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실재론 과학문화연구 6
정광수 지음 / 이담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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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학생 때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과학의 정수에는 이르지 못하고 그저 겉껍데기만 핥는 정도였다고 하겠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려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관심을 두어왔던 과학의 본질에 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과학철학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 정광수교수님의 <과학적 실재론>을 읽게 된 것도 저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 이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즉, 완벽한 이론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우리가 관찰해온 자연현상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이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되면 기존의 이론은 쓸쓸하게 퇴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퇴장하는 이론을 세웠던 분을 격하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인류에 공헌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실재론>은 과학 영역의 이론이 설명하는 대상들이 실재하는가 혹은 설명력 또는 예측력을 가지는 훌륭한 이론들은 옳다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과학 이론의 인식적 격위’라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하여 과학적 실재론자(scientific realist)와 반실재론자(antirealist)-여기에는 도구주의자, 구성주의자, 약정주의자 등이 포함됨-가 이론과 이론적 용어들에 대한 ‘해석’의 수준과 훌륭한 이론의 진리성과 이론적 대상의 실제성의 정당화에 대한 지식론적 수준에서 토론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적 실재론을 거슬러 올라가면 2세기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이른다고 합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운동한다고 설명하는 지구-중심 천문학체계를 세웠고, 이 이론은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 천문학체계가 나올 때까지 확고한 위치를 지켰습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자는 현상들을 잘 설명하는 수학적 모델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될 뿐, 행성들의 실제 운동에 관한 이론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수학적 모델은 행성의 실재 운동에 관한 옳고 그름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단지 계산 장치, 즉 지적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하여 과학적 실재론의 시조라고 할 만하답니다.

 

<과학적 실재론>의 목차를 보면, 1. 과학 이론의 인식적 격위, 2.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전통적 정당화, 3. 반 프라센의 지식론적 반실재론, 4. 해킹의 실험 실재론, 5. 해킹 실재론에 대한 비판과 대응 등의 순서로 되어 있어, 실재론과 반실재론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즉,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격돌하는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다음과 같은 부분은 반실재론으로 기우는 느낌도 있습니다. “한 이론이 최선의 설명 이론이라는 사실은 그 이론이 (근사적으로) 옳다는 신념을 위한 충분한 근거가 아니고, 한 종류의 이론적 대상들이 최선의 설명의 것이라는 사실도 그것들이 실재한다는 신념을 위한 근거는 아니다. 그래서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리’에 근거한 일부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정당화는 설득력이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35쪽)”

 

반실재론자인 반 프라센의 경우는 이론적 대상들이 관찰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실재하는가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Seeing is believing’이라는 옛 경구에 따르는 셈인데, 저 또한 일정 범위에서는 옳은 입장이라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반 프라센은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각기관을 통하여 느끼는 과정이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면 도구의 사용 여부를 부정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해킹은 반 프라센의 근본 입장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실재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대상을 우리가 현미경을 통하여 관찰할 수 있다면 실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입니다. 해킹의 실재론은 대상실재론에서 실험실재론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즉 실험적 과정을 통하여 존재가 입증된다는 실재하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의 설명력 또는 예측력은 이론적 대상의 실재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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