬유질이 굵어지는데 이 지점이 미엘린이다. 우리말로 수초하고 하는 미엘린이 발달하면, 자주 하는 활동과 사고에 소모되는 에너지가 줄어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64쪽)”입니다. 뉴런, 즉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섬유에는 미엘린이 감싸고 있는 신경섬유와 그렇지 않은 신경섬유가 있습니다. 미엘린은 신경섬유를 통으로 감싸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끊어져있는데, 이러한 끊어짐이 신경흥분이 빠르게 전달되는 해부학적 구조인 것입니다. 훈련에 의하여 미엘린이 얼마나 강화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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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터키 -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그곳
장은정 지음 / 리스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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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터키일주 여행을 예약했습니다. 봄에 떠나려 했던 여행을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다보니 가을의 초입에 떠나게 된 것입니다. 일단 떠날 작정을 했으니, 가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공부는 스페인을 다녀와서 꾸준하게 해온 것으로 어느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만나 서로에게 미친 영향의 한 면을 마그레브지역에서 보았다면 또 다른 면을 터키반도와 발칸반도를 중심으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터키>도 터키 여행을 준비하기 위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장은정님은 10년 동안 21개국 52개의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고 하는데, 특히 터키의 경우는 세 번씩 방문하였지만, 여전히 터키를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꼽고 있습니다. 조금 이해되지 않는 점은 그토록 많은 외국을 여행하였으면서도 <언젠가는, 터키>가 첫 작품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 담은 내용에는 앞서 두 차례 방문에서 보고 느꼈던 점은 다루지 않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먼저 터키의 모든 것, 예를 들면 터키라는 나라의 정체로부터 터키 사람들의 특성, 음식, 먹거리, 터키어 등을 정리하고서는 본격적으로 터키 순례에 들어갑니다. 이스탄블 구시가지, 신시가지,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앙카라, 에이르디르, 안탈리아, 페티예, 쿠샤다스, 사프란블루 등을 거쳐 다시 이스탄블로 돌아오는 여정입니다. 자유여행을 통하여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이동하고 싶으면 이동하는 방식의 여행이라서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유가 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시선은 주로 터키 사람들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터키에서 만나게 될 유물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소략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보스포러스 크루즈를 이용할 때는 무조건 오른쪽에 앉아야 하는 것처럼, 터키를 여행하면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점들을 콕콕 짚고 있어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단체여행객에게는 2%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려 9곳이나 되는 지역을 돌아보고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과 같이 여행을 하게 되면 구경보다는 맛집을 챙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 역시 젊은 탓인지 여행 중에 맛본 특별한 음식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터키 여행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이유는 오감을 즐겁게 하는 음식들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들이 넘쳐나고,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라서 터키 여행 중에는 적어도 음식 때문에 고핻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터키의 음식이 중국, 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음식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23쪽)” 물론 터키의 도시들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지 교통편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정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넉넉하게 곁들이고 있는 잘 찍은 사진들에는 적절하게 설명이 붙어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점도 다른 여행기들과 차별되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간혹 이런 곳은 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것인 책 읽는 이마다의 개인적 취향이 다른 탓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오롯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점만 적고 있습니다만, 터키의 역사, 종교, 신화, 문학 등 다양한 것들을 곁들였더라면 내용이 보다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스페인 여행기를 정리하면서는 의욕이 앞선 탓에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인용하는 만용을 부린 탓인지 어수선하다는 평도 받았던 기억이 있어서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자가 가본 곳에서 느낀 것들을 저도 만나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터키로 떠날 때 여행가방에 챙겨넣고 싶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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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시압 이야기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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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소천하신 장인어른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누군가 데리러 왔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정신의학에서는 대개 환시나 환청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옛 이야기에도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것들이 있는데,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중국에서는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를 속여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 이야기도 있는데,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터키 소설을 만나고 보니, 터키에서도 저승사자 이야기가 전해오는 모양입니다. 에게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교수의 <에프라시압 이야기>가 바로 저승사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승사자를 따라 나서는 모양입니다만, <에프라시압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생긴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압툴라흐만이라고 하는 건달이 저승사자와 내기를 걸었는데, 각자 한 사람씩 데리고 와서 편먹고 으뜸패라는 시합을 하는 것입니다. 압툴라흐만은 친구를 데리고 왔고, 저승사자는 자신에 데리고 갈 젯잘 데데라는 노인을 데리고 갑니다. 승부는? 당연히 저승사자가 이겼습니다. 저승사자는 자신과 편먹고 시합을 한 젯잘 데데에게도 같은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저승사자는 이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게임 자체가 주는 즐거움 이외에는 그 어떤 목적, 규칙 그리고 조건이 없는 게임을 제안합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주기로 말입니다. 이야기 한편 당 한 시간의 목숨을 더해주기로 합니다. 이야기는 저승사자가 데려가야 할 우준 이흐산(키큰 이흐산이라는 뜻이랍니다)을 붙잡을 때까지 이어가게 되는데, 문제는 우준 이흐산이 신출귀몰하게도 저승사자의 코 앞에서 사라지기 일쑤인 것입니다. 당연히 이야기는 첫 번째 주제인 공포에서 시작하여 종교, 사랑, 천국으로 바뀌어갑니다. 저승사자와 젯잘 데데가 한 꼭지씩 이야기를 내놓기로 했으니,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무려 여덟 꼭지가 이어지는 셈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여덟 꼭지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패러디, 상호텍스트성 등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학적 기법들을 통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옮긴이는 작가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존재는 마치 내기를 좋아하는 변덕스러우면서, 감정이 봉인된 채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승사자가 젯잘 데데에게 이야기하기라는 게임을 제안한 것도 젯잘 데데가 손자들을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나톨리아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밤이 아주 길고, 아주 재미있고, 약간은 ‘소름 끼치게’ 지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여주는 정령과 요정 이야기들 때문이다(51쪽)”라고 적은 것을 보면 터키 사람들 사는 모습이 우리네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렸을 적에 집에 큰 고모께서 놀러 오시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던 기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 공포에 관하여 젯잘 데데가 죽음의 사자에게 전한 이야기는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진 비다즈왕을 되살리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왕과 겹치는 이미지입니다. 터키가 그리스와 붙어 있어 옛 이야기까지도 공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마쳤을 때, 저승사자와 젯잘 데데의 생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만으로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열망하며, 열의를 가지고 노력하면 이루어지곤 하지요. 난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는 한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오(243쪽)’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젯잘 데데를 읽으면서 저 자신은 사람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지 돌아보게 되면서 아쉬움이 남는 듯합니다.

 

천국의 이야기까지 마쳤을 때, 젯잘 데데를 뒤쫓던 손자들을 등장하게 되고, 저승사자는 젯잘 데대와 손자들에게 마지막 게임을 제안합니다. 자신을 웃게 만들면 젯잘 데데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이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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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실재론 과학문화연구 6
정광수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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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학생 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과학의 정수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저 겉껍데기만 핥는 정도였다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관심을 두어왔던 과학의 본질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과학철학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정광수교수님의 <과학적 실재론>을 읽게 된 것도 저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 이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즉, 완벽한 이론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우리가 관찰해온 자연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되면 기존의 이론은 쓸쓸하게 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퇴장하는 이론을 세웠던 분을 격하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인류에 공헌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실재론>은 과학 영역의 이론이 설명하는 대상들이 실재하는가 혹은 설명력 또는 예측력을 가지는 훌륭한 이론들은 옳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과학 이론의 인식적 격위’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과학적 실재론자(scientific realist)와 반실재론자(antirealist)-여기에는 도구주의자, 구성주의자, 약정주의자 등이 포함됨-가 이론과 이론적 용어들에 대한 ‘해석’의 수준과 훌륭한 이론의 진리성과 이론적 대상의 실제성의 정당화에 대한 지식론적 수준에서 토론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적 실재론을 거슬러 올라가면 2세기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른다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운동한다고 설명하는 지구-중심 천문학체계를 세웠고, 이 이론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 천문학체계가 나올 때까지 확고한 위치를 지켰습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자는 현상들을 잘 설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될 뿐, 행성들의 실제 운동에 관한 이론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수학적 모델은 행성의 실재 운동에 관한 옳고 그름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단지 계산 장치, 즉 지적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여 과학적 실재론의 시조라고 할 만하답니다.

 

<과학적 실재론>의 목차를 보면, 1. 과학 이론의 인식적 격위, 2.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전통적 정당화, 3. 반 프라센의 지식론적 반실재론, 4. 해킹의 실험 실재론, 5. 해킹 실재론에 대한 비판과 대응 등의 순서로 되어 있어,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즉,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격돌하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부분은 반실재론으로 기우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 이론이 최선의 설명 이론이라는 사실은 그 이론이 (근사적으로) 옳다는 신념을 위한 충분한 근거가 아니고, 한 종류의 이론적 대상들이 최선의 설명의 것이라는 사실도 그것들이 실재한다는 신념을 위한 근거는 아니다. 그래서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에 근거한 일부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정당화는 설득력이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35쪽)”

 

반실재론자인 반 프라센의 경우는 이론적 대상들이 관찰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실재하는가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옛 경구에 따르는 셈인데, 저 또한 일정 범위에서는 옳은 입장이라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반 프라센은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을 통하여 느끼는 과정이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면 도구의 사용 여부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해킹은 반 프라센의 근본 입장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실재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대상을 우리가 현미경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다면 실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해킹의 실재론은 대상실재론에서 실험실재론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실험적 과정을 통하여 존재가 입증된다는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의 설명력 또는 예측력은 이론적 대상의 실재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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